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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역대급의 태풍 힌남노가 온다는 전날이라 비가 조금씩 내린다.
하천길도 어느덧 막바지 무렵이라 추위가 오기전 1만km 끝내야 하기에 어디든 가야만 거리가 줄어들 것 같아
지도를 보며 어디로 갈거나 어디로 갈거나 옹알이 해본다
낙남정맥에 붙은 어지간한 하천은 모두 끝냈지만 다시 한번 더 살펴보니 하천이 아닌 강으로 표기된 조만강이란 강이
김해시 주촌면 덕암리에 하나 있다
얼씨구나!~ 그렇다면 ... 동대구역으로 가서 무궁화 타고 밀양시 삼랑진역에 내려 다시 택시로 낙남정맥 쇠금산 가지전에
영락 공원묘지에 내린다
비는 조금씩 내리지만 오늘 걷지 않으면 훗날에 뛰어야 하기에 지난날 걸었던 정맥길을 다시 오르려니 만감이 교차한다.
이 길을 다시 한번 더 걸을 수 있을까? 지난해 장마철에 백두를 하면서 장거리 초석을 깔아 두었지만 회사일도 있고 하니
일단은 올해 늦가을날까지 지켜보고 9정맥을 9구간으로 덤벼들어야 할 것 같다.
영락공원에 내려 천천히 걸음하며 본 내려가야 할 김해시 금관대로의 아파트와 그 옆으로 조만강 풍경 멀리 낙동강 넘어 백양산인듯 뿌옇게 보인다.
큰 오르막 없이 도착한 낙남정맥 쇠금산
조만강 발원지는 이곳 쇠금산과 황새봉 동쪽봉에서 발원하는게 서로 비슷하니 어느게 더 길고 짧고 생각해 보지 않고
쇠금산에서 시작하여 서낙동강으로 걸음한다
지나간 경로와 하천 156번째 누적거리 9,576km
쇠금산 암골 계곡으로 스며드니
뭔 거미줄이 이렇게 많은지 잡풀은 웃자라 서있고
빼곡한 밀림을 뚫기도 힘들지만
무엇보다 우측으로 공원묘지가 있어 음침한 기분을 떨칠 수 없다
첫 물을 찾았으나 갈수기에는 물이 나오지 않을 것 같고
그래도 맛은 봐야지!라며 허리 굽혀 입부터 들이밀어 한 모금 마시니 흙냄새가 올라온다.
축축한 계곡길 거미줄!~ 거미줄!~ 비 오는 날 거미줄은 더더욱 끈적인다.
물이 흘러가고
음침한 계곡길에 잡목이 얼마나 많이 쓰러져 있는지
이리저리 돌아가고 허리 굽혀 인사하기 바쁘다.
공원 묘지쪽에서 흘러온 물은 그나마 수량이 좀 있어 보이는데
워낙 묘지가 많아 시체 썩은 물이 아닌지 모르겠다
시작은 늘 맑게 흐르지만 결국 3km 정도는 흘러가야 얼마나 깨끗하게 흐를지 알 수 있을 것 같고
작은 실폭포 같은 것도 있고
가야 할 곳
지나온 곳
이런 곳에서 사람이라도 만난다면 둘 다 놀라서 자빠질 것 같다
그리고 소복 입은 여인네가 앞에 나타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것 같지 않은 분위기
커다란 바위 양옆으로 물이 흐르는데
물 맛은 별로
초가을날의 계곡길 얼굴에 거미줄이 많이 달라붙어있어 잠시 씻고 다시 걸음마한다.
계곡 우측에는 오래전에 농사를 짓던 묵은 텃밭이 나오는데 지금은 잡목으로 많이 우거져 농사고 뭐고 안될 듯하고
드디어 사람사는 구역 안으로 들어온 것일까? 내려가면서 텃밭으로 오고가던 묵은 길을 찾아본다.
우와!~~~ 어떻게 뚫고 지나가라고 이러나
이리 밟고 저리 밟고...
잡풀과 칡덩굴을 뚫고 지나오니...
발아래 뭐가 있는지 잊어버리고 지나온 구간
가슴까지 오는 칡덩굴을 헤엄치듯 지나와서
지나온 곳
아주 잡는구만
하천으로는 잡풀이 무성하여 논둑으로 지나는데 비 오는날 작은 개구리들이 논 둑에 앉아 있다가
논으로 뛰어드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너나 나나 비 오는날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는 모습이 같아 보인다.
