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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과 21세기』
제1장 고조선의 간단한 개요(3)
3. 고조선사의 기준, 윤내현의 고조선 연구
여기에서 나는 아무런 전제 없이 윤내현의 이론을 제시하겠다. 고조선에 관해 현재까지 가장 완벽하고 진실에 가까운 이론은 윤내현의 이론이라는 말이다. 왜그런가는 잠시 뒤에 설명하겠다. 우선 그 전제하에 고조선의 개요를 요약하기로 하자. 고조선에 관한 윤내현의 주저(主著)는 『고조선 연구』이다. 일지사에서 출판된 초판은 장장 900여 쪽의 대작으로 영원히 남을 불후의 명저이다. 아래 요약은 이 책에 따른 것이다.
▲ 윤내현 교수의 『고조선 연구』. 900여 쪽의 대작으로 영원히 남을 불후의 명저이다.
윤내현에 의하면 고조선은 기원전 2400년 전후 한반도의 평양 부근에서 건국되었다. 그가 제시한 첨단의 인류학적 고고학적 성과에 따르면 이 시기 만주와 한반도는 이미 부족 사회와 추장 사회를 넘어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문명 단계에 이르렀다. 이후 고조선은 긴 시간 동안 한반도와 만주 전체로 영토와 지배권을 넓혔고 기원전 1500년경에는 만주와 한반도 전체에 걸쳐 동일한 형태의 비파형 동검 문화를 이룩했다. 이 동검 문화는 현 만리장성 이남의 중국의 동검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며, 만주 북서쪽 초원의 북방형 동검과도 명확한 차이를 보인다. 이 방대한 국가 고조선은 그러나 중국의 한나라나 로마제국 같은 형태의 국가는 아니었다. 여러 읍과 나라들의 중층적 지역적 연합으로 이루어진 읍제국가라는 것으로, 유사한 나라로는 같은 시기에 존재했던 중국의 은(殷)나라가 있다. 한편 기원전 12세기경 은나라가 멸망한 후 은나라의 충신 기자가 난을 피해 연나라와 고조선의 접경 지역, 곧 지금의 산해관 근처로 이동하여 거주하였는데 여러 사정들이 경과하면서 그 후손은 나중에 고조선으로 넘어가 고조선의 제후 중 하나가 된다. 이것이 기자조선이다. 특별히 기억해야 할 것은 이 기자의 내막을 연구한 윤내현의 논문이다. 「기자신고」라는 논문인데 이 논문은 윤내현의 모든 연구 중에서도 으뜸에 속하는 논문 중 하나이다. 그 내용도 어마어마하거니와 한국 학계의 고조선 연구와 학계 자체에 남긴 의미는 그 이상으로 놀라운 논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논하겠다.
이러한 고조선은 기원전 4세기 전후 중국이 전국(戰國) 시대로 접어들면서 중대한 변화를 맞이한다. 전대미문의 격렬한 중국 내부의 영토 겸병전쟁이 평화롭던 중국 동북방의 고조선에까지 파급된 것이다. 가장 가까이 접하고 있던 전국 시대 중국 연(燕)나라와 교류 및 충돌이 늘어나는 한편 중국으로부터 난민 유입도 많아졌다. 위만조선은 이 난민 중의 한세력이 고조선에 정착하고 복속했다가 나중에 제후국의 제후가 된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존의 기자조선의 백성이 되었다가 반란을 일으켜 기자조선을 빼앗고 위만조선이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전국 시대에 신하가 왕위를 강탈하고 그 제후국 나라를 빼앗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런 사건들을 지나며 중국 열국과의 갈등은 점차 확장되었고, 기원전 2세기 말, 고조선 서남단의 제후국인 위만조선은 전국 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의 진(秦)나라를 이어받아 팽창일로에 있던 한(漢)나라 무제(武帝)와 대규모 전쟁에 돌입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고조선의 일부였던 위만조선이 멸망한다. 한나라는 그 일부의 고조선 영토에 낙랑군(樂浪郡)을 포함한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했으며 그 영역은 현재 산해관에서 요동반도 이서(以西: 그 서쪽)에 이르는 것으로 한반도 내부에는 존재한 적이 없다.
