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읍에서 60리길을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호남의 5대 명산 중 하나인 천관산을 만나게 된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천관산 연대봉 정상에 올라서서 동쪽으로 내려다 본 풍경은 득량만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고흥반도가 길다랗게 남쪽으로 쭈욱 뻗어 내려오고, 좀더 아래 정남쪽으로 눈길을 돌리자 노력도에서 제주도를 오고가는 선로 주변에 다도해의 아름다운 섬들인 금당도, 평일도, 생일도, 조약도 등 여러 섬들이 다정한 이웃 형제처럼 옹기종기 둘러 앉아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 섬들 사이로 육지와 맞닿아 있는 회진반도가 한 눈에 들어 온다. 지금은 회진에서 덕도와 진목에서 덕촌으로 간척이 되고 연륙이 되면서 회진반도는 사라져버린지 오래 되었지만 말이다.
현재 회진항은 선창가로 배가 접안하기 편리하게 부잔교가 있는 여러 계류장 사이로, 소형 선박들 70여척과 갈치낚시배 대 여섯 척이 반듯하게 정박되어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생기가 없어 보이고 정막한 느낌마저 든다. 조용하다 못해 을씨년 스럽기까지 한다. 이런 느낌은 정기여객선 한 척 드나들지 않는 현실에서 느끼는 나만의 비애 인지도 모른다. 한땐 1950년대 에서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전남 서남해안에 있는 해상교통의 중심항으로서 연안여객선들이 쉴 틈 없이 드나들면서 사람들 발디딜 틈 조차 없이 붐비던 옛 항구의 모습은 지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오직 갈매기떼들만 한적한 부둣가의 허공을 훨훨 날아 자유롭게 노닐고 있을 뿐이다. 전설속의 옛 회진항이 있었을 뿐이다.
우린 회령진 성내의 마을 뒷산에 있는 행선에서 주로 유년시절을 많이 보낸다. 행선은 마치 여성의 생식기가 인체의 한 가운데의 중요한 곳에 있는 것 처럼, 회령진성을 감싸고 있는 남쪽성벽과 북쪽성벽 사이의 한 가운데에 동산이 하나 있는데 이 동산을 일명 행선이라 한다. 회진포구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이곳에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재미있게 뛰어놀다 회진항으로 들어오는 뱃고동 소리를 듣고, 우린 가끔 선창가로 뛰어 내려가 부둣가의 전경들을 구경 하곤한다.
아침 9시가 되면 겸능호가 제일 먼저 입항을 알린다. 이 배는 뭐가 그리 바쁜지 모든 속력을 다해 거친 물살을 헤집고 급히 노력도를 지나 회진항을 향해 달려온다. 부서지는 하얀 파도가 V자형으로 배 고물(후미)에서 저멀리 장산리 뻘등과 탱자섬 사이로 울려퍼저 나간다. 선학동의 '천년학' 영화를 촬영 했던 세트장 아래로, 뱃길이 굽어진 곳의 조그만 바위로 이루어진 섬(일명 독섬) 근처의 석화장(굴 양식장)을 조금 지나서면 회진부두가 선장의 눈앞에 바로 일직선으로 다가온다. 그때에 이르러서야 선장은 바삐 움직여 달려오던 배의 속력을 낮춘다. 그러자 아침햇살을 받아 눈이 부신 배는 찰랑거린 은빛물결을 가르며 미끄러지듯 서서히 회진항구로 다가온다.
한편 배 이마의 제일 윗쪽에 자리한 동그랗고 앙증맞은 앰프에서는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등 최신 유행가요들이 흥겹게 흘러 나온다. 또한 어제 뭉클하게 마음에 와 닿았던 멋진 노래의 가사를 미처 받아쓰지 못한 부분을 적으려 하니 오늘도 한 소절만 겨우 받아적게 하고 노래는 그냥 흘러가 버린다. 가슴에 꽂혀버린 아름다운 노래는 온종일 귓가에서 맴돌고 입가에서 흥얼거리게 하더니 그 여운은 처녀총각들의 가슴만 애태우고 설레이게 하고 그리고 또 내일을 기다리게 한다.
