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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3월 15일 토요일
[(자) 사순 제1주간 토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모세는 백성에게, 주 하느님의 규정과 법규들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실천하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하늘의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라.>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26,16-19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6 “오늘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 규정과 법규들을 실천하라고
너희에게 명령하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것들을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
17 주님을 두고 오늘 너희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곧 주님께서 너희의 하느님이 되시고,
너희는 그분의 길을 따라 걸으며,
그분의 규정과 계명과 법규들을 지키고,
그분의 말씀을 듣겠다는 것이다.
18 그리고 주님께서는 오늘 너희를 두고 이렇게 선언하셨다.
곧 주님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분 소유의 백성이 되고 그분의 모든 계명을 지키며,
19 그분께서는 너희를 당신께서 만드신 모든 민족들 위에 높이 세우시어,
너희가 찬양과 명성과 영화를 받게 하시고,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분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하늘의 너희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43-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전하신 율법 해석의 핵심은 바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레위 19,17)라는 율법의 말씀을 넘어,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완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동안 용서할 수 없었던 원수들을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원수를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시선을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을 향하여 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노력해야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지 막막하게만 느껴진다면, 자신을 괴롭혔던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때 ‘잠심’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잠심이란 화의 감정을 알되, 그 감정이 나에게 영향을 주지 않게 객관화하여 내면의 감정 문제를 제대로 보고 정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훈련으로 우리는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으며, 그 안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잠심을 훈련하며 기도 안에서 저를 힘들게 하였던 사람을 바라보았고, 그 사람이 쏟아 내었던 말들이 지난날과는 다르게 들렸던 체험이 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이 저에게 쏟아 내었던 폭력적인 말들이 사실은 그 사람이 무서워서 어찌할 바를 몰라서 질렀던 비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원망과 미움이 연민으로 바뀌는 체험이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으로 저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한창현 모세 신부)
가짜 사랑에서 진짜 사랑, 작은 사랑에서 큰 사랑으로 넘어갑시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유다인들의 생활 준거는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그저 법대로입니다. 특히 동태복수법이 강조됩니다. 누군가가 내게 잘못해서 내게 피해를 끼쳤다면 더 이상도 더 이하도 아니고 꼭 그만큼을 요구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실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혈육들, 가족, 친척, 친구들, 다시 말해서 이웃들은 당연히 사랑을 실천하고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그러나 원수들, 이방인들, 큰 피해와 상처를 준 사람들, 우호적이지 않은 다른 민족들은 늘 경계의 대상입니다. 그들은 사랑의 실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사마리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 안 그래도 노는 물이 다른 종족, 더럽혀진 사람들로 여겼는데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자 제자들도 즉시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스승님 저들을 그냥 둬서 되겠습니까?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저들을 불살라버릴까요?”
제자들은 아직도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는 전통적인 가르침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사랑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구약시대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가족이나 동족들에게는 뜨거운 사랑을 베풀지만 나를 냉대하고 피가 다른 이민족들은 사람 취급도 안했습니다. 그저 그들은 물리치고 이겨내야 할 대상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도래로 인해 이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래 인간이 지니고 있었던 사랑의 개념을 더 크게 확장시킵니다. 나를 사랑하는 이웃들에게만 한정시켰던 사랑의 실천을 나와 무관한 사람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넘어 나를 박해하고 나를 위협하는 원수들에게까지 확장시킵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내 사랑이 이만하면 충분하겠지, 생각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사랑이 보다 큰 사랑, 보다 이타적인 사랑, 보다 신적인 사랑으로 넓혀나갈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주님 정신, 주님 마음이 우리 영혼 안에 깃들게 될 때, 그분의 정신과 마음이 우리 안에서 자라게 될때, 우리는 인간 현실의 옹색함에서 벗어나 광활한 지평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 특유의 비루함에서 위대함으로 건너갈 수 있을 것입니다. 가짜 사랑에서 진짜 사랑, 작은 사랑에서 큰 사랑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원수 사랑이라는 불가능한 일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원숭이, 바나나, 판다 곰’을 보여 주면서 서로 관련이 있는 것을 짝지어 보라고 할 때, 동양인과 서양인의 판단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동양인 대부분은 ‘원숭이와 바나나’를 묶어서 생각한다고 합니다. 원숭이가 바나나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양인은 관계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서양인은 ‘원숭이와 판다 곰’을 묶어서 생각한다고 합니다. 원숭이와 판다 곰은 같은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양인은 종류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저도 원숭이와 바나나를 묶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원숭이가 바나나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동양인과 서양인은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양인과 서양인은 각기 다른 문화와 역사를 만들어왔습니다. 동양인은 순환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계절이 가고 오듯이, 윤회와 업보를 생각하며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서양인은 직선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최후의 심판을 생각하며 깨어 있으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빵’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곁을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나를 떠나겠느냐?” 그러자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이는 꼴찌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가 더 쉽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 중에는 ‘예포자’ 들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을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는 신앙인들을 보았습니다. 저는 아름다운 신앙을 보여주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 여름날, 성당 창문을 닫고, 하수구의 오물을 걷어내고,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고 가시는 분을 보았습니다.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명절이 되면 어르신들에게 떡을 나누어주시는 분도 보았습니다. 본당 신부가 피정을 가면 매일 성당에 나오셔서 마당을 치우고, 수녀님을 도와주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화가 치밀어 싸움에 이르려는 순간에 본당 신부의 말을 생각하며 용서했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교회가 아름다운 것은 성직자, 수도자들이 있어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교회가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마음을 삶으로 드러내는 신앙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사랑은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이고, 우리가 살기 위한 길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 규정과 법규들을 실천하라고 너희에게 명령하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것들을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님의 규정과 법규를 지키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야 할 길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살면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든 민족 위에 높이 세우시고, 찬양과 명성과 영화를 받게 하신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신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거룩한 백성’이 가야 할 길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 박해하는 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신앙인이 가야 할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온전한 길을 걷는 이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 행복하여라, 그분의 법을 따르는 이들,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찾는 이들!”
