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닮은 방들
박 완 서
마치 겁쟁이가 실로폰 채로 실로폰을 가볍게 건드린 것같이 짧게 살짝 울리는 차임벨의 ‘딩’ 소리를 대가족의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흥겨운 소란 속에서 나는 가려내야 하는 것이다. 그일은 어렵다. 나는 그 일이 끔찍하다. 그 시간의 이 집안의 시끌시끌함을 무엇에 비길까.
안방에선 텔레비전이 골든 타임이고 건넌방에선 동생이 기타를 퉁기고 아랫방에선 막내동생이 FM을 듣는다. 고만고만한 조카애들과 내 아이들이 울고 웃고 싸우고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쫓고 쫓기고 숨바꼭질을 한다. 어른도 아이도 식모도 식후의 저녁 한때의 즐거움이 절정에 달해 전연 서로 상관하지 않고 내지르는 명랑한 소리가 시끌시끌 서로 어울려, 마치 커다란 가마솥에서 잡동사니들이 부글부글 끓어 이루는 알맞는 미미(美味)의 순간 같은 농익은 소란의 시간이다. 그러나 나는 그 시간에 그런 소음으로부터 내 청각을 단절시키고 단 한마디 소리 ‘딩’ 을 가려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일에 익숙하다. 그리고도 그 일이 끔찍하다. 요즈음 내 귀는 그 일에 지쳐 있어 가끔 환청을 한다. 분명히 ‘딩’ 소리를 듣고 대문을 열었는데 문 밖 외등 밑에는 아무도 없다. 대문을 닫고 들어오며 나는 이 집 식구들에게 부끄러움을 탄다. 식모애에게까지 부끄러움을 탄다.
이 집은 내가 살고 있지만 우리집이 아니고, 이 집이다. 이 집은 친정집이고 나는 출가외인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가난뱅이라는 걸 알고도 결혼을 쾌히 승낙한 부모님도 우리가 셋방으로 나가는 건 반대하셨다. 친정에서 몇 년이고 거저 먹여는 줄 테니 남편 월급을 고스란히 모았다가 집을 사서 나가라고 붙들었다. 우리는 못 이기는 척 그대로 했다. 친정 식구는 다 친절하고, 불편한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널찍한 사랑채에서 우리는 거처했다. 올케두 있었지만 눈치 보일 건 조금도 없었다. 아직도 아버지가 경제권을 쥐시고 집안 살림을 도맡아 꾸리셨고 나는 아버지의 귀한 고명딸이었다. 올케 처지나 내 처지나 알고 보면 비슷했다. 올케도 집을 사서 딴살림을 나려고 오빠가 버는 돈을 열심히 모으고 있었다.
우리는 시누이 올케 사이지만 공범자끼리처럼 단짝이었다.
친정살이로서 겪어야 할 서러운 일, 야속한 일은 정말 하나도 없었다. 다만 남편을 기다리는 저녁시간이 끔찍했다. 차임벨을 누르는 소리는 식구마다 특색이 있어서 ‘딩, 뎅, 동’ 소리만 듣고도 누군지를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그것은 아버지의 목소리처럼 느리고 점잖았다. 오빠는 강하게 누르고는 이어서 대문을 발길로 쾅 차는 버롯이 있었다. 동생은 기타를 퉁기듯이 방정맞게 누가 대문을 열어줄 때까지 계속해서 눌러댔고 막내동생은 아예 차임벨 같은 건 무시하고 직접 대문을 어찌나 몹시 흔들어대는 지 온 집안이 질겁을 했다. 어머니는 “이크 괘사 도련님 왔구나. 어서 문 열어줘라, 빗장 부러질라” 하며 식모애를 재촉했고 식모애는 하던 일을 팽개치고 대문간으로 곤두박질쳤다. 막내동생뿐 아니라 누가 오면, 대문은 식모애가 열어주기로 돼 있다. 올케까지도 번연히 오빠가 온 줄 알고도 텔레비전 앞에 질펀히 앉아서 일어나려 하지를 않았다. 겨우 마루 끝까지나 마중 나가면 잘 나가는 폭이다. 모든 것은 식모애가 알아서 잘 해준다.
다만 내 남편이 누르는 차임벨 소리를 알아듣고 나가서 대문을 열어주는 것은 내 일이다. 언제부터 그것이 내 몫의 일이 되었는지 그건 분명치 않다. 아마 남편이 누르는 차임벨 소리가 하도 희미해 웬만큼 귀가 밝지 않으면 못 알아듣겠고 그래서 내가 그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보니 그렇게 된 모양이다. 나는 내 남편 특유의 그 가냘픈 ‘딩’ 소리를 들을 때마다 처갓집 문전에서 겁쟁이로 위축돼 겨우 스위치에 손을 대다 말고 떼는 내 남편을 생각하고 뭉클하도록 측은하다. 나는 울음을 참는 아이처럼 슬픈 얼굴을 하고 대문을 열러 나간다. 대문 밖에 그이가 서 있다. 그러나 내 울음은 촉발되지 않는다. 남편은 결코 처가살이하는 겁쟁이로서 거기 서 있지 않다. 그이는 당당할뿐더러 경도(硬度) 높은 쇠붙이처럼 단단하고 냉혹해 뵌다. 너무 냉혹해 보여서 차임 벨을 그렇게 희미하게 누른 것도 그이가 소심해서가 아니라 나를 골탕먹이기 위해 고의였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반했을 당시의 그이는 부드럽고 따뜻하고 좀 슬픈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내 남편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번번이 대문간에서 잠깐 낯을 가린다. 그이는 그런 나에게 조금도 개의치 않고 우리 방으로 걸어들어간다.
조금씩 집안의 소요가 가라앉는다. 어머니는 자기 혼자 짐작으로 사위가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우선 텔레비전의 볼룸부터 낮추고는 방방이 돌아다니면서 “매형 들어왔다, 쉿” 하는 소리로 기타와 FM을 멎게 한다. 내 동생들은 이렇게 착하다. 아이들까지 덩달아 조용해지고 내 아이들은 비로소 사랑채의 우리 방으로 들어온다.
