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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 유치환 선생 탄신 100주년 기념 세미나
때: 2008년 8월 9일 토요일~8월 10일 일요일 1박 2일
곳: 통영시 청소년 수련관
2008년 8월 9일 토요일 통영 도착, 문학 세미나
* 압구정역 출발
화창한 날이다. 폭염주의보가 내렸는데 덥지만 가을빛 하늘이다. 통영 문학세미나를 축복하듯 화사하다. 압구정역 6번 출구, 현대백화점 주차장에서 오전 8시 30분 출발이다. 수필가인 남편 유기섭님의 문단인 수필문학 초청으로 우리 부부가 함께 간다.
차에 오르니 아는 문인들이 많다. 서초문협, 고대여울, 등 시인, 수필가 각 장르에서 많이 오셨다. 금번 행사는 유치환 시인 탄신 100주년 기념, 현대수필 100주년 기념, 박경리 묘소 참배 등 문학의 굵은 맥을 담고 잇어 뜻깊다. 나는 개인적으로 유치환 시인을 존경하므로 더욱 보람있는 행사가. 많은 것을 담아 오리라.
* 천안 휴게소
내 젊은 시절 10여년 교단에 머물던 곳이다. 천안에 교사 첫발령 받아 몸담았던 도시다. 그래서 나는 남다른 감회로 땅을 밟았다. 잠시 정차 하였지만 오랜 추억을 더듬는 소중한 곳이다.
버스에 올라 오전 10시부터는 오경자 교수님의 사회로 문인들 각자의 소개 시간을 갖었다. 나는 존경하는 유치환 선생님과 작년에 원주에 찾아 갔지만 병환이 짙어 나오시지 못한 박경리 선생님, 비록 타계하셨지만 두 선생님의 숨결을 만나 뵈오러 감에 기쁘다고 말햇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천을 보며 통영으로 달린다.
* 함양 휴게소
점심식사를 했다. 산채 비빔밥, 시간이 급하여 20분만에 먹어야 했다. 통영에서 4시부터 세미나가 있어 부지런히 가야 한다. 햇살이 더욱 눈부시다. 여름 특유의 구름이 하늘에 두둥실 떠 잇고 막바지 여름 기온이 등을 데운다. 함양 휴게소는 토지문학제로 하동에 갈 때도 들렀던 곳이다. 그래서 정겹다.
* 함양 상림숲 산책
연암 박지원과 최치원 숨결이 고인 숲이다. 함양은 김종직 군수가 관영 차밭을 조성한 곳이기도 하다. 한사람의 목민관이 훌륭한 일을 한 것이다. 그후 명차 생산지다. 중국차만 유명한 것은 아니다.
문화 해설사가 나와 안내했다. 신라 말기 최치원이 지금의 군수로 있던 곳이다. 조선 성종 때 김종직이, 그후로 연암 박지원이 세 마을을 현감으로 있으며 함양을 발전시켰다. 말이 교통수단이던 그때는 번창했던 함양인데 평지를 중심으로 교통이 발달하면서 지리산과 덕유산 사이에 있는 함양은 쇠퇴해졌다. 그러다가 요즈음은 천연자연환경으로 아름다운 곳이 되었다.
최치원, 박지원이 거닐었을 상림숲을 거닐었다. 숲이 상림과 하림으로 구분되었었는데 하림은 없어지고 상림만 남아 그렇게 부른다. 함양을 빛낸 11명의 동상공원도 있다. 8명은 함양 사람이고 최치원, 박지원, 김종직 3명은 외지인이다. 역사교육공원이다. 박지원은 압록강을 건너 중국 열하까지 여행하며 민가까지 들어가 보고 배운 것을 '열하일기'로 써서 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지금도 유명한 기행수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연꽃 밭이 경작하듯이 아주 큰 면적으로 들어서 있다. 꽃이 져서 토란 밭처럼 보인다. 땀이 온몸을 적신다. 폭염 속에서 1시간 동안 돌아본 뜻깊은 함양 명소다.
