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로왕이 금(金)씨 직계 후예
배달겨레는 구이(九夷)족 중에서 동이족의 원조(元祖)가 되는 소호금천씨로부터 시작한다. 후예로는 우리나라 백성(백가지 성씨 족)들이 대부분 포함되지만, 특히 김씨로 부르는 금씨(金氏)가 혈통적으로 직계임을 과시하고 있다. 성씨로서 금(金)씨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삼황오제 시대의 제일인자로 뽑히신 제왕 소호금천씨(少昊임금 金天氏)가 인류문화 최초로 황금덩어리를 사람의 형상처럼 만들고 이를 “하느님의 형상”으로 느끼라 하였으며, 또한 하늘에 제사를 드렸다는데서 유래하였다.
삼황오제(三皇五帝)란 사기(史記)의 오제(五帝)편과 오제본기(五帝本紀)에 의하면 상고신화시대의 ①천황 태호복희씨 ②지황 황제 헌원씨 ③인황 염제 신농씨라는 신화 주인공 세분과 초기역사시대의 대표적인 제왕으로써 ①소호(少昊)임금 금천씨(金天氏). ②전욱임금 고양씨(高陽氏). ③곡임금 고신씨(高辛氏). ④요(堯)임금 방훈씨(放勳氏). ⑤순(舜)임금 중화씨(重華氏)라는 어진 제왕 다섯 분을 선정해서 말한다.
소호금천씨로부터의 혈통적 직계제왕(諸王) 계보는 후손들에게 대대로 황금덩어리를 전수하여주는 풍속이 있었다.(동방박사가 아기예수에게 황금예물을 주듯 후손임을 증명하는 증표인 동시에 제왕이 되라는 승인 표시) 한나라 때, 휴저왕의 태자로서 한 무제에게 인질로 잡혀갔었으며 가락국 김수로황제(金首露皇帝)의 현조(玄祖)가 되는 일제를 금씨(金氏)라 함으로써 그 후손들의 나라인 가야와 신라의 주류가 되는 성씨로서의 금씨(金氏)와 사성(賜姓)을 받은 후 다른 성씨로서 자자손손 살아가는 후예들이 많다.
더구나 소호 금천씨의 직계로 태여 나서 금씨(金氏)를 사용하지 않은 성씨가 많은데, 그 이유는 대대로 내려오는 동안에 자손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기도 하지만, 성씨를 주면서 세계(世系)를 이루도록 하는 경우가 있어서 성씨를 사성(賜姓)받은 후손들은 그 성씨를 사용하게 됨으로서 금씨로부터 멀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십여 년 전부터 소위 소호 금천씨의 직계로서 종가성씨임을 자랑하여 왔던 가락김씨(김해김씨+허씨+인천이씨를 합쳐서 가락김씨로 부름)의 족보를 보면서,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종친들의 모임이 있을 때마다 종사강의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문중의 어른들은 예상외로 “김수로왕이 시조이시고, 그 위의 조상은 없다는 것”이었다.
“약2000년 전에 하늘로부터 자주색 줄을 타고 붉은 단이 붙은 보자기에 싸여 금합으로 내려왔는데, 그 속에는 해처럼 둥근 황금색 알이 여섯 개나 들어있었다. 이튿 날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금합을 열어보니 모두 알에서 깨어나 용모가 준수함으로 사람마다 절을 하고 하례를 하며 극진히 공경하였다. 그는 열 며칠 만에 자라서 키가 9척이나 되었으며 모두 여섯 개의 알에서 나온 분들이 여섯 개의 가락국을 각각 다스리는 임금들이 되었다. 그 중 첫 번째 알에서 나와 금관중국의 황제가 된 분이 바로 김수로황제이시다”라고만 믿고 있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수로황이 있는 금관가야국을 중국(中國)이라 했는데 이는 여섯 개의 가락국 모두를 통치하는 중심국가(中心 國家)라는 뜻을 담고 있다.