식모애가 밥상을 가지고 들어온다. 아버지나 오빠의 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깔끔하고 맛깔스럽게 봐논 상이다. 그래도 어머니는 행여 반찬 한 가지라도 빠뜨렸을까봐 따라 들어와 상을 점검한다. 그러고는 “찬은 없어도 많이 들게” 하며 공연히 미안해한다. “제가 뭐 손님인가요” “암, 사위는 백년손이라는데” 때로는 “자네 이것 좀 맛보려나” 하고 감추어두었던 빛깔 고운 양주까지 권하며 사위에게 은근히 아첨을 한다. 내 남편은 어머니의 이런 호의를 과분해한다거나 허겁지겁한다거나 하는 법 없이 어디까지나 당당하고 익숙하게 때로는 자못 무관심한 척 시들하게 받아들인다.
어머니는 이렇게 우리에게 잘 해준다. 아무것도 불편한 거라곤 없었다. 모든 것은 어머니와 식모애가 알아서 해줘서 저녁 때 남편 문 열어주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다. 그런데도 나는 단 하나의 내 일인 그 일이 끔찍하다. 그리고 내가 그 일을 얼마나 끔찍해하는지 내 남편이 알아줬으면 싶다. 점점 불어가는 저축도 남편의 노고의 대가 같지를 않고 내가 그 끔찍한 일을 감당한 결과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고, 그럴 때는 백여만원의 저축이 엄청난 무게로 나를 짓눌러 나는 압사 직전에 이르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그 고통을 하소연하고 위로받고 싶다. 남편 혼자만 처가살이의 고통이 뭔지도 모르는 양 뻔뻔스러운 게 나는 견딜 수 없다. 그래도 나는 칠 년 동안이나 이런 혼자만의 고통을 견디었다. 내 귀는 그 동안의 혹사로 자주 ‘딩’ 하는 환청에 시달리게 되고 오동통하던 얼굴은 신경질적인 선으로 말라버렸다. 그리고 잘하면 조그만 아파트 하나는 장만할 수 있는 돈이 모이고 아이들은 국민학교에 들어갈 만큼 자랐다.
내 두 애는 같은 해에 같이 국민학교에 들어가게 돼 있다. 그 애들은 쌍둥이다. 나는 한 번의 입덧과 한 번의 잉태와 한 번의 산고로 두 아들을 얻은 것이다. 일석이조란 바로 이런 건가보다. 육아까지도 친정살이 덕분에 힘들거나 어려운 고비 없이 수월하게 치렀다.
이제 늠름하게 자란, 이목구비가 수려한 내 아들들을 보면 꼭 거저 얻은 한 쌍의 보물 같다. 나는 내 아들들보다 더 잘생긴 얼굴은 아예 상상도 할 수 없으므로 내 아들들이 쌍둥이라는 데 지극히 만족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친손자보다는 외손자를 더 사랑했다. 성격이 낙천적인 올케는 노인네들이 자고로 친손자보다 외손자들을 더 사랑하는 것으로 치고 그런 데 마음을 쓰지 않았지만 내 눈엔 외손자 친손자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아들들에겐 누구라도 사랑 안 하곤 못 배길 만한 천성의 귀여움과 순진성이 있었다.
그런 내 애들이 학교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나는 독립하고 싶었다. 나는 내 귀여운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내 집 문을 쾅쾅 두드리게 하고 싶었다. 조카애들보다 작고 위축된 내 애들의 차임벨 소리를 가려내는 일을 새롭게 시작할 수는 도저히 없었다. 그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우리의 집을 갖는 데 대해서 친정 식구들은 서운해하면서도 찬성해주었다. 나는 그들이 진정으로 서운해해준 고운 마음씨를 추호도 의심 하지 않는다.
그런데 처음 갖는 집을 아파트로 하느냐 단독주택으로 하느냐엔 올케와 어머니의 의견이 대립했다. 올케는 아파트 편이었다. 첫째 난방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으니 구공탄을 가는 구질구질한 일을 면할 수 있고, 부엌 등 모든 시설이 편리하니 식모가 필요 없고, 잠그고 외출할 수 있고, 이웃과 완전히 차단된 독립성이 보장돼 있고 등등이 아파트를 편드는 이유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바로 이 독립성이라는 걸 겁내고 있었다. 아파트에서 가끔 일어나는 살인사건 같은 걸 다 이 냉정하고 철저한 독립성에 그 까닭을 두고 있었다. 어머니의 이론대로라면 이 나라에선 살인 사건은 꼭 아파트에서만 일어나는 것으로 봐야 할 판이었다.
이웃끼리 고사떡 찌는 냄새도 훌훌 넘어오고, 지짐질하는 소리도 지글지글 넘어가 서로 나누어 먹고 대소사를 서로 의논하고 도와주고 해야 사람 사는 동네라는 거였다.
올케와 나는 마주 보고 눈을 찡긋했다. 나는 올케 편이었다. 나는 이웃사촌이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이 구(舊)동네가 싫었다. 도대체가 남의 집 일에 너무 관심들이 많았다. 뉘 집 아들이 일류 대학이나 일류 고등학고에 들어갔다 하면 서로 제 일처럼 신이 나고, 떨어진 집엔 심란한 얼굴로 위로를 하러 몰려가고 노인네들 생일엔 서로 청해서 먹고 노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남의 집 내막을 알아내서 풍기고 흉을 보는 데도 선수들이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 남편이 출퇴근할 때마다 이웃의 수다쟁이 여편네들이 왜 저렇게 신수가 멀쩡 해가지고 처가살이를 할까 하며 혀를 끌끌 차고 입을 비죽대는 것을, 또 그 여편네들이 올케를 세상에도 없는 무던한 여자로 나는 그와는 정반대의 얌체로 꼽고 있는 줄도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남의 속도 모르고 내가 돈이 모자라 아파트로 가려는 줄로만 알고 안쓰러워했다. 몇 년만 더 아버지 밥을 얻어먹으면 누가 뭐래겠느냐고 공연히 죄 없는 올케를 흘겨보고는, 나를 꼬이려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올케와 단짝이 되어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마땅한 아파트를 구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계약 후 모시고 갔다. 어머니는 우전 십팔 평짜리가 너무 좁은 데 놀라서 너희가 평수를 사기당한 거 아니냐고 성화를 했다.
