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떨어져 10년 넘게 동포단체 활동 전념
[인터뷰] 재한조선족연합회 '정신적 기둥' 진복자 총무

지난 11월 19일 부산 민주공원에서 열린 부산국제심포지움에 참가한 유봉순(57) 회장과 진복자(73) 총무가 모처럼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안경을 쓴 이가 진복자 총무이다.
서울 홍제동에 둥지를 튼지 7년이 되어가는 재한조선족연합회(회장 유봉순)는 여러 시련을 이겨내며 견지해 왔다. 이 단체의 태동은 1995년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약재를 팔던 노점상인 유봉순씨와 약을 사러 온 진복자씨의 만남이 인연이 되었다. 2000년 2월 이 두 사람은 조선족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면서 유봉순씨는 회장으로 진복자씨는 총무 직함을 갖고 현재까지 함께 한 길을 걸어오고 있다.
진복자 총무는 중국국적자로 현재 73세, 1989년 12월 한국에 들어와 현재까지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조선족연합회 살림을 10년 넘게 챙기고 있다.
“작년과 다르게 올해는 독감도 잘 걸리고 몸이 쉬이 아파 온다. 할 일은 많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같다”면서 진복자 총무는 걱정한다. 그의 걱정은 집안 일이 아니라 늘 조선족연합회 일이었다. 이런 진 총무의 헌신적인 열정을 보면 탄복을 안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진복자 총무는 1940년 중국 흑룡강성 해림에서 출생하여 길림성 연길로 이주하여 소학교때부터 고등학교때까지 한족학교를 다녔다. 중국식 교육을 받은 것이다. 남편은 1982년도 교통사고로 3급장애인 판정을 받은 상태이고, 아들 2명이 있다. 큰 아들은 현재 41세, 둘째 아들은 34세로 상해에 거주하고 있다. 가족하고는 15년 넘게 전화통화로 안부를 묻는 것이 전부이다.
진복자씨가 일찍이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 것은 남편이 불구자로 아무 일도 못하는 상태에서 두 아이를 둔 어머니로서 가족을 일으켜 세우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1992년 한중 수교 되기 3년전 진 총무는 홍콩을 경유해 한국에 왔다. 친척초청으로 들어온 것이다. 당시 한약재를 잔뜩 들고와 약장사로 한국생활을 시작했다. 한중수교후 중국진출을 희망하는 3, 40대 한국인 직장인을 대상으로 중국어 개인교수로 활동을 했다. 한족학교를 나오고 한국말까지 잘하였던 것이 한국생활을 디디는데 큰 도움이 된 것이다.
당시 중국어 교재도 쓰지 않고 진 총무가 스스로 만든 교재로 중국말과 발음, 글을 가르쳐주고 1시간당 2만원 정도씩 받았다고 하니 수입이 괜찮은 편이었다.
진 총무는 식당일도 하고 러시아를 왕래하는 보따리 무역상인들과 연계해 물건을 넘겨받아 파는 일도 했다. 95년도에 만난 유봉순 회장과 마음이 맞아 함께 일을 하면서, 두 사람은 한국에 와서 차별대우받는 중국동포들의 신세를 한탄하며 이런 현실을 바꾸어보고자 같은 꿈을 꾸고 한 배를 타게 되었다.
“조선족이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주고 싶었어요. 중국으로 돌아가기전에 한국사회에 보여주고 가겠다.”
어릴적에 의사가 되는 꿈을 가졌던 진복자 총무. 50대 중반 평범한 아줌마가 된 시점에 한국에 온 그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조선족이 왜 한국에 와서 멸시를 받아야 되나? 우리가 도와 달라고 손만 벌리니까 그런 것 아닌가. 아직도 그런 사람들 많은 것같아요, 왜 우리는 스스로 못합니까. 능력이 그것밖에 안되어서요,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조선족이 한국에 와서 미국이나 일본 동포들과 차별을 받지 않으려면 우리 힘으로 당당함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이 일을 하기 위해 만든 단체가 조선족연합회이고, 연합회는 2005년 홍제동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당시 진복자 총무는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다. 2006년 자진출국하면 합법적인 체류가 가능해져 중국으로 출국했다. 이때 15년만에 진 총무는 남편과 아이를 만났지만 서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진복자 총무가 출국하고 없는 1년 동안 조선족연합회는 존폐를 놓고 고민이 많았다고 유봉순 회장은 말한다. 그래도 끝까지 견지해 나가야 한다는 진 총무의 의견에 임원진들이 다시 흩어진 힘을 모았다. 진 총무는 연합회 활동을 하면서 “동포정책이 많이 좋아져 깨진 가정이 다시 회복하고 가족들이 모일 수 있도록 하는데 기여한 것이 가장 큰 보람인 것같다”고 말한다. [인터뷰=김용필 편집국장]
■ 재한조선족연합회 유봉순 회장이 바라보는 진복자 총무는?
“머리가 있으면 꼬리가 있어야 한다”
정신적 기둥이자 어머니와 같은 분
과연 유봉순 회장은 진복자 총무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이도 나보다 훨씬 우인데 아이디어도 많고 추진력도 대단한 분”이라고 유 회장은 말한다. 그러면서 “머리가 있으면 꼬리가 있어야 한다” 는 진 총무가 평소 잘 하는 말을 인용한다. 이 말은 한번 시작한 일은 끝을 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사실 나는 왜 그런 일을 하나 반대를 많이 했어요. 그런 일 하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데… ” 하지만 “진 총무님은 한다고 하면 꼭 하고마는 고집스런 성격 때문에 연합회가 쉼터니 신용호조부니 다양한 일을 펼쳐왔다”면서 “막상 일을 해놓고 보니 반응도 좋고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며 진 총무를 추켜세웠다.
“2001년도인가요 진 총무님의 남편이 심장마비로 큰 수술을 받아야 되는데 중국 집에 갈 생각도 안하고 수술비도 많이 들어갔는데, 진 총무님은 연합회 일만 하는 거예요. 그때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보인 적도 있었죠”
진 총무는 2000년부터 단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연합회 일을 해왔다. 회원들은 진 총무를 “어머니처럼 생각한다”며 “진 총무님은 연합회의 정신적 기둥이자 어머니이다”라고 유 회장은 말한다.
@동포세계 제8호(2011.11.25일 발행 통번258호) 2011.12.1 인터넷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