천천히 다가오던 배에서 흘러 나온 노래 사이사이로 뱃고동 소리가 울리면 부두에 정박해 있던 작은 배들은 큰 배가 접안할 수 있도록 바쁘게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서 부둣가는 한순간에 출렁거리기 시작한다. 선창가에는 배가 들어오기를 대기하고 있던 노조원들이 제일 먼저 삼바시에 올라가서 배 접안 준비를 한다. 이 사람들은 무거운 물건을 가지고 나온 손님들의 짐을 대신해서 옮겨주는 짐꾼들이다. 그리고 광주로 가는 급행버스는 버스터미널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배가 접안하는 비좁은 선창가에서 대기하고 있다. 앞치마를 둘러메고 있던 장사꾼 아짐들도 어디에서 있었는지 모르지만 뱃고동 소리를 듣고 부둣가로 쏜살같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배가 부두에 접안하려 하자 배 이마에 있는 한 선원이 선박을 고정시킬 긴 밧줄을 왼손에 한움큼 집어쥔체 다른 오른손으로 밧줄 끝에 달린 어른 주먹만한 돌뭉치 같은 것을 휘잉 몇바퀴 돌려 부둣가에 대기 하고 있는 사람에게 던진다. 그는 잽싸게 그 밧줄을 받아 잡아 부둣가에 있는 앙카에 단단히 고정시킨다. 배는 멈추려고 하는지 후진하는 엔진기계 소리가 주위를 요란하게 뒤흔들더니 하늘에는 벌써 시커먼 연기가 활화산처럼 용솟음친다. 배는 어느새 출입문이 열리고 서로 빨리 버스를 타려고 배에서 뛰쳐나온 사람들이 20여미터 떨어져 있는 버스앞까지 달리기 경주를 하듯 서로 앞다투어 빠르게 달려 나온다. 짐꾼들도 달리는 사람을 따라 무거운 손님의 짐을 가대기하고 덩달아 같이 달린다. 배가 들어오는 시간 때의 버스는 승객들이 항상 만차다. 좁고 길다란 선창가 입구쪽에 있는 장사꾼 아짐들은 섬사람들이 가지고 나온 수산물이나 건어물들을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매입하려)하고, 섬사람들은 한 푼 이라도 더 높은 가격으로 팔려고 서로들 흥정하느랴 왁자지껄 한다. 뒤늦게 나타난 구두닦이 소년은 검정구두에 정장을 하고 나온 멋진 신사가 나타나자 구두닦이통을 어깨에 둘러메고 '구두닦! 구두닦!' 외치며 선창가를 맴돌며 스쳐 지나간다. 이렇게 한바탕 소동이 지나고 나면 다음 여객선이 들어올 때 까지 회진항구는 다시 평온에 접어든다.
이 겸능호는 완도군 금일읍 월송리에서 새벽 6시에 출항하여 동백리와 화전리를 들르고 생일도 유촌리를 들러서 약산면 당목리와 어두리를 경유하여 회진항에 9시에 도착한다. 원래 삼성호란 배가 같은 노선을 운항했었는데 배가 노후화 되고 손님이 늘어나면서 더 크고 더 좋은 새로운 배로 대체한 배가 겸능호란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지면 9시에 들어왔던 겸능호가 금일읍 서성리와 화전리 두 개 마을만을 빨리 갔다오기 위해 출항을 한다. 그러자 바로 또 다른 여객선 한 척이 뱃고동소리 울리며 입항한다. 길성호다. 이 길성호는 완도군 금일읍 충도에서 아침 7시에 출항하여 금당면 온금포인 일명 따순기미를 들르고 가학리를 들러서 회진항에 오전10시에 입항한다. 이 노선은 예전에는 남극호가 왕래하였는데 60년대 중반 무렵부터 길성호가 운항하였다 한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오전 10시가 되면 또 다른 군함같은 큰 여객선 하나가 '부웅~'하고 뱃고동 소리 울리며 들어온다. 이 뱃고동 소리는 회진항을 입항하는 배들 중 유난히도 가장 크고 길게 오래도록 울린다. 그 뱃고동 소리는 회진 뒷산에서 메아리가 되어 '부웅~ 부웅~' 하고 들리더니 몇 초 후로 어느새 십리 밖에 있는 천관산에 까지 메아리가 되어 부딪혀 울려퍼진다. 태안호다. 이 배는 봄과 가을철에는 인근 장흥 강진지역에서 생산되는 보리가마니와 쌀가마니들을, 겨울철에는 회진에서 생산되는 마른 김을 담은 나무상자들을 주로 싣고 부산으로 떠난다.
일제 강점기때에도 이 여객선은 회진항을 운항했다 한다. 그때에는 배 접안시설이 없어 큰 배가 강 가운데 잠깐동안 머물러 있으면 뭍에서 손님과 화물들을 실은 종선이 가서 큰 배로 옮겨실어 내려주고, 큰 배에서 내린 손님과 화물들을 싣고 다시 육지로 돌아 온다. 현재 팔십이 훨씬 넘기신 할배가 어렸을 적에 큰 배가 들어오면 나이드신 어르신들은 "조오커가 들어온다."고 하면서 웅성거렸다 하는데 지금도 조오커가 무슨 뜻인지 모른다 한다.
이 태안호는 완도항에서 출발 하여 약산도와 고금도 사이로 난 선로를 따라 약산면 어두리를 들렀다 회진항에 입항해서 다시 녹동항과 나라도를 경유하여 여수항에 도착한다. 여수항에서 한 두시간 동안 머무르다 다시 남해와 삼천포, 충무를 들러서 부산 영도다리를 지나 부산항에 도착하니 다음날 새벽 6시다.