“원 세상에, 우리집 건평이 그게 서른일곱 평인데 열몇 식구가 들끓고도 방이 몇 개나 남아돌았는데 세상에 이걸 열여덟 평이라고 젊은 것들을 속여?” 하며 분개해 마지않았다. 예전 평수하고 요새 평수하곤 다르다니까 그제서야 그건 그래, 예전 고기 한 근하고 요새 고기 한 근하곤 다르고말고 하며 알아들은 듯한 얼굴을 했다.
그럭저럭 이삿날이 가까워졌다. 어머니는 새삼 묵은 근심을 들춰내서 또 걱정을 시작했다. 두터운 콘크리트 벽으로 차단된 세대간의 그 독립성이란 게 암만 해도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혼자서 살림을 할 수 있다는 나의 독립성조차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당신이 와서 살림 참견을 하자니 사위고 딸이고 그래주십사고 청하지도 않는데 자청한다는 건 자존심 문제였다.
내 아파트는 소위 계단식이라는 것으로 계단을 오르면 두 세대의 현관문이 마주 보도록 되어 있다. 어머니의 성화로 우리는 미리 앞집에 인사를 하러 갔다. 어머니는 앞집 여주인이 적어도 자기만큼은 나이가 먹었으면 하고 기대했었나본데 나만큼 젊은 주부였다. 그래도 결혼하자 곧 딴살림을 나 팔 년째라니 나보다는 훨씬 선배였다.
어머니는 우리 애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니 매사를 좀 가르쳐주고 도와주라고 그 여자에게 신신당부했다. 어머니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나는 단박에 그 여자에게 호감이 갔다. 그 여자네 살림살이는 어찌나 알뜰하고 아기자기 한지 꼭 동화 속에 나오는 방 같았다. 나는 꼭 그 여자네 방처럼 꾸미고 싶었다. 나는 꽤나 수줍어하면서 가구나 실내장식에 대해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 여자는 조금도 염려 말라고, 이 아래 상가에 가구점이랑 커튼 센터랑 없는 게 없다고 일러줬다. 아파트란 참 너희 올케 말짝으로 편한 데로구나 하며 어머니까지 좋아했다.
방은 빨리 꾸며졌다. 뒤늦게 혼수해주는 셈 친다고 비용은 아버지가 부담했다. 나는 그 여자네 방보다 더 멋있게 꾸미려고 별렀으나 꾸며놓고 보니 가구의 배치나 커튼의 빛깔까지 비슷한 것이 되고 말았다. 내가 그 여자네 방에서 받은 첫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내 기호가 어느 틈에 그 여자를 흉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올케도 부러워하고 어머니와 아버지도 신통해할 만큼 예쁜 방이 꾸며졌다.
아아, 이제야말로 초저녁의 그 대가족의 대소요 속에서 ‘딩’ 하는 가냘픈 차임벨의 울음을 가려내야 하는 끔쩍한 일로부터 놓여난 것이다.
나는 예쁜 앞치마를 두르고 식구들을 위해 밥도 짓고 반찬도 만들었다. 앞집 여자 ― 철이 엄마가 내 요리 선생이었다. 그녀는 내가 만든 반찬을 냠냠 간을 보고 나서 식초도 찔끔 쳐주고, 고춧가루도 솔솔 뿌려주고 했다. 그네가 너무 맛있어하면 나는 아낌없이 한 접시 나눠주었다. 그녀는 그녀대로 빈 접시를 보내는 법 없이 뭐든지 꼭 담아 보냈다. 우린 시장도 같이 봤다. 아파트 지하실은 슈퍼마켓이어서 별의별 것이 다 있었다. 그러나 그녀나 내가 별의별 것을 다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만 일로 비참해할 우리가 아니었다. 우리는 고급의 편식가처럼 오만한 얼굴을 하고 콩나물이니 두부니 꽁치니를 샀다. 나는 쉽게 이런 것들의 요리법을 익혔다. 가끔 오시는 어머니는 내가 만
든 이런 반찬을 해서 진지를 많이 잡수시고 흡족해하시고 나서는 꼭 철이 엄마를 고마워하셨다.
남들까지 내 음식 솜씨를 칭찬해줄 만큼 살림에 익숙해질 무렵부터 나는 때때로 애기라도 서는 것처럼 발작적으로 내가 만든 음식에 메스꺼움을 느꼈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음식에 대한 식상이라기보다는 철이 엄마의 음식 솜씨에 대한 혐오감이랄 수도 있었다. 나는 인제 혼자서도 음식을 잘 만들 수 있었으나 철이 엄마의 음식 솜씨의 영향력을 벗어난 음식을 만들 수는 없었다. 이를테면 우리는 철이네와 똑같은 음식을 먹고 있는 셈이었다. 남편의 저녁상을 봐놓고 나서 앞집에서도 똑같은 저녁상이 그 집 남편을 기다린다고 생각하면 비참해졌다. 가끔 남편까지 내 음직 솜씨에 대해 악의에 찬 트집을 부려 내 비참함을 아주 결정적인 것으로 만들어놓기 일쑤였다. 가령 동치미에 떠 있는 꽃 모양으로 도려낸 당근 조각을 젓가락으로 끄집어내가지고는 “제발 맛대가리도 없는 걸 가지고 요리학원식 잔재주 좀 작작 부리라구……” 하면서 마치 헤엄치는 파리라도 건져낸 듯이 진저리를 쳤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시간을 끔찍해하고 있었다. 여긴 내 집이고 차임벨 대신 콩알만한 렌즈가 달려 있어 방문객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나는 내 눈을 애꾸를 만들어가지고 이 렌즈에다 대고, 천장에 달라붙은 이십 와트 형광등 불빛 밑에 서 있는 내 남편을 확인하는 일이 끔찍하다. 하루의 피로 때문인지 백색 형광등 때문인지 남편의 얼굴은 무섭도록 창백하고 냉혹하다. 어느 호주머니엔가 목을 조를 빗줄을 숨긴 얼굴이다. 번번이 나는 내 남편을 어머니가 겁내던 아파트 살인범으로 알아보고 화다닥 놀라고 나서야 남편임을 알아차린다. 문을 열어주고 옷을 걸고 하면서도 어느 만큼은 당초의 무서움증과 혐오감이 남아 있다.