<그리 가는 사랑>
상지종 베르니르도 신부님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 5,44)
하고프니
하는 사랑에서
하고프지 않아도
하는 사랑으로
할 수 있으니
하는 사랑에서
할 수 없어도
하는 사랑으로
할 만큼
하는 사랑에서
할 만큼 너머
하는 사랑으로
사랑받으러
하는 사랑에서
사랑하러
하는 사랑으로
그러므로
하는 사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사랑으로
오늘의 성인
성 클레멘스 마리아 호프바우어(Clement Mary Hofbauer)
신분 : 신부, 선교사
활동연도 : 1751-1820년
같은이름 : 글레멘스, 끌레멘스, 클레멘쓰, 클레멘트
체코 동부 모라비아(Moravia)의 타스비츠(Taswitz)에서 1751년 12월 26일 태어난 성 클레멘스 마리아 호프바우어(Clemens Maria Hofbauer)의 본명은 얀 드보락(Jahn Dvorak)인데 독일 이름인 호프바우어로 개명하였다. 그는 푸주한인 부모의 아홉째 아들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빵 굽는 기술을 배웠다. 비록 어려운 생활을 하였으나 그는 항상 은수자가 되려는 꿈을 갖고 있었다. 얼마 동안은 로마(Roma)와 빈(Wien) 사이를 오가는 방랑생활을 하다가 오스트리아의 브루크(Bruck) 근교 프레몽트레 수도원에서 빵 굽는 일을 하다가 마침내 은수자가 되었다.
그러나 신성 로마제국의 요제프 2세(Joseph II) 황제가 은수소들을 폐쇄하였을 때, 그는 빈으로 돌아와서 다시 빵 굽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가 친구인 베드로 쿤즈만(Petrus Kunzmann)과 함께 이탈리아 티볼리(Tivoli)의 주교 키아라몬티(Chiaramonti, 후일의 교황 비오 7세)의 승낙을 받고 재차 은수자가 되었다. 그는 그 후 빈과 로마 대학교에서 공부하였고, 구속주회에 입회하여 1785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파견되었으나, 황제가 많은 수도회를 축출하였기 때문에 구속주회 수도원 건립이 불가능하게 되어 돌아오는 길에 옛 친구인 쿤즈만을 만나 평수사로 입회시켰다. 그 후 교황대사의 요청에 따라 그들은 폴란드의 바르샤바(Warszawa)로 갔으며, 그곳에서 20여 년 간 선교활동을 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성 클레멘스 마리아 호프바우어는 늘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일했으며, 고아원과 학교를 세웠고 독일과 스위스로 선교사들을 파견하였다. 나폴레옹이 수도회를 탄압할 때 그와 그의 동료 구속주회 회원들은 체포되어 투옥되었다가 각자 본국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그는 끝내 빈에 정착하기로 결정하고 그곳의 이탈리아 구역에서 일하였으며, 우르술라회의 지도신부로도 활약하면서부터 그의 설교와 성덕 그리고 지혜와 고해신부로서의 이해심 등이 그에게 높은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빈에 가톨릭 대학을 설립하였고, 독일 지역의 수도생활 재건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성 클레멘스 마리아 호프바우어는 요셉주의자들의 그릇된 사상과 대치하여 힘찬 싸움을 하였다. 그는 1820년 3월 15일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1888년 1월 29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09년 5월 20일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1914년 빈의 사도이자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성 라이문도 (Raymund)
신분 : 수도원장
활동지역 : 피테로(Fitero)
활동연도 : +1163년
같은이름 : 라이문두스 레이먼드
에스파냐 북동부 아라곤(Aragon)에서 태어난 성 라이문두스(Raymundus, 또는 라이문도)는 타라조나(Tarazona) 주교좌성당의 참사회원으로 활동하다가 프랑스로 가서 시토회에 입회하였다.
그 후 그는 에스파냐로 파견되어 나바르(Navarre)에 피테로 수도원을 설립하고 원장의 소임을 수행하였다.
