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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이야기] 02
S#1. 교도소 사동 내부 복도
신을 포함한 신입들 댓명 정도가 각자의 사물을 안고 교도관의 안내로 걸어온다.
각 방의 창살 너머로 그들을 힐끗힐끗 보는 기존 수감자들. 노려보거나 히죽거리고 웃거나. 어쨌든 기분나쁜 시선들.
절컹 문이 열리고 그 중의 한 방에 신입 하나가 들여보내진다. 신입은 겁에 질려서 억지로 떠밀려 들어간다.
그 방에서 누군가 킬킬대고 웃는 소리.
신도 내심으로는 겁에 질려 있다.
다음 방 문이 열린다. 이번에는 신의 차례다.
머뭇거리는 신의 등을 밀어내는 교도관. 넘어질 뻔해서 방으로 들어가는 신.
S#2. 12호 방 내부
신의 등 뒤로 문이 절컹 닫긴다. 신이 문 앞에 굳어 선 채 둘러보는 방안.
맨 앞에 앉아있는 중호는 런닝 하나만 입고 있어서 어깨에 새긴 커다란 문신이 드러나 보이고.
그 옆에는 그냥 봐도 똘마니같은 어린 놈, 재섭이 아주 재미있는 일이 생기고 있다는 듯 히죽거리며 보고 있고.
그리고 맨 안쪽에 비스듬히 앉아있는 자는 범환의 부하인 용식이다.
신, 일단 눈을 마주치지 않기로 하고 자리가 빈 곳을 찾아 움직이는데
그때마다 그 자리에 다리를 뻗거나 들고 있던 것을 던져놓아서 자리를 없애는 이들.
한쪽 구석에서 벽을 향해 앉아있는 경태가 보인다. 안경에 한눈에 허약해 보이는 모습.
(절대 사람들하고 눈을 마주치지 않는 약간의 자폐증세와 늘 플라스틱 장난감 헤드셋을 머리에 둘러 귀를 막고 다닌다.
교도소 규정상 줄은 없이 헤드셋 모양만 있는 것이다. 사람과 대화를 할 때는 손가락을 잭처럼 아무 벽에나 대서 연결을 한다.
그리고 장난감 헤드셋에 연결된 마이크에 대고 말을 한다.)
그 옆의 자리가 비어있다.
신이 경계를 하며 그 쪽으로 두어걸음 걸어가는데.
중호 : 영 못 알아듣네.
재섭 : 인사아. 인사도 안하고 어딜 앉어어. 라고 형님께서 말씀하시는 기야.
신이 할 수 없이 서더니 무뚝뚝하게.
신 : 여긴 신고식 어뜩게 합니까?
중호가 용식을 돌아본다. 용식이 재미있다는 듯 웃는다.
신 : 노래할까요? 아님 몇대 맞아주면 됩니까?
용식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신다. 순간. 중호가 휘두른 발이 신의 무릎 뒤를 강타한다. 무릎을 꿇어 바닥을 짚는 신.
끄응 몸을 일으켜 신의 앞에 서는 용식. 신의 뒤를 막아서는 중호.
구석의 경태는 아예 벽에 고개를 박고 몸을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용식 : 너 살인미수래매. 미수인 놈이 똥폼 잡아봤자니까 용쓰지 말고. 내가 상황정리를 해줄테니 일단 들어봐라.
니가 구치소에서 감히 건든 분이 우리 큰형님이시다. 그냥 쪼가리 구역에서 노는 조폭하군 많이 다른 분이시지.
그런 분이 너같은 미수한테 코피를 흘리셨다.. 이 정보가 벌써 여기저기 새나가버렸어.
이 교도소 안에만 해도 십여개 파에 온갖 찌끄레기들이 들어와 있는데 말이다.
신이 일어나려고 움직이는 순간, 중호의 발이 신의 목덜미를 누른다.
용식 : 니가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거 보여줄 순 없지 않겠냐. 우리 형님 체면이 있는데.
신 : (목덜미가 눌린 채 억지로) 사과.. 하면 됩니까? 제가 가서 큰형님께 사과하면..
순간, 중호가 신을 발로 차버린다.
중호 : 이 싸가지 섀끼가. 누가 니 형님이야.
구르던 신, 재빨리 일어나 방어자세를 취하며 얼른 창살 밖을 본다. 교도관은 눈에 뜨이지 않는다.
재섭이 스윽 창살과 신의 사이를 가로막는다. 계속 히죽히죽 웃고 있다.
신이 문 옆에 있는 빨간 비상벨을 본다. 재섭이 얄밉게 그 시선을 가로막는다.
신 : 말루 하죠. 하란대로 할테니까 말루 해주시면..
순간 중호가 신의 머리통과 옷덜미를 잡아 그대로 잡아끌어 벽에 박아버린다.
비명도 못 지르고 머리를 끌어안으며 쓰러지는 신.
경태는 완전히 구석에 웅크리고 온몸을 미친듯이 흔들고 있다.
신을 다시 잡아 일으켜 반대편 벽으로 가서 박는 중호.
재섭은 히죽거리며 밖의 동정을 살펴가며 구경하고 있다.
이제 신의 머리통은 깨져서 피가 나고 코피까지 흘리고 있다.
엎어진 신의 앞에 내밀어지는 용식의 맨발.
용식 : 내 발바닥에 땀 보이냐? 내가 말이다. 이렇게 땀나게 뛰어서 널 이 방에 넣었다. 너 얼마 받았냐.
재섭 : 3년 반 받았대요. 절마.
용식 : 나는 앞으로 8년 더 있어야 되거등. 시간은 넉너억 하네.
말은 부드럽게 하다가 순간 어느 틈에 손에 들었던 쇠대야로 신의 터진 머리부분을 힘껏 내려친다.
정신이 없던 신이 죽을 힘을 다해 사람들을 밀치고 창살로 달려가며 소리지르려 한다.
신 : 사람 살려 여기..
하는데 그 머리통을 끌어잡는 중호.
밖의 동정을 살피던 재섭.
복도 저편에서 이쪽을 돌아보는 교도관.
재섭이 갑자기 창살과 문을 발로 차서 요란을 떨며 밖을 향해 소리친다.
재섭 : 사람 죽어요. 이 놈 미쳤어요.
교도관 둘이 달려온다.
그 잠깐의 틈을 타서 중호는 신의 머리통을 한번 더 벽에 박는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교도관들.
재섭 : 이놈이 자해를 해요. 지 머리를 벽에 박고요. 죽겠다고 지랄이에요.
신의 머리를 움켜잡고 있던 중호가 신을 넘겨준다.
용식이 느긋하게.
용식 : 자해공갈단으루 들어온 놈인갑네. 아 거 씨원하게는 갖다 박대.
정신이 몽롱해서 교도관들에게 끌려나가는 신. 그의 눈에 비치는 감방. 용식 등의 히죽거리는 얼굴. 그러다 캄캄해진다.
그 위로 쌔앵 지나가는 차소리. 복잡한 도시의 소리.
S#3. 강남 / 밤
달려지나가는 차들.
비싼 지역 한 곳에 자리한 텐프로급 룸살롱 [XXX]
그 앞에 도착하는 외제세단. 달려 나온 웨이터가 문을 열어 맞이한다.
데니장이 내리고 있다. 정장이 아닌 티셔츠 차림이지만 운동화까지 하나같이 명품.
그 뒤로 도착하는 차에서 도우가 내린다. 도우는 정장 차림이다.
떠들썩하니 앞장서 들어가는 데니에 비해 도우는 조용히 따른다. 도우의 차를 운전하고 온 케이가 그런 도우를 본다.
S#4. 룸살롱 내부 로비
마침 지나가던 아가씨, 연희가 달려들어 데니의 팔을 감싸며.
연희 : 오빠 미워. 지난번에 나 안 불렀지.
데니 : 니가 비싸게 굴었잖아.
연희 : 오늘 나 좀 묶어주라. 나 너무 피곤해. 응? 응?
데니 : 내 얼굴에 써있지? 봉이다. 빨아먹자.
연희 : 아이 오빠아..
데니 : 도우야 이년 묶어달랜다.
뒤에서 도우는 장마담과 딜 중이다.
장마담이 아가씨들 스크랩북을 펼쳐보이는 중.
장마담 : 연희 묶고. 오늘 몇명 오시는데?
도우 : 다섯
장마담 : 그럼 아홉 더 넣어드려?