나는 내 이런 터무니 없는 무서움증을 남편에게 고백하고 현관문에서 그 콩알만한 유리조각을 떼어버리도록 부탁하고 싶었으나 그런 얘기를 남편이 기분 안 상하게 할 자신이 없었다. 그이에게 나를 이해시킬 만한 말주변이 나에겐 없었다. 그이가 부드럽고 따뜻한 눈으로 나를 보아주던 시절 우리 사이엔 말주변 같은 건 필요 없었다. 그이와 나 사이에 말주변의 필요성을 다급하게 의식하게 되면서부터 내 불안과 초조는 비롯됐다. 나는 어쩌다 남편에게 “여보, 요새 나 좀 이상해요. 괜히 불안하고 초조하고…….” 그러면 남편은 자못 냉담하게 “흥 노이로제군, 누가 현대인 아니랄까봐” 했다. 남편은 척하면 척하고 빠르게 어떤 등식(等式)을 찾아내는 데 능했다. 그러나 이런 등식으로 도대체 무엇을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철이 엄마에게 노이로제라는 것에 대해 물었다. 그러면 그녀는 내 증세 같은 건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도 노이로제고 누구도 그렇고 또 누구도 그렇고 하며 그녀가 아는 여편네들을 모조리 꼽았다. 그녀는 아파트에 사는 많은 여편네들을 알고 있었고, 그만큼 여러 노이로제의 유형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따라 몇 군데 마실도 가봤다. 비슷한 여편네들이 비슷한 형편의 살림을 하고 있었다. 우리 방과 철이네 방이 닮은 것만큼 우리의 상하좌우의 방들은 닮아 있었다. 물론 어느 집은 딴 집이 안 가진 세탁기가 있고 어느 집은 딴 집보다 먼저 피아노를 들여놓고 그 정도의 차이는 있었으나, 그 정도의 우월감조차 오래 누리지를 못했다. 곧 누가 그것을 흉내내고 말기 때문이다.
서양 여자들이 체중을 줄이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듯이 이곳 아파트의 여자들은 남의 흉내를 내기 위해 순전히 남을 닮기 위해 다이어트를 했다. 나는 이런 닮음에의 싫증으로 진저리를 쳐가면서도 철이네만 있고 우린 없는 세탁기를 위해 콩나물과 꽁치와 화학조미료와 철이 엄마식 요리법만 가지고 밥상을 차리고, 철이 엄마는 내가 살림 날 때 올케한테서 선물로 받은 미제 전기 프라이팬을 노골적으로 샘을 내더니, 오로지 그녀의 요리법 하나만 믿고 형편없는 장보기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나나 철이 엄마나 딴 방 여자들이나 남보다 잘살기 위해, 그러나 결과적으론 겨우 남과 닮기 위해 하루하루를 잃어버렸다. 내 남편이 십팔 평짜리 아파트를 위해 칠 년의 세월과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상실 했듯이.
우리 이웃에는 앙큼한 여편네도 있어, 이런 고단하고 허망한 경쟁으로부터 기상천외의 방법으로 탈출을 기도하는 이도 없지 않아 있었다. 철이 엄마만 해도 그랬다. 여직껏 철이 엄마는 내 거울 같은 존재였다. 내가 얼마나 권태로운가, 얼마나 공허한가, 얼마나 맥이 빠져 있나를 그 여자를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전연 나와는 상관없는 표정을 하고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속 깊숙이 염통 가까운 데쯤, 미칠 듯한 희열을 감춘 듯이 살갗은 반들대고 눈은 번들댔다. 나는 당혹했다. 기분이 영 잡쳤다. 우리가 어느 날 거울 앞에 섰을 때 허구한 날 거울에서 낯익은 자기 얼굴이 아닌 전연 생소한 얼굴이 비친다거나 자기는 분명히 찡그렸을 터인데 거울 속에선 웃어 보인다거나 할 때 우리는 얼마나 놀라고 기분이 나쁠 것인가. 내가 바로 그렇게 기분이 나빴고, 더 나쁜 것은 그런 그 여자를 볼 때 느껴야 하는 굴욕감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그 여자의 변모의 비밀을 알아내야 했다. 둘 사이가 갑자기 긴장했다. 내가 파악할 수 있는 그 여자의 모든 것 ― 눈빛, 몸짓, 말씨, 웃음, 하나하나에 내 조심스러운 탐색의 실(絲)은 던져졌다. 나는 사진(絲診)을 하는 전의(典醫)처럼 교활하고 주의 깊게 실을 긴장시키고 실 끝에 온 신경을 모았다.
드디어 나는 그 여자의 희열과 긴장이 차츰 고조됐다가 급격히 쇠퇴하고 다시 그것을 잉태하고 하는 주기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일 주일을 주기로 하고 있었고 금요일 저녁을 그 정점으로 하고 있었다.
금요일 저녁, 금요일 저녁이 문제였다. 남편이 돌아오기 전 어린 남매는 이른 저녁을 먹고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9동 음대생한테 가는 시간이었다. 나는 재빨리 금요일 저녁에서 후텁지근하고 아슬아슬한 간음의 냄새를 맡았다.
희열과 초조로 통통한 몸뚱이가 거의 파열할 듯이 불안해 뵈는 금요일, 그리고 다음날인 토요일의 그 여자의 걸레쪽 같은 허탈, 일요일부터 다시 번뜩이기 시작하는 그 기분 나쁜 희열―, 도대체 의심 할 여지는 조금도 없었다.
