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초침이 째깍째깍 대면서 한가한 백수의 일과를 흔들고 있다.
멀뚱거리며 할일 잃은 두 눈동자는 구르다가 힘을 잃고 멀거니 빛마저 걸러서 들어오는 커튼의 구멍 난 틈새를 턱걸이 하듯 매달려 있었다.
하품하기도 무안한 일 없는 시간이 이리도 진력(盡力)나게 밀려 있을까?
침대 위에서 뒹굴고 또 뒹굴어 보아도 허리만 따끔거릴 뿐이다.
하릴없는 삶.
구차한 시간들.
어디에 마음을 옮겨보아도 따분한 삶임에는 재론(再論)의 여지가 없다.
겨우내 비집고 기어 다니던 개미들도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집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거라고는 내 숨결에 밀려난 콧바람으로 허둥대는 먼지들뿐이다.
또 있다면 방금 작업을 끝내서 듣고 있는 가요 한 자락에 꿈쩍대는 내 심장박동소리 랄까?
창문 열면 삶의 소리 진동을 하건만 이미 문을 꽁꽁 닫아 건지 오래이다.
중학교 운동장이 바로 코앞에 보이는 우리 집은 창밖에 내 비쳐지는 모양을 고심해야 한다.
바깥 자연 색 쳐다보기를 즐기는 나는 집안에 커튼을 거의 내 걸지 않는 편이다.
안방에 굳이 한지로 된 커튼을 달아 둔 것은 조심성 없던 내 습관 때문이었다.
샤워를 시원하게 하고 열린 창으로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내 밀고 캄캄한 하늘의 별을 세던 내가 느낌이 이상하여서 고개를 떨어뜨렸는데 반대편 건물에서 한 눈길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내가 알몸으로 그 밤풍경을 즐기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었다.
밖이 캄캄했으니 방안이라도 그랬다면 어찌 민망한 일을 겪었겠는가?
환하게 방안을 밝혀 놓고 몸을 내어 놓았으니 늘 변변찮은 내가 한심스러울 따름이다.
하긴, 나를 쳐다보았다 하더라도 무에 그리 대수이겠는가?
흔하디흔한 사십대 아줌마의 평범한 몸이었으니.
놀라운 것은 내가 남편에게 쑥스럽게 고백을 하였어도 그는 무덤덤했다는 것이다.
낮 시간에는 반대편의 학교교실에서 호기심에 가득 찬 학생들이 쳐다보고 있기에 속옷 바람으로 거실 베란다를 넘나들지 않으려고 의식적인 노력을 하는 편이다.
화분으로 창이 거의 가리도록 배열을 해 두었으나 이파리가 다 떨어진 화초들은 아직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
화분 덕분일까?
며칠 전부터 집안에 하루살이가 한두 마리 날아다니며 또 다른 삶을 지향하고 있다.
내가 별 수 없이 팽개쳐버린 공간의 무의미를 하루살이들은 그 작은 몸으로 발악하듯 날고 있는 것이다.
‘부지런한 녀석.’
나는 좀 전부터 내 주위를 오락가락하는 하루살이를 쳐다보면서 실소(失笑)하고 있었다.
이제는 짜임새 있게 째깍대는 시계소리는 저 만큼 흘려버리고 하루살이의 동작을 살피느라 내 눈이 바빠지고 있다.
녀석은 색 바랜 그림액자 위에도 머물다가 성모님상 주위도 어정거리다가 유리병에 담겨진 스킨 줄기에도 앉아보고 있었다.
소리가 나는 것도 아니고 큰 덩지도 아니고 그저 한 먼지 조각에 불과한 녀석의 몸은 가벼워서 인지 너무도 잘 나풀거린다.
퀴즈 프로의 문제에 등장하는 눈을 끝까지 따라 붙여야 얻을 수 있는 답처럼 오래도록 녀석의 몸을 잃어버릴까봐 내 눈이 따르고 있었다.
안방을 한참이나 배회하던 녀석이 방문턱을 넘고 있었다.
방문에서 녀석이 보이지 않음으로 녀석에게서 마저 자유롭고 싶었으나 도대체 궁금해지기 시작이다.
‘어디를 날고 있을까?’
생각이 여기에 머무니 나도 따라서 방을 나서는 수밖에.
작은 흔들림을 찾아내기에는 그리 쉽지 않았다.
한참 거실 공간을 뒤지던 나는 고개가 뻐근함을 느꼈다.
카펫 위에 누워서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약간의 흔들림이 보인다면 반드시 그 녀석일 터인데...’