당시 그곳은 그리스도교를 믿는 에스파냐와 무어인들간의 전투의 최전방이었다.
1157년 말과 1158년 초 사이에 칼라트라바(Calatrava)의 전초기지인 톨레도(Toledo)에 대한 무어인들의 대규모 공격이 있을 때 그 도시의 군인이 절대 부족하여 왕과 온 도시가 위급한 상황에 빠졌다.
이때 성 라이문두는 카스티야(Castilla)의 왕 산초(Sancho)를 설득하여 도시를 수호할 군대를 만들었다.
그는 톨레도의 대주교의 도움으로 사람들을 모아 대규모의 군대를 조직하여 무어인들에게 맞섰다.
결국 무어인들의 공격은 실패로 끝났다.
그 후 그는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의 규칙을 따르는 칼라트라바의 기사회를 조직하였다.
위대한 기사와 수도자로서 존경과 사랑을 받던 그에 대한 공경은 1719년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s XI)에 의해 승인되었다.
성녀 마트로나 (Matrona)
신분 : 하녀 순교자
활동지역 : 테살로니카(Thessalonica)
활동연도 : +350년경
같은이름 : 마뜨로나
성녀 마트로나는 테살로니카의 어느 유대인 여주인을 모신 하녀였는데, 자신은 그리스도를 몰래 섬기는 그리스도인 이었으므로 매일같이 비밀리에 열리는 기도 모임에 참석하다가 그녀의 여주인에게 그리스도인임이 발각되었다.
성녀 마트로나는 여주인으로부터 모진 매를 맞아 죽었다.
이때 그녀는 용감하게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자신의 순결한 영혼을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성녀 루도비카 드 마리약(Louise de Marillac)
활동년도 : 1591-1660년
신분 : 과부, 설립자
지역
같은 이름 : 루도비까, 루이즈, 루이자, 마리악
1591년 8월 프랑스의 뮤(Meux)에서 태어난 성녀 루도비카(Ludovica)는 아기 때에 어머니를 잃었으나 수녀들의 도움으로 훌륭한 교육을 받고 성장하였다. 이윽고 그녀는 안토니우스 레 그라(Antonius Le Gras) 백작과 결혼하여 12년 동안 행복한 생활을 한 후 남편과 사별하고 말았다. 한동안 실의에 빠져있던 그녀에게 뜻하지 않게도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1월 24일)로부터 영적지도를 받는 계기가 생기면서부터 일대 전환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녀는 잘 알고 있던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Vincentius a Paulus, 9월 27일)를 찾았다. 그 당시에 성인은 ‘애덕회’를 조직하여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있었다. 빈첸시오 성인은 성녀 루도비카의 소망을 받아들여 ‘애덕의 수녀회’를 설립하여 초대원장으로 루도비카를 임명하였다. 이 수녀회가 오늘날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라고 불리는 수녀회이다. 그때부터 그들의 수도원은 병원이요 성당은 교구의 모든 성당이며 봉쇄 구역은 길거리가 되었다. 회칙 초안도 그녀가 작성하였다. 그녀의 명석한 두뇌와 관대한 사랑은 이 수녀회의 급속한 성장을 예고하고 있었다.
1660년 3월 15일 성녀 루도비카가 파리에서 임종할 때 프랑스 내에는 이미 40개의 수도원이 있었고, 병자와 가난한 이를 돕는 구호소는 수없이 많았다. 그녀는 이런 말을 남겼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봉사하라.…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을 부끄럽게 하지 말 것이다. 그대가 섬기는 이는 곧 그리스도이시니…” 그녀는 1920년 5월 9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시복되었고, 1934년 3월 11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리고 1960년 교황 요한 23세(Joannes XXIII)에 의해 사회복지사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성 론지노 (Longinus)
신분 : 군인 순교자
활동연도 : +1세기경
같은이름 : 론지누스, 론기노, 론기누스
전설에 의하면 성 론지누스(또는 론지노)는 빌라도의 지시를 받고 주님의 십자가 곁에 서 있다가 창으로 옆구리를 찌른 백부장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과 함께 지진과 그 밖의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이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하며 몹시 두려워했다는 바로 그 백부장이라 한다.
그 후 그가 병들어 누웠을 때, 창에 묻은 주님의 피를 자기 눈에 갖다 대자마자 병이 나았음을 보고 군인 생활을 포기한 뒤 사도들의 제자가 되었다.
그 후 그는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카이사레아(Caesarea)에서 수도생활을 하면서 지내다가 박해를 맞았다.
집정관은 그의 이를 뽑고 혀를 잘랐으나, 그의 설교를 중단시킬 수는 없었다고 한다.
그는 도끼를 들고 이방인들의 신상을 때려 부수면서 “이게 무슨 신들이람!” 하고 외쳤다.
그러자 집정관은 즉석에서 참수하도록 명하였다.
그의 유해는 만투아(Mantua)에 보존되어 있고 성인으로서 공경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