도우 : (재빠르게 스크랩북을 뒤지며) 얘. 얘하고 얘는 오실장한테 붙이고.
장마담 : 채상무님.
도우 : (무시한다. 빠르게 여자들만 고른다)
장마담 : 혹시 호모셔?
도우 : (스크랩북 두어장 넘기더니) 이거 이거.
장마담 : 우리 애들이 암만 삐대두 눈 마주치기도 싫어한매대.
도우 : (마담을 물끄러미 보며 지갑에서 수표 두장을 꺼내 던진다) 애들 중간에 너무 빼돌리지 말고.
장마담 : 모른 척해요? (교태롭게 웃는다) 응? 나 소문내는 거 좋아하는데.. 무서우면 나한테 증명해보셔도 좋은데..
도우 : (수표 한장을 더 빼서 던져준다) 오늘 우리 방 신경 좀 써주세요. 중요한 얘기 할거니까 밴드는 한시간 뒤에 넣으시고.
돌아서 간다.
그런 도우를 재미있다는 듯이 보며 수표를 챙기는 마담. 수표는 백만원짜리들이다.
S#5. 룸 내부
각각 여자들을 양쪽에 끼고 앉은 데니장과 그 동료들 셋.
명품으로 두른 잘 자란 귀공자들. 그리고 도우.
이대표 : 오늘 도우가 쏜다며? 웬일이냐. 느네 영감이 돈 좀 풀어줬어?
데니장 : 그 영감이 절마한테 돈을 풀어? 허이구. 도우가 어디서 알바라도 뛴 돈이겠지이.
웃는 친구들.
데니 : 눈치 고만 보고. 말해. 우리한테 아쉬운 소리 할 거 있지?
도우 : (공손하게) 돈이 좀 필요해.
데니 : (킬킬 웃고 옆의 연희에게) 돈. 너두 필요하지?
연희 : 응. 마아니. (하며 어깨에 기댄다)
데니 : 내 인생은 왜 이러냐. 내 주위엔 다 이런 년놈들 뿐이야 어째. (도우에게) 머 사고쳤냐? 얼마?
도우 : 일단 50개는 있어야겠다.
데니 : (보다가 웃는다. 주위를 보며) 50개랜다.
연희 : 50억은. 어머어.. 좀 많다아.
데니 : 마. 50개면 일년에 5억씩 룸에서 퍼마셔도 10년어치고 이런 텐프로 애기들 열명은 들어앉혀.
영훈 : 빵꾸나서 빌빌대는 회사 다섯개는 갖고 놀 수 있지.
재룡 : 도우 느네 아부지 현금 많잖아.
데니 : 얘 아부지가? 연매출 꼴랑 몇백? 야야 명색이 건축회사가 연매출 몇백이면 아파트 두어채 지으면 되나?
얘 불쌍해. 야 연희야.
연희 : 왜 오빠.
데니 : 술 좀 말아봐.
연희 : 오오케이.
하며 폭탄주를 만드는데.
이대표 : 채도우 대충 털어놓지. 니가 벽제원 손 댔다 소문 들었는데. 그거지?
데니 : 벽제원이 뭐야.
이대표 : 몰라? 두부 팔고 만두 파는 식품회사. 저번에 만두파동으로 주가 반토막난 데.
그거 뒤에서 흔든 놈이 있다던데. 도우 너냐?
데니 : 뭐야 쪼잔하게. 두부에 만두?
재룡 : 거기 꽤 커. 연간 매출액 수천억 짜리야.
도우 : (할 수 없다는 듯) 터는 다 닦아 놨어. 두어번만 더 만지면 돼.
데니 : 이 섀끼가 그럼 넌 회사 하나 삼킬 거면서 우리한텐 이자나 쳐줄 생각이었던 거야?
도우 : 위험.. 할 수 있으니까 일단 나 혼자 리스크를 안고.
데니 : 마셔.
도우 : ?
데니 : 여기 열다섯잔. 다 마셔.
영훈 : 다 마심 죽어야.
데니 : 내 술맛 떨어지게 굴잖아. 이 새끼 잔대가리 굴리는 거. 안 마셔?
도우 : (조용히 술잔 하나를 든다. 단숨에 마시고) 50개 다음주 금요일까지 필요해.
데니 : 나 니 목소리 재수없어. 그니까. 마시고 입 닥쳐 좀.
도우 : (또 한잔을 들어 마신다)
이대표 : (그들 중에 제일 냉정한) 도우. 이 자식 재수없긴 해도 아이큐는 180이야. 시나리오 정도는 들어보지?
데니 : 애기야.
연희 : 왜 오빠.
데니 : 저기 180. 술잔 비었다. 뭐하냐.
연희 눈치를 보며 도우가 빈잔에 술을 따른다. 도우 세번째 잔을 든다. 역시 단숨에 마시더니..
도우 : (여전히 부드럽게) 석달동안 작업쳐서 이제 막바지야. 수익은 로우이스트 100에서 맥시멈 300까지.
데니 : 도우야.
도우 : 응?
데니 : 마셔.
도우 또 한잔을 든다. 힘겨운 기색이 역력해서 마시다 기침을 한다.
데니 : 도우야.
도우 : 마실께.
데니 : 그런 부탁은 지 아빠한테 하는거야. 내가 니 아빠할까? 응?
도우 : ..
데니 : 불러봐.
도우 : ..아빠.
데니 자지러지게 웃는다.
S#6. 룸살롱 밖
거의 초주검이 된 도우가 웨이터의 부축을 받으며 나오고 있다. 다른 패들도 헤어지는 중.
웨이터며 마담이 나와서 배웅한다.
대리운전자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문을 열어주고..
데니는 노래하던 여운이 남아서 흔들며 비틀거리고 있다가 뒤의 도우를 보며
데니 : 어이 아들. 니 차는 갔대는데? 기사 봉급 안 줬어?
그러나 도우는 거의 실신한 듯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이만치서 보는 시선.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거리에 세워놓은 차 안의 케이다.
도우는 이대표의 차에 실려지고 있다.
S#7. 밤거리 이대표의 차 안.
앞좌석에는 기사가 운전을 하고 있고. 뒤에 이대표와 그 옆의 도우.
이대표가 취한 얼굴을 부비더니.
이대표 : 정신 있지?
도우 : ...
이대표 : 나. 니가 임페리얼 컬리지 다닐 때부터 아는데. 니가 술마셨다구 취하는 놈이냐? 그거 벽제원. 넌 얼마나 넣었는데?
도우 : (뒤로 기대 눈 감은 채 술기 하나 없는 목소리로) 30개. 명동꺼 70개. 합이 백.
이대표 : 엄청 쓸어 넣었네. 그렇게 자신있어?
도우 : 너. 저번에 재인 빠져나온 거 스무개. 통장에 그대루 있지? 그중에 반만 넣어봐.
이대표 : 야아. 이 무서운 새끼. 그건 어뜩게 알았어.
도우 : 금요일부터 정확하게 한달. 언제 나가도 상관없고. 니가 먹은 돈은 뽀지 안 뜯을께. (똑바로 앉더니 이대표를 돌아본다)
이대표 : (흥미가 있다) 수익, 100에서 300퍼센트 주겠다구?
S#8. 호텔수영장
영훈이 젖은 몸으로 물에서 나오는데 그 앞의 도우. 수건을 건네주며
도우 : 너 내일 보호예수 풀리는 거 팔면 스무개는 될거야. 오늘 만오천이백원이었으니까 수익률 76프로.
내일 동시호가에 팔면 스무개 조금 넘어.
영훈 : 에에? 나한테 그런게 있었어?
도우 : 니가 재작년 유산받은 거 내일 풀려.
영훈 : 와 이 징그런 놈. 나도 모르는 주식을 니가 어뜩게 알어.
도우 : (미소) 징그런 내가 하는 건데. 들어오지?
S#9. 건물 로비
재룡 : 아임 인.
함께 걸어 들어오고 있는 재룡과 도우.
재룡 : 솔직히 데니 그 자식. 돈이란 건 쓰는 거 밖에 모르잖아. 난 너한테 붙을거야. 넌 돈 버는 거 밖에 모르니까.
나? 난 돈 버는 놈이 누군지 아는 놈.
재룡 킬킬대고 웃는다.