그러나 고조선은 이 무렵부터 쇠퇴했고 대신 고조선 내부의 여러세력과 제후집단이 독립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부여, 고구려, 동예, 옥저, 진국, 삼한과 같은 나라들이다. 그러나 그 후에도 고조선 왕가라 할 수 있는 중심 국가는 오래 지속되었다. 이는 중국의 주(周)나라와 비슷한 경우이다. 주나라는 춘추(春秋) 시대에 실권을 잃었음에도 주나라 종주국으로서 작은 영토를 지키며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했다. 그처럼 고조선 본가도 서기 후까지 오래 지속되었으며 삼국사기 등의 사료해석에 따르면 그 위치는 지금의 평양 부근이었다.
이후 고조선은 점점 쇠퇴하여 사라지고 한반도와 만주는 부여, 고구려 등 위에서 열거한 국가들이 병존 각축하는 시대로 접어든다. 윤내현은 이를 열국(列國) 시대라 부른다. 이 시기는 차후 신라로 통일될 때까지 이어지는데 이 때문에 윤내현은 한국사에서 삼국시대라는 시대 구분을 옳지 않다고 비판한다. 한반도와 만주에 걸친 한민족의 역사는 한반도 남부의 가야까지 포함하며 3국만 각축했던 시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검토한 연구가 윤내현의 『고조선 연구』에 이어진『한국 열국사 연구』이다. 이 역시 700여 쪽의 대작으로 길이 남을 명작이다. 이상이 윤내현의 이론에 따른 고조선의 개요이다.
이 개요는 어디에 도움이 되는가, 이 개요는 왜 중요한가. 만일 이 개요를 머릿속에 담고 있다면 다른 모든 고조선 이론, 수백 수천가지에 이른다는, 강단사학계와 재야사학계, 인터넷 논객 모두를 아우르는 온갖 이론들을 효과적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이 개요의 가장 중요한 효용이다. 다시 말해 위의 개요와 비교하면 그 밖의 이론들이 어디가 같고 다른지를 선명하게 구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윤내현의 개요가 존재하는 한 모든 이론은 이 개요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순서 지을 수 있다. 한마디로 윤내현의 개요는 모든 고조선 이론의 유일한 원점 좌표이다. 그럼 왜 윤내현의 이론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가. 간단하다. 윤내현만이 고조선에 관한 전 기간, 전 방향에 걸쳐 총체적이고 일관된 과학적 이론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 외 다른 어떤 이론도 이와 같은 총체성과 일관성과 과학성을 갖지 못한다. 아예 비교의 여지조차 없다. 그러니 맞고 틀리고는 둘째 치고 비교의 기준이라는 역할만은 오로지 윤내현만의 몫이다. 또그렇게 함으로써만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온갖 이론들을 제대로 분류할 수 있다. 이것이 이 개요의 첫 번째 의미이다.
그렇다면 윤내현의 이론이 옳다는건, 최소한 현재까지는 가장 진실에 가까운 이론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건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바로 이 질문이 문제다. 윤내현의 이론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그의 명저 『고조선 연구』,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그 전 준비 작업으로서 논문집 『한국 고대사 신론』으로 인해 그 자체로 이미 증명되어 있다. 윤내현의 가장 명백한 증명은 바로 그의 저서인 셈이며 이로써 나는 아무 증명도 없이 완전한 증명을 했노라고 감히 말하는 것이다.
▲ 윤내현 교수의 『한국 고대사 신론』. 윤내현만이 고조선에 관한 전 기간, 전 방향에 걸쳐 총체적이고 일관된 과학적 이론을 제시했다.
여기에 덧붙여 말해둘 것이 하나 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논문이나 사람들 사이에서 윤내현이 정식으로 비판받는 걸 본 적이 없다. 강단사학계의 논문들이 윤내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비판이 아니다. 뒤에서 질리도록 확인하겠지만 그건 비판이 아니라 단순한 욕설이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학문적으로 제대로, 최소한 진지하게라도 윤내현을 비판하는 걸 본 적이 없으며 이는 윤내현 자신이 땅이 꺼지도록 개탄했던 사안이기도 하다.
