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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의 ‘자전거 도둑’
-토론 일시 : 2017.7.14.(금) 19시~
-장소 : 한국설화연구소
1. 발제 - 박귀주
일찍 죽어 별이 된 작가들 가운데 김소진(1963∼97)을 빼놓을 수 없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소설가 김소진(1963∼1997)의 20주기(4월22일)를 맞아 나처럼 그를 기리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난 4월 8일 오후 2시, 경기도 용인시에 소재한 작가의 묘소에서 추도식이 진행되었고 문학평론가 정홍수, 소설가 성석제, 시인 안찬수 등 가까웠던 문인들이 참석하여 고인의 삶과 작품 세계를 되새겼다고 한다.
소설가 김소진은 발제자와 비슷한 연배로 그의 작품을 읽으면 배경이 되는 1990년대의 삶과 추억이 빛바랜 사진처럼 아련히 떠오른다. 그는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1995년까지 교열부와 문화부에서 기자로 일했다. 199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쥐잡기'가 당선된 뒤, 비록 6년이란 짧은 활동 기간이었지만 문단에 적지 않은 발자취를 남겼다. 가족에 대한 기억과 산동네 서민들의 애환을 토속적 정취에 담은 그의 작품들은 1990년대 대표적 리얼리즘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980년대 이념의 중력에서 풀려나, 전망 없이 부유하던 90년대 한국문학은 우리말과 질박한 토속어를 앞세운 그의 곡진한 소설 덕분에 한층 풍요로울 수 있었다. 단순한 요절 효과를 넘어 우리 문학의 환한 별자리가 된 그를 적지 않은 이들이 아직도 잊지 못하는 이유다. 소설집 '열린사회와 그 적들'(1993), '고아떤 뺑덕어멈'(1995), '자전거 도둑'(1996),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1997), 장편소설 '장석조네 사람들'(1995), '양파'(1996) 등을 내며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위암 판정을 받고 1997년 4월 세상을 떠났다.
20주기를 맞아 그를 추모하는 시 한편을 소개한다.
우리의 애틋한 소설가/ 황인숙(시인)
향년 34
그렇게 젊었나!
하긴, 그 고아떤 순한 미소
선연히 떠오르는데
그대 간 지 벌써 20년
봄이었군
이맘때였군
이른 꽃은 지고
뒤이어 이 꽃 저 꽃
쏟아지듯 피어났겠군
그대, 우리말의 채집가
백화 만창 그 말들로
대한민국 억척엄마들과 병석의 아버지들
가난한 누이들과 형제들
그들의 눈물과 웃음을
살뜰히 엮은 사람
그게 불과 6년이었나?
하, 그렇게 짧았나!
그럼에도 그 그림자
영영 선연할 듯 드리워져 있네
나 같은 사람은 종종 딴 세상에 있던 때
그대는 항상
이 땅, 이곳에 있었지
올해도 다시금 여기
산 자도 죽은 자도 위로하는
벚꽃 흐드러지고,
흩날리겠지
우리 애틋한 소설가 김소진…
2. 작품 읽기
1) 구성 : 역순행적 구성 (현재-과거-현재)
˙발단 - 자전거 도둑이 위층 여자임을 알고 호기심 가짐
˙전개 - 영화 ‘자전거 도둑’을 보고 ‘나’의 유년기를 회상함
˙위기 - 아버지에게 수모를 준 혹부리영감을 죽음에 이르게 함
˙절정 - 서미혜가 간질병에 걸린 오빠를 방치해 죽게 만듦
˙결말 - 서미혜가 다른 자전거를 훔침
2) 감상
김소진의 다양한 작품 중 오늘 독서 토론 주제로 선택한 작품은 ‘자전거 도둑’이다. 이 작품은 1995년에 발표된 작품으로,’자전거 도둑‘ 이라는 영화를 매개로 하여 드러나는 주인공들의 유년 시절의 아픈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서는 ‘나(김승호)’와 서미혜라는 인물, 그리고 영화 ‘자전거 도둑’의 이야기가 중첩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한 유년기의 상처환기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주인공 ‘나’는 자신의 자전거를 몰래 훔쳐 타는 에어로빅 강사 서미혜를 보고 이탈리아 영화 ‘자전거 도둑’을 떠올리며 유년기의 상처를 환기하게 된다.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혹부리영감에게 비참한 수모를 당해야했던 무능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영화 속의 상황과 동일시되어 ‘나’의 가슴속에 깊은 상처로 각인되어 있다. 서미혜도 영화 속의 인물과 자신의 오빠를 동일시하며 죄책감에 빠져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상처는 성격이 다른 것임이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는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으로 아버지의 삶이 강하게 제시된다.