우측 높은곳은 쇠금산
이런~ 하산을 하니 비가 그치는군
잠시 앉아서 물에 젖은 옷부터 갈아입고
온통 공장 지대인데 물이 어떨지
아직은 깨끗해 보인다.
황새봉 동쪽봉에서 흘러온 물이 쇠금산에서 흘러온 물과 만나는곳
하천은 풀밭이고
주위로는 온통 공장 지대인데
물이 공장 지대를 벗어날때까지 깨끗하게 잘 버터줄까?
"오늘 고생 좀 하겠다"며 웃고 있는 목장승
곧 겨울이 올 텐데 "발가벗은 너도 고생 좀 해봐라"며 지난다
조만강(潮萬江)
강 이름 하나 부여받았으니 이 또한 복(福)이며 행복이요!
수 많은 공장을 지나고 도심을 지나도 본래의 깨끗함만 유지한다면 지극히 정상적이겠지만
수채나 시궁창 같은 물이 될까 염려도 되는 서낙동강의 지류인 조만강
페트병을 제사용 하여 만든 화병
물 위에는 수련은 아닌 듯한데
뭐지?
보라색 꽃이 물 위에 많이 피었다
공장지대를 내려온 물이 지금은 거의 3 급수 정도로 변해있다.
낙동강은 대구에서 부산으로 내려갈수록 5급에서 6급 정도 된다는데
이곳의 조만강은 단독으로 서낙동강을 지키는데 하류로 갈수록 물은 영 아니다.
내려가야 할 곳으로
좌, 우측으로 논공단지 조성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복잡하기만 하고
김해시 주촌면 천곡리 천곡교에서 김해시 서김해 ic옆을 지나
서김해 일반 산업단지 조성하는 곳 옆을 지난다.
작은 개천을 정비하는데 포클레인으로 수중 식물을 퍼내면서 그 속에 터잡고 살던 미꾸라지와 장어란 녀석과 말조개, 우렁이가
날벼락을 맞은듯 기어 나와 있어 모두 물속으로 던져 넣어주며 "행여나 제비가 박씨 물고 오듯 우리집에 지렁이 같은건
안 줘도되니 그냥 이곳에서 잘살아"라 한 마디씩 해준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곳 인근 칠봉산에 조상님을 기리는 재실인 칠산재가 있어 그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하천길에서 정천교에서 김해시 명법동 마을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아
김해평야 가운데 칠봉산 중턱에 자리하는 김해 배씨 (金海 裵氏) 시조이신 고려 때 병부상서 겸 도원수 지내신 분성군 배원룡의 묘이시다
두번째 찾는 곳인데... 가지고 간 맥주 한잔 따라 드리며 후손이 왔음을 알리며 큰 절로 인사드린다.
배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성씨로 신라, 고려, 조선 세 왕조를 세운 개국공신으로 한국의 성씨 중 유일하게 세 왕조의 틀을 세운
귀하고 귀한 성씨이며,신라 제3대 왕인 유리왕( 9년 서기 32년)에 직접 하사받은 성으로 알려져 있다.
조상님 산소에 들러 큰절로 인사드리고
산해강천(山海江川) 한국의 어지간한 곳은 거의 다 걸었으니
곱던 얼굴에 주름도 생기고 햇살에 그을려 얼굴 까맣게 타서도... 그래도 후회는 없다.
묘비에는 고려병부상서겸도원수분성군배공지묘라고 쓰여있다.
"高麗兵部尙書兼都元帥盆城君裴公之墓"
참고로 배씨는 신라 천년의 터전을 이룩한 초대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한 한지부(漢祗部,경주 백율사 부근)사람인 지타공(祗沱公)을 시조로 하며
왕건을 도운 고려의 개국공신 배현경을 중시조로 하며,조선 건국의 원훈이신 배극렴이 계신다
배현경의 현손(손자의 손자)인 배사혁에게 네 아들이 있었는데
각 아들에 따라 분성(盆城,김해 배원룡 위의 산소).성산(星山,성주) 달성(達城,대구),흥해(䕟海)로 분관이 되었다.
저는 분성(盆城)배씨 26대손입니다.