어느 금요일 저녁, 마침내 나는 자신 있게 간음의 현장을 급습했다. 나는 간부(姦夫) 대신 한 장의 주택복권을 발견했다.
입술이 바싹 탄 그 여자는 한 손엔 주택복권을 움켜쥐고, 한 손으론 까닭 모를 팔짓을 해가며, 텔레비전 속에서 숫자판에 화살을 쏠 때마다 자기가 뛰어들어 대신 쏘아댈 듯이 그 살집 많은 궁둥이로 연방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목구멍으로 끄르특끄르륵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나는 단박에 무엇이 이 여자를 그토록 충만하게 빛나게 했던가를 알아차렸다. 이곳으로부터, 이곳의 무수한 닮은 방으로부터, 놓여날 수 있는 가능성이 이 여자를 그렇게 놀랍게 변모시켰던 것이다.
다음날, 나도 슈퍼마켓으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에 나무궤짝을 놓고 복권을 파는 검버섯이 얼굴 가득히 핀 아줌마한테서 그것을 한 장 샀다. 그러나 그것을 사놓고 금요일을 기다리는 동안 아무래도 나는 철이 엄마처럼 되지를 않았다. 그것은 철이 엄마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한번 비밀을 들키고 난 후의 그녀의 희열은 바늘로 찔리고 난 풍선 꼴이었다.
금요일이 되었다. 나는 희열은커녕 뜻하지 않은 불안으로 안절부절을 못했다. 나는 내 복권에 대해선 전연 관심이 없고 다만 철이 엄마의 복권에만 관심이 있었다. 내 것이 당첨될 리는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지는데 철이 엄마 것은 꼭 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은 같은 무기수 중 하나만 이유 없이 석방되는 것을 봐야 하는 남은 무기수의 심정 같아서 미칠 것 같았다.
그 여자는 당첨금 팔백만원을 타면 곧 이곳에서 떨어진 공기 좋고 아름다운 전원도시의 언덕 위에 땅을 사고 말 거다, 그러곤 집을 설계하겠지. 다락방이 있는 뾰족한 지붕을 가진 오밀조밀한 집을 짓겠지. 그런 집은 내 집이어야 하는 건데. 그 집 철이와 난이는 다락방 서재에서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플란다스의 개』를 읽을 수 있겠구나. 내 아이들이 그래야 하는 건데. 내 아이들에게 내가 그렇게 해주고 싶었던 걸 그 여자는 모조리 훔쳐다가 제 아이들에게 해주겠구나.
마당에는 잔디를 깔고, 장미를 심고, 라일락도 심고, 그리고 철이와 난이의 밭도 따로 만들겠지. 그래서 완두콩도 심고, 옥수수도 심고, 이것은 쌍떡 잎식물, 저것은 외떡 잎식물 하며 씨앗에서 싹이 트는 신비한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자기야말로 훌륭한 엄마인 양 자족의 미소를 짓겠지. 그런 짓은 내가 하려고 하던 건데 그 여자가 모조리 홈쳐다가 마치 제 것처럼 써먹겠지. 나는 너무 분해서 숨이 찼다.
이런 고통은 철이 엄마 쪽에서도 마찬가지였던가보다. 우리는 핏발 선 눈으로 서로 마주 보는 데 어지간히 지쳤다. 우리 중 누가 먼저였는지 모르게 복권을 살 때부터 네 것 내 것 없이 같이 사서 아무거나 당첨이 되면 반씩 나눠 갖자는 말이 나오고 두말없이 이에 합의를 보았다.
그러고 나니 복권 사는 재미는 김이 샐 대로 새서 시들해지고 시들해지자 갑자기 눈이 밝아지면서 몇백만분의 일이라는 당첨의 확률까지 계산하게 되고 그래서 일 주일에 백원의 낭비도 할 게 뭐냐고 지극히 건전한 결론에 도달했다. 결국 철이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이곳으로부터 놓여날 수 있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말았다. 다시 심심한 날이 계속됐다.
나는 따분한 낮 동안 커튼을 젖히고 마주 보이는 13동의 방들을 세어보고 거기다가 이곳 아파트 단지의 아파트 총 동수를 곱해보고 하다가, 고만 눈이 아물아물해지면서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고 만다.
그럴 때 나는 이상하게도 내 쌍둥이 아이들이 싫어진다. 그애들이 쌍둥이라는 사실이 견딜 수 없어진다. 그리곤 눈앞이 어질어질해지면서 그애들을 구별할 수 없게 된다. 누가 형이고 누가 아우인지를 못 알아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죽고 싶도록 비참한 심정으로 그애들에게 그걸 물을 수밖에 없다. 그애들은 그런 내가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깔깔대며 “엄마, 내가 형이야” “응, 그래 난 동생이구” 한다. “너희들은 그걸 어떻게 알았지?” 나는 내가 모르겠는 걸 쉽게 알고 있는 그애들이 수상쩍은 나머지 이런 멍청이 같은 질문까지 하고 만다.
아이들은 한층 깔깔대며 “엄마가 그랬잖아?” 한다. 참 내가 그랬겠군. 내가 그걸 가르쳐줬지. 그렇지 않으면 그애들이 어떻게 그걸 저절로 알 수가 있담. 그럼 나는 어떻게 그걸 알았더라. 그애들을 받은 의사가 일러줬었지. 행여 뒤바뀌는 일이 생길까봐 꼼꼼하게도 태어난 정확한 시각을 적은 반창고를 그애들 가슴팍에 붙여서 퇴원시켜주지 않았던가.
처음엔 나도 그걸로 형 아우를 구별하다가 곧 그것 없이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답게 제일 먼저 그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가까이에서뿐 아니라 어울려 노는 것, 걸어오는 것을 멀리서 보고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일이 예사로웠는데도 남들은 신기해해서 어떤 사람은 형과 아우의 차이점을 나더러 설명해달라고 조르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설명을 초월한 엄마로서의 직관일 뿐이었다.