도우 웃으며 재룡의 어깨를 투욱 쳐주고 헤어진다. (재룡은 엘리베이터 쪽으로)
돌아서 걸어오는 도우. 순식간에 미소는 사라진다.
기다리던 케이가 로비의 문을 열어준다.
그 문 밖의 하얀 햇살.
S#10. 교도소 의무과
하얀 진료실의 천정이 보이고 있다.
병동의 진료 침대에 누운 신. 머리에는 붕대가 감겨져 있다.
눈을 꿈벅거리며 천정을 보고 있는데 그 시야를 막는 교도소 의사의 얼굴. 무료하고 무표정하게 손가락 두 개를 보이며
의사 : 몇 개.
신 : ..두개요.
의사 : (세개를 펴서 흔들며) 몇 개.
신 : 세 개.
의사 챠트에 뭔가를 적으며 문 쪽으로 가서 연다. 밖을 향해.
의사 : 델고 가요. 멀쩡해졌어.
신. 그제야 고개를 돌려 방안을 살펴본다.
저쪽 의자에 누군가 앉아있다. 경태다. 안절부절하는 모습으로 앉아있다가 의사가 자기 앞에 앉자 더 어쩔줄을 모른다.
의사 : 아.
경태 : (장난감 마이크에 대고) 아아..
의사 : (이골이 난 듯 마이크를 치우며 입안을 기구로 눌러서 들여다본다)
의사가 청진기를 찾는 사이 경태가 재빨리 그 옆의 약을 하나 집어 주머니에 넣는다. 금방 배달해온 듯한 약 꾸러미다.
신이 어이없어 본다.
청진기로 가슴을 진찰하는 의사. 챠트에 뭐라고 적는 사이. 경태는 또 다른 약을 훔친다.
그러다가 신과 눈이 마주친다. 얼른 시선을 피하는데 안절부절해진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정교도관.
교도 : 이구이사.
신이 멍청히 보다가 자기를 부른 걸 뒤늦게 깨닫고 일어나 앉는다.
교도 : 갑시다.
신 : 다른 방 보내주세요.
교도 : 뭐?
신 : 그 방 들어가면 나 죽으니까 다른 방 보내달라구요. 나 죽으면 아저씨두 시말서 써야 되잖아. 그러니까. 방 좀 바꿔줘요.
S#11. 12호
밀려 들어오는 신. 그 뒤로 따라 들어오는 경태.
신은 그대로 돌아서 경태를 밀어 젖히고 다시 나가려 하지만 코앞에서 닫히는 문.
잔뜩 긴장을 해서 조심스레 뒤를 돌아본다. 긴장이 풀린다. 다리 힘이 빠져 주저앉는다. 방안은 비어있다.
경태는 어느새 자기 구석 자리로 가서 벽을 향해 앉는다.
그런 경태를 보다가.
신 : 이봐요... 어이. ... 거기.
경태 : (신이 부르자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초조해서)
신 : 그 깡패 놈들하구 한패 아니죠?
경태 : (얼른 고개를 젓는)
신 : 근데 왜 당신은 안 패. 그 놈들이 당신은 가만 놔두잖아.
경태 : (벽을 향한 채 끄덕끄덕.. 하다가 움찔 놀란다)
신 : (어느새 경태의 옆에 붙어서) 여기 들어온지 오래 됐어요? 그래서 요령을 아는 건가? 이봐요. 나 좀 가르쳐줘.
저 깡패놈들한테 어뜩해야 돼. 아니 방이라도 바꿨으면 좋겠는데. 그건 어뜩해야 되요. 누구한테 뭘 어쩌면 되냐고.
경태 몸을 앞뒤로 흔들기 시작하며 아까 훔쳐서 주머니에 넣었던 약을 하나 꺼내 먹는다.
그런 경태를 보다가 신, 한심해져서.
신 : 조폭양아치에 돈 놈에.. 야 진짜 미치겠네. (돌아서 가려는데)
경태 : (손가락을 들더니 앞의 벽에 연결하고) 돈.
신 : (돌아본다)
경태 : 영치금 많이 넣어달라구 합니다. 돈이랑. 먹을 거랑. 브랜드 츄리닝이랑.. 사이즈별로. 많이.
신, 그냥 벽쪽으로 가서 기대앉는다.
경태 : 많이 넣어 달라구 합니다.
신 : ...
경태 : 면회오면 말합니다. 많이 넣어달라구.
신 : ....
경태 : (여전히 벽을 보며 마이크를 향해) 그거면 됩니다. 돈.. 머니.. 오까네.
말없이 앉은 신의 얼굴.
회상으로 들리는 자신의 목소리.
신 : (소리) 오지 마요.
S#12. 면회실
구치소 시절의 옷을 입은 신. 유리벽 너머에는 명선.
각자 수화기를 들고 말하는 중.
신 : 절대 오시면 안되요. 집 판 돈 있죠? 그걸루 어디 멀리 가세요. 어디루 간다구 저한테도 알리지 마시구요.
이번에 놈들은 저번 놈들보다 열배는 지독한 놈들이니까 형수님하고 제 관계 알면 형수님 친정까지 피해볼지 몰라요.
명선 : 삼촌 그치만..
신 : 이제부터 저 애들 삼촌 아니에요. 편지두 하지 마세요. 아셨죠?
명선 : (눈물이 솟구쳐) 그럼 누가 삼촌 옥바라지 해요. 경아씨두 삼촌 이렇게 되구 바로 발 끊어버리던데..
신 : (벌컥) 하지 마시라구요. 경아란 이름 말하지 말고 삼촌이라고도 부르지 말고. 이제부터 나에 대해선 생각도 하지 마시고.
아 좀 하란대로 해요 조옴.
S#13. 12호
신, 우울해서 돌아본다.
거기 경태는 또 하나 약을 먹고 있다. 몸을 앞뒤로 흔들며.
S#14. 김욱의 아파트
그 동 앞에 이삿짐 트럭이 서있다. 새로 누군가 이사를 오는 중인가보다.
그 옆을 지나쳐 입구로 들어가는 경아.
S#15. 김욱의 아파트 앞
경아가 멈칫해서 선다. 김욱의 집으로 들어가고 있는 이삿짐들.
경아가 아파트의 홋수를 다시 확인하고. 안을 기웃해서 본다.
모르는 여자가 이사짐 나르는 것을 감독하고 있다.
S#16. 아파트 경비실
경비 아저씨와 경아.
경비 : 이사간지 일주일 넘었어요. 가구니 뭐니 대부분 팔아넘기고 새벽에 딸랑 짐차 작은 거 하나 불러서 후다닥 싣구 갔어.
몰랐나보네. 아가씨. 유리 삼촌 약혼자잖어. 어째 몰랐으까.
경아 : 어디루 갔는지 모르세요?
경비 : (망설이는 듯)
경아 : 핸드폰도 안되구 그래서요. 갑자기 연락이 딱 끊기니까 걱정되잖아요. 모르세요?
아저씨 아파트 주민들하고 엄청 친하시대매요.
경비 : 친하기야 하지. 내가 집마다 숫가락 젓가락 숫자도 세지.
경아 : 근데 아저씨한테도 말 안하고 갔어요?
경비 : 근데 그 집 삼촌 감방 들어가고 아가씨가 먼저 발 끊었대매. 내가 그렇게 들었는데.. 내가 좀 듣는 게 많어.
경아 : 그래요. 나 끊었다가 다시 묶어볼라고 찾아왔는데 아저씨 나 그냥 보낼 거에요?
경비 : (갑자기 밖을 기웃거려 누가 없는지 보더니 은밀하게) 실은 유리 삼촌이 찾아오면 알려주라 했는데..
그게 언제 감방서 나와 찾아올지도 모르고.. 그래서.. 끊긴 끊었던 거네. 아가씨가.
S#17. 아파트 앞 길
경아가 택시를 세우려 애쓰고 있다. 겨우 택시 한대가 와 선다.
경아가 타고 출발한다.
그 택시를 골목에 세워져 있던 자가용 한대가 미행하기 시작한다.
차 앞에는 험상궂은 사내들 (이차 사채업에서 화투를 치던) 둘이 나란히 앉아있다.
사내 하나가 핸드폰을 하고 있다.
사내 : 기집 하나가 찾아왔습니다. 경비한테 뭐 들은 게 있는 모양인데요.
S#18. 운동장
수인들의 운동시간이다.