강한 아버지를 닮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아버지의 나약함을 닮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나의 모습에서 작가 의식이 드러난다. 작품 속에서 아버지의 나약하고 비굴한 모습으로 인해 자신이 아버지에게 해 줄 수 있는 일로 제시된 것이 혹부리영감의 가게를 망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습은 단지 아버지의 복수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무능한 아버지의 자리를 내가 대신하겠다는 어린 나의 다부진 소망이 들어 있다.
서미혜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표면적으로 보면 둘 다 간접 살인에 해당되는 셈이지만, ‘나’와는 다르게 서미혜는 강자인 혹부리영감이 아닌 약자인 오빠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 불쌍한 오빠의 죽음 앞에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으로, ‘자전거 몰래 훔쳐 타기’가 제시 되고 있다. 서미혜는 더 이상 ‘나’의 자전거를 몰래 타지 않는다. 이제 ‘몰래’ 타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소진 소설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한 첩경은 그의 소설에 등장 하는 아버지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다. 김소진은 그의 첫 소설집 ,열린사회와 그 적들.의 서문에서 “데뷰작 ‘쥐잡기’가 소설이기에 앞서 애틋했던 아버지께 부치는 제문이었듯이. 이후의 작품들도 그러한 제문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라고 한 고백을 통하여 자기 소설의 성격을 넌지시 밝히고 있다. 김소진은 아버지(내지는 아버지 세대)의 존재와 삶을 되묻고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모색하는 도정으로 소설을 썼던, 우리시대의 질박한 이야기꾼이었다. 그런 까닭에서 김소진의 소설 쓰기는 일그러진 아버지의 초상을 복원하기 위한 역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소진이 스스로 아버지와의 화해를 시도하기 위해 소설 쓰기를 시작했다고 한 고백을 통해서, 우리는 ‘아버지의 존재 묻기’가 곧 김소진 문학의 출발점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이 작품에서 또한 예외가 아니다.
작가 특유의 질박하면서도 다듬어진 한국어로, 도시 서민들의 곤궁한 삶과 거대조직에서 낙오한 존재들에 대한 연민 어린 묘사를 통해 공동체적 삶의 현장을 현실감 있게 표현했던 소설가이다. 작가는 이문구, 황석영 등의 선배 작가들이 이루어 놓은 리얼리즘의 전통에 자신의 문학적 핏줄을 대면서 소외된 사람들의 곡절 깊고 신산스런 삶을 자신의 성장기 체험에 녹여 풀어낸다.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속 깊고 따스한 시선은 부모에 대한 애증 어린 연민에서 번져 나온 것으로, 저자가 오랫동안 천착해 왔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어우러지면서 그의 주요 문학적 화두로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 생각 나누기
○ 소주 2병 때문에 혹부리 영감 앞에서 아들의 빰을 때려야 했던 아버지의 마음과 아들의 심정은 각기 어떠했을까? 당신이 이런 상황에서 그 아버지였다면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 간질병 환자인 오빠의 추행에 혐오하여 마침내 그를 다락문에 갇혀 죽도록 방치한 서미혜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
○ 남의 자전거를 훔쳐 타는 서미혜의 심리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
○ 김승호는 왜 서미혜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집에서 도망치듯 서둘러 빠져 나왔을까?
○ 서미혜는 왜 다를 사람의 자전거를 훔쳐 타고 가면서 나를 모른 척 했을까?
- 안철수 선생님의 정성으로 영화 ‘자전거 도둑’(1948년, 이탈리아, 흑백, 감독 Vittorio De Sica)도 함께 시청할 수 있었다. 영화 속의 아버지 안토니오와 아들 브루노는 소설의 장면을 한층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생각 나누기에서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특히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끝없이 이어졌고 제 각각 다른 사연 속에 다양한 아버지의 모습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애증에 얽힌 이야기의 끝은 한결같이 한국적 아버지의 과묵하지만 가족에 대한 희생과 사랑의 마음이 짙게 배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