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3.수요성령집회 설교
*본문; 요일 3:10~16
*제목; 요한일서(7) 나는 하나님의 자녀인가?
1. 하나님 자녀됨의 자의식의 가져라!
이제는 우리가 마귀의 종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이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영적 자의식”을 먼저 가져야 합니다.
만일 그러하지 못하면 우리는 여전히 “마귀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죄를 이겨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죄를 이게 하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로 죄를 너무 크게 보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로 내가 죽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구별하는 법
오늘 본문 ‘10절’은 매우 충격적인 말씀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요일 3:10)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분명히 구별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이야기에서의 매우 중요한 대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중간단계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마귀의 종의 모습을 가지는 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속으면서 살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든지, 마귀의 자녀이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의 중요한 기준점은 무엇입니까?
사도요한은 “의를 행함”과 “형제를 사랑함”이 하나님의 자녀의 특징이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의를 행지 않고,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마귀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오, 주님...
그러면서 ‘성경의 가인’이야기를 합니다. ‘12절’입니다.
“12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요일 3:12)
가인이 누구입니까? 동생을 향한 “질투”를 통해서 결국 동생을 살인한 자입니다. 가인의 경우를 보면 “질투”가 그가 ‘마귀의 자녀’였다는 증거입니다. 즉, 사랑하지 못함이 드러난 것입니다.
‘사랑 없는 기독교’는 세상에서 가장 ‘율법적인 종교’가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두꺼운 경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랑 없는 교회와 신자’는 세상에서 ‘가장 큰 이단’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5절’을 봅시다.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요일 3:15)
사랑하지 않으면 영생 즉, 구원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마귀를 따르는 마귀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하나님의 자녀는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그 풍성한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14절’입니다.
“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일 3:14)
구원받는 자들은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단순한 교리, “값싼 은혜”가 아니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십자가에 물과 피를 다 쏟으셔서 주신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 자녀들은 그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애”를 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애씀”의 첫 번째가 바로 “의를 행함이고, 형제자매를 사람함”인 것입니다.
루터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이런 죄를 가진 자들은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는 성경을 보면서,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래서 작은 죄 하나가 드러나도 고해신부에게 가서 바로 “고해성사”를 합니다. 얼마나 자주 갔던지 고해신부가 결국 화를 버럭 내면서, “죄를 한꺼번에 몰아서 가져오라!”고 했을 정도입니다.
이를 통해서 죄를 해결하지 못하던 그가 ‘롬 1:17’의 말씀을 통해서 복음의 해방을 경험한 것입니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수많은 고해와 수도를 통해서도 해결하지 못하던 죄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한 번에 해결된 것입니다. 이는 루터에게 값싼 복음이 아니라, 너무나 크고 소중한 은혜였던 것입니다.
당신에게도 복음이 이렇게 다가오고 있습니까?
영국 런던 템플교회에 ‘에밀 매틀러’란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는 누구든지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구별하지 않고 구제해 주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어느 날 한 선교단체에서 도와달라고 찾아왔을 때, 그의 금고에서 현금을 꺼내어서 바로 주게 됩니다.
그런데 같이 있던 선교사가 금고 안에 있는 15Cm가 넘는 대못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왜 여기 있는 지를 물으니, 그가 대답합니다.
“이것을 볼 때마다,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아깝거나 인색한 마음을 버립니다.”
복음의 자녀가 의와 사랑을 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유명한 책 “주님은 나의 최고봉”을 쓴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이 그의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그 누구에게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달았고, 그래서 내가 그 누구도 비판하거나, 그 누구에게도 실망할 자격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멘입니다. 날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기억하고, 그것이 우리 주님의 그 끔찍한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서 이루어진 사실임을 기억하며, “의를 행하고, 형제자매를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며 삽시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증거입니다.
첫댓글 구원받는 자들은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단순한 교리, “값싼 은혜”가 아니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십자가에 물과 피를 다 쏟으셔서 주신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 자녀들은 그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애”를 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애씀”의 첫 번째가 바로 “의를 행함(말씀을 지킬려고 애씀)이고, 형제자매(예수님의 핏값으로 사신 자들)를 사랑함”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