분성(盆城)은 조선 영조때 만들어진 산경표의 낙남정맥 끝자락이 분산성(盆山城)이죠 그곳에서 유래하며
한때는 가락국이었으나 532년 신라에 합병되어 금관군이 되었다가 경덕왕때 김해소경으로 개칭되면서 처음으로 김해라는
명칭이 나타났었다
수령은 오래되지 않은 소나무가 자라고
조상님 갑니다.
묘소에서 본 내려가야 할 김해평야
우리나라 10대 평야 중 한 곳이며, 한때는 벼농사를 했지만 지금은 보시는 것과 같이 비닐하우스 농사인 꽃, 참외 토마토 농사를
주로 짓는다고 한다.
재실 칠산재 강당과 조상님을 모신 영모사(永慕祠) 사당
사당 안에는 분성배씨 시조(始祖) 중시조(中始祖),수관조(受貫祖) 세분을 봉향하고 있다
그 외 읽어 보시고
칠산재
100년은 족히 넘었을 팽나무가 지키는 외삼문(外三門)인 광정문(光正門)이 있으나 굳게 닫혀있어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해
담장 너머로 구경하고, 하천길에 조상님을 모신 칠산재를 둘러보고 나오니 배씨(裵氏)라면 한번쯤 꼭 찾아야 할 곳이라 여겨진다.
태풍의 영향인가 이제 빗님은 서서히 내리기 시작했으며 가지고 간 작은 우산을 펼쳐 든다.
김해시 이동 마을을 지나 마찰교를 지나며
물은 많이 혼탁해져 흐르는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흐려진다.
장유대사의 누리길이 이어지고
굴암산 북쪽에서 흘러온 율하천이 조만강에 흘러드는 곳
조만강과 율하천이 만나는 곳
이제 물은 거의 4급 이상의 물로 떨어져 흐르는데 이런 물로 농사를 지으면 과연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든다.
김해평야 넘어 높은 곳은 신어산이고 그 앞은 낙동정맥 끝인 분산
분산과 신어산 방향
산정에서 계곡을 지나 아래로 흘러왔던 맑은 물은 어느새 구정물이 되어 많이 지친듯 정지해 있다.
잡풀 사이로 몇몇 낚시꾼들이 앉아있다가 간 흔적도 보이지만 어디에도 낚시꾼들은 보이지 않고
역대급의 태풍이 올라온다고 하지만 이곳은 영향을 받지않는 듯 고요하기만 하다.
강폭이 많이 넓어져 있고 뿌연 조망 사이로 백양산과 구덕산이 보인다.
푸르른 갈대는 무성하고 멀리서 보면 참 평화롭고 맑은 하천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더럽기 그지없다.
하찬 제방위 웅덩이에도 빗물이 고여있는데
조만강 물이 깨끗할까 웅덩이의 흙탕물이 더 깨끗할까.
갈증으로 꼭 마셔야 한다면 웅덩이의 물을 마실 것 같다
조만강 하구의 물은 수영하면 곧바로 피부과에 가야 하고 행여나 한 모금이라도 마시는 날에는...
지나온 하천길에
한주는 맑은 하천 또 한주는 더러운 하천
비는 더 많이 내리는데 작은 돌을 밟고 걸으면 가끔 돌 밟는 소리인 잘그락 잘그락 소리가 정겹게 느껴진다.
강한 바람이 불면 흔들릴지언정 꺾이지는 않을 것 같은 부추대가 꼿꼿하게 서있는데
이렇게 비가 오는날은 이녀석들 베어다가 부추전 굽고 막걸리한잔 하면 딱 좋겠다는
남해고속도로 조만강교
서낙동강 인근이라...물은 이제 4급-5급 이하 정도의 색깔로 변해있다
낙동강 하구둑이 없다면 이곳은 기수역(민물과 바닷물이 서로 만나는 곳)일 것 같은데
바닷물은 들어오지 못하고 민물또한 마음대로 바다로 나가지 못해 늘 정체되어 있는 곳
멀리서 보는 겉모습은 맑게 보일지 몰라도 이런 하천에 무슨 물고기가 살까
토종 어류는 거의 멸종되어 있을 것 같고 오염에 강한 블루길이나 베스 정도만 살 것 같다
조만강이 흘러와 서낙동강에 합류하는 지점
비는 더 많이 내리고 서낙동강에서 마무리한다.