설사 그것이 신화이고 역사가 아니라하더라도 이미 머리에 깊이 새겨진 인식을 바꾼다는 것은 개개인의 자신들에게 있어서는 혁명이라고 해야 할 만큼 어려운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사회적 인식에서 기존의 관습이나 관념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하는 것을 체험한 바 있다.
동이족의 원조 소호금천씨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역사중심의 종사강의를 하다보면, 종친회의 임원들로부터 더러는 주의를 받은 적도 있다. 그래서 춘제를 맞이하여 김해에 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러 사람들에게 ‘가락국 태조릉 숭선전비문’을 꼭 읽게 한다. 까만 대리석에 음각된 커다란 ‘숭선전비문’을 보면, 3줄까지는 이 비문을 새기게 된 사연이 있고, 네번째 줄로서 본문이 시작되는데 그 네 번째의 줄에는‘탄강하신 가락국시조 수로왕은 소호금천씨지후예(少昊金天氏之後)’라고 분명히 새겨져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비문을 확인시켜줌으로서 한 사람씩 이해의 폭을 넓혀가곤 했었다.
금(金)씨란 본시 황금(Gold)의 상징이었으며, 황금으로 빚은 황금덩어리는 황금불상(黃金佛像), 금불(金佛), 금천(金天) 즉 하느님(God)이었고, 금씨(金氏)는 제왕(帝王)족이었고, 제왕 족은 금(金)덩어리를 후손에게 전수하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에 금(金)을 전수받은 이는 “임금(金)”의 금(金)으로 불러져왔었으며, 임금이 존재하는 수도를 금성(金城)이라 했다.
예로부터 지나(支那:China)족 들은 금(金)을 금이나 김으로 발음하지를 못하고 ‘징’과 ‘낑’ 사잇소리를 내곤했다 한나라와 신제국시대에 통해 동방문화를 접하게 되었던 영어문화권에서는 금(金)을 King(징 또는 낑·킹)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결국 왕권의 상징은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의 금(金)에서 킹(King)으로 보급되어 전 세계의 모든 왕(임금)이 킹(金·King)으로 표준화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다행이라고 본다.
따라서 영어문화권에서는 아시아 동북부민족을 퉁구스(Tungus)족이라고 부른다. 이는 동호(東胡:퉁후)족 즉 동이족인데도 지나(支那 : China)족들의 혀가 돌아가질 않아서 ‘동호’를 ‘퉁후’라고 발음했기 때문에 영어문화권에서는 퉁구스(東胡·퉁후·Tungus)로 전해졌었다. 금(金) 역시 금천(金天·Gold·God·하느님)과 황금(Gold) 그리고 임금(金·King·왕)과 김(King)씨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다.
지금 우리는 왕조 조선 때문에 금(金)씨를 김씨라 하고, 영문표기를 Kim으로 하고는 있지만, 유럽제국과 남미제국 그리고 쿠바에 사는 금씨의 누대(累代) 이민후세 종친들은 김씨(金氏)를 King으로 불러주기 때문에 King으로 사용하는 후손들도 있다. 이미 자신들의 혈통인 성씨를 King(金)으로 확정하여 자손대대로 전수하는 후손들도 아주 많다는 사실을 확인 한 바 있다.
누가 소호금천씨의 후예를 감히 도깨비라고 했던가? 소호금천씨의 청구(靑丘)나라는 왕검단제(檀君任儉)의 조선(古代朝鮮)을 거쳐 은(殷)나라 주(周)나라 춘추시대(春秋時代)의 담국(啖國)과 휴저(休屠)왕국 그리고 해모수의 고구려에 이어지는 4국(고구려. 가야. 신라. 백제)시대를 거쳐 남북조(신라. 발해)시대 로 이어진다. 그 후 왕건의 고려에 이르기까지 제왕 또는 천황의 나라로 이어져 왔다. 국왕이 ‘폐하’라는 호칭을 받아왔었던 유구한 역사의 동방군자국(東方君子之國) 계보(系譜)의 조국(東夷의 나라 KOREA)이다. 옛 우리땅 요동을 되찾기 위해 출정하였던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 이단(李旦)장군의 위화도회군이라는 착란(錯亂)이 역사의 대혼란을 가져온 것이다.
