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윤번(尹璠)이 죽었다. 번(璠)의 자(字)는 온지(溫之)로 고려(高麗) 판도 판서(版圖判書) 승례(承禮)의 아들이다. 음보(蔭補)로 벼슬하였는데, 여러 번 옮기어 신천 현감(信川縣監)에 이르렀다
. 무신년에 딸이 수양 대군(首陽大君)의 부인이 되매, 이 까닭으로 군기 판관(軍器判官)을 거쳐 부정(副正)에 승진하고, 곧 옮기어 이조 참의(吏曹參議)에 이르렀으며, 갑인년에 공조 참판(工曹參判)에 제수되었다가, 호조(戶曹)와 이조(吏曹)의 참판(參判), 사헌부(司憲府) 대사헌(大司憲)에 옮기고, 경신년에 의정부(議政府) 우참찬(右參贊)에 승진하여 공조 판서(工曹判書)로 옮기었다가 조금 뒤에, 중추원 사(中樞院使)에 옮기었다. 임술년에 풍병에 걸리어 사직하매, 의원을 보내어 문병하고 물건을 주는 것이 서로 잇달았다.
정묘년에 특별히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를 가(加)하고, 이때에 이르러 죽으니 나이 65세였다. 조회를 2일간 정지하고 부의를 많이 주어 관(官)에서 장사를 지내주었다. 사람됨이 자의(姿儀)가 풍위(豊偉)하고 성품이 관후(寬厚)하나, 일컬을 만한 것이 없었는데도 대군의 장인인 때문에 1품(品)에 이르렀다. 시호를 정정(貞靖)이라 하였으니, 곧은 도리로 흔들리지 않는 것이 정(貞)이요, 너그럽고 즐거워서 아름답게 마치는 것이 정(靖)이다. 아들은 윤사분(尹士昐)ㆍ윤사윤(尹士昀)ㆍ윤사흔(尹士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