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율(金瑮)
[본관] 의성(義城)
[생졸년] 1568년(선조 1)~1651년(효종 2) / 수(壽) 83歲
[거주지] 봉화(奉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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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집 제7권 / 묘갈명(墓碣銘)
절충장군 행 용양위부호군 천유 김공 묘갈명병서
(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天有金公墓碣銘幷序)
옛날 왕적(王適)이 천하의 기남자(奇男子: 재주가 남달리 뛰어난 남자)로 자부하였으나 끝내 뜻이 어긋나 궁하게 살다가 죽었다. 나는 천유(天有) 김공(金公)에 대해서 일찍이 불행하게 이와 비슷한 것을 슬퍼하였다. 공은 성품이 의기 양양하여 사물에 대해 덤덤히 좋아하는 것이 없었으며, 또 일찍이 권세가를 찾아가 굽신하지 않았다.
5세에 글을 읽을 줄 알았고, 조금 자라서는 더욱 힘을 쏟았다. 문장을 지음에 방일하여 정식에 구속되지 않고서도 지을수록 더욱 기이하였다. 일찍이 자신의 재주를 자부하면서 공명을 이룰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이윽고 여러 번 과거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지 못했어도 좌절하지 않았다.
병인년(丙寅年)에〈어린책부(魚鱗冊賦)〉를 지어 향시에서 장원을 하였고, 정묘년 진사시에 합격하고서 탄식하기를, “이것은 내 뜻에 조금이라도 부응할 수 있었다.”라고 하고는 끝내 다시는 과거 시험에 응시하지 않고서 온갖 서적을 탐독하면서 스스로 즐겼다.
경인년에 성상(聖上)께서 노인을 우대하라는 명으로 절충장군 용양위부호군에 제수하였다. 신묘년(辛卯年, 1651, 효종 2) 9월에 병에 걸려 졸하였다. 생년인 무진년(戊辰年, 1568, 선조 1)과의 거리는 84년이다. 그해 10월에 봉화 불혁동(不革洞) 신좌(辛坐) 향의 산에 장사 지내니 곧 공의 부인 금씨(琴氏)의 무덤 오른쪽이다.
아아! 공은 고상한 마음과 빼어난 재주를 지녀 범상한 인물로 자처하지 않았으니, 구속을 달갑게 여기지 않음이 마땅하다. 신묘년(辛卯年) 과 무오년(戊午年)에 부친상과 모친상을 당해 예로써 장사 지내고 제사 지냈다. 모부인이 흰 떡과 국을 좋아했기 때문에 평생 차마 먹지 못하였다. 힘써야 하는 날에도 연회를 베풀지 않았다. 정성으로 선대의 제사를 받들어 나이 팔십이 넘었어도 반드시 직접 잔을 바쳤으니 추원(追遠)함이 이처럼 독실하였다.
무릇 품부 받은 것이 이미 두터운데다 시례(詩禮)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갑(甲)이 보고서 기이한 재주를 지녔다고 하고 을(乙)이 보고서 두터운 덕을 지녔다고 하였으나, 끝내 재능을 숨기고서 삶을 마쳤으니 운명인가 보다. 계보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아들 석(錫)이 의성군(義城君)이 됨으로 인해 마침내 의성을 본적으로 하였다. 휘(諱) 용비(龍庇)는 고려조에 태자첨사(太子詹事)를 지냈다.
증조 휘 희삼(希參, 1507~1560)은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삼척 부사(三陟府使)를 지냈고 이조 판서에 증직되었으며 재주와 행실이 세속의 모범이었다. 조부 휘 우굉(宇宏)은 충청도 관찰사를 지냈고 문학으로 이름이 났다. 부친 휘 득가(得可)는 창녕 현감을 지냈고, 어머니 진보 이씨(眞寶李氏)는 첨정(僉正) 이빙(李憑)의 따님으로 퇴계 선생의 종질손(從姪孫)이다.
금씨(琴氏)는 봉화(奉化)의 대성(大姓)으로 영렬공(英烈公) 휘 의(儀)가 원조(遠祖)이고, 통정대부 휘(諱) 이(怡)가 아버지이다. 유순하고 정숙하였으며 기쁘고 성난 기색을 하지 않았으며 자녀를 매우 엄하게 훈육하였다. 공보다 10년 먼저 졸하였다.
장남 추임(秋任)은 전(前) 희릉 참봉(禧陵參奉)으로 유행(儒行)이 있었으며, 아들 넷을 두었는데 성직(聲直)ㆍ성곽(聲廓)ㆍ성익(聲翼)ㆍ성필(聲弼)이고 딸 하나는 성이항(成以恒)에게 출가하였다. 차남 추길(秋吉)은 생원이고 글을 잘했으나 이때에는 아직 급제하지 못하였으며, 아들 셋은 성후(聲厚)ㆍ성구(聲久)ㆍ성유(聲裕)이고, 딸 넷은 진사 곽재주(郭再周), 김종호(金宗灝), 황창달(黃昌達)에게 출가하였으며 한 명은 어리다.
