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 직장이라는 곳에 매여 있을 때 대낮의 세상은 재미있을 것 같았다.
겨울에는 가로등이 꺼지지 않을 때 출근 하고 저녁에는 불빛이 보일 때 퇴근하여 집으로 돌
아오는 것이 매일처럼 반복되니 지겹기도 했다.
젊음이라는 어떤 특별한 생활의 기쁨을 가지지 못하고 직장에서 가정으로 왔다 같다 하다 보니
지겹기도 하여 퇴근할 때 동료와 함께 소주나 퍼마시는 것이 젊음의 발산이었다.
십년 이십년 그리고 삼십년 반복되는 일과에 모처럼 휴가 때가 되면 휴가를 어떻게 보낼 가
라는 생각에 마음은 들떴다.
휴가가면 새로운 것이 기다릴 것 같아 흥분이 되기도 했지만 막상 휴가를 밭고 떠나려면 마
당 한곳을 찾지 못하고 생각 없이 휴가가지나 버릴 때가 많았다.
그동안 찾아보지 못한 친구들이나 친척집을 찾으면 모두 바쁜 세상이라 저들이 하는 일도
바쁜데 놀아줄 사람은 없다.
간단히 배낭을 지고 인근에 있는 산으로 아내와 함께 다녀 보려 했지만 아내는 아이들의 뒷
치다꺼리에 집을 비울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혼자가 된다.
가까이 있는 계양 산에 하루에 한번 씩 올라 얼굴이 새까매지도록 다닐 때도 있었다.
혼자라는 것은 자신만의 세계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추억될만한 일도 없이 휴가는
끝나고 허전한 마음으로 직장에 복귀하면 또다시 반복되는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
젊은 날 직장 생활 이였다.
퇴직만 해봐라 혼자서라도 지구끝가지 배낭을 지고 지쳐서 쓰러질대 까지 장애물이 없는 길
을 혼자서 걸을 것이라고 몇 번이고 다짐 했다.
신문에 자주 오르내리는 묻지 마 관광도 가서 관광버스 춤도 신나게 추고 마음에 드는 아낙
도 만나 남이 하는 불륜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가 모르는 묘령의 여인과 미치도록 아름답고 황홀한 연애도 해보고 싶었다.
퇴직하고 백수가 되어 처음으로 산악회에 가입하여 관광버스에 올랐다.
술 취한 아저씨가 술잔을 앉은자리마다 권하기 시작하더니 산 입구에서 산은 오를 생각 않
고 한쪽으로 아줌마 몇 분과 자리를 깔고 앉는다.
사악대장이라는 사람이 앞서고 뒤따라가는데 나이 드신 분들이 힘들이지 않고 산을 오른다.
직장에 시달리고 운동할 시간이 없던 사람보다 오히려 더 정정하다.
산에 내려오니 술추렴을 하던 사람들이 잔디위에서 술이 취하여 춤을 추고 노래하고 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 기사가 이 박사 노래에 신을 돋우니 앉는 자리는 텅 비고 좁은 통로가
무도장이 되어 버스가 바다위로 달리는 것 같이 울렁거린다.
일어나라며 끌어내는 나이든 아줌마 성화에 소주 몇 잔 마시고 취한 김에 통로에 내려서니
힘들이지 않아도 춤이 절로 추어지는 것이 힘없는 사람에게 맞춤이다.
버스 안에서 버스와 함께 흔들었더니 서있는 것까지 힘들어 파김치 되어 집으로 돌아와 그
후로 산악회에 가지 않았다.
직장에서 공상했던 퇴직 후의 황홀한 꿈은 직장 문을 나서는 순간에 거품이었음을 퇴직하는
그 날로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는 들어있었고 나이가 들었으니 상대도 나이가 들어 있었다.
나이 들어 만나는 사람 모두가 환경이 다른 곳에서 수십 년을 지냈기에 서로의 습관과 생각
이 다르다.
나이가 들어 세미한 감정은 사라지고 두근거릴 정도의 황홀함이나 눈물이 나도록 아름다운
감동은 퇴직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산이나 공원에 가자고 모처럼 아내에게 제의 하면 뒷바라지할 아이들도 없는데 집이 편하다
며 사양한다. 나들이가 힘들다는 말이다.
옛 어른들이 애창하던 "노세 노세 젊어 노세 늙고 병들면 못 노나니" 이 노랫말이 가슴에
와 닫는다.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술도 먹고 만용도 부리면 곱게 보이지만 나이 들어 술이
취한사람을 보면 추하게 보이기 때문인지 술 취한 늙은이는 보이지 않는다.
껴안고 있는 것은 젊은이지만 늙은이들은 부부라도 쌍쌍이 앉아 있는 것이 드물다.
남자도 여자도 혼자다. 공원에도 전철 안에도 대낮의 세상은 온통 늙은이 뿐이다.
용기가 없어서인지 말을 잊어버려 선지 서로가 바라볼 뿐 말을 걸지 않는다.
늙은이들이 배낭을 지기도 하고 공원에 쪼그리고 앉아 서로를 구경만 하고 있다.
사람 사는 순서가 이런 것인데 마음은 아직도 젊은 날의 시간에 머물러있다. “노세 노세 젊
어 노세 늙고 병들면 못 노 나니” 알고 보니 지금이 젊었다는 말 같기도 하다.
용기를 내어 보고 싶지만 입이 붙어 버렸는지 떨어지지 않는다.
20061216 이승남
첫댓글 젊어선 일 때문에,모처럼의 휴가도 그렇게 가고 반복되는 일상으로 세월은 가고 늙지만 늙어서도 뾰족한 탈출구가 없는 것이 슬픈 우리네 인생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