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실로 중용을 지켜라 (따뜻한 편지 2363)
중국 고대 성군이라 불리는 요임금과 순임금이 다스리던 '요순시대'는 태평성세의 대명사로 불립니다. 사람들은 생활이 풍요롭고 여유로워서 '격양가'를 부르던 세상이었습니다.
요임금과 순임금에 대해서 '논어'의 마지막 장에 이렇게 나옵니다.
바로 '윤집기중(允執其中)'이란 말입니다. 요임금이 순임금한테 왕위를 물려주면서 남긴 말로 '하늘의 뜻이 그대에게 있으니 공평한 원칙인 중도를 굳게 지켜라!'는 의미입니다.
'윤집기중'이라는 단어는 원래 공자가 정리한 중국 최초의 역사서 '상서'(尙書)에 나옵니다. 인심(人心)은 유위(惟危)하고 도심(道心)은 유미(惟微)하니 유정유일(惟精惟一)하고 윤집궐중(允執厥中)하리라.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변덕이 심하고 대단히 위험한 데 비해 도심은 아주 미미하고 성취가 어려우니 오로지 마음을 정성스럽고 한결같이 하여 진실로 중용의 도를 붙잡으라는
공자의 당부입니다.
이 철학은 요임금과 순임금은 물론 주공과 공자에 이르기까지 유가의 최고 성현들이 하나같이 강조한 것으로 늘 가슴에 새겨 잊지 말아야 할 덕목임을 가르칩니다.
중국의 고대 철학자 주희의 말에 따르면 '중'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모자람이 없는 것이며 '용'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입니다. 즉, 중용이란 언젠가 지도자가 되면, 어느 날 무슨 일이 있을 때 필요한 덕목이 아닙니다. 내가 있는 현재의 자리에서 가장 적절한 것을 찾으려 노력하는 삶의 태도이자 덕목입니다.
# 오늘의 명언
한 사람에게서 모든 덕을 구하지 말라.
– 공자 –
* 동아일보|오피니언 시한부와 타자화[삶의 재발견/김범석]
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입력 2022-12-30 03:00업데이트
“저는 이제 시한부가 된 건가요?” 암환자분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시한부(時限附). 사전적 의미로는 ‘일정한 시간의 한계를 둠’이라는 뜻이다. 나는 시한부라는 말을 무척 싫어한다. 시한부라는 단어에는 이상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시한부라는 단어는 건강인과 비건강인 사이에 보이지 않는 38선을 그어버리고 이 두 세계를 완전히 갈라놓는다. 이 38선이 단절과 타자화(othering)의 기준선이 된다. 우리는 타자화를 통해 내가 동일시하고 공감하는 ‘건강한 우리’와 내가 멀리하고 싶은 ‘건강치 못한 남’을 구분하고 남을 38선 울타리 바깥으로 밀어낸다. 시한부가 그어놓은 38선은 너와 나를 단절시킨다. 너는 그렇게 나의 타자가 된다.
타자화를 통해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분법을 낳고 ‘그들’에게 사회적 낙인을 찍는다. 아픈 사람들은 바람직하지 않은 타자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사회적으로 허용 가능한 낙인을 찍어도 된다는 착각을 갖게 된다. 사회적 낙인은 아픈 사람들을 건강한 사람들로부터 더욱 분리하고 이는 다시 고정관념과 편견을 낳는다.
타자화는 질병의 개인화, 즉 ‘네가 잘못해서 병에 걸렸다’로 이어진다. 질병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면, 사실 주변 사람들이 무척 편하다. 네가 네 몸 관리 잘 못해서 병에 걸렸으니, 아픈 것은 ‘너’ 때문이 된다. 나와는 무관한 너의 병이 되어 버린다. 주변 사람들 입장에서는 건강한 몸이라는 우월한 입지를 갖게 되며, 이런저런 방법을 지시하며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관과 치료 방식을 강요하게 된다. 건강한 나는 건강하지 못한 너에게 참견할 권리가 있다고 믿게 된다.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 된다. 타자화는 아픈 사람을 차별하는 근거가 되며, 또한 타자화는 쉽게 혐오로 이어진다.
저 사람은 아픈 사람, 말기암 환자, 불쌍한 사람, 곧 죽을 사람, 시한부 인생. 반면 나는 건강한 사람, 괜찮은 사람, 시한부 아닌 사람. 이런 이분법적 인식은 나는 ‘그들이 되지 말아야지’라는 강력한 인식을 준다. 하지만 평균수명만큼 살 때 3분의 1의 확률로 암에 걸리는 세상에서 나 역시 언젠가는 그들처럼 암환자가 될 확률은 지극히 높다. 내가 어쩌다가 암환자가 되는 순간, 내가 타자화하고 낙인찍었던 그들이 되는 순간에는 나의 절망감이 더 커진다. “제가 이제 시한부가 된 건가요?” 이런 질문이 절로 나온다. 내가 나와는 별개의 존재라고 생각했던 38선 너머의 그들이 되었다니….
사실 우리 모두는 태어난 순간부터 시한부 인생이다. 너도 시한부 나도 시한부. 세상에 시한부 아닌 사람은 없다. 그저 자신은 시한부가 아니라고 착각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저는 이제 시한부가 된 건가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저도 시한부예요”라고 대답하곤 한다. 그렇지 아니한가.
*05.10 생활성서 소금항아리 2023
요한복음 15장 1-8절
바다식목일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실이 손에서 빠져나가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송지현 작가의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이라는 소설의 한 구절을 나누고싶습니다. "이모는 내게 코바늘을 쥐어주더니, 사슬뜨기를 알려주었다. 이게제일 기초라고, 내 키만큼 떠보라고 했는데 쉽지가 않았다. 아무리 꽉 쥐어도실은 손에서 자꾸 빠져나갔고, 바늘은 힘을 주어 흔들어 빼도 요지부동이었다.나는 실과 바늘을 내려놓고 평상에 누웠다. 이모가 수세미를 뜨며 말했다.'힘을 빼!' '아무리 빼도 안돼.' '니가 힘을 빼야 실도 힘을 빼지.' '그게 내 맘대로안된다니까.' '실이 니 손에서 빠져나가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쥐어. 그럼 실에자연스레 공간이 생겨나. 그 사이로 바늘을 통과시키면 돼. 꼭 쥐면 오히려 놓치는 거야. 대충 해." 뜨개질은 해보지 않았지만, 힘을 빼는 일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습니다. 무서워하거나 긴장을 하면,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허둥거리게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러지 말고 편하게 당신 안에 머무르라고 말씀하시네요. 나무에서 돋아난 가지처럼, 바람 따라 흔들리는 가지처럼 유연하게 마음의 힘을 뺄 수 있다면 예수님 안에 머무를 수 있지 않을까요?혹시 걱정과 근심으로 잔뜩 긴장한 분이 있다면, 실이 손에서 빠져나가도괜찮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주님 안에 머무르시길 빕니다.
내 마음에 잔뜩 힘이 들어가게 하는 두려움의 근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