나는 주어진 시간으로 내 삶을 조각해야 한다는 평범한 사실도 잊은 채 한 마리 하루살이를 찾느라고 허둥대고 있었다.
‘찾았다!’
들리지 않는 탄성으로 기쁨을 얻고 녀석을 찾은 순간 마음이 쩡 해지고 있었다.
녀석은 책장위에 가지런히 놓여진 사진틀 사이를 한가하게 날고 있었는데 녀석 너머에 샐쭉한 표정의 시아버지가 내 눈에 들어온 까닭이다.
숱한 할일들 다 팽개치고 멀거니 나를 잃어가는 한심한 모습을 질책이라도 하는 듯 아버지의 표정이 내 이성을 향하여 삿대질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음속에 괴로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인들 왜 할일을 모르겠는가?
오래 걷다 지치면 걷던 걸음 숨기고 은둔(隱遁)되었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삶의 뜰 안에서 잠시 멈추어 섬도 지혜가 아닐까?
내 변명을 짜깁기하면서도 그리 마음이 시원해지지 않는다.
세상일을 마음에서 다 떨쳐버리니 우선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떨칠 수 있을까?
내가 숨쉬기를 멈추지 않는 한 업보(業報)처럼 내 삶에 따라다닐 일들.
사진 속의 말 잃은 아버지는 나를 슬퍼하고
되 볼 수 없는 아버지를 쳐다보는 내 눈가엔 설움이 차곡차곡 매달리고 있었다.
마음에 자극을 받았으나 금방 할일들이 손에 붙여지지가 않았다.
‘마음이 늙었음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음은 일에 대한 열정을 잃었음이다.
내 마음을 그리도 달뜨게 하였던 모든 일상들이 이제는 먼 하늘을 쳐다보듯 허허롭다.
먹는 것도 그렇고 내가 애지중지하던 모든 것들이 다 내게 무의미하게 와 닿는다.
“당신, 우울증이라도 앓고 있는 거냐?”
남편은 밤 내내 나를 다독이고 있었다.
봄마다 진저리나도록 나를 괴롭히는 봄 병에 깊이 빠져든 탓일까?
집안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하루살이가 거실 문 앞에서 맴돌고 있었다.
‘흠, 너조차 갇혀 있으니 답답한 모양이군.’
나는 베란다로 나가는 문을 열어 주었다.
녀석은 여전히 나풀거리며 화초들 사이로 기웃거리고 있었다.
과일 실은 차가 멈추어 서서 과일종류를 늘어뜨리며 사가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내가 내 안에서 시간을 멈춘다고 내 삶 전체의 시간이 정체(停滯)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저변(底邊)에서 일구어낸 아집(我執) 같은 생각일 뿐.
다시금 하루살이를 쳐다보았다.
사는 시간이 짧으니 그 체험이 얼마나 중요할까?
알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들, 갖고 싶은 것들...
그 많은 것을 해 내기에는 너무도 짧게 녀석은 머물다가 가는 것이다.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반사된 생각이 나를 흔들기 시작했다.
‘너도 깨어나야 할 것인즉...’
쌓였던 울분처럼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합창소리에 번쩍 정신이 든 나는 청소기부터 쥐었다.
안팎 청소부터 한 후에 외출을 할 것이다.
후훗, 어저께 나다녀 보았더니 이곳은 아직 봄 망울이 안 보이더이다...제가 눈을 감았던 겐지..요즘 김동리님의 단편집 읽고 있습니다. 한가한 일상을 한 번 그리려던 제 욕심이 빗어낸 글이지요.....해넘이님, 이비사랑님 햇살 맑은 날 입니다! 포근한 하루 되소서.............^^*
첫댓글 쯔쯧 매화, 복숭아.살구 배꽃들이...팝콘처럼 꽃망울 툭툭 터뜨리는 이 봄날에... 큰애기 젖몽울도 몽실몽실 저절로 옷고름 풀리는 이 봄날에..쯪즈....
조금만 기다리시면 개나리와 진달래들이 머리채를 풀어헤치며 님의 품으로 달려들 겁니다. 그때 좋은 곳으로 여행이라도 다녀오시며 더한 자아를 확인하시고 재충전하시길...근데 왜 여자들이 봄을 타는 걸까요? (아리송~ 전 가을 타거든요..용문산 은행잎..크..)
후훗, 어저께 나다녀 보았더니 이곳은 아직 봄 망울이 안 보이더이다...제가 눈을 감았던 겐지..요즘 김동리님의 단편집 읽고 있습니다. 한가한 일상을 한 번 그리려던 제 욕심이 빗어낸 글이지요.....해넘이님, 이비사랑님 햇살 맑은 날 입니다! 포근한 하루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