각 사동의 재소자들이 나와서 어슬렁거리며 걸어 다니거나 군데군데 모여 늘어져 햇볕을 쬐고 있다.
이곳저곳에 교도관들이 보인다. (가로철망이나 진압봉도 없이)
국민체조를 혼자 열심히 하고 있는 중년의 뒤로 범환과 용식 등 그 패거리들이 모여 있다.
범환은 누가 봐도 보스답게 의젓하게 자리잡고 앉아 있는 중. 손을 내밀자 그 옆에서 누군가 재빨리 새 신문을 내준다.
범환이 신문의 페이지를 찾는다. (주식거래에 대한 기사가 실린 05년도판 신문 경제면이다.)
그 발치에 앉은 재섭은 손 안에 자갈 몇 개를 이리저리 굴리며 손재주가 녹슬지 않게 연습중이다.
용식은 옆에서 범환의 한마디만 기다리는 중.
범환 : 죽이진 말고.
용식 : 우리가 뭐 아마추어 동네 야구단도 아니고. 걱정마십쇼.
범환 : 버릇이나 고쳐놔.
용식 : 완전히 형님 입맛에 따악 맞게 주물러서 보내드리겠습니다.
범환 목을 움직여 본다. 그 뒤에서 졸개 하나가 얼른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한다.
범환 : (갑자기 버럭) 아 이거 왜 이래. 어떤 작전 새끼들이 붙었던 거야. 이거 왜 이렇게 날개없이 추락해.
S#19. 사동 복도
급식을 하는 중이다.
모범수가 밀차를 밀며 각방의 배식구로 밥과 국 반찬을 넣어준다.
S#20. 12호
경태가 배식을 받아 들인다.
각자의 그릇과 수저를 들고 상 위로 밥을 차리는 방 식구들.
용식은 비스듬히 누워 기다리는 중이고.
구석의 신은 눈치 보는 중. 머리를 감은 하얀 붕대.
경태가 덜어주자 재섭이 얼른 용식에게 먼저 갖다 준다. 중호도 받고.
신이 슬그머니 제 그릇과 수저를 집어든다. 중호가 신을 돌아보는 바람에 머뭇대지만 그래도 시선 깔고 나온다.
경태가 자기 밥과 국을 덜었다.
남아있는 일인분.
신이 마악 국을 뜨려는데 중호가 툭 밀어버린다.
중호 : 아차. 쏟아졌네에.
신, 모른척하고 밥통 쪽으로 손을 뻗는데. 중호가 카악 퉤. 하고 밥 위에 침을 뱉는다.
재섭이 킬킬대고 웃는다.
잠시 정지되어있던 신. 순간 벌떡 일어선다.
어이없어 보는 용식네.
신. 바로 달려가더니 빨간 비상벨을 눌러댄다. 복도에 울리는 벨소리. 신이 밖에 대고 소리지른다.
신 : 사람살려. 이놈들이 나 죽여. 교도관. 교도과안..
문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차며 난리를 부린다.
재섭은 움찔하지만 용식이나 중호는 전혀 감동이 없다.
용식 : 쟤 뭐하냐.
중호 : 개인기하나 봅니다. 형님.
신 : 으아악 아이고오.
다가온 교도관이 문을 연다. 신이 바로 들러붙으며.
신 : 나 죽어요.
교도소리 : 이구이사.
신 : 저놈들이 날 죽일라고..
교도 : 면횝니다.
신 : ..예?
교도 : 면회라고. 이구이사.
S#21. 면회 대기실
들어서는 신. 아직 머리에는 감겨있는 붕대. 잠시 앞을 본다.
거기 미리 와서 기다리던 은수가 벌떡 일어선다.
신, 돌아선다.
유리벽 뒤에서 은수가 뭐라 말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신. 문을 두들기며.
신 : 방 잘못 들어왔는데요.
문이 열리고 교도가 들여다본다.
신 : 이 방 아니라구요.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리구 나. 면회 올 사람 없어요.
나가려는데 교도가 은수 쪽을 가리켜 보인다. 돌아보면.
은수는 수화기를 든 채 다급하게 뭐라뭐라 말하고 있다.
신. 의심스러워서 다가가 자기 편 수화기를 든다.
은수 : 김신씨?
신 : 누구세요.
은수 : 전 채은수라고 하고요. 그리고.. (말을 잇지 못하는)
신 : ..그런데요.
은수 : 사과드리러 왔습니다.
하더니 갑자기 허리를 꺽어 고개를 숙인 채 일어서려고 하질 않는다.
신, 어이없어 보다가.
신 : 뭐야 저건.
유리창을 두들겨본다.
잠시 후 고개를 드는 은수.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지더니 종이를 한장 꺼낸다. 수화기를 들지 않은 한 손으로 펴느라고 버벅대다가
겨우 펼쳐 들고는 읽기 시작한다. 오래 지니고 다닌 듯 손때가 묻은 종이다.
은수 : 저는 채동그룹 채동수회장의 딸 채은수입니다. 저희 그룹 사업에 의해 본의아니게 피해를 입으신 분께 깊은 사과를 드리며..
(휘어지는 종이를 애써 피고)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서 조금이나마 보상과 위로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 읽었다. 이제 신을 보며)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옷이나 이불이나 먹을 거나..
신 : 이봐.
은수 : 네
신 : 뭐 잘못 아신 모양인데.
은수 : 김신씨 맞죠
신 : 그건 맞는데..
은수 : 형님이 김욱씨죠?
신 : ...
은수 : 자살하셨다구 들었어요. 사업때문에.
신 : 너.. 뭐야.
은수 : 그렇게 되신 거.. 우리 회사때문이니까. 저라도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서 조금이나마
신 : 무슨 헛소리야. 뭐가 느네 회사때문이야.
은수 : 자세한 건 저두 잘 몰라요. 저는 그냥.. 사과밖에 할 줄 몰라서. (다시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신이 어이가 없어서 고개 숙인 은수의 머리통만 본다.
S#22. 교도소 앞마당
작업을 끝낸 재소자들이 열을 지어 각 사동으로 돌아오고 있다.
대부분이 껄렁거리고 있어서 열은 그다지 잘 맞지 않는다.
이쪽에서는 신을 비롯한 면회를 끝낸 이들이 교도관들에게 끌려 돌아오고 있다.
범환의 패거리들이 신을 가리키며 수근거린다. 서로 정보를 나누는 듯.
그러나 신이 핏발 선 눈으로 뭔가를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 양쪽의 모습을 흘낏거리고 보며 종종 걸어가는 경태.
누군가 경태의 뒤통수를 때린다. 경태 뒤돌아보지도 못한다.
경태의 바로 뒤에 재섭. 킬킬거린다.
교도들의 눈치를 보고는 경태의 바지를 스윽 잡아당긴다.
바지가 벗어질 뻔해서 어쩔 줄 모르며 넘어질 뻔 해서 열에서 벗어나는 경태. 그러면서 경태가 흘낏 보는 곳.
용식을 비롯한 범환의 패거리들이 한쪽으로 모이며 열을 짓고 있다.
S#23. 복도
각 방으로 나눠지기 위해 오가는 열.
교도관들이 한 방에 누군가를 넣기 위해 멈춰서있는 동안, 누군가 지나가며 신의 옆구리를 한방 먹인다.
교도관이 돌아보는데 재주있게 그 시야를 가로막는 다른 이들.
아주 짧은 순간, 신은 사람들의 벽에 둘러싸여 소리없이 급소들을 얻어맞는다.
교도관 중의 누군가가 호루라기를 불고 다른 교도관들이 달려오는 사이에 이미 사람들은 흩어지고, 웅크려 주저앉는 신만 남는다.
교도관 중의 하나, 정교도가 신의 앞에 쭈그려 앉아 살펴본다.
신은 계속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
S#24. 12호
들어서는 신. 문이 닫기고. 복부의 통증으로 잘 서지 못하고 주르르 앉는데.
재섭 : 절마 버르장머리 차암 가난하네. 마. 따악 서서 차렷하고 경례하고 다녀온 보고하고. 형님이 앉아라 하면 앉아야지.
신 :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재섭 : (까불며 앞으로 와서 발로 툭툭 차며) 야. 미수. 비상벨 누르고 한번 더 지랄쳐봐야지. 어이. 존말 할때 서라. 하나아. 두울.
하는데 순간, 신이 재섭의 멱살을 잡아당겨
신 : 내가 말이야. 죽은 듯이 있다가 나갈려구 했는데.
