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迷路)의 도시 당진과 장고항
김용복/ 극작가, 칼럼니스트
♯1, 미로(迷路)의 도시 당진!
네비게이션도 통하지 않는 곳 당진.
도로 안내표지판을 믿고 따라갔다간 다시 돌아나와야만 하는 곳 당진.
당진의 장고항을 찾는 관광객들은 고속도로를 벗어나면서부터 더욱 복잡한 미로(迷路) 속을 헤매야한다. 그곳이 충청남도 서해안에 자리 잡은 당진이다.
당진은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유일하게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왜목마을이 있고, 우리나라 최초의 성직자이신 김대건 신부께서 태어나신 솔뫼 성지가 있는 곳이다. 어디 그뿐이랴. 서해 대교를 비롯해, 난지섬 해수욕장이 있고, 제방을 질주할 수 있는 석문방조제와 삽교호 방조제, 대호방조제도 이곳 당진의 명소인 것이다. 또한 당진 앞바다에는 우리의 바다를 지키다 이제는 노쇠해 일반 국민들에게 관광의 자리를 마련해 주고 있는 화산함과 전주함이 머물러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 명소를 보기위해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당진 시가지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인상이 찌푸려지고 입에서는 욕설이 튀어나올 지경이다. 왜냐고 궁금할 것이다. 당진에 오는 사람들은 당진의 명소 장고항을 찾는 것이 일정에 잡혀있다. 장고항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실치가 잡히기 때문이다.
필자도 지난 3월 20일. 장고항을 찾기 위해 대전에서 출발해 당진고속도로를 벗어나 장고항으로 가는 노선으로 접어들었다. 30여분 달렸을까? 아니 이게 웬 일. 도로 끝을 막아놓고 토목공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동곡리 삼거리라 했다. 입구는 열어 놨는데 중간을 막아버린 것이다. 한참을 달리다 되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초행길이라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041-114로 당진 경찰서를 찾았다. 이 과정에서의 상황은 밝히지 않겠다. 마음이 꽤나 상해 있었기 때문이다.
20여분 기다렸을까? 경광등을 번쩍 거리며 순찰차가 달려 왔다. 한 마디 하려 했으나 하지 못하고 말았다. 아니 하지 못하도록 그들이 내 입을 막아버렸던 것이다.
“어르신 많이 불편하셨지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겸손했다. 경찰관으로서의 불친절 따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 교통 표지판이나 안내판 설치는 경찰 업무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시청 당국에 전화를 하면 휴일이기에 근무도 하지 않을 것이며 근무를 한다해도 경찰관들처럼 신속히 출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안했다. 담당업무가 아닌데도 신속히 출동한 것에 대하여 미안했고, 경찰차를 몰고 가 차량통제 안내판을 싣고 와 필자가 보는 앞에서 설치해준 것이 고마웠다.
마치 대전지방 경찰청에서 지난 2월 1일부터 실시하고 있는 '응답순찰'이라는 제도를 이곳 당진 경찰서에서는 먼저 실시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응답순찰'은 기존 경찰중심 순찰 방식에서 주민중심 순찰로의 패러다임 정착을 위해 도입한 주민 맞춤형 순찰방식 제도인 것이다.
이 두 경찰관들이 신속히 움직여 민원인의 불평을 막아주는 모습을 보며 당진 경찰의 총책을 맡고 있는 서장(署長)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책임감 강한 직원들이 있기에 그는 휴일에 편히 쉴 수 있을 것이고, 맘 놓고 관내를 살필 수 있을 것이며 당진 시민들은 불편없이 생업에 종사할 수 있을 것이다.
당진 시가지나 외곽도로가 얼마나 복잡한가? 그런데도 이렇다할 민원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이들처럼 겸손하고 신속히 처리해주는 경찰들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한참을 가다가 되돌아 왔을지언정 다시 운전대를 잡았을 때에는 언제 그랬는가 싶게 밝은 마음이었다.
-아뿔싸, 이름이나 알아올 것을.-
♯2, 태극기를 휘날리며
충남 당진시 석문면 장고항 2리 당진 수산믈 유통센터.
실치로 유명한 항구다. 필자가 찾았을 때는 철이 일러서인지 실치를 파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4월 초순이라야 제철이라 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커다란 태극기를 유리창에 붙여놓은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식당에 왠 태극기를?’
망설이지 않고 들어섰다.
태극기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의 상징, 그리고 그것을 게양하는 것은 나라사랑의 표현.
일부 정치인들 가운데는 태극기를 광화문 광장에 깔아놓고 그 위에 맨발로 밟고 올라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제를 지내는 몰상식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것도 국무총리까지 지낸 사람이.
그런데 이 집 주인은 식당 안에까지 태극기를 걸어놓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깨끗하고 커다란 태극기였다. 주인과 술 한 잔 하고 싶었다.
“웬 태극기를?” 작업하던 고무장갑을 벗어들고 자리에 앉는 주인에게 물었다.
“기본 아닙니까? 국가가 있고 내가 있는 것이지.”
“그래요? 내가 있어야 국가도 있는 게 아닙니까?”
“선생님, 인생 잘못 살고 계십니다. 정치하는 x들 국가관이 없으니 나라가 이 지경이지요.”
맞는 말이다. 내가 왜 그걸 몰라. 알면서도 너무 고마워서 한 번 확인해본 것뿐이지.
며칠 전 국회의원 입후보 개소식 한다고 초청 받아 갔는데 개소식하는 사무실에 태극기 액자가 없는 것을 보고 나랏일 하겠다는 사람이 태극기도 게시하지 않고 어떻게 나랏일을 한다고 하느냐고 호통을 친 나였는데.
미로를 헤매며 상했던 마음이 이곳에 와서도 다시 한 번 밝아졌다.
'그럼 그렇지. 이런 분들이 있기에 우리나라가 이만큼이라도 버티고 있는 것이지.'
국민 모두가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우선순위 1번일 때 정치인들이 아무리 썩어빠지고, 관료들이 먹을 것을 찾기 위해 몸에 빨대를 지니고 다닌다 해도 무엇이 두렵겠는가?
아니, 북한의 철부지 김정은이 핵무기로 위협한다 해도 두려울 게 없는 것이다.
이에서 더 바랄 게 있다면 당진 시정을 맡고 있는 목민관께서 개발을 핑계 삼아 도로 표지판을 방치해두지 말고 있어야 할 곳에 있도록 하고, 안내해야 할 곳엔 이정표를 바로 세워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편리하도록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던 길 되돌아가는 관광객들의 심정이 어떨까 생각해보는 것도 목민관의 몫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장고항 개발위원회에서는 여러 차례나 이정표 설치를 건의 했다 하지 않는가?
자, 어서 자리를 박차고 나와 당진의 구석구석 이곳저곳을 살피라. 그래야 당진 시민은 물론 이곳을 찾는 모두가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