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와 의학(18)-
18 독종(毒腫)이 발하다
(출 9:8-12) 이신웅
여든 살 된 모세와 여든세 살 아론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집트의 왕 파라오 앞에 섰다. “내 백성을 내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다”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파라오에게 전했다. 그러나 파라오의 마음이 완강해져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기를 거절했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표징과 이적을 반복하여 사용함으로 요구를 강화하지만 파라오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매번 원점으로 돌아간다. 사실 파라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 자신이셨다. 이집트에서 많은 표징과 이적을 나타내보이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런 방법을 택하신 것이다.(출 7:3)
모든 이적은 유월절 밤에 이루어졌던 모든 장자를 죽이는 마지막 이적을 향하여 진행되었다. 이 재앙들은 그 자료가 P와 J에서 왔다고 한다. 피 재앙, 개구리 재앙, 이 재앙, 파리 재앙, 악질 재앙에 이어서 독종 재앙이 내려졌다. 여섯 번째 독종 재앙의 이야기는 전적으로 P자료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이제까지의 재앙은 아론의 지팡이로 재앙을 유발시켰지만 드디어 독종 재앙에서 모세 자신이 재앙을 유발시키는 행동을 한다. 모세가 파라오의 앞에서 풀무의 재 두 움큼을 가지고 하늘을 향하여 날리니 그 재가 이집트의 모든 사람과 짐승에 붙어서 독종이 발하였다. 심지어 이집트의 술객까지도 독종에 걸려 모세 앞에 나올 수 없었다.
피부병이 먼지로 인하여 생긴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널리 인정되는 생각이었고 이집트에는 이런 종기와 같은 피부병이 흔했던 것 같다. 신명기에도 이런 언급이 있는데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면 이집트의 종기와 치질, 괴혈병과 개창으로 너를 치시겠다고 하셨다.(신 28:27)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특별한 언급이 없지만 다른 재앙에서처럼 그들은 피해를 보지 않았을 것이다. 파라오의 피해도 언급이 없다. 사람뿐만 아니라 짐승도 화를 입었다고 했는데 바로 앞서 이루어진 재앙, 즉 가축들의 심한 악질로 이집트의 모든 가축이 죽었는데 이 독종에 걸릴 가축이 얼마나 남았는지 설명이 없다.
이 독종은 어떤 피부병이었을까? 히브리어 성경에는 아바부오트(ת 독종, 출 9:9-10)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여러 번역본의 내용을 살펴보면 짐작을 할 수 있다.
독종이 발하다(개역 한글)
악성 종기를 일으켰다(표준 새번역)
종기가 곪아 터지게 되었다(공동번역)
boils that breakout in open sores(RBV)
boil breaking forth with blains upon man(KJV)
ελκη ϕλυκτιδες (LXX)
ulcera et vesicae turgentes (Vulg.)
온 몸에 종기가 생겨 벌겋게 부어오르고 열이 나고(ן 세힌) 고름이 잡힌 농포(blains)가 되어 터지고 피부에 궤양(open sore, ulcer)을 만드는 피부병이었을 것이다.
많은 주석가들은 이 독종이 현재의 어느 질병과 가장 유사한지를 설명하고 있다. 피부에 물집이 생기고 열이 났다고 하므로 소위 나일 폭스(Nile Pox)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Keil) 나일 강 주변의 습지에서 유행했던 천연두인데 물집이 생겼다는 내용으로 가능성이 인정된다. 천연두는 바이러스로 인해 생기는 전염병으로 흉터를 남기는 피부병이었으나 백신의 발달로 지구에서 자취를 감춘 질병이 되었다.
한 주석가는 상피증(象皮症 Elephantiasis)을 생각하기도 한다.(Rosenmueller) 상피증이란 기생충(filalia)이 피부를 통해 피하 림프관을 침범하여 림프관을 폐쇄시키고 림프절이 부어오르는 질병이다. 붉은 반점이 나타나고 부어오르고 두터워지고 섬유화가 일어난다. 만성적인 상태가 되면 림프 부종으로 코끼리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많은 사람에게 폭발적으로 발병했기 때문에 이 질병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Hengstenberg 등은 염증성 농포(inflammatory pustule)를 생각했다. 동사 샤한(ן 뜨거워지다)에서 유래한 세힌(ן 독종, 종기, 출 9:10)을 사용했기 때문에 뜨거워지는 염증을 일으켜 종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단시간에 폭발적인 전염을 가져왔다면 좋은 가능성으로 생각된다.
Leyrer 등이 생각한 탄저병(炭疽病 Anthrax)이 가장 합리적인 가능성을 가졌다고 생각된다. 원래 탄저병이란 세균에 의해서 생기는 가축의 전염병이다. 가축 중에도 소, 염소, 양 등의 초식성 짐승에 호발하고 하루 이틀 만에 폐사하게 된다. 세균감염이 창궐하면 비교적 내성이 강한 인간도 감염될 수 있다. 세균 감염의 양상에 따라 피부, 호흡기, 소화기를 침범하지만 주로 피부에 병변이 온다. 피부형 탄저병이 생기면 물집이 생겨 고름이 고이는 농포가 되고 터져서 궤양이 만들어지고 그 후에 특징적인 검은 딱지(eschar)가 생긴 후 수 주 동안 남아 있다가 흉터를 남기고 떨어진다. 검은 딱지 때문에 탄저병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풀무의 재가 피부에 붙어서 종기가 생기고 고름이 터져 궤양이 되고 검은 피부 딱지가 생겼다면 탄저병이 가장 그럴듯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더구나 바로 직전에 가축들이 삽시간에 떼죽음을 당하는 악질이 번지고 난 뒤에 사람에게도 전염성 피부질환이 생겼다면 가축의 악질까지도 탄저병이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이 독종의 재앙에는 상징적인 요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모세가 풀무의 재를 하늘에서 뿌려 독종의 원인이 되었는데 이집트에서 속죄의식을 행할 때 정결 방법으로 희생제물의 재를 뿌렸다고 한다. 특히 인간제물을 사용할 때 이런 의식을 행하였다. 이집트인들은 뿌려진 재로 모든 것이 정결케 된다고 생각했지만 모세의 이적에서는 뿌려진 재가 병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어 이집트의 정결의식이 오히려 인간을 더럽게 만들고 병을 일으킨다고 상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구약에서 독종으로 번역된 단어가 하나 더 있는데 오팔림(ם 삼상 5:6,9,12, 6:4-5)과 테호림(ם 삼상 6:11,17)이다. 엘리 제사장 때 블레셋에게 법궤를 빼앗겼을 때 이 궤가 안치된 블레셋 지방에 전염병이 창궐하게 되었다. 오팔림과 테호림이 같이 사용되었고 쥐에 의해 전염되는 치사율이 높은 질병으로 소개 되었다. 이 독종은 사타구니, 겨드랑, 목 부위에 림프절이 크게 부어오르고 사망하게 되는 선 페스트이었을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를 훼손하는 완강한 인간들에게는 가혹한 처벌이 내려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