태안호는 대동아 전쟁에서 사용되었던 군함을 여객선으로 개조하여 사용하였기에 물살 위를 갈수 없고 구조상 물살을 가르고 항해해야 하기 때문에 파도가 유난히 크게 울려 퍼진 배였는데 1970년도 중반에 여수앞 인근 바다에서 밤에 부산으로 항해하다 해군함정하고 충돌하여 침몰 되었다 한다. 이때 승선했던 승객들은 거의 대부분 사망했다고 한다. (태안호 여객선 사고자료를 찾으려 노력했으나 못찾았다.) 사고 이후로 인천에서 강화도를 운항했던 강화호가 태안호 노선을 대신하여 똑같이 운항 한다.
오후 2시가 되면 또 다른 큰 여객선 하나가 회진항에 입항 한다. 유명호다. 이배는 부산항 에서 저녁 9시에 출항하여 충무 와 삼천포항을 들러서 여수항에 다음날 새벽 4시에 도착한다. 2 시간 정도 여수항에서 정박하다 6시가 되면 출발하여 나라도와 녹동을 경유하여 회진항에 도착하니 오후 2시다. 항에 내리려 하니 여객선 회진소장이 삼바시에 얹힌 부잔교 끄트머리에서 선표를 회수한다. 녹동에서 회진까지 선비가 70원이란다. 군인은 이때도 50%할인이란다.
유명호가 입항하여 출항도 하기 전에 10시에 금일로 나갔던 겸능호가 재입항한다. 비좁은 회진항은 뱃고동 소리와 배 엔진소리, 파도소리, 사람들이 오고가는 시끌벅적한 소리 등 번잡함 속에서도 항구가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을 느낀다.
여기서 우린 '삼천포로 빠졌다.'는 말을 듣는데 그말은 부산에서 출발하여 충무항에서 내려야할 손님들이 순간 잠이 들어 삼천포항까지 오게 되는데, 아무런 대책없이 하룻밤을 삼천포에서 지내야 했기에 여기서 유래된 말이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졌다.'라는 말을 사용했다 한다. 유명호도 나중에 완도항에서 화재로 수장되고 이 배를 대신 해서 청해호가 다닌다.
오후 3시가 되면 입항하여 회진항에서 대기하던 겸능호가, 오후 3시 20분경에는 길성호도 출항을 한다. 이 배들의 출항 준비는 빠르면 오후 1시경부터 이루어 진다. 선창가에 쌀가마니들을 한 벼눌 쌓아 놓았던 짐들을 배로 옮겨 나르면서 시작된다. 80kg단위로 짚으로 포장된 무거운 쌀가마니들을 너다섯명 되는 노조원들이 서로 힘을 합하여 끝이 뾰족한 갈구리를 이용해 가대기하여 발판을 통해 배에 오른다. 무거운 무게 때문인지 발판이 바다 위에서 흔들거린다. 노조원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흔들거리는 진동을 이용하여 춤을 추듯 사뿐사뿐히 걸어서 배에 한 가마니씩 운반 한다. 노조원들의 고된 작업이 끝날 무렵쯤 선창에 있는 가게주인 들은 주문받은 물건들을 배로 실어 나른다. 한편 장흥장, 관산장, 대덕장 등 인근 장에서 구입해온 섬사람들의 짐은 각양각색이고 엄청나게 많다. 식료품에서부터 어구용품, 선구용품, 농자재, 문방구용품 등 다양한 생활필수품들을 배로 운반하기 위해 섬사람들도 분주히 움직인다. 배가 떠날 시간이 되어 간다고 뱃고동 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 퍼질 즈음에 광주에서 내려 온 급행버스 한 대가 아침에 출발 했던 그 자리로 도착한다. 차 손님들은 행여 배를 놓칠세라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앞다투어 달려서 간신히 배에 오른다. 회진항으로 들어올 때도 만선이던 이 배는 다시 섬으로 돌아갈 때에도 만선이다.
배는 출항하여 오전에 경유해 왔던 포구들의 순서들을 거꾸로 해서 손님들을 내려주고 하룻밤을 정박해야 할 목적지로 향해 간다. 내일 또 다시, 똑같은 항로를 따라, 다른 손님들을 배에 태워 회진항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매일 같이, 여러 해 동안 아니 수 십 년 동안을 하루도 멈추지 않고 바쁘게 움직였던 회진항은 이제 잠이 들고 말았다. 자그마치 40여년을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앞으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돌아간다. 난 언젠가는 신해양 시대가 다시 꼭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그때는 꼭 회진항이 아니더라도 회진항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받은 회진 노력항이 국가 연안항으로 지정되어 전남서남해안의 중심항으로 더 나아가 세계속의 항구가 되어 회진 노력항의 뱃고동 소리가 세계로 울려퍼저 나가길 기대해 본다.
2016. 8. 어느 날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는 끝자락에서, 회진을 ♥하는 사람 이 제 석(회진초25회)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