놀란 재섭이 버둥거리는데 신의 힘이 세다. 중호가 다가와서 신을 잡아 당겨 떼어놓는다.
중호 한 대 치려는데. 그 팔목을 감아 잡으며
신 : 생각할 것이 생겨버렸어.
중호 : 이 새끼가.. 돌았나.
신 : 그니까 건드리지 마. 생각 좀 하게.
중호가 에라이 거칠게 밀쳐버린다. 나딩구는 신.
중호가 가서 발로 차려는데. 그 발을 감아 늘어지는 신. 중호가 비틀 넘어질 뻔한다.
경태는 완전히 안절부절해서 힐끔거리고 본다.
신 : 고만하지.
용식 : 쟤 머래냐.
신 : (용식을 똑바로 보며) 고만하라고. 나.. 군대서 별명이 개꼴통이었는데. 비하인드 스토리.. 알구 싶어?
S#25. 운동장
모두 이리저리 모여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범환은 언제나의 그 자리에서 수하들에 둘러싸여 있다.
범환이 하품을 하다가 돌아보다가 어어 해서 본다.
거기. 신이 달려오고 있다.
뭐하는 거야. 싶어서 범환뿐 아니라 옆의 수하들도 순간 멍청해서 보고. 운동장 한쪽에 혼자 박혀있던 경태도 본다.
신은 달려오는 여세로 그대로 범환에게 달려들어 박치기를 해버린다. 옆에 수하들이 난리를 치고 끌어내고 싸우고.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며 교도관들이 달려온다.
S#26. 교도소 내 복도
수갑에 포승까지 한 신과 범환이 각각 교도관에게 이끌려 오고 있다.
신은 상처투성이고(머리에 붕대. 얼굴은 맞아서 눈가가 부어있고. 입술은 터져있고)
범환은 코피가 터진 코에 피가 배어나온 솜을 틀어막고 있다. 범환은 아직도 황당하고 기가 차다.
각자 독방으로 쳐넣어진다.
S#27. 독방
한사람 겨우 누울 공간에 댓자로 누운 신. 벌떡 일어나더니 엎드려서 푸쉬업을 하기 시작한다.
S#28. 교도소 내 복도
신의 독방 문이 열리고 교도관이 신을 불러낸다.
신이 느긋하게 나선다. 교도관들에게 이끌려 가는데 저쪽의 독방에서 나오는 범환이 보인다.
범환이 신을 보자 잡아먹을 듯 으르렁대지만 교도관들이 막는다.
정교도가 그런 둘을 보며 쪼가 배인 어조로.
정교도 : 독실 징계 한번이면 벌점 얼마 붙는지 알지요. 벌점 쌓아서 부귀영화 누릴 것도 아니면 조심들 합시다.
범환. 그래도 분이 안 풀려서 자기 앞을 지나가는 신을 노려본다. 신은 턱을 바싹 쳐들고 약올리듯 마주 본다.
S#29. 교도소 내 예배소
하나둘 각 사별로 일요예배를 볼 재소자들이 교도관들의 감시 하에 들어오고 있다.
거기 이미 들어와 앉아있는 범환. 졸개들이 안마를 해주고 있다.
씨근대는 범환의 옆에서 용식이 간곡하게 말하고 있다.
용식 : 그냥 미친 똥개새끼라구 생각하십쇼. 형님이 상대하실 거 절대 없습니다. 괜히 말려서 독방 드가시게 되면
벌점이 올라가고요. 벌점 올라가면 형님 가석방에 절대 지장이 있습니다. 형님 어떻게든 가석방 받으셔서 일찍 나가셔야죠.
그래야 우리 사업도 계속하시고.. 그러니까 절대 그놈 지랄에 휩쓸리시면 안됩..
하다가 범환에게 세게 얻어맞는다.
범환 : 내가 변기물이냐. 휩쓸리게.
용식 : 일단 애들한테 손 좀 봐놓으라고 했는데요.
S#30. 샤워실 앞
벗어놓은 옷들이 주리리 개어져 있다.
그 중에 신의 옷. 신의 수인번호인 2924의 명찰이 보인다.
누군가 그 위에 오줌을 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던 신이 봤다.
킬킬거리며 구경하는 다른 재소자들.
신. 참고 자기 옷 앞으로 간다.
오줌이 흥건한 옷을 손가락으로 집어 들려는데 누군가 신의 뒤통수를 눌러서 옷에 박아버린다.
S#31. 예배소
용식 : (은밀하게) 명령만 내리십쇼. 쥐도 새도 모르게 담궈버리겠습니다. 우리 조직 들어오겠다고 줄 선 애송이들 많습니다.
쓸만한 놈 두엇 붙이면..
하다가 교도관이 지나가는 바람에 말을 끊는다.
범환 : 담글 거 까진 없고. 그러다 괜히 덧나면 골치 아프니까.
용식 : 아아참 형님. 여기 우리 남방파만 있는 거 아닙니다. 온갖 전국구에 지역구. 다 여기 한둘 이상씩 들어와 있습니다.
형님이 웬 듣도보도 못한 허접한테 박치기나 당하구 산다. 이런 소문이 전국적으로 돌아보십쇼.
(범환에게 한 대 더 얻어맞는다)
범환 : 너 이 안에서 마이 자랐다. 그래서 나 가르치구 있냐 시방?
하는데 앞에서 범환의 뒤 쪽을 보던 재섭이 어어 한다.
뭐. 해서 돌아보는데.
거기 예배소 입구로 달려 들어오고 있는 신. 그새 얻어맞았는지 얼굴이 엉망이다.
그 뒤로 우루루 쫓아오고 있는 졸개들.
신은 의자를 넘고 넘어뜨리며 곧바로 범환에게 달려든다.
용식이 용감하게 그 앞을 막아서려다가 신이 의자를 집어 던지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피하고.
벌떡 일어섰던 범환에게로 그대로 날아 덮치는 신. 그 뒤로 달려온 졸개들이 우루루 그 위로 엎어진다.
엉겨 쓰러진 사람들을 헤치고 범환이 고릴라처럼 일어선다.
완전히 성이 나버린 범환이 신을 잡아 끌어올리더니 팬다.
교도관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달려오고 있다.
S#32. 독방 복도
범환이 너무 성이 나서 고릴라같이 날뛰며 교도관들에게 끌려오고 있다. 그 뒤로 신이 역시 끌려오는 중.
신의 얼굴은 만신창인데 범환과 시선이 마주치자 일부러 활짝 웃어 보인다. (범환에게 맞은 뒤라서 더 엉망)
도우소리 : 김신?
S#33. 도우의 집무실
케이가 서류철을 내놓는다.
도우가 펼쳐본다. 거기 김신의 사진이 실려 있다. 용의자로 찍힌 정면사진과 옆면사진이다.
사진이 있는 페이지를 넘기면 신문 기사들을 철해놓은 자료들.
그다지 크지 않은 이단 정도의 기사에 [방송보도에 불만, 녹화 도중 석궁 괴한 난입] 이라는 제목이 보인다.
그 뒷페이지에 스크랩되어있는 기사의 제목은. [석궁 괴한 살인미수로 3년 6월 선고]
역시 그다지 크지 않은 기사다.
케이 : 그.. 만두사장 동생입니다. 저번에 자살한 그..
도우. 웃어버린다. 한심하다.
도우 : 회장님도 아시나?
케이 : 보고 들어갔을 겁니다.
도우 귀찮게 되었다는 듯 보고서를 팔랑거린다.
도우 : 은수가 이놈한테 면회도 가고.. 사식도 넣어주고 그런다?
케이 : (끄덕)
도우 : 이 사건은 또 어떻게 알아냈대? 아무래도 누구 첩자가 있는 거 아냐?
케이 : (자기도 생각해보는 듯. 갸우뚱)
도우 : 집에만 붙어있는 은수가 어떻게 알아서 감방까지 찾아가.
케이 : (심각하게 생각해보는)
도우 : 어디서 샌 정보인지 알아봐.
케이 : 예.
도우 : 또.
케이 : (새로운 서류철을 내놓으며) 이번 주 회장님께서 회동하는 인사들 명단입니다.
S#34. 채회장의 집
길다란 식탁의 한 끝에 은수가 혼자 앉아 밥을 먹고 있다. 아무 표정 없이 밥 먹고. 반찬 먹고. 샐러드 먹고. 냠냠 씹고.
