【윤승원 소감】
「가난한 날의 행복」이 소환한 「동태 한 마리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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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수필】
동태 한 마리의 행복 / 윤승원
■ 필자의 말
대전수필문학회 카페 「초대수필」 코너에 김소운의 『가난한 날의 행복』이라는 ‘추천수필’이 올라왔습니다. 오랜 세월 많은 독자로부터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우리나라 수필계의 고전과 같은 명수필입니다.
글을 올린 사무국장의 소개에 따르면 ‘김지안 수필가가 기억에 남는 수필’이라면서 추천해 준 수필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수필을 다시 읽으면서 과거 충청권 일간지 금강일보 창간 초기에 쓴 졸고 에세이 『동태 한 마리의 행복』이 떠올랐습니다. 저의 글에서도 김소운 수필가의 수필 한 대목을 소개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이 일간지에 소개된 후 뜻하지 않은 ‘뒷이야기’가 많이 쌓였습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 추억의 글인데, 벌써 12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뜻하지 않게 옛 추억을 되새김하게 해주신 대전수필문학회 이득주 사무국장님, 김지안 수필가님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2022. 9. 2. 윤승원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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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태 한 마리의 행복』 , 그 뒷이야기
윤승원 수필문학인
“윤 작가님 덕분에 오늘 아침 동탯국 한 그릇 아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졸고 에세이 『동태 한 마리의 행복』이 지난 월요일(10일) 충청지역 신문 ‘錦江日報’에 소개된 뒤, 일선 경찰서에 근무하는 한 경찰관으로부터 받은 전화다.
◆ 뜻하지 않은 독자의 전화
이른 아침 출근하자마자 일간지 칼럼을 펼쳐 보고는 ‘삶의 정서가 비슷한 데가 있어 반가워서 전화했다’는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저도 이번 주말에는 재래시장에 들러 동태 한 마리 사 들고 들어가 가족들한테 점수 좀 따야겠습니다.”
▲ ‘충청인의 새 뉴스리더’라는 기치를 내걸고 2010년 5월 3일 창간한 충청지역 신문 錦江日報에 실린 에세이 『윤승원의 세상風情①』 ‘동태 한 마리의 행복’
뜻하지 않은 전화를 받고 나서 “역시 종이 신문의 위력이 대단하구나! 창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은 신문을 몇 사람이나 읽어 줄까 생각했는데…” 혼잣소리로 중얼거리고 있는데, 또 핸드폰이 울린다.
“윤 선생님, 저는 오늘 아침 윤 선생님이 쓰신 ‘동태 한 마리’ 때문에 집 사람으로부터 공연히 핀잔만 들었어요. 남들은 저렇게 남편이 가정적인데, 당신은 도대체 뭐예요? 하는 거예요. 내 원 참!”
평소 유머가 풍부해 문학단체 모임에서도 인기가 좋은 한 시인의 농담이다. 아마도 글 중에 등장하는 ‘(과거) 시인의 아내’가 ‘(오늘의) 시인의 아내’ 마음을 자극했던 모양이다.
창간된 지 1주일밖에 되지 않은 지방 일간지에 실린 졸고 에세이에 대해 이처럼 다양한 반응을 듣게 되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다.
◆ 원로 문인이 전하는 ‘가슴 따뜻한 소감’
그런데 정작 글쓴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은 소속 문학회의 한 원로 문인의 진지한 말씀이었다.
“우리 사회가 표면적으로는 화려하고 잘 사는 것 같아도 한 집안의 가장이 돈벌이가 시원찮아서 가족과 함께 외식 한 번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소시민들이 즐겨 먹는 ‘동태 한 마리’ 이야기, 그 소박한 행복을 통해 많은 서민들이 용기와 힘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모처럼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등단 이후 생활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수필이란 이름으로 각종 매체에 많이도 써 왔지만 이처럼 단 하루 동안에 다양한 독자의 반응을 듣기는 처음이다.
◆ ‘행복’이란 작고 소박한 데서 찾아야
글감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아마도 창간된 지 얼마 안 되는 일간지 지면에 대한 지역민들의 호기심도 작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가장 가까이에서 최초의 독자이자 날카로운 평론가(?)로서 역할을 해온 ‘아내의 조언’도 무시하기 어렵다.
“행복이란 거창한데 있는 게 아니라, 작고 소박한 데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게 더 중요하죠. 그런 순수성이 누구나 내면에는 잠재하고 있잖아요?”