그러던 내가 문득문득 내 아이들을 구별 못 하는 일을 겪게 된 것이다. 이렇게 엄마다운 직관이 흐려질 때, 나는 내 아이들까지 믿을 수 없어진다. 꼭 두 놈이 짜고서 아우는 형이라고 형은 아우라고 나를 속여먹는 것 같다. 이런 의심은 불쾌하고 고통스럽다. 자꾸자꾸 속여먹다가 결국 제가 누군지 저희들 스스로도 잊어버리고 말 날이 올 것 같다. 꼭 그럴 것 같다. 나는 덜컥 겁이 나서 불의(不意)에 내 아이들이 나를 속여먹을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불의에, 내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가지고 찾아낸 형과 아우의 특징을 잊지 않으려고 요모조모 날카롭게 뜯어보고, 꼬옥 껴안고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본다. 그러나 그들의 닮음은 어느 틈에 내 이런 모든 노력을 빠져나가 나를 포위하고 나를 놀린다.
나는 지쳐빠진 나머지 그까짓 형 아우쯤 뒤바뀌면 어떠랴, 한 뱃속에서 동시에 생명이 비롯되어 나란히 한 자리에 앉았다가 다만 세상 밖에 누가 몇 분 먼저 나오고 나중 나온 결로 결정된 형 아운데 그게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고 능쳐 생각하려 든다.
그럼, 내 아이들의 ‘나’ 는 함부로 바꿔치기해도 되는 ‘나’ 란 말인가. 다시 나는 그런 일은 절대로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는 끔찍한 일이라고 진저리를 친다. 나는 엄청난 혼란에 빠지고 만다. 아아 쌍둥이 엄마란 얼마나 저주받은 엄마일까.
나는 거울에 나를 비춰볼 때 이미 이 세상을 다 살아버린 듯이 피곤하고 못쓰게 된 내 얼굴을 발견하고 놀란다. 철이 엄마를 불러서 계란팩이나 오이팩이나 그런 걸 해달란다. 우리는 서로 그 일을 품앗이한다. 그 여자는 내 얼굴에 주름이 하나도 없다고 샘을 내는 척하면서, 콜드크림으로 얼굴을 문지르고 두들기고 뱅뱅 돌리고, 살갗이 익어버리도록 뜨거운 타월로 찜질을 해내고, 한바탕 법석을 떨고는, 계란하고 꿀하고 무슨 당근 짜낸 국물 같은 걸 범벅을 해서 얼굴에 처덕거린다. 그것이 마르면서 피부를 옥죈다. 그 동안 웃어도 안 되고 말을 해도 안 된다. 그 동안을 못 참고 옷으면 얼굴에 주름이 간다는 게 우리들의 상식이다.
철이 업만 혼자서 심심한지 종알종알 얘기를 시킨다. 하필 우스운 얘기만 골라서 한다. 내가 자기보다 먼저 주름이 잡히길 노리는 그 여자의 음보를 내가 모를 리 없다. “글쎄 우리 난이란 년, 고게 얼마나 깜찍하게 구는지 재미나긴 아들보다 딸이 납디다. 어제는 글쎄 나보고 이 세상에서 제일 먼저 다이빙을 한 사람이 누구게 하지 않겠어. 나는 글쎄 누구더라 아마 영국 사람일 텐데, 어쩌구 하며 좀 아는 척을 하려 했더니 고게 허릴 잡고 깔깔대며 대한민국 심청이, 하지 않겠어.” 그러고는 혼자서 오랫동안 깔깔댔다. 그 여자는 내가 따라 웃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는 안 웃는다. 주름 때문에 못 웃는 게 아니라 하나도 안 우습다. 코미디언이나 디스크자키들이 골백번은 써먹은 소리다. 요샌 신선한 웃음거리조차 없다. 직업적인 웃기기꾼들이 동서고금의 우스운 이야기란 이야기는 다 끄집어내다가 요리조리 장난질을 해서 써먹고 또 써먹어 단물은 다 빼먹고 씹어뱉은 찌꺼기뿐이다. 말장난질에 닳고닳아빠진 말뿐이다. 나는 우습기는커녕 어느 개뼈다귀가 씹다 버린 껌이라도 입 속에 던져진 듯한 욕지기를 느낀다.
이번엔 내가 철이 엄마를 해줄 차례다. 내가 당한 것과 똑같은 짓을 그 여자의 얼굴에 베푼다. 대낮에 계란팩을 뒤집어쓰고 나자빠졌는 여편네 꼴은 추하고 너절하다. 흡사 합성섬유의 누더기 같다.
나도 심심해진다. 심심풀이 삼아라도 입을 놀리고 싶다. 그러나 그 여자를 옷길 생각은 안 한다. 저 보기 흉한 얼굴에서 입이 벌어지면서 이빨과 혀와 목구멍이 보일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낮도깨비를 상상하는 것처럼 끔찍하다. 나는 그 여자를 아프게 하고 싶다. 그 여자를 아프게 하려면 샘을 내게 하는 수밖에 없다. 내 남편과 내가 연애하던 때의 이야기를 해줘야겠다. 그런 이야기가 얼마나 쑥스럽고 더리적은지, 너무 안다고 할 만큼 알고 있는데도 그 짓이 하고 싶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이 여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건지 내가 듣고 싶은 건지 구별을 못 한다. 이 여자를 아프게 하고 싶은지 내가 아프고 싶은지 그것도 모르겠다. 모르는 채 나는 지껄였다.