그러다 돌아보는 곳.
도만희가 소포를 한아름 안고 들어온다.
// 시간 경과
만희의 손에 의해서 부욱 찢겨져 나가는 소포. 그 안에는 남성용 속옷이며 양말. 담요 등.
은수가 밥을 먹는 식탁의 한쪽 끝에 쌓여진 소포. 찢겨진 포장 안에는 그런 내용물들이 흩어져 있다.
만희가 우송된 교도소 발송 봉투를 열어본다. 봉투 안에서는 우편환과 타자 쳐진 종이 한장.
만희 : 교도소에서 보낸거네. (읽어주는) 귀하께서 당 교도소에 예치하신 접견물은 당재소자가 거부한 관계로 반송하며,
사식은 해당금액으로 환산하여 돌려드립니다.
은수는 계속 음식을 씹으며 보고 있다. 시무룩해서.
만희 : (다른 봉투 하나를 들어 보며) 발신자. 김신. 그 놈이 직접 보낸 모양인데... 이것두 읽어줘?
은수 : (끄덕끄덕)
만희가 봉투를 찢어 내용물을 꺼내는데.
은수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두 주먹을 쥐고 진저리를 친다. 만희가 보면
은수 : 진짜 맞을 뻔 했어요. 가운데 유리가 막혀있지 않았다면요. 그 김신이란 사람. 진짜로 나 때렸을지도 모른다구요.
만희 : 살인미수로 들어간 놈이잖아. 뭘 바래.
은수 : 근데.. (갸우뚱)
만희 : 근데 뭐.
은수 : 이상하게.. 무섭지가 않았어요. 진짜 이상하죠? 막 화내구 소리치구 그러는데. 무섭지는 않구.. 음.. 슬퍼보였달까.
만희 : (그러는 은수를 살피듯 미소로 보는)
은수 : 왜요.
만희 : 좀 생긴 모양이지? 그놈이?
은수 : 아저씬..
만희 : (웃는) 직접 읽을래? 슬퍼 보이는 놈이 보낸 편지?
은수 : (새침) 읽어주세요. 어차피 아버지한테 보고하실래믄 다 읽어보셔야 되잖아요.
만희 : (눈으로 먼저 읽어보다가 표정이 안 좋아진다)
은수 : 아저씨?
만희 말없이 편지를 밀어보낸다. 은수가 받아들어 읽는다.
신소리 : 나 김신이야. 당신이 말했던 자살한 사람 동생. 물어볼 게 있어. 다시 면회와 줬으면 하는데.
은수.. 당황해서 만희를 보는데. 만희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만희 : 그만 가지. 회장님 기다리셔.
S#35. 골프장 내 식당
유리창 너머로 골프장의 잔디가 보인다.
채회장이 식탁을 탕탕 치며 열변을 토하는 중이다.
식탁의 주변에는 각 회사의 임원급들이나 신문사 경제부 데스크, 임국장 등이 둘러앉아있다.
채회장 : 까놓고 말해서 이 나라 백성들. 애시당초 민족성이 그래. 적당한 독재로 카리스마 있게 끌구 가줘야 돼.
국민 자신이 그걸 바래요. 그런 의미에서 박대통령께서 한 이십년만 더 이 나라를 이끌어 주셨어야 했어.
그랬으면 우리 지엔피. 지금 딱 두배는 됐을 거야. 이 나라에 필요한 건 왕정이야. 독재왕정.
임국장 : 아무리 박대통령 각하께서 살아 계셨다해도 요즘 세상에선 좀 힘드셨을 겁니다. 인터넷 세상에 얼마나 말이 많은지..
채회장 : 그게 뭐가 힘들어. 인터넷 회사 큰데 몇 개 사들이고. 일하기 싫어서 백수로 노는 애들. 몇백명만 모아서 돈 앵겨주고
그 뭐냐. 알바. 그거 시켜봐아. 여론? 그거 간단해.
사장 :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채회장같은 이가 정치를 해야 돼. 그거 국회의원 별루 비싸지도 않던데. 왜 안 나가.
채회장 : 자꾸 바람 들이지 말어.
사장 : 저 봐라. 대꾸하는 게 마음이 있네. 있어.
왁자하니들 웃는데.
채회장이 게걸지게 웃는 와중에 날카로운 눈이 돌아보는 곳.
저기 입구에 고급 드레스를 입은 은수가 도만희의 경호를 받으며 들어서고 있다.
채회장 : 자아 오늘 이 채모시기의 대접 받은 분들. 맨입으로 가시면 안 되고.
모두 채회장의 눈길을 따라 다가오는 은수를 본다.
사장 : 아이구. 이쁘네.
채회장 : 이쁘지. 얼굴은 쓸만한데 머리는 좀 모잘라. 대학은 볼 거 없어. 유학보낼까 생각했었는데 기집애 외국으로 내돌리면
깨지기밖에 더하나. 그래서 델구 있어. 뭐하냐. 인사 올려야지.
은수 모두에게 고개 숙여 절을 한다.
채회장 : 하나밖에 없는 딸년이고. 나 죽으면 아들놈보다 이년한테 더 물려줄 생각이야. 그러니 좀 제대로들 알아봐줘.
임국장 : 하하 회장님께서 웬만한 집 자제가 눈에 들어오시겠습니까.
채회장 : 그냥 이세는 싫어. 뉴욕 같은데서 약이나 빨던 애들은 안돼. 지 힘으루 돈 좀 굴려보고 깨져도 보고
노하우 몇 개는 체득한 놈이면 좋겠어. 그런 놈이 있을라나.
사장 : 이 영감탱이가 나이 들면서 아주 욕심탱이가 되가지구서.
껄껄 웃는 사내들.
은수는 똑바로 서서 어딘가를 보고 있는데. 창밖에 날아다니는 나비에 정신이 팔려있다.
나비가 어딘가에 앉는다. 그 나비를 보느라고 은수의 고개가 옆으로 기웃 내려앉는다.
S#36. 변두리 소읍
낡은 시외버스가 와서 선다.
내리는 경아.
매서운 바람이 분다.
경아의 뒤로 몇몇의 주민들이 내리고 그 뒤로 따라 내리는 사채 사내 둘. 점펴 깃을 올리는 등. 시간을 보내며 경아를 살핀다.
두리번거리다가 지나가는 주민에게 길을 묻는 경아. 주민이 가리켜주는 방향으로 길을 잡는 경아.
아예 하루 묶고 갈 생각으로 가방을 들고 있다.
사채 사내 둘. 슬렁슬렁 경아의 뒤를 멀찍이 따르며 그 중 하나가 핸드폰의 단축키를 눌러 귀에 댄다.
S#37. 촌동네
경아가 지쳐서 걸어오다가 짐을 들고 가던 노파 하나를 만난다. (젊은이들은 죄 도시로 가서 노파들이나 살고 있을 듯한 촌동네)
경아 : 할머니.
노파 : 나?
경아 : 서울서 이사 온 언니네 찾으러 왔는데요. 혹시 어느 집인지 아세요?
노파 : 서울?
경아 : 엄마하구 애들 둘인데요. 딸 하나 아들 하나. 유리하구 누리. 일주일쯤 됐을거에요. 이사 온 거.
노파 : 저기 저 댁?
돌아보던 경아 멈춘다.
거기 장을 봤는지 비닐 봉지를 양손에 들고 오던 명선이 역시 경아를 보고 멈춘다.
등에는 추위를 막게 겹으로 둘러씌운 누리를 업고 있다.
S#38. 명선네 셋집
주인 할머니하고 놀던 유리가 반갑게 달려 나오다가 경아를 봤다.
유리 : 언니 왔다. 언니.
경아. 달려드는 유리를 안아준다. 그러면서 집을 둘러본다.
낡은 시골집. 한쪽의 별채가 명선이 기거하는 곳인 듯 하다.
S#39. 명선의 방
명선이 잠든 누리를 눕히며.
명선 : 삼촌이 애들 아빠 빚을 갚느라고 사채를 쓴 모양이야. 그러니까 우리 빚이지. 우리 대신 빚을 진 거야. 나하구 얘들.
경아 잠자코 무릎에 앉아 있는 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다. 유리는 경아가 반가운지 꼭 들러붙어 있다.