* 통영 도착
오후 3시간 30분 통영시에 들어왔다. 숙소인 통영시 청소년 수련관에 짐을 풀고 4시부터 세미나 참석을 위해 곁의 동으로 이동했다. 구 충무인 통영은 여러번 왔다. 산과 바다가 넘실거리고 아름다운 곳이다. 내일까지 이곳에서 머문다.
* 문학 세미나
세미나실에 모여 열띤 문학 세미나 행사를 진행했다. 1, 2, 3부로 나누어 1부는 세미나 개회식과 참가자 소개, 통영 군수와 통영문인의 환영 인사가 있었고, 2부는 유치환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특강, 3부는 한국 현대수필 100년의 회고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유치환 선생님의 문학세계는 전 서강대교수이며 평론가인 김열규 교수가 열강했다. '내외시경(內外視鏡)으로 벼락 치듯이'라는 제목으로 유치환의 문학세계를 조명했다. 서론은 시에서 서정적 자아, 수필에서는 일인칭인 나가 모두 철저하게 자기 자신이다. 한쪽에는 수선화 한쪽에는 봉선화를 그리는 것이 문학이다. 나르스시즘, 보다 보다 수선화를 피웠듯이 나를 보다 보다 피워낸 것이 문학이다. 봉선화는 익을대로 익어야 톡 터지듯이 자신이 익고 익어야 토로해 놓는 것이 문학이다. 본론은 유치환의 시세계를 조명했다. 시는 성찰이 없으면 쓸 수 없는데 유치환은 자신을 거침없이 비판하며 때로는 나는 못됐다고, 성질이 까다롭다고 쓰기도 했다. 신 앞에서가 아니면 털어놓을 수 없는 자신의 비판을 과감히 했던 유치환이다. 그는 반어법, 역설법을 많이 썼다. 정설과 사실을 뒤집어 엎었다. 죽음은 내게 있어 삶의 시작이다라고 했는데 지독한 진리이며 바로 파라독스다. 유치환 수필도 마찬가지다. 거칠고 폭발하듯이 써서 핀독이 어렵다. 그만큼 열정적으로 마른 하늘에 벼락 치듯이 썼다. 바로 앞에서 열변을 토하듯이 누구도 못하는 글이다. 넋이 빠질 때 유치환의 글을 읽으면 힘을 얻게 된다. 내시경과 망원경으로 안과 밖을 투시하며 일치시켜 벼락치듯이 웅장하게 글을 쓴 분이다. 결론은 시는, 수필은 철저한 자기 성찰로 써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아주 유익한 강의였다.
수필에 대한 세미나는 이웅재교수, 권대근교수, 최홍식교수, 이유식교수, 고동주부학장, 강석호회장이 단에 마련한 테이블에서 이명재 교수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수필의 길이에 대하여, 문학의 질에 대하여, 문인의 검증에 대하여 등 많은 것들을 열띤 토론과 질의 응답으로 이루어졌다. 역시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시간이 촉박하여 아쉬운 가운데 세미나를 마쳤다. 수련원의 저녁식사가 늦어도 오후 7시부터는 시작되어야함에 더욱 촉박했다. 4시부터 7시까지 3시간 동안 세미나가 진행됐는데, 계획보다 1시간을 초과했는데도 하고 싶은 말들을 다 못했다. 다음 기회에 더욱 깊은 공부를 하기로 하고 세미나실을 나왔다.
* 통영문인과의 만찬
시간 관계상 서둘러 세미나를 마치고 오후 7시경부터 통영문인이 제공하는 만찬을 했다. 대형 식당에 해물회와 게 된장국, 돼지고기볶음, 수박 등 푸짐하게 차렸다. 통영청소련수련회관 건물 안에 잇는 식당인데 지은지 얼나 되지 않아 아주 깨끗하고 넓다. 아름다운 밤이며, 아름다운 만남, 그리고 아름다운 식사다.
