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좋은 드라마 봤으니, 고마운 맘으로 리뷰 쎄워요! ㅎ
리뷰 - 사랑이 구한 영웅의 운명.
인현왕후의 남자라는 드라마는 다각도의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정말정말 좋은 드라마이다.
이번 리뷰는 남자 주인공 김붕도에 초점을 맞추어 바라본 관점으로 정리해보려 한다.
김붕도. 청풍 김씨 청로상장군공파 17대손 정오품 홍문관 교리로, 이조참판 김선형의 아들이며
열 아홉에 장원급제하고 이미 팔도에 떨친 문장실력이 아름다워 숙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스물 둘, 기사환국에 얽혀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장인까지 우의정 민암에 의해 죽게 된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변방을 떠돌다가 스물 다섯에 정5품 홍문관 교리에 발탁되어 다시 도성에 돌아와 숙종의 관심을 받으며 인현왕후의 복위를 위해 힘쓰지만 스물 일곱의 젊은 나이에 역모죄로 몰려 제주 대정현에 유배, 위리안치된 지 이틀 만에 병을 얻어 급사한다는, 실록 상 불행한 운명으로 기록되는 인물이다.(물론 이는 픽션이지만.)
시대와 운명에 억울하게 희생되어 사라진 수많은 이들의 역사를 알고 있기에,
사람이라면 누구나 불쌍한 사람을 측은히 여기는 측은지심과 불의를 미워하는 수오지심의 양심이 있기에.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이들은 누구나 간세지재(間世之材) 김붕도의 운명을 안타깝게 여기게 된다.
그리고 부적을 얻어 절명의 상황마다 목숨을 구하게 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부적의 힘으로라도 그의 운명을 이겨낼 수 있기를 소망하게 되는 것이다.
영웅의 서사시를 떠올리게 하는 이 드라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영민하면서도 반듯하며 정의롭고 단정하면서도 따뜻한,
지상 최고의 남자주인공을 만들어 냈다.
300년 후의 다른 시간, 같은 공간에 떨어져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끊임없이 추리하고 유추하여 원리를 찾고 새로운 상황을 흡수하는.
무서울 만큼 적응력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
또한 그 사실이 조금도 개연성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는, 이미 그가 "수 많은 일을 겪다보니 생生에 일어나지 않을 일도 없고 믿지 못할 일도 없다."고 믿는(2회 대화 중.) 기구한 운명의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대부 양반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집안이 몰락하여 고난을 겪게되는 과정을 겪으며 조력자인 윤월과 희진, 그리고 부적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도움을 얻어 비로소 정의(인현왕후의 복위와 민암 세력의 처단)를 실현할 수 있게 된다. 비범한 출생, 고난의 과정, 조력자와의 조우, 신화의 완성이라는 '영웅의 일생' 모티브가 반영된 김붕도의 여정.
이러한 영웅의 일생은 이쯤에서 행복한 결말을 맺기 마련이지만
김붕도의 일생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시청자의 마음을 애틋하고 절실한 하나의 기원이 되게 한다.
이러한 시청자의 희망을 뒤집었다 엎었다 하는 멘붕의 15회가 진정 '인현왕후의 남자' 최고의 회가 아닐까?
요물을 얻었다며 부적의 힘에 신기함 반, 기쁨 반이던 붕도의 모습에도,
이후 아슬아슬한 그의 행보를 보면서도 우리의 마음 한 곳 평안할 수 있었던 이유는
비극적으로 점지된 붕도의 운명을 부적이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며
이 결과 달달하고 발랄한 두 남녀의 사랑 역시 영원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5회에 이르러 부적 역시 결정된 운명의 힘을 거스를 수 없다는 듯 붕도를 조선으로 강제 소환하며
분명 희진에게 맡겼던 그 녀석이 하늘에서 팔랑팔랑 떨어져 내린다.
그 동안 부적을 통한 조선으로의 귀환은 붕도의 뜻에 따른 일이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자신의 의도와 관계 없이 당한 조선으로의 귀환은 영민하고 침착한 그의 눈빛이 두려움으로 흔들리게 한다.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이, 다시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야 할 것만 같은 예감.
조선에서의 삶을 정리하기 전의 붕도는 마치 죽을 자리만 골라 달리며 칼날 위를 찾아 걷는 사람과 같았다.
죽음을 불사한다는 것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으며 삶에 대한 미련이 없다는 의미이기에 더욱 비장하고 매서웠다.
하지만 조선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희진의 곁에 안착한 붕도는 이미 희진과의 사랑을 지키고 싶으며
그녀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조선으로의 귀환에 두려울 만큼 당황하는 것이었다.
윤월의 기원과 주지스님의 염력, 그리고 주인된 붕도의 의지가 하나로 묶여있으되 요사스러운 물건이기에 부적 자체의 기운이 붕도의 운명을 어떻게 흔들지 모르는 상황이 우려되었다. 그리고 15회에 그 우려가 현실로 실현되는 순간, 붕도도, 희진도,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시청자도 멘붕멘붕~ 휘몰아치는 충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윤월의 죽음으로 부적이 변색되고, 주지스님의 입적으로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검게 변해버린 부적.
첫 번째 성공한 현대로의 이동은 짧아서 더욱 슬펐고, 희진의 눈 앞에서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채 사라져 더욱 가슴 아팠다.
일년이 걸리든 십년이 걸리든 돌아갈 수만 있다면 가겠는데 그럴수 없기에 차라리 자신에 대해 잊기를 바라며 부적을 태우는 그의 마음은
지옥같은 자신의 생에서 희진만은 구원 받기를 바라는 간절함이었다.
그 누가 사랑하는 이에게서 영원히 잊혀지고 싶을까.
소리없이 흐느끼는 울음, 떨리는 입매와 함뿍 젖은 얼굴조차도 처연하도록 단정한 그 모습은
눈물을 수치로 여기고 배워온 사대부 양반가 헌헌장부. 그 다하지 못한 연정의 한恨이기에 더욱 먹먹해지는 것이다.
목표도 없는 여생, 쫓기고 떠도는 길조차 미물인 말에게 선택하도록 하는 그의 의지 잃은 절망의 생生.
결국 포청에 추포되어 의금부로 끌려온 그는 자신의 존재로 일어날 지 모를 조정의 피바람을 막기 위해
희진과의 사랑, 그 기억이 담긴 넥타이로 자진을 결행한다.
'기억의 끈'.
사랑의 기억이 담긴 추억의 물건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고자 하는 붕도의 눈빛에는
벗어나고자 발버둥쳤으나 벗어나지 못한 제 비극적인 운명에 대한 회한과 희진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하지만 죽음을 불사한 붕도의 결의는 희진의 기억을 되살리고, 희진의 기억은 간절한 기원이 되어 연인을 소환하는 부적이 되었다.
소멸한 부적이 이어준 인연은 사라졌고, 두 연인은 '그들만의 기억'으로 다시 인연의 끈을 이었다.
이제는 끊어지지 않을 인연의 끈, 영원을 꿈꾸는 사랑.
인현왕후의 남자는 단 한 회도, 하나의 주제의식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운명을 이겨내는 사랑의 힘, 그 필생필연의 사랑.
김붕도. 그의 일생이
전설이 아닌, 사랑의 신화로 남을 수 있게 되어 가슴 벅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