명선 : 애들 아빠. 사고로 그렇게 가고. 보험만 제대로 나와줬어두 집 팔구 그럼 그 빚 갚을 수 있었을 텐데.
그 사람들 돈 안 내놓을라고 죽은 사람한테 말두 안되는 누명까지 씌워가면서.. 뭐 마실래? 커피는 없는데.
(하면서 담요를 경아와 유리의 무릎에 덮어준다) 좀 춥지? 보일러가 낡았는지 시원치가 않어.
경아 : 사채빚이 얼만데요?
명선 : 몰라. 말을 안해줘. 삼촌이.
경아 : (웃는다) 알아요. 그 화상. 말 안하는 거. 뭐든 일단 저질러놓고 보는 거. 빚 갚겠다고 빚 져놓고. 갚을 길이 없으니까
지 발로 교도소 걸어 들어가 버리고. 그러면서.. 제대루 된 말은 안했어요. 나한테. 한마디두. 그냥 정떨어지는 말만 했어요.
언니. 나 정말 정떨어졌었어요. 그 인간한테.
명선 : 삼촌이 나두 떼어내려고 했어. 삼촌한테는 나보다 경아씨가 더 소중하니까. 더 멀리 떼어내야 했을 거야.
근데 왜 왔어. 그냥 오해하구 돌아보지 말지.
경아 : 그냥..
명선 : 경아씨. 삼촌이나 우리.. 형편이 너무 안 좋아.
경아 : 보고 싶었어요. 유리하구 누리. 언니두.
명선 : 하루밤 자구 올라가. 가서 우리 잊어버려. 삼촌이 바라는 것두 그거야.
경아 : 그럴까요?
명선 : 그래.
경아 : 잘 안되던데요. 그거. 잊어버리는 거. (울듯한 기분)
명선 : (안됐어서 바라보며) 미안해. 경아씨. 우리가 너무 미안해. 삼촌이나 경아씨한테..
하는 순간. 마당에서 요란한 소리. 누군가 뭔가 양동이를 발로 차버리는.
다음 순간 방문이 벌컥 열린다. 들여다보는 사채 사내1.
사내1 : (손에 들린 등본을 들여다보며) 김신의 형. 김욱. 이 분은 디졌고. 그 마누라. 오명선. 그 자녀. 김유리. 김누리.
요기 다 있습니다.
경아가 놀라서 유리를 뒤로 숨기며 나름대로 막아서며.
경아 : 뭐에요. (명선 보며) 뭐하는 사람들이에요?
사내1 : 사장님. 어쩌까요.
사내는 구두를 신은 발로 방에 들어선다. 뒤이어 다른 사내가 들어서고. 사장이 점잖게 들어선다. 역시 구둣발.
명선은 누리를 급히 안아들고. 여자와 아이들은 방의 구석으로 몰린다. 누리가 잠이 깨어 울기 시작한다.
사장 : 안녕하십니까. 찾느라고 애썼습니다. 고맙게도 여기 이 아가씨가 안내를 잘 해주시는 바람에. 이렇게 왔습니다.
경아 : (놀라서 보는)
사장 : (경아를 보며) 근데.. 아가씨는 누구실까. 김신이. 그 잡것의 애인되시나.
경아. 그제야 자신이 이들을 데려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연해지는데.
S#40. 운동장
재소자들이 운동중이다.
땅탁구를 하는 중이라서 선수들. 구경하는 자들로 한쪽은 소란스러운데.
한쪽에는 용식과 중호를 비롯한 그 무리들이 모여서 뭔가 긴밀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
얘기를 나누는 자들이 힐끗거리는 곳.
거기 다른 사람들이 거리를 둬서 혼자 외따로 떨어져 있는 신이 보인다.
신은 땅만 내려다보고 있다. 그동안의 격전을 증명하듯 여기저기 터져 있는 얼굴.
머릿속이 복잡한 중이다. 그 머릿속에서 자꾸 맴도는 말.
은수소리 : 김신씨 맞죠? .. 형님이 김욱씨죠?
S#41. 면회실 / 회상
은수가 말하고 있다.
은수 : 자살하셨다구 들었어요. 사업때문에.
신 : 너.. 뭐야.
은수 : 그렇게 되신 거.. 우리 회사때문이니까. 저라도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서 조금이나마
신 : 무슨 헛소리야. 뭐가 느네 회사때문이야.
S#42. 운동장
신, 가까이에 있던 정교도에게
신 : 저 면회 온 사람 진짜 없는 거 맞아요?
정교도 : (한심해서 보는)
신 : 이상하네. 오라구 했는데.
정교도 : 언제는 절대로 면회같은 거 안한대매요.
신 : 저기요. 저번에 나 면회왔던 여자. 전화번호 알 수 없어요? 좀 알아봐주실래요?
정교도 : (어이없어 웃는)
// 운동장의 다른 일각.
벽의 구석 쪽에 붙어 서있던 경태. 고개를 숙이고 힐끔힐끔 안경 너머로 뭔가를 보고 있다.
거기 용식과 중호 등. 남방파 패들이 스쳐가듯 접선하고 있다.
재빠르게 스치는 손들. 작은 칫솔대가 건네진다. 칼처럼 갈아댄 끝이 보였다.
경태. 점점 초조해져서 몸의 흔들림이 빨라지고 있다.
그 위로 뭔가 넘어지는 요란한 소리.
S#43. 명선네 주인 집 안방
전화를 걸려고 하던 주인 할머니가 놀라서 돌아본다.
사채사내2가 거칠게 문을 열며 들어오고 있다.
사내2 : 아아. 지랄맞게 춥네. 할머니 나 좀 앉았다 가요.
하며 아랫목에 펴져 있는 이불 안으로 기어들어간다.
사내2 : 엇다 전화거실라구? (빙글거리며)
할머니 겁에 질려 손에 들었던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열려져 있는 문 밖으로 누리가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가 들린다.
S#44. 명선의 방 안
사장이 울어대는 누리를 보며 찡그려서
사장 : 아줌마. 그거 입 좀 막아봐요. 얘길 못하겠잖아.
명선 : (아예 사장에게 등을 돌리고 누리를 달래느라 애쓰는)
경아 : (핸드폰을 꺼내더니 112를 누른다)
사장 : (어이없어 보며 웃는)
경아 : 여보세요. 경찰이죠? 여기 깡패들이 집에 쳐들어와서 행패 부리고 있거든요. 언니 여기 집 주소 어뜩게 되요.
사장 : (어느새 경아 손의 핸드폰을 뺏어가 자기가 귀에 대더니) 수고하십니다. 저 채권단 대표인데요. 이 집에 빚 좀 받으러
왔습니다. (갑자기 열받는 듯 연극을 해가며) 아 글쎄 이 친구가 내 전세금 뺀 거 며칠만 쓴다구 가져가드니 안 갚아줘요.
이 엄동설한에 예? 우리 식구 거리에 나앉게 생겼다 말입니다. 근데 저더러 깡패라구요?
(울먹이며) 아아 나 원. 이보십쇼 경찰님. 돈 빌려준게 죕니까?
경아와 명선, 어이가 없어서 보고 있다.
사장 : 예. 알겠습니다. 저도 점잖게 처리하고 싶죠. 예에. 수고하십쇼.
전화를 끊더니 금방 냉정한 얼굴이 돼서 경아에게 핸드폰을 넘겨준다. 질려서 받는 경아.
사장 : 야.
사내1 : 예 사장님.
사장 : 이것들이 점잖게 말로 하려구 했더니 나를 깡패랜다. 깡패가 뭔지 좀 보여줘야겠다.
사내1이 방안으로 들어온다. 경아 누리를 감싸며 구석으로 몰린다.
사내1은 들어오는 기세로 일단 손에 잡히는 가재도구들을 박살을 낸다. 유리가 찢어져라 공포의 비명을 지른다.
S#45. 교도소 운동장
운동 시간이 끝났다. 사이렌 소리. 재소자들이 줄줄이 각 사별로 줄을 지어 돌아가고 있다.
경태는 안절부절하며 고개를 숙인 채 눈치를 보며 열에 끼어든다.
(이하는 마치 한 장면 장면이 경태의 머리 속에 정보로 입력되듯이)
앞쪽에 줄을 선 신.
그 앞 뒤로 자리를 잡는 용식과 패거리들.
용식이 한쪽을 본다.
