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호Gogh (1853-1890), 자화상 Van Gogh's Self-Portraits 】
- 편안해 보이는 고흐의 눈빛 -
“인생의 고통이란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라는 말을 남기고 37년의 짧은 삶을 살다 간 비극적 천재 화가 ‘영혼의 화가’로 알려진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그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의 한 작은 마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27세 무렵, 목사 대신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1886년부터 네 살 아래인 동생 테오가 있는 파리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파리에서의 생활에 싫증을 느낀 고흐는 1888년에 프로방스 지방의 아를로 거처를 옮긴다. 아를에서의 생활은 고흐에게 행복과 불행을 한꺼번에 안겨주었다. 프랑스 남부지방의 강렬한 태양 아래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 반면, 정신적인 발작을 일으켜 자신의 한쪽 귀를 잘라 버렸기 때문이다.
고흐는 생전에 그림을 한 점밖에 팔지 못했던 가난한 화가였다. 그러나 현재 고흐의 작품들은 이글거리는 듯 강렬한 눈빛과 격렬한 붓 터치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다. 고흐는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 거울 속의 자신과 주변 인물들, 풍경을 주로 그렸다.
자신의 귀를 자를 정도로 서럽고 고통에 찬 화가, 그의 붕대를 귀에 감은 자화상을 통해서 치열했던 한 인생의 갈망과 도전 관계의 삭막함을 본다.
병원에서 퇴원 후 그는 붕대를 두른 채로 자화상을 그린다. 왜?
「나는 미치광이로서 내 소명을 받을 작정이야 !」 그는 동생 테오 반 고호에게 자신에 대해서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동생에게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싶었던 반고호. 이 그림이야말로 자신의 동생에게 나는 미치지 않음을 설명한 그림이다. "나는 미치지 않았어, 걱정마라."는 뜻이 아닌가? 파이프를 물고 있는 자화상을 살펴보면 붕대로 감은 상처난 귀를 의도적으로 보인다. 그 얼굴 뒤에 보이는 붉은색 배경도 다분히 의도적이다. 초록색 외투와 보색고나계에 있는 붉은색을 보임으로써 보색대비의 안정감을 의도적으로 보이고 있다. 나, 이상없어라고 설득하는 듯하다.
또 상단의 오렌지색도 고호가 쓰고 있는 파랑색 털모자와 보색관계로서 고호의 눈높이를 기준으로 붉은색과 오렌지색을 배치함으로 보색대비로 안정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림 속에서 고호는 붉은 켄버스의 바탕색을 통해서 의도적으로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나는 붉은색처럼 정신인 안정되어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비이성적인 것은 아니다. 평소처럼 보색관계를 사용해서 그림의 균형을 잡고 있다는 것이 단적인 상황이다. 주변사람들은 미치광이라고 아니꼬운 시선을 보여주고 있지만 " "테오야 너무 걱정하지 마라" 고 설파하고 있으며 누구에게도 동정을 사는 지기연민이 보이지 않는다." 당당하다. 초라하기 짝이 없고 궁핍해 보아는 삶이었어도 그의 초상화 속의 그의 모습은 강직함 그자체다. 열정과 투쟁, 아픔과 분노 모든 것이 그림 속에 들어 있다. 그의 내적인 상태는 잔혹하리만큼 뜨거움을 가득차 있다. 나중에 나는 어떤 일을 할지 모른다고 하듯이 격렬한 눈빛에 파이프 연기, 헝크러지고 안씻어서 부풀어 오른 머리카락 모든것이 절망이다. 고독이다. 투쟁이다.
자화상 속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고흐의 모습으로
그는 그렇게 파이프 안에 붉은 불똥처럼 권총으로 별똥별이 되었다.
반 고흐의 귀를 자른 사람은 반 고흐가 아니라 고갱이라는 학자도 있다. 유명한 반 고흐의 ‘귀 절단 사건’은 1888년 12월23일 발생했다. 당시 고호와 고갱 둘 사이에는 그림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불화가 심했다. 고호는 그림을 현상을 직접보고 그려야 한다는 사실주의적 견해가 컸으나 고갱은 대상을 직접보고 상상으로 그려야 한다는 견해를 취했다.
다시 말하면 풍경을 놓고 고흐는 직접 관찰한 후 그려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고갱은 작가 자신의 상상을 통해 이뤄낸 모습을 그려야 한다며 말다툼하기 일쑤였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관점의 차이인 것을 친구이자 화단의 동반자인 두사람 사이가 틀어진 이유에서다. 그러나 고흐의 정신병 탓에 논쟁은 일상의 다툼보다 더 심각했고 잦은 충돌로 감정의 골은 깊이 패어갔다. 아를이 고흐에게는 천상 천하의 낙원이지만 고흐의 폭음과 정신착란 증세를 견뎌야 하는 고갱에게는이곳을 벗어나고 싶고 떠나고 싶었을 것이다.말 들어주기 싫어하는 사회에서 강렬하게 붉을 붓칠을 함으로서 살아 있음을 표현한 수작이다.
저녁에 산책을 하던 고갱을 칼을 쥔 반 고흐가 뒤쫓았고, 고갱이 뒤돌아 보자 우뚝 멈춰선 반 고흐가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귀를 잘랐다는 게 지금까지의 정설이다. 하지만 당일 두 사람이 심한 언쟁을 벌이는 와중에 화가 난 고갱이 칼로 반 고흐의 귀를 잘랐고(고갱은 펜싱 솜씨가 수준급이었다), 이게 형사 사건으로 비화하면 중형에 처해질 수밖에 없어 두 사람이 합의해 반 고흐가 직접 자른 것으로 사건을 덮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