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으로 향하는 아침. 우리는 새벽이라고 생각하고 길을 나섰지만, 6시는 분명 새벽은 아니었다. 동이 터온 뒤였고, 비가 한차례 뿌렸다가 개인 아침이었다. 선명한 무지개가 그림처럼 떠 있었다.
"무지개 좀 봐!"
남편이 운전하는 차 옆좌석에서 휴대폰에 코를 처박고 글쓰기에 열중한 내게 남편이 말한다.
"밖은 안 보고, 그 조그만걸 차만 타면 들여다보고 그래."
"내가 얼마나 시간이 없으면 그러겠어요..."
볼멘소리를 내지르고 하늘을 본다. 정말 무지개가 보였다. 여름이면 양쪽 길가에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와 초록으로 한껏 싱그러운 메타세쿼이어를 배경 삼아 뭉게구름 사이로 걸린 무지개다.
이일 저일 어지러이 널려 있는 내 삶 속에도 무지개처럼 환하고 예쁜 것 하나쯤 건질 수 있을까? 늘상 바쁘고 정신없는데, 나 이렇게 쉼 없이 살아도 될까? 답답했던 마음에 힘을 내라고 누군가 보내 준 응원가 같았다. 무지개는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보면 제격이겠다. 오늘은 조금 더 행복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콩밭]
드디어 콩을 심고 쳐 두었던 망을 걷었다. 결국, 기세등등한 풀들에게 항복하고 제초제를 뿌렸던 풀들은 노랗게 변하고 있고, 콩만 살아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새들이 새순을 쪼아 먹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신 최 회장님의 말씀을 듣고 덮었던 포장 덕분이다. 두 장의 잎이 나올 때까지 5~7일 후에 걷어 줘야 한다는 말씀도 잘 지켰다. 콩과 함께 심었던 들깨 모종도 힘을 탔다.
콩밭 옆, 비닐하우스 두둑을 무성히 덮었던 풀을 예초기로 베어 놓아 바짝 짧아졌다. 남편이 출근한 틈에 우렁각시가 되어 오래전부터 처리하고 싶었던 작업을 했다. 풀뿌리를 최대한 뽑아내고 돌들을 줍고 땅을 평편하게 만들었다. 폭 60cm 제초매트로 아스팔트처럼 깔끔하게 덮었다. 비닐하우스 뒤쪽까지 ㄱ자 모양을 포장하는데 꼬박 다섯 시간이 걸렸다.
얼굴이 벌게지고 땀이 줄줄이었지만, 대공사를 마친 내 마음은 개선장군이 부럽지 않았다. 해마다 두둑의 풀 때문에 힘들었다. 비닐하우스 속으로 풀씨가 날아와 블루베리 화분에 풀을 퍼트리기 때문에 주변을 깨끗하게 관리해야 한다. 주변이 온통 풀들이지만, 지척이라도 정리해 줘서 안심이 되었다.
[복숭아밭 가는 길]
여름은 진정 풀과의 전쟁이다. 복숭아 밭으로 가는 길목에 풀들을 승용예초기로 베어 놓았다. 복숭아를 수확한 바구니를 싣고 운반차가 오고 있다. 승용예초기도 운반차도 트럭까지도 오가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저 무거운 바구니들을 리어카로 옮겨야 된다고 생각하면 넓게 만들어서 운반차가 드나들 수 있는 통로가 고마울 따름이다.
포클레인으로 통로와 배수로를 만들고 맞는 첫여름이다. 봄부터 조금씩 올라오던 풀들이 통로를 점령했다. 손으로는 감당할 시간이 없어서 예초기를 임대했다. 며칠 후면 다시 올라오는 풀들이지만, 베어 놓은 당일에는 참 깔끔하다.
[복숭아 밭]
복숭아나무 그늘이 만들어지고 있다. 예초기로 고랑을 깨끗하게 베어 주었는데, 두둑은 손예초기로 잘라 줘야 한다. 낮의 기온이 너무 높아서 풀베기 작업이 곤란하다.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이 어중간할 때가 많다. 며칠 전에는 현명하지 못한 탓에 한낮의 작업으로 더위를 심하게 먹었다. 며칠 무기력하고 머리가 아파 급기야 병원을 다녀오기도 했다.
우리는 흙속에 뿌리내리기 너무 어려운데, 풀들은 타고난 천재적 재능으로 쉽게 해내는 것 같다. 처서가 지나면 더위도 한 풀 꺾이고, 풀의 기세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해도 한 달 정도는 더 풀과의 싸움이 계속될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상관할 바 아니라는 듯 하늘은 딴청을 부리며 쾌청하다. 이 여름을 무사히 잘 넘겨야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