앞으로도 변함없는 성원과 따뜻한 관심을 기대하면서, 지난 ‘錦江日報(2010년 5월 10일 자)’ 지면에 소개된 졸고 에세이를 옮긴다. [필자 주]
【윤승원의 세상風情①】
동태 한 마리의 행복
윤승원 논설위원
요즘 단돈 1만 원으로 온 가족이 행복할 수 있다면 믿을까?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비결을 알았다. 아니 분에 넘치는 호사스러운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휴일 오후 대전 갑천 변에서 걷기 운동하고 집에 돌아 올 때, 또는 도솔산 등산을 하고 집에 돌아올 때, 인근 재래시장에 자주 들른다. 시장에 들어서면 우선 생선가게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자, 오늘은 거저 주는 거나 다름없는 가격입니다. 고등어도 엄청 싸고, 꽁치는 더 싸고, 오늘의 오징어는 바다에서 금방 건저 올린 것처럼 펄펄하고 싱싱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무지무지하게 쌉니다.”
‘거저 주는 것이나 다름없이 싸다’라는 재래시장 상인의 너스레는 365일 똑같은 ‘고객 유혹수법’이지만 누구도 ‘과대선전’이라 나무라지 않는다. 오히려 그 구성지고 신명 나는 목소리가 정겨운 장터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통통하게 알이 밴 큼지막한 동태 한 마리를 골랐다. 4천 원이다.
그런데 투박하고 묵직한 칼로 동태를 힘껏 내려치면서 젊은 생선 장수가 단골인 내게 던지는 말이 재미있다.
“오늘도 축하드립니다. 또 행운을 잡으셨습니다.”
‘놈의 뱃속에 알이 가득하다’는 뜻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생선가게에서 동태를 고를 때, 주인에게 “저 놈 뱃속에 알이 들어 있을까요?”묻곤 한다.
그러면 생선 장수는 "저도 몰라요. 뱃속을 열어봐야 알지요."라고 답한다.
두 아들이 유난히 동태 알을 좋아한다. 아내가 동태를 한 냄비 푸짐하게 끓여 식탁에 올려놓으면 두 아들은 ‘알의 유무’부터 먼저 확인한다. 알이 들어 있지 않으면 잔뜩 부풀었던 기대가 무너지는 것처럼 “에이 없네. 없어!”라고 하면서 실망하고 만다.
유년시절에는 동태 알을 서로 많이 차지하려고 곧잘 숟가락 싸움을 벌이기도 했던 형제다. 두 형제 모두 군 복무를 마친 뒤로는 달라졌다. 숟가락에 먼저 알을 떴다가도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양보하는 모습을 보는 아비는 그저 흐뭇하기만 하다.
이런 저녁 식탁 풍경을 익히 잘 아는지라, 나는 생선가게에서 동태를 살 때, 간혹 알이 들어 있지 않은 놈을 만나면 별도로 판매하는 생선 알을 듬뿍 사 오곤 한다.
저녁 식탁에서 동태 한 마리 끓여 놓고 온 가족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서 나는 국물만 먹어도 흐뭇하고 한없는 행복감에 젖는다.
김소운(金素雲 1908~1981)의 명수필 가운데 ‘가난한 날의 행복’에는 감동적인 세 쌍의 부부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중에서 쌀이 떨어져 밥 대신 고구마를 아침상에 내놓은 ‘시인의 아내’ 이야기를 나는 가슴아리게 좋아한다.
‘쌀이 떨어졌으면 왜 미리 말을 못 했느냐’고 나무라는 남편에게 아내가 다소곳이 건네는 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저의 아버님이 장관이셔요. 어디를 가면 쌀 한 가마 없겠어요? 하지만 긴긴 인생에 이런 일도 있어야 늙어서 얘깃거리가 되잖아요.”
단돈 4천 원짜리 동태 한 마리 사 들고 들어와서 이런 수필 한 줄 떠 올리며 호사스러운 행복감을 맛보는 것은 내 가정형편이 궁색해서가 아니다.
그 옛날 선친께서 시골 장에 가시면 빈손으로 들어오시는 법이 없었다. 으레 꽁치나 고등어 몇 마리 사 들고 들어오셨다. 그러면 어머니는 고기보다 무를 더 많이 넣고 한 솥 넘치게 푸짐하게 끓여주셨다.