내가 윤내현의 저서를 읽게 된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학문은 오로지 학문적으로만 증명되어야 하므로 나의 사적인 사연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평범한 독자들을 위해서는 약간의 의미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역사는 취미라고 했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10년도 훨씬 전에 고교 시절 이후 돌아보지 않았던 한국통사와 고조선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 나는 초, 중, 고등학교에서 배운 그대로 확고한 소고조선론자였고 강단사학계의 주류인 소고조선론 학자들을 알지도 못한 채 철석같이 믿고 있었으며 기타 고조선에 대해 어떤 견해도 없던 무지렁이였다. 그런 내가 이런저런 책을 살펴보는 도중에 송호정이 쓴 『단군, 만들어진 신화』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표지에 적힌 저자 소개를 봤더니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했으며 「고조선 국가형성 과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라고 쓰여 있었다. 또 맨 앞 서문 중에는 '일반인들의 혼란된 이해를 바로잡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라는 문장이 들어 있었다. 뒤에 말하겠지만 나는 이 책의 제목과 '일반인의 혼돈을 바로잡는다'는 말이 뭘 의미하는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중에야 그 의미를 깨닫고 공포에 가까운 전율을 느꼈지만 이는 뒤에 말하기로 하고 어쨌든 당시 나처럼 평범한 일반인으로서는 아주 반가운 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냉큼 집어 들고 읽었다. 우선 여기서 독자들이 꼭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송호정은 대한민국에서 고조선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첫 번째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는 이 책을 비롯한 다른 곳에서도 송호정 자신이 반복해 말하는 것으로 말하자면 이 사람 이전에 대한민국에서 고조선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뜻이다.
▲ 교원대 교수 송호정의 『단군, 만들어진 신화』. 송호정은 대표적인 매국식민사학자다. 송호정은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인간이다.
그럼 이 책을 읽은 나의 소감은 어떤 것이었을까. 한마디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일반인의 혼돈을 바로잡는다 했는데 바로잡기는커녕 혼돈이 더 커졌다. 게다가 짜증이 날 만큼 재미가 없었다. 나는 스스로 물었다. 왜 그럴까. 내가 너무 몰라서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나는 나름대로 독서가 취미인데 이렇게 애매하고 난잡한 느낌을 준다는 말인가? 그래서 나는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더 찾아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 바로 윤내현의 『고조선 연구』와 『한국 고대사 신론』이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먼저 읽은 책은 『한국고대사 신론』이었을 것이다. 나는 즉시 충격에 휩싸였다. 이어서 그때부터 두 권의 책을 수학 공부하듯 샅샅이 읽었다. 나는 무엇에 그리 충격을 받았을까.
첫째, 윤내현은 철저하고 완전한 학술 논문을, 성실하기만 하면 나 같은 일반 대중도 분명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했다. 둘째, 그 학술적 내용이 논거와 논리 전개에 있어서 너무도 완벽했다. 셋째, 문체에서 드러나는 그의 품격이 한없이 온건하고 은은했으며 그러면서도 치밀하고 집요했다.
이쯤 되면 나의 충격이 이해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 충격 이후 앞서 읽었던 송호정의 책에 대해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송호정에게 내 지성이 모욕당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윤내현이 쓴 전문적인 학술 서적을 완독한 내가 왜 일반인을 위해 썼다는 송호정의 책을 이해할 수 없단 말인가. 이후 얼마간의 시간 동안 나는 고조선의 바다를 해매 다녔는데 중대한 사실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그중 하나는 한국의 강단사학자 소고조선론자들은 대중들이 알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중들이 모르게 하기 위해서 글과 논문을 쓴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들이 왜 그래야 하는지도 알았다. 모든 부당한 권력이 그렇듯, 이들이 누리는 학계의 부당한 권력을 유지하고 이들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으로부터 자신들을 은폐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이것이 평범한 당신이 고조선을 알지 못하는 핵심적인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그들이 식민사학자라 불리는 진정한 이유이다. 소고조선론이든 대고조선론이든 이론 자체가 식민사학이라는 건 말도 안 된다. 가든 부든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에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소고조선론자든 대고조선론자든 오로지 식민사학자처럼 행동하는 자들만이 식민사학자이다. 바로 이 행동을 통해서 강단의 주류 고대사학자들은 에누리 없는 식민사학자들이다. 이 또한 뒤에서 상술할 내용들인 바, 윤내현이 옳은가라는 증명을 둘러싸고 전개한 나의 사적인 사연은 여기까지다.
출처: 『고조선과 21세기』, 김상태, 2021. 38~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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