* 승전무 관람
수련회관 앞 광장의 야외 무대에서 승저무를 관람했다. 그윽한 밤의 향연이다. 유치환 탄신 100주년 기념 무용이다. 출연자들의 의상도 고전적으로 우아하고 춤사위도 전통적인 자태다. 무엇을 말하는지는 잘 몰라도 시세계로 바라보면 아주 구슬프게, 아주 애달프게 유치환 선생님의 돌아가심을 읊고 있다. 님은 따나갔어도 세월은 흘러 그 후학들이 모여 밤을 빛내고 있으니 이밤 님은 아실런지. 무대 위 사람들도, 객석의 사람들도 하나되어 유치환 시인을 추모하고 있다.
* 해변공원 산책
승전무를 다 보고 내일의 일정과 유의사항을 듣고 해변으로 갔다. 숙소에서 1Km 떨어진 곳에 있다. 문인들이 모여 모여 나뉘어 갔는데 나는 남편인 유기섭 수필가님과 김영월 시인님과 함께 갔다. 메일로만 시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던 김영월 시인을 이곳에서 처음 만나 참으로 큰 반가움이다. 시집도 나에게 선사해주었다.
통영 시가지를 어둠 속에서 걸었다. 길을 따라 계속 걷고 또 걸은 끝에서 바다를 만났다. 밤 바다는 캄캄한데 곱게 숨쉰다. 등대와 아파트, 선착장, 분수, 놀이 공원 등 아름답다. 외객을 위해 여러가지 시설도 있고 통영의 발전을 위한 노력이 보인다.
아는 문인들에게서 자꾸 전화가 온다. 우리 바다에 나가자는 것이다. 이미 나는 바다에 와 있고 돌아가야 하는데 말이다. 모두들 가는 시간이 아쉬워서 그렇다. 서초문협 회장이신 신길우 선생님도 숙소로 오는 도중 만났는데 다시 함께 바닷가로 나가자고 하신다. 모두가 소중한 추억이 되리라. 밤바다의 정겨움을 안고 갔던 길을 따라 그림자 밟으며 숙소로 다시 왔다.
2008년 8월 10일 일요일 청마 문학관 탐방, 박경리 묘소 참배
* 청소년 수련회관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유익한 장소다. 모든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세미나실, 숙소, 식당 등 현대식 규모로 아주 크게 지어졌다. 나는 지난 밤 206호에서 잤다. 알맞은 온도에서 쾌적하게 잘 잤다. 방이 넓어 넉넉하게 넷이서 편안했다.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건물 주변을 돌아 보았다. 정문 앞에 '빛과 소금'으로라는 돌비가 인상적이다.
* 주변 산책
숙소를 중심으로 걸으며 살펴보았다. 커다란 산이 에워싸고 있다. 산에는 케이블카 중이 있고 건너편에는 케이블카 승차장이 높이 보인다. 우리가 아침 식사 후 탈 예정인 케이블카다. 어젯밤에 바다로 가던 길도 뽀얗게 열린다. 우리 문인을 환영하는 프랑카드도 도로 위에 걸려 있다. 통영의 외곽인데 아주 깨끗하고 질서 정연한 정경이다.
* 식당의 환영 프랑카드
어제 저녁 먹었던 1층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갈치찜과 김, 멸치볶음 등 바다 향기 그윽한 식단이다. 어제는 밤이라서 보지 못했는데 유리창에 대형 환영 프랑카드를 걸려 있다. 도로 위에 걸어놓은 것과 동일하다. 통영의 문인에 대한 환대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식사도 아름답지만 환영문구는 더욱 아름답다.
* 문인들 단체 기념사진
언제나 행사 후에는 꼭 단체 기념사진을 찍는다. 오늘도 청소년 수련회관 앞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서울에서 대형버스 3대 왔고, 또한 전국 각지에서 개인적으로 온 문인들까지 합하면 200명이 넘는다. 그 많은 인원이 사진 찍을 장소를 찾아 앉고 서고 동글게 모였다. 이 사진은 후일에 오늘의 문학 세미나를 회억하며 행복할 것이다.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
숙소에서 바라보이는 곳에 승차장이 있어 걸어서 갔다.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긴 나무 계단이 꺾어지면 오르막 길을 마련해 놓았다. 산 정상에서 케이블카를 탔다. 개인 손님을 먼저 태워 보내고 우리 문인 단체 손님은 9시 30분에서야 승차했다. 8명씩 앉는 의자다.