거기 다른 열에 끼어 들어가고 있는 범환. (범환은 이 상황을 모르는 상태)
범환의 뒤를 감싸듯 들어가던 또 한패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신호를 받는 또 다른 일파.
경태가 혼자 다급해서 다른 쪽을 본다.
거기 교도관들이 재소자들의 열을 감시하고 있다. 다른데만 보고 있다.
순간 떨어진 곳에서 갑자기 아우성이 벌어진다.
아까 신호를 받던 범환의 졸개들이 느닷없이 싸움을 벌였다.
구경꺼리가 났다고 재소자들이 소리 지르며 모이고. 패싸움으로 번질 듯 하고. 사방에서 교도관들의 호루라기 소리가 난다.
급히 경태가 돌아보는 곳.
거기 용식 등 대여섯명이 교도관들이 다른데 정신 파는 순간을 틈타 누군가 신의 머리 위에 베게커버를 씌워버린다.
순식간에 신을 에워싸 잡고 구석으로 끌고 간다. (누구에게 맞았는지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교도관들은 모두 싸움판으로 달려가고 있다.
S#46. 구석진 곳
머리에 커버를 뒤집어써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신이 구석에 팽개쳐지며 얻어맞는다.
뒤로 잡힌 팔이 꺽이며 고통스럽게 소리지른다. 워낙 졸지에 다수에게 당하느라 방어할 틈도 없다.
누군가 날카롭게 간 칫솔을 스윽 꺼내 쥔다.
S#47. 운동장
달려가던 정교도가 멈칫해서 돌아본다. 그의 옷자락을 잡아 당기고 있는 경태. 여전히 땅바닥만 보며. 거의 울 듯한 얼굴로.
S#48. 구석진 곳
미친 듯이 일어나려 용을 쓰던 신이 다시 누군가의 발에 채여 딩군다. 그런 신의 옆구리에 와 박히는 것.
신, 반사적으로 그 팔을 잡는다. 그 팔목의 임자가 다시 팔을 빼지도 더 박지도 못해 주춤거리는 사이.
호루라기 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순식간에 후다닥 흩어져 사라지는 사내들. 다급하게 신에게 잡힌 팔목을 가까스로 빼내어 그 자도 도망쳤다.
피묻은 칫솔이 구른다. 주르르 신의 옆구리에서 나온 피가 그 자리까지 흐른다.
S#49. 명선의 방
난장판이 되어있는 명선의 방.
그새 합세해 있던 사내2가 다 드러난 장롱 구석에서 돈다발을 꺼내든다. 사장에게 내민다.
사장 : (받아 대충 액수를 가늠해보며) 이거 한달 이자도 안되잖어. 이 시골까지 기어오면서 기름 쓰고 출장비 쓰고 이게 뭐냐.
암튼.. 내달에 다시 봅시다. 아줌마. 글고 담에는 이왕 줄 거 조용히 좀 줘. 이게 뭐야. 괜히 애들 장난감까지 부쉈잖아.
(나가며) 야. 이 아줌마 또 어디루 날르지 않게 감시 잘 해.
사내1 : 예.
사내들이 갔다.
난장판이 된 방안에 남은 여자와 아이들.
아직 울음이 남아서 흐느끼고 있는 유리를 안고 있다가 경아가 질린 얼굴로 명선을 본다.
그제까지 얼어붙은 듯 누리만 안고 있던 명선이 무너지듯 앉는다.
명선 : 그 돈.. 마지막 남은 건데. 아파트 빼서 공장 사람들 월급 주고. 그거 남은 건데. (그제야 울기 시작한다)
우리 애들 이제 아무것도 없는데.
엄마가 울자 아이들이 다시 울기 시작한다.
그런 명선네를 보는 경아.
S#50. 읍내 식당 앞
사장이 타고 온 검은 승용차가 세워져 있다.
S#51. 식당 내부
사장과 사내들이 국밥을 먹고 있다. 다들 한탕 하고 난 뒤 심드렁한 표정들이다.
사내 하나가 깍두기를 어적어적 씹다가 멈춘다. 그 앞에 앉았던 사장도 그 표정에 돌아본다.
문에 서있는 경아. 뚜벅뚜벅 들어오더니 사장의 앞에 선다. 손에 들고 있던 핸폰을 사장의 코 앞에 내민다.
경아 : 아저씨. 전화번호 찍어봐.
사장 어이없어서 웃는다. 옆의 사내들도 웃는다.
사장. 받더니 전화번호를 찍는다. 주머니 속에 있던 사장의 핸폰이 수신벨소리를 낸다.
사장이 재미있다는 듯 자기 전화를 받는다.
사장 : 여보세요.
경아가 자기 핸폰을 다시 뺏더니
경아 : 거기 찍힌 거 내 번호니까. 이제 김신이 돈문제는 나한테 연락해. 살림밖에 모르는 아줌마나 애들보단 내가 낫잖아.
사장 : 이 아가씨가 지금 뭐래는 거냐.
사내1 : 빚 대신 갚겠다는데요.
사장 : 요즘 세상에 이런 여자도 있었네에.
경아 : 얼마야. 김신이 진 빚.
사장 : 아놔.. 막 밀려온다. 감동이. 어? 애인이라면 이 정도는 되야지. 요즘 것들은 도대체가..
경아 : 아니야. 그런 거.
사장 : 돈 갚아준대매. 혼인신고도 안한 여자가. 그럼 애인이지이.
경아 : 그런 놈하구 나. 애인같은 거 아니라구. 나한테 돈 받구 싶으면 그렇게 부르지 마. 알아들었어. 아저씨?
경아는 무섭게 가라앉아있다.
S#52. 교도소 의료실
하얀 천정.
정교도소리 : 살고 싶지 않은 거에요?
김신이 돌아본다. 정교도가 옆에 서있다.
김신의 한 눈은 부어올라 감겨있고. 한 팔은 부목을 대고 있고. 벗은 상체에는 역시 붕대가 감겨있다.
정교도 : 그 패거리들 남방파인 거 알고 있죠? 알면서. 그 두목한테 그렇게 덤벼든 거. 죽여달란 거잖아.
...지금 한 말은 오프더레코드. 증거도 없이 내가 그냥 하는 말이니까 넘기시고.
그러나 김신은 아무 흥미가 없다는 듯 다른데를 본다.
정교도 한숨쉬고.
정교도 : 이구이사. 오늘 날짜로 이방조치되었습니다. 아예 사동까지 바꿨으니까 옮기게 되면 좀 조용히 지내시고.
아.. 같은 방에 있던 사육팔칠도 함께 이방됩니다. 만나거든 고맙단 말이나 하세요.
그 양반 아니면 정말 죽을 수 있었으니까.
정교도가 방을 나간다.
문이 닫히는 소리.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신소리 : 내가 틀렸나?
신이 우울하게 어느 공간을 보며
신 : 첨에는 그냥 형기나 좀 늘릴까 한거거든. 일찍 나가봤자 좋은 일 하나 없으니까.
이렇게 줘패구 줘맞으면서 이 안에서 십년쯤 더 살지 뭐. 그랬다구. 혹시 알어? 그러다보면 나두 이 안에서 짱 먹을 수 있을지.
(혼자 웃다가 만다) 근데.. 점점 귀찮아지더라. 이 안에서두 나가서두. 할 수 있는 게 암 것도 없잖아.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러니까.. 걍 죽어버릴까.. 그래지더라구. 우리 형제 맞나봐. 형. 형두 .. 그랬지?
들려오는 유리의 노래소리.
유리소리 : 어제 밤엔 우리 아빠가 다정스런 모습으로..
S#53. 회상 아파트
열려진 문 틈으로 보이는 거실의 광경.
김욱과 유리가 마주서서 노래와 율동을 하고 있다.
욱. 유리 : 한손에는 크레파스를 사가지고 오셨어요. 음음.
밤새 꿈나라에 아기 코끼리가 춤을 추었고. 크레파스 병정들은 나뭇잎을 타고 놀았죠.
김욱은 유리하고 똑같이 귀여운 율동을 하고 있고.
자기 방에서 열려진 문으로 그 모양을 보며 웃는 신.
옆에서 누리가 괜히 웃으며 보고 있고. 누리의 옆에는 웃으며 노래를 따라 하는 명선이 있다.
S#54. 교도소 진료실
신의 눈가에 눈물이 흐른다.
신. 그렇게 우는 자신이 우습다. 웃어보려고 하다가 결국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