그때의 ‘꿀맛’을 오늘날 내가 잊지 못하고 기억하는 것처럼, 나중에 내 아이들도 아버지가 되면 이 같은 한 가장의 ‘동태 한 마리의 소박한 행복’을 그들 자식에게도 이야기하면서 웃음꽃을 활짝 피우리라 믿기 때문이다. ▣ 錦江日報 《윤승원의 세상風情》 201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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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의 세상風情] 동태 한 마리의 행복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 본문 - 금강일보 (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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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윤 선생님 수필도 김소운 작가 수필 못지않습니다.
'동태 한 마리의 행복' 수필이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과분한 칭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 선생님이 마침 귀한 수필을 소개해 주신 덕분입니다.
추천해 주신 김지안 선생님께도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수필문학 카페가 잘만 활용하면 수필문학인뿐만 아니라
국민 정서에도 유익한 공간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대전수필문학회 단체대화방에서
◇ 박영진(수필가, 전 대신고 교장) 22.09.02. 11:05
고맙습니다.
윤 회장님, 수필 ‘동태 한 마리의 행복’ 속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립니다.
어머님께서 무를 많이 넣고 끓여주시던 동태찌개가 밥상 가운데 놓입니다.
그러면 어른들이 저희들에게 먼저 떠주시고 꼬리와 머리 부분을 잡수시곤 하셨지요.
알이 들어있으면 그 알탕은 우리들에게 고루 나누어주시곤 했습니다.
가난했지만 아름다운 시절이 떠오르면서 추억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보내세요.
▲답글 / 윤승원 22.09.02.12:10
어쩌면 저는 지금 이 순간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박 교장 선생님의 자상한 소감이 그렇게 만듭니다.
어머니께서 무를 많이 넣고 끓여 주시던 그 시절의 동태찌개 밥상.
단순한 밥상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이 보글보글 끓었던 꿀맛의 밥상 추억은 평생 잊지 못할 행복으로
각인돼 있기 때문입니다.
박 교장 선생님 댓글 소감이 참으로 소중하여 가족 대화방에서도
아들, 며느리와 함께 공람합니다.
감사합니다.
♧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에서
◇ 낙암 정구복(역사가, 문학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명예교수)22.09.03. 06:53
윤 선생의 글에서는 짙은 향수가 풍깁니다.
‘동태 한 마리의 행복’이란 글은 앞으로 교과서에 올려야 할 좋은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가정의 화목을 ‘행복의 기초’로 보는 시각, 그리고 부인과 두 아들의 등장,
거기에 부모님의 일화가 단편 소설에서나 느낄 수 있는 점이 담겨 있습니다.
이 글을 보면서 윤 선생의 가족에 대한 마음씨를 높이 격찬하고 싶습니다.
이런 공로로 지금 행복한 가족, 친족을 이끌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답글 / 윤승원 22.09.03.07:05
우연한 계기로 추억의 졸고 수필을 다시 소개하게 됐습니다.
제가 참여하고 있는 수필문학회 문인들이 따뜻하게 공감해 주시고,
옛 시절을 함께 추억해 주셔서 ‘올사모’ 카페에도 소개했습니다.
정 교수님께서 따뜻한 격려와 함께 과찬해 주시니,
영광스러우면서도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엔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 같은 소시민이 ‘행복’을 감히 말한다는 것은 송구스러운 일입니다.
저의 글을 공감해 주시는 분들은 어려운 시절을 경험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작지만 따뜻한 것에서 소박한 행복을 찾는 분들과 함께 인정을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가난했던 시절,
작은 것에서도 고마움과 행복을 찾았던 시절.
그 추억이 오늘에 아름다운 글로 되살아 납니다.
넉넉하고 여유로운 지금, 과연 그와 같은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요?
지게에 매달려 대롱거리던 동태, 꽁치가 밥상에 둘러 앉은 식구들에게 주던 그런 행복감을...
끄집어 내어 옛날을 찾아주고, 또 지금의 행복을 알게 해주는 글을 읽는 것도 기쁨입니다.
회상의 계절, 가을이 다가옵니다.
제가 이 글을 쓸 당시에는 내동에서 살았는데, 자주 들렀던 재래시장 이름은 ▲ ‘한민시장’이었습니다.
지금 사는 도마동에는 ▲ ‘도마 큰 시장’이 있습니다. 직장에 다닐 때는 ▲ ‘신탄진 재래시장’이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옛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 ‘동태’ 장수의 구성진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가 선생님의 추억 속에 떠오른 ‘지게에 매달려 대롱거리던 동태, 꽁치가 밥상에 둘러앉은 식구들에게 주던
그런 행복감’을 저도 똑같이 맛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어려운 시절을 살아오신 부모님이 그립습니다.
귀한 추억, 회상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