총각 때의 남편은 건강하고 훤칠하니 키도 컸는데도 그를 볼 때마다 나는 그를 불쌍해했다. 그를 불쌍해하는 내 느낌은 너무도 애틋하고 순수해서 그를 불쌍해하는 게 그에게 모욕이 된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대개 만날 장소를 길가로 정하고 길가에서 만났다. 오래 기다리고 서 있어도 남이 이상하게 보지 않을 길가, 그러니까 버스정거장 같은 데가 좋았다. 홍릉 버스 종점, 이대 입구 정거장, 미도파 앞 이런 식이었다. 취미가 고상하다거나 괴팍해서 다방을 기피했거나, 찻값이 아까울 만큼 가난해서가 아니었다. 시작부터 어쩌다 그렇게 되고 말았다. 제대하고 복교해서 한 학년이 된 그를 알게 되고 학교 외의 장소에서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고, 만날 날짜와 시간은 쉽사리 정했는데도 만날 장소는 쉽게 정해지지를 않았다. 우린 다 같이 단골 다방도 없었고 이름과 장소가 연관지어서 기억나는 다방도 없었다. 여기저기 생각은 났으나 조금씩 어리숭했다. 어리숭한 채로 정할 수도 있겠는데 그랬
다가 우리의 중대한 두번째 만남에 어떤 차질이 생길까 두려웠다. 우선 꼭 다시 만나야 했다. S동 버스정거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내가 먼저 가서 기다렸다.
나는 아주 멀리서부터 인파 속에서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딴 사람들과 달랐다. 그 다른 것이 나로 하여금 그를 최초로 불쌍해하게 했다.
그와의 사귐이 깊어짐에 따라 불쌍하다는 느낌도 심화됐다. 그가 남보다 착해 보이는 것, 정직해 보이는 것, 그런 것 때문에도 그가 불쌍했다. 딴 사람들은 갑각류처럼 견고하고 무표정한데 그만이 인간의 가장 깊고 연한 속살, 따뜻하고 부드러운 속살을 노출시키고 있는 게 불쌍했다. 딴 사람들은 다 무장을 하고 있는데 그만이 무방비상태인 것으로 여겨져 불쌍했다.
나는 그가 불쌍하고 불쌍해서 가슴을 조이며 내 앞으로 가까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이 좋았다. 나는 그가 불쌍해서, 서럽도록 불쌍해서 좋았다.
우리는 만나면 여러 군데를 걸어 돌아다녔고, 걷다가 지치면 시외버스를 탔다. 이름난 유원지로 가는 것만 아니면 우리는 아무 거나 탔다. 아무 데서나 내렸다. 서울 교외의 시골은 비슷비슷했다. 지독한 거름 냄새가 나는 곳도 있었지만 산기슭 쪽으로 조금만 피하면 거름 냄새는 구수하게 희석되고 싱그러운 초록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초록빛 나는 풀, 나물, 채소 등이 풍기는 풋풋한 시골 들판의 냄새를 우리는 좋아했다. 가깝고 낮은 산들의 초록빛, 멀수록 푸른빛을 띠다가 푸른 안개처럼 번져 보이는 먼, 먼 높은 산들, 밭둑의 미루나무, 마을 어귀 까치집이 매달린 고목, 느릿느릿 꼬부라진 들길, 그런 평범한 풍경들이 그와 함께 바라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그를 바라보는 거였다.
나는 군중 속에 있는 그를 불쌍해하며 바라보는 것도 좋아했지만, 단둘이서 아무와도 비교 안 하고 그를 바라보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의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불쌍해하지 않고 느끼는 것이 실상은 더 좋았던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가까워졌다.
우리가 처음 뽀뽀하던 날, 그날도 우리는 밭이 끝나고 산이 시작되려는 둔덕 풀밭에 있었다. 우리는 같이 노래도 부르고 까불고 장난치고 했다. 나의 어머니 아버지는 사내놈은 그저 도둑놈으로 알라는 무지막지한 공갈로 나에 대한 성교육을 삼았지만 나는 그를 조금도 경계하지 않았다. 경계는커녕 어린애 같은 천진한 장난에 열중하다가도 문득 그의 도둑놈에 대해 안타까운 궁금증을 느끼곤 했다.
그가 어디로 숨었는가 하다가, 목덜미로부터 뺨으로 기는 송충이의 징그러운 감촉을 느끼고 질겁을 해서 비명을 지르며 오두방정을 떨었다. 그러나 송충이가 아니었다. 그가 강아지풀로 콧수염을 해달고 내 등 뒤로 돌아와 나를 놀렸던 것이다. 그는 장난질이 성공한 아이답잖게 얼굴은 심한 부끄러움으로 붉게 상기되어 있고 눈은 슬퍼 보였다. 나는 곧 강아지풀로 위장한 그의 욕망을 본다. 그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건 뽀뽀였다는 걸 안다. 나는 그렇게밖에 뽀뽀를 할 줄 모르는 그가 측은하고 불쌍해 울음이라도 터질 것 같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그 우스꽝스러운 콧수염을 뜯어내고 그의 부드럽고 따뜻한 입술에 뽀뽀를 해주었다. 마침내 망설임과 부끄러움을 떨친 그의 뽀뽀는 길고 심세했다. 나는 그가 좋아서 너무 좋아서 슬펐다. 그가 사랑한다고 그랬고, 결혼하자고 그랬고 나는 좋다고 했다. 그가 죽자고 해도 좋다고 했을 것이다.
내 이야기와 철이 엄마의 계란팩은 거의 같이 끝났다. 뜨거운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낸 그녀는 흡사 표피가 뜨거운 물수건에 익어서 홀라당 벗겨진 것처럼 징그럽고 붉게 이글거렸다. 그 여자는 그 위에 냄새가 짙은 화장수를 처덕이며 부르르 몸서리를 치더니 음탕하게 웃으며 “우리 그 새낀 잔재미라곤 없다우. 그 새낀 무지막지하고 억세기가 꼭 짐승이라니까. 아이 징그러” 했다. 그러곤 다시 건강하고 흰 이를 드러내고 찍 웃었다. 웃는 입이 방금 찢어진 상처처럼 생생했다. 그 생상함과 남편을 ‘그 새끼’ 라고 하는 당돌한 호칭이 짐승 같다는 표현에 이상하리만큼 싱싱한 현실감을 주었다.
나는 어떤 예감이 강한 전류처럼 나를 꿰뚫는 것을 느끼고 깊이 전율했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쾌감이었다.