아주 긴 미륵산 능선을 타고 오른다. 6년만에 완공된 통영의 보물이다. 케이블카 안에서 보면 통영 시내가 한눈에 보이고 높은 미륵산이 뒤로 우뚝 솟아 있다. 한려수도 바다는 더욱 곱게 전개된다. 통영의 더 큰 발전을 위해 많은 투자로 설치한 것이다.
* 미륵산 등정
케이블카에서 내려 나무 계단을 한참 올라 산정에 다달았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더운 날씨인데도 땀을 흘리며 거침없이 올랐다. 두 갈래 길이 있는데 오륻 때와 내려올 때를 다르게 하여 겹치지 않게 길을 택했다. 산이 아담한데 길을 오르기 쉽게 빙그르 돌아 나무판으로 계단을 곱게 만들어 놓았다.
계단이 끝나는 가파른 오르막길은 4월에 오픈하여 아직 바윗돌이 닳지 않아 돌길이 거칠다. 넘어지면 다치게 생겨서 아주 조심하여 올랐다. 오르는 곳곳에 전망대를 마련해 비경을 감상하도록 해두어 좋다. 힘겹게 오른 정상에는 미륵봉이라는 돌비와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 미륵산정에서 본 통영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시다. 미륵산은 우뚝 솟아 통영을 아버지처럼 보듬고 있다. 고층 아파트도 보이고 어제 밤에 갔던 바다의 항구도 보이고 비경이다. 생각보다 아주 큰 항구 도시다. 오붓한 바닷가에 눈부신 발전으로 일어선 모습이다.
지난 5월 타계하신 박경리 선생님의 묘소가 있다는 산도 멀리 보인다. 산속에 있는 미래사 절도 보인다. 유명한 예술인들이 많이 나고 머물던 고장이다. 그래서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통영이다.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운 도시다. 세계적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비경이다.
* 통영시에 대하여
케이블카로 다시 내려와 버스로 이동하며 통영에 대하여 이곳 문인이 소개한다.1995년 이전에는 통영군 통영읍이었고 통영군 안에 충무시가 있었다. 충무와 통영읍이 통합하며 투표하여 85%의 지지로
통영시로 명칭이 정해졌다. 인구 13만명의 작은 도시다.
한때는 통영에 와서 돈자랑 말라고 했다. 게도 1만원 지페를 물고 다닌다 했다. 지금은 한중어업협정 잘못으로 망했다. 바다도 땅이다. 그런데 어획이 고갈되었다. 바다를 반 이상 잃었다. 생존영토를 잃은 셈이다. 통영은 가난해서 국가 월급으로 산다. 유치환 동상도 세우려는데 돈이 없이 추진이 어렵지만 반드시 세워 10월 중에 오픈 할 예정이다. 통영시는 모두 예술적으로 꾸며졌다. 널리 알려서 통영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도 했다. 통영에 대하여 배운 시간이었다.
* 박경리 선생 묘소 참배
나는 그 동안 하동 토지문학제에서, 원주 토지문학공원에서 박경리 선생님에 대한 행사는 여러번 참석해 왔다. 작년에는 서초문협에서 원주 토지문화관 곁에 사시는 집으로 뵈오러 갔는데 병환이 짙으셔서 뵙지 못하고 고추, 배추, 무, 장독이 있는 뜨락만 서성이다 오기도 했다. 여성문인이라는 점도, 토지를 사랑하시는 점도 나는 존경한다.