사대교린주의의 나약한 강헌(康獻)의 왕조(皇朝에서 王朝로 墜落)조선으로 전락해버린것이다. 조선시대는 역사상 가장 저조한 국위수준에서 연명해왔다. 소위 “전하시대(殿下時代)”의 수모를 겪으면서 명(明)과 청(靑) 그리고 일제(日本帝國主義)의 압제를 당했던 근세 500 여 년 동안, 우리국위의 자존심은 처참하게 찢기고 또 왜곡당해 왔다.
그래서 붉은 악마로 전래될 만큼 상대방에게 오금을 저리게 하였던 카리스마의 수호신(守護神)도 한 때는 장난스러운 도깨비로 비하되어 왔었음을 뉘우쳐야 할 것이다.
이제 동이(東夷)의 역사가 회복되고 헌원(黃帝)의 아들로 조작했던 소호금천씨의 위치가 제자리를 찾게 됨으로서 소호금천씨의 후예는 도깨비가 아니라 “붉은 악마” 즉 천하무적의 강력한 치우천황(慈烏支天皇)의 수호천사로 부활해야 한다.
미래를 향해 힘차게 뻗어나가고, 역사적 고토(古土)를 향한 권토중래의 기상이 다시 대륙으로 뻗어나가서 오늘날의 동북공정뿐 아니라, 왕조조선(朝鮮王朝)과 명(明)나라 사이에서 넘겨주고 왜곡(歪曲)하였던 중세의 동북공정까지도 되돌리게 될 것이다. (上代의 皇國歷史를 넘겨주고, 명나라의 신하나라에 걸맞도록 삼국사기 등을 개작했던 사건이 있었음. 지금의 삼국사기는 김부식 저서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상태다)
“하느님은 인간을 자식으로 낳으셨으니 사람의 아버지는 하느님이시고, 사람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형상은 당연히 자신을 닮은 아들의 형상과 같을 것이다. 이에 변하지 않는 황금덩어리로 부자의 형상은 물론 부자지간의 불변인연(不變因緣)을 느끼도록 한다면 이는 곧 하느님의 형상을 상상하여 마음으로 모시는 것을 잊지 않게 하는 증표가 될 것이다.” 이토록 큰 의미를 부여하였던 소호 금천씨의 철학은 그의 후예들을 통하여 지구촌 곳곳으로 뻗어나가 있다. 어느새 5500여 년의 세월을 자자손손 이어오면서 인류문화의 정통사상(正通思想)과 문명세계의 기조가 되었다는 것은 학문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따라서 고구려와 고구려에서 분국 된 백제, 가야제국과 가야의 혈족이었던 신라, 그리고 신라후손의 나라 청(靑)나라와 4국(고구려 가야 백제 신라)의 사랑을 고루 받으면서 성장하고 개화되었던 일본에 이르기까지 소호금천씨의 후예는 번창하였다. 오늘날 태평양시대의 동북아 3국(남북한. 중국. 일본)을 엮는 혈연적 연대를 이루고 있다. 이미 지구촌 곳곳에 뿌리내려진 문화적 기반의 공감대를 통해서 문명의 충돌 없이 인류평화의 새로운 장을 여는 ‘청구의 세계(지상에 있으나 전쟁과 슬픔이 없으며 늘 보람이 새로워서 하늘나라로 불려졌다는 소호금천씨의 봉황나라)’를 창건하게 될 것이다.
◇알림=소호금천씨 후예들의 계보별 상세분류는 후에 ‘김해김씨의 종친’에서부터 다룰 예정이다. 다음부터 ‘역사와 신화의 차이’ 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