그후에도 내 생활은 여전히 끔찍하게 따분했다. 나는 내 이웃의 무수한 닮은 방들이 끔찍했고 내 쌍둥이 아들을 구별 못 하는 일이 끔찍했고 무엇보다도 한 눈을 애꾸를 만들어가지고 콩알만한 유리조각을 통해 퇴근한 남편의 얼굴을 확인하는 일이 끔찍했다. 천장에 달라붙은 이십 와트 형광등 불빛 밑에서 비인간적으로 창백하고 냉혹해 보여 자기 남편을 아파트 살인범으로 착각해야 하는 일이 끔찍했다.
내 생활에서 끔찍하지 않은 일은 철이 엄마의 그 ‘짐승 같은 새끼’ 와 간음을 하고 말 것 같은 예감뿐이었다. 나는 그 예감을 사랑했다. 그 예감이 미칠 듯이 따분한 내 생활과 마찰하면서 일으키는 섬광 같은 불꽃을 사랑했다. 그 섬광을 통해 보는 일상적인 사물의 돌변한 빛깔을 사랑했다.
뭔가 저질러야겠다는, 꼭 저지르고 말리라는 준비 태세로 온 몸이 조바심했다. 마치 오랫동안 맛대가리 없는 배합사료로 사육돼오던 들짐승이 어떤 계기로 촉발된 싱싱한 야성의 먹이에 대한 식욕으로 이빨이 견딜 수 없이 근질대듯 내 온몸이 이빨이 되어 근질근질 조바심했다.
어느 날 철이 엄마는 시골 친정에 다녀오마고 했다. 허름한 걸로 어머니 아버지 옷감이나 사다드리고 고추랑 깨랑 마늘이랑 얻어오면 그게 어디냐고 나에게 그 동안 자기 식구 식사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남편에겐 당일로 돌아오마고 했지만, 가까워도 시골이고 친정인데 하룻밤쯤 자고 오면 제까짓 게 날 내쫓을까 했다. “아무렴요, 아무렴. 자고 와요. 자고 와. 집 걱정도 밥 걱정도 나한테 맡겨요.” 나는 눈웃음을 치며 알랑을 떨었다.
모든 것이 다 잘됐다. 나는 양쪽 집을 분주하게 오락가락하며 두 남편과 네 아이를 먹이고 잠재웠다.
밤이 제대로 깊어갈 즈음, 나는 살금살금 철이네로 들어갔다. 곤히 잠든 철이 아빠를 침대 머리에 달린 촉광 낮은 푸른 베드라이트가 비추고 있었다. 그는 하필 전에 내가 철이 엄마하고 같이 나가서 산 내 남편의 것과 똑같은 파자마를 입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베드 라이트가 파래서 그런지 철이 아빤 평상시보다 창백하고 피곤해 보여 내 남편과 퍽 닮아 있었다. 나는 누구에겐지 모를 연민을 느꼈다. 베드 라이트를 끌까 하다가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아주 두꺼비집의 스위치를 내려버렸다. 칠흑의 어둠이 왔다.
나는 그의 옆에 누웠다. 그의 머리를 안았다. D포마드 냄새가 역겹다. 내 남편도 D포마드의 애용자다. 나는 참고 그의 입술을 찾는다. 매캐한 담배 냄새가 난다. 그도 내 남편도 골초다. 그가 조금씩 잠이 깨면서 귀찮다는 듯이 나를 뿌리친다. 나는 더욱 그에게 나를 밀착시킨다. 마침내 “언제 왔어” 잠꼬대처럼 웅얼대고 마지못해 나를 안는다.
그의 섹스는 신경질적이고 허약한 주제에 가학적이다. 당하는 쪽의 기분을 공중변소처럼 타락시킨다. 그의 속살은 쇠붙이에서 풍기는 것 같은, 사람을 밀어내는 기분 나쁜 냄새를 지니고 있다. 그런 모든 것이 내 남편과 너무도 닮아 있다. 나는 내가 간음하고 있다는 느낌조차 가질 수 없다. 나는 내 남편에 안겨 있는 동안에도 간음하고 있는 것으로 공상을 하는 못된 버릇이 있었는데 정작 간음을 하면서도 그것조차 안 된다. 죄의식도 쾌감도 없다.
일을 끝낸 그는 더 깊이 잠들고 나는 여기가 정말 철이넨가 그것조차 믿어지지 않아 아이들이 자고 있는 이층 침대로 가서 자는 애들을 더듬어본다. 난이의 머리꼬랑이가 만져진다. 아들과 딸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우리는 아들만 있는데 그것도 쌍둥이로.
우리 집 이층 침대에도 아이들이 깊이 잠들어 있다. 나는 걷어찬 이불을 덮어주고 고른 숨소리를 듣는다. 나의 어머니가 우리들을 기를 땐 우리를 잠재우고 고른 숨소리를 지키며 우리가 자라서 어느 만큼 훌륭하게 될까, 어떤 효도를 할까, 그런 공상을 할 때가 제일 흐뭇하고 행복했다고 한다. 나도 그래보려고 한다. 그러나 그게 되지를 않는다. 나는 내 애들이 자라 무엇이 될지도 나와 어떤 모자관계를 이룰지도 짐작할 수도 없다. 춥고 막막하다.
나는 욕실에 들어가 불을 켠다. 눈이 부시게 환하다. 간음한 여자를 똑똑히 보고 싶다. 거울 앞에 선다. 거울 속에 내가 있다. 생전 아무하고도 얘기해본 적도 관계를 맺어본 적도 없는 것같이 절망적인 무구(無垢)를 풍기는 여자가 거기 있다.
나는 이상하리만큼 해맑고 절망적인 기분으로 나를 처녀처럼 느낀다. 십 년 가까운 남의 아내 노릇에 두 아이까지 있고 방금 간음까지 저지른 주제에 나는 나를 처녀처럼 느낀다. 그런 처녀는 끔찍하지만 그렇게 느낀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