통영서 나셨지만 50년 문단 생활 동안 고향인 통영에는 단 3번 오셨다. 그런 관계로 묘소도 이곳에서 많은 노력으로 모셔왔다. 원주에서는 황당한 일이다. 작년 12월에 박경리 선생님께서 이곳 통영에 방문헤서 팬션에서 하루 유숙하시며 이렇게 통영이 좋은 줄 알았으면 내가 원주에서 안 살고 여기서 살았을텐데라고 하셨단다. 그것이 씨가 되어 그 분 소원대로 여기에 안치됐다. 통영으로서는 당연하지만 큰 별을 모신 셈이다. 그 만큼 문인 한분이 소중한 것이다.
묘소는 우측에 충무궁 장군봉이, 좌측에 미륵산 케이블카가 바라보며 지키고 있다. 버스에서 내려 산길을 타고 걸어서 갔다. 입구 농토에에 검은 하우스 몇동이 있는데 시에서 사들여 박경리 문학관을 건립할 계획이다. 주차장까지 넓게 마련하여 묘와 잘 이을 에정이다. 아주 명당에 위치해 있다. 산 능선에 잔디를 입히고 조금 높은 곳에 님이 누워 계신다. 봉분이 없는 검소한 묘다. 조촐한 곳에 조촐하게 생시의 검소함 그대로를 드러내고 있다.
헌화하고 단체 묵념과 함께 개인적으로 참배했다. 나도 개인적으로 헌화하고 절을 올리고 박경리 선생님의 명복을 빌었다. 멀리 한산 앞바다가 보인다. 님은 바다와 산과 행복하실 것이다. 단지 계신 곳이 지상과 지하의 차이일뿐 언제나 님은 우리 곁에 계실 것이다. 하루에 평일에는 300명, 주말에는 500명이 참배하러 온다. 박경리 문학상을 제정하여 소설과 평론부문에서 1억원의 수상료를 지급할 계획이다. 대단한 액수이며 그 만큼 위대한 상이다. 아쉬운 채로 돌아서서 이별을 고하고 하산하여 다음 행선지로 이동했다.
* 거제 통영 대교
쌍둥이 다리다. 거제에서 통영으로, 통영에서 거제로 넘나드는 형제 다리다. 몇년 전에 와서 보앗는데, 시도 썼는데 오늘 또 만났고 그 다리를 넘어 왔다.
푸른 바다 위에 용감한 두 아이가 서 있다. 한쪽은 아치형으로, 한쪽은 직선으로 나름다로 멋스러운 풍경이다. 주변 시가지 도로변에 분홍 꽃 화분들이 장관이다. 아담한 통영 시내도 예술적으로 꾸며 놓아 아름답다.
* 통영 항구
거제 대교를 넘어 통영 중심 시가지로 들어 갈 때 충렬사를 지났다. 이순신 장군의 유적을 일제시대인 1943년 일보니 모두 말살하여 많이 소실됐다. 통영에는 여러가지 유적지가 많은데 바쁜 일정으로 다 돌아보지 못함이 아쉽다.
이순이 장군의 행적을 기리기 위한 행사가 곧 있을 통영 항구에는 거북선 모형이 띄워 있다. 그 항구 곁 식당에서 해물탕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나와 항구에 갔다. 마침 버스가 항구 주차장에 정차하여 여유있게 머물며 보았다. 바다 생선을 말리고 있다. 항구 도시 향기가 물씬 난다. 한국의 나폴리라 불린다는 말처럼 건너편에는 나폴리 모텔 건물이 우람하게 서 있다. 이곳을 찾는 여행객을 위한 숙소다. 찌는듯한 여름 햇살에 땀을 쏟지만 깊은 추억으로 오래도록 간직될 고운 영상이다.
* 청마 문학관
나는 이곳에 두번째 온다. 몇년 전 가족 여행으로 왔을 때는 저녁 석양이 곱게 물든 계단을 타고 올랐는데 오늘은 한낮의 햇살이 누운 계단을 타고 오른다. 유치환 선생님은 생시에도 높은 곳에서 놑은 시심으로 문학 열정을 지피셨는데 사후에도 높은 곳에서 문학 열정을 태우고 계신다. 숨가프게 오른 곳에서 유치환 서생님을 만났다. 문학관에 들어가 님의 자취를 돌아보고 해설사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이영도 여인과 교류했던 200여통의 편지를 책으로 엮어 냈다. 사랑했던 여인이다. 시속에서 그리워 하는 님은 모두 그 여인이다. 나도 님의 흉상 앞에서 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나는 님을 사랑한다. 존경한다. 시를, 정신을 본받고 싶다.