장녀(長女)는 생원 이견(李掔)에게 출가하여 아들 넷을 낳았는데, 생원 조영(朝英)ㆍ조명(朝鳴)ㆍ조형(朝衡)ㆍ조성(朝成)이고, 딸 둘은 권정(權挺)ㆍ권현(權鉉)에게 출가하였다. 차녀는 이일규(李一圭)에게 출가하여 아들 셋을 두었는데 기선(基善)ㆍ재박(在博)ㆍ재약(在約)이고, 딸 둘은 정타(鄭椯)ㆍ이시진(李時晉)에게 출가하였다.
내외 증손 남녀가 또 50여 명이다. 천출(賤出)로 아들 추생(秋生)ㆍ갱생(更生)이 있고 딸은 권취경(權就經)에게 출가하였다. 공은 휘가 율(瑮)이고, 자가 백온(伯溫)이며, 자호(自號)가 천유(天有)이다. 명(銘)은 다음과 같다.
아, 공은 품성이 질박하고 돈후했으나 / 於惟公稟質厚
운명이 많이 어그러져 다듬지 않은 옥돌이었네 / 命多舛璞未剖
선비로서 실로 기이한 재주와 기개를 품었지만 / 士固有懷奇負氣
세상과 원만하지 못했는데/ 與世抹摋者
어찌 유독 그대 천유만 괴이하랴 / 何獨怪於天有
아, 천년만년 지나도 넋이 빛나서 / 嗚呼千秋萬歲兮魂耿耿
검의 기운이 두우성에 뻗치리라 / 劍氣橫於牛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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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脚註]
[주01] 왕적(王適)이 …… 자부하였으나:
왕적은 당(唐)나라 숙종 때의 간의대부로, 자가 달부(達夫)이다. 왕적이 금오위 대장군(金吾衛大將軍) 이유간(李惟簡)을 찾아가서
“천하기남자(天下奇男子) 왕적이 장군을 뵙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였으며, 당시의 고사(高士)인 후고(侯高)를 흠모하여 그
의 딸을 아내로 얻기 위해 예(禮)를 갖추었다.
후고는 자신이 곤궁하기 때문에 딸을 고생시킬까 염려되어 관인(官人)에게 시집보내려 하였다. 이에 매파(媒婆)와 모의하여 거짓
으로 관인인 척하여 후고의 사위가 될 수 있었다.《昌黎文集 卷28 試大理評事王君墓誌銘》
[주02] 세상과 원만하지 못했는데:
원문의 여세말살(與世抹摋)은 세상과 원만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한유(韓愈)의〈정요선생묘지명(貞曜先生墓誌銘)〉에 “시에만
몰두하느라 세상과는 원만하지 못했고, 사람들은 모두 다급하거늘 나는 홀로 여유로웠다.[唯其大翫於詞而與世抹摋, 人皆劫劫, 我
獨有餘.]”라고 하였다.
ⓒ 안동대학교 퇴계학연구소 | 황만기 (역)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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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天有金公墓碣銘幷序。
昔王適以天下奇男子自許。而卒齟齬窮以死。余於天有金公。竊嘗悲其不幸而近之也。公性軒輊。於物泊然無所好。又未嘗俛眉足跡於勢門。生五歲而知讀書。稍長。益大肆力。爲文章。放逸不拘程式。而愈出愈奇。嘗自負其才。謂功名可立致。旣而累擧不中。亦不挫。丙寅。以魚鱗冊賦魁解目。丁卯。中進士。嘆曰。此可以少酬吾志也。遂不復赴擧。窮探百家書以自娛。庚寅。聖上命優老。授折衝將軍龍驤衛副護軍。辛卯九月。感疾卒。距其生年戊辰。八十有四。其年十月。葬奉化不革洞辛向山。卽公之配琴氏墓右。嗚呼。公有高懷逸才。不以常調自處。宜若不屑拘撿。而辛卯戊午。喪考妣。葬祭以禮。以母夫人嗜白餠羹湯。平生不忍食。劬勞之日。不許設宴。奉先以誠。年過八襄。必親奠獻。其篤於追遠如此。夫以稟賦旣厚。取裁於詩禮之訓。甲視之則奇才也。乙視之則厚德也。畢竟韜光鏟彩以終老。命矣。夫系出新羅敬順王之子錫。爲義城君。遂籍義城。有諱龍庇。高麗太子詹事。曾祖希參。通政三陟府使贈吏曹判書。才行範俗。祖宇宏。忠淸道觀察使。以文學鳴。考得可。昌寧縣監。妣眞寶李氏。僉正憑之女。退溪先生從姪孫也。琴氏。奉化大姓。英烈公儀。是遠祖。通政諱怡。是考。柔嘉貞靜。不色於喜怒。而訓子女甚嚴。先公十年卒。男長秋任。前禧陵參奉。有儒行。四男。聲直,聲廓,聲翼,聲弼。一女。成以恒。次秋吉生員。能文時未第。三男聲厚,聲久,聲裕。四女。郭再周進士。金宗灝,黃昌達。一幼。女長李掔生員。四男。朝英生員。朝鳴,朝衡,朝成。二女權挺,權鉉。次李一圭。司畜三男。基善,在博,在約。二女。鄭椯李時晉。內外曾孫男女。又五十餘人。賤畜子秋生,更生。女權就經。公諱瑮。字伯溫。自號天有。銘曰。
於惟公稟質厚。命多舛璞未剖。士固有懷奇負氣。與世抹摋者。何獨怪於天有。嗚呼千秋萬歲兮魂耿耿。劍氣橫於牛斗。<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