집에 가자 지베가자
봉화산 방향
물속 풍경은 그야말로 한치도 안 보이는 죽은 물이다
물 한말에 된장, 간장 각각 한말을 함께 풀어놓은 듯한 수채나 시궁창 같은 모습을 보며 훗날 다시 오면 물은 어떤 모습일까?
이보다 더나빠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며,어느 누군가 목숨을 걸고 낙동강 하구둑을 폭파시켜 물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한다면 모를까 강을 살리고 물을 맑게 한다는 취지로 만든 하구둑이 결국 이런 똥물만 가득 모아 놓았다
더러운 물 따라 내려온 길에 물의 아픔과 고통을 어떻게 알아가야 하나, 그리고 이곳에서 나는 농산물은 과연 안전할까?
안전하다면 언제까지 안전할지 미지수다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이제 부산으로 나가야 하는데 허허벌판 같은 곳에 뭘 타고 나가야 할지
69번 지방도로 조만포 삼거리에서 조만강 다리 건너 부산 강서구 봉림동 버스 승강장에 기다려 보기로 한다.
비 오는 날 무슨 차들이 그렇게 많이 오고 가는지 이중에 시내버스가 먼저 올지 지나가던 택시가 먼저 올지 뭐라도 빨리 오면
고마울 뿐이고 운(運)에 맞기고 딱 1분만 기다려 보고 콜택시를 부르기로 한다
1분 안에 버스가 올까?1분이 안되어 저어!~짜서 시내버스가 한대 달려오더니 내 앞에 끼익!~하며 미끄러지듯 선다.
다음하천은 백두대간 상주시 지기재 인근에서 시작하는 북천길로 가본다.
첫댓글 ^^ 비오는 날 또 한걸음 하시느라 욕보셨습니다.
걷는 그 길이 맑은 물과 함께라면 비가와도 즐거울텐데..
4급수의 똥물이면 한숨과 함께겠지요.
방장님이 이렇게 걸어내지 않았다면
우리나라 물은 이런 상태라는 것도 몰랐을텐데...
그냥 농산물들이며 수돗물 먹고 뭐 그런 과정들이 아무 생각 없었을텐데..
물깨끗한 곳에서 나고 자란 농산물 챙겨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부쩍 더 듭니다.
늘 좋은 걸음, 복된 걸음 되시기를 빌며...
고생하셨습니다.
모처럼 서낙동강 구경도 하고 조상님 묘소도 찾아보는 뜻깊은 나들이 였답니다.
물이 우선인지 사람이 우선인지 지금은 알 길 없으나
언젠가는 알게되겠죠
글 감사드립니다.
그리멀리 있는 강도 아니데 조만강이란 이름
처음들어보는 생소한 이름입니다
물길찾아 쇠금산에서 내려오는길도 잡풀많은
작은 정글숲이라 뚫고 내려온다고 욕봤습니다
요기 강물도 공장 건물이 많은 곳이라 예상대로
깨끗하지가 않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조만강 이름 처음 듣죠
대부분 공장 지대라 물은 3급수이하로 떨어져 낙동강으로 흐르는데 그곳에서 자라는 곡식은 얼마나 안전할지
물 좋은곳에서 나는 곡식을 찾게되는 현실이 곧 올 것 같습니다.
날이 제법 차가워졌습니다. 이번에도 수고 많으셨네요.
방장님의 본관이 김해이신 것으로 보아도
김해가 예로부터 좋은 땅이었던가 봅니다. ^^
그런데... 꼭 수치로 10,000을 채워야 만(滿)이 되는지요?
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하시다가 남겨두는 것도 하나의 아름다움일 수 있겠는데...
전통적인 우리 정서로는 千이니 萬이니 하는 건 정확한 수치를 넘어
다분히 심리적인 개념이었고,
제가 그런 눈으로 보고 있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 같습니다.
물론 걷고 싶어서 걷고 계시다면 이 말씀은 지우개로 쌰악 ~~~
제 이름 끝자가 만(萬)자라서 기본 일만(一萬)을 목표로 하고자 했답니다.
이제 거의다 끝나가니 숫자아는 별로 무관하지만 더이상 찾아볼곳도 없어 매일 지도만 쳐다 봅니다.
글 감사드립니다. 친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