청사모, 청마를 사랑하는 모임에 등재했다. 유치환 동상 제막시 후원금도 기부하기로 했다. 그래서 내 이름이 유치환 선생님 동상 뒤에 새겨 넣기로 했다. 뜻깊은 일이다.
* 유치환 생가
청마 문학관에서 나와 계단을 조금 더 오르니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 거제시 둔덕면에도 복원되어 있는데 그와 유사하다. 통영과 거제 두 지역에서 서로가 생가를 지어 놓고 겨루로 있다. 통영에서는 유치환의 아버지가 통영에서 약국을 운영하셨기 때문에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한다. 거제는 부모와 조부님의 고향이지 유치환의 고향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거기까지는 모를 일이며 오직 님을 만나는 일이 더 소중하다.
사립문에 들어서자 유약국(柳藥局)이라는 한문 간판이 마루 위에 걸린 집이 있다. 나는 참으로 기뻤다. 나의 둘째 아들이 약사다. 성까지 같은, 본까지 같은 유(柳)약사다. 나의 아들이 약국을 차린다면 지어도 될 약국 상호다. 유치환 선생님은 아버지의 약국에서 청장년기를 보내며 부친을 많이 도왔다. 그래서결코 무관하지 않은 약국이다.
조롱박, 장독대, 방울이 토마토, 돌절구, 꽃 등 아름다운 뜨락이다. 곁에는 또 한동의 헛간채가 있다. 님의 숨결을 만나는 행복한 순간이다. 시간만 된다면 하룻밤 유숙하며 님과 더 많은 사랑을 나누고 싶은 심정으로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데 버스에서 전화가 왔다. 서울로 출발한다고 빨리 내려오란다. 어쩌겠는가. 또 아쉬운 이별이다. 아까 문학관에서 복잡하여 쓰지 못했던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서둘러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 아름다운 내 조국
통영 시내를 뒤로 하고, 가두리 양식장을 지나 바다와 산이 어루러진 비경을 보며 상경한다. 어디 아름다운 곳이 통영만이던가. 전국에 펼쳐진 산과 강, 바다는 명작 수채화다. 어느 나라에 가도 볼 수 없는 명화 장면다. 어느 곳에 저리도 산이 많던가. 어느 곳에 저리도 바다가 많던가. 주저리 주저리 산이 선 풍경은 장관이다. 진주 남강을 지나고 차는 점점 내륙으로 진입한다.
나는 내 조국을 사랑한다. 외국을 나가도 내가 보는 것은 먼저 내 조국이다. 견주어 보며 아름다운 내 조국에 대하여 그곳에서 다시 탄복한다. 이런 비경을 세계에 더 알려서 더 많은 방문객이 오도록해야 한다. 국제 무대에 서도 손색없는 내 조국이다.
* 돌아오는 길
산청 휴게소를 지나, 덕유산 휴게소, 인삼랜드 금산 휴게소를 지난 점점 수도권에 가까워진다. 천안에 이르었을 때 멀리 종근당 제약회사 안내 광고판이 커다랗게 보인다. 다른 회사들도 많이 모여 있다. 수도권임을 알리는 표식이다. 흑성산 자락이 광활하게 감싸고 있어 진풍경이다.
안성 휴게소에 잠시 내렸는데 가마솥 더위다. 해가 지는 시간인데도 무척 찌는 더위다. 신갈에서 일부 내리고 대부분은 양재역에서 내렸다. 우리 부부도 양재역에서 돌아왔다. 언제나 문학기행 뒤에는 문학기행 자취록을 쓴다. 이번 기행은 특히나 의미 깊어 아주 소중한 기록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