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양석을 바라보고 있으면, 무엇을 말하려 애쓰는 존재라기보다 이미 많은 말을 삼킨 뒤 조용히 멈춰 선 모습이 느껴집니다. 양각의 문양에는 고개를 숙인 형상, 안쪽으로 말린 어깨, 바깥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에서만 무게를 견디는 태도 같은 게 보입니다. 기도하는 자세이기도 하고, 잘못을 떠올리며 묵상하는 사람의 옆모습 같기도 합니다. 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스스로를 변명하지 않는 대신 오래 버텨온 시간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매끈한 표면 아래에는 굴곡과 얼룩이 남아 있고, 그 흔적들이 오히려 이 돌을 가볍지 않게 만듭니다. 이 문양석을 볼 때 나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시작을 떠올리게 됩니다. 떳떳하지 않았던 출발, 그러나 끝내 외면하지 않고 안쪽에 남겨두었던 기억같은 것들 말입니다.
연말 모임이라는 건 늘 비슷합니다. 이마도 벗겨지고 말도 느려졌지만, 몇 잔이 돌고 나면 이야기는 어김없이 과거로 흘러갑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누군가 “우리 대학 때 말이야, 광주사태가 터져 휴교령이 내린 후…”라며 그해 휴강했던 교양과목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담당 교수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소설가였고, 휴교 기간 동안 시험 대신 수필 과제를 내며 “이 글로 학점을 주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친구는 글을 한 번도 제대로 써본 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며칠을 끙끙대다가 결국 서점에 들어가 수필집 한 권을 샀다고 했습니다. 여러 작가의 글을 섞어 자기식으로 짜집기해볼 요량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설마 교수님이 이 책에 실린 글까지 다 읽었겠어.’ 그렇게 마음이 기울었고, 결국 한 작가의 글을 그대로 베껴 적었다는 겁니다. 들키면 F, 아니면 A뿔. 배짱 좋게 던졌는데, 성적표를 받아보니 그 과목만 A뿔이더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젊은 날의 일화쯤으로 흘려보내며 함께 웃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 안에서 오래된 기억 하나가 불쑥 고개를 들었습니다. 나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하나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독후감이 숙제로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해 여름 나는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를 꽤 진지하게 읽었습니다. 교인도 아니었고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인간의 죄와 구원, 땅 위에서의 해방 같은 문제들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책 뒤에 실린 서평도 함께 읽었는데, 그 글은 소설을 다시 읽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내가 막연하게 느꼈던 것들이 문장으로 정리되어 있었고, ‘아, 이 책이 이런 이야기였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독후감을 쓰는 일이었습니다. 글쓰기가 막막해 나는 결국 그 서평을 옮겨 적었습니다. 문장을 조금 바꾸고, 어려운 부분은 빼고, 중간중간 내 생각을 덧붙여 윤색했습니다.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친구 일기장도 베껴 쓰는 판에 이것은 그저 ‘숙제’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지요.
그런데 얼마 뒤 담임선생님이 나를 부르셨습니다. 내 독후감이 좋아 교육청에 냈는데, 교육감상과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는 겁니다. 처음엔 그저 선생님이 우리 가정형편을 보고 장학금을 줄 명분을 만들었나 보다 라고 생각했지요. 그전 주 가정방문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일이 커졌습니다. 나는 교육청에 가서 상장을 받았고, 메달을 걸고 교육감님 옆에 서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 장면이 아직도 또렷합니다. 웃고는 있었지만 마음은 계속 쪼그라들어 있었습니다. ‘이게 아닌데, 이건 내 글이 아닌데, 잘못된 건데...’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지요.
그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담임선생님께도, 친구들에게도, 집에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때의 부끄러움은 단순한 ‘잘못을 했구나’라는 감정을 넘어섰습니다. 그것은 ‘진짜가 아닌 것’으로 인정받는 것, 그로 인해 생겨난 공간 자체에 대한 불편함이었습니다. 그 자리는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조금씩 무게를 더해 갔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그 일은 그렇게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남아 있었던 거지요.
그 이후 나는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습니다. 집에는 누나와 형이 쓰던 교과서들이 있었고, 누나가 고집해서 사두었던 세계문학전집도 있었습니다. 그 책들은 내게 다른 세상을 열어주었습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읽다 보니 '생각'이라는 게 생겼습니다. 줄거리를 따라가는 데서 그치지 않고 ‘왜’라는 질문을 붙이게 되었고, 일기를 쓰며 자연스럽게 글도 쓰게 되었습니다. 책 뒤에 실린 서평들을 보며 ‘아,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는구나’ 하고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 시절에는 국경일마다 학교에서 글짓기대회를 했습니다. 나는 어김없이 상을 받았습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적었을 뿐인데 상을 받는다는 게 신기했고, 글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조용히 계산을 했습니다.
‘이번엔 조금 덜어냈나.’
남의 글을 빌려 얻은 결과에 대한 불편함이, 나를 더 읽게 하고 더 쓰게 만들었던 셈입니다. 글쓰기는 더 이상 제출해야 할 숙제가 아니라,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확인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책 뒤에 실린 서평들은 더 이상 베껴야 할 모범답안이 아니라, ‘생각이란 어떻게 정리되는가’를 보여주는 지도가 되었구요.
그렇게 연말 모임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며, 생전 처음 밝힌 이 표절사건을 꼭지삼아 글을 쓰면 좋겠다 말했습니다. 그런데 웃는 친구들 가운데 A뿔 이야기를 했던 그 친구가 갑자기 진지해졌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쓰지마. 네 신망과 체면을 깎아먹는 일이야."
나는 그 말을 곱씹어 보았습니다. 친구가 말한 ‘신망’과 ‘체면’은 아마 흠 없는 출발, 깔끔한 이력 같은 것일 겁니다. 사람들은 결과가 단정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나는 부끄러움에서 시작해 더디게 방향을 바로잡아 온 과정이야말로 한 사람을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것같습니다. 완벽해 보이는 시작보다, 어긋났던 출발 이후의 선택들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말이지요.
나의 글쓰기는 깨끗한 백지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부끄럽게도 어둠 속에서 훔쳐온 불씨로 시작했습니다. 그 불씨는 나를 태울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 불씨를 끄지않고 그 미약한 빛으로 주변을 더듬어 살피며, 불이 꺼지지 않도록 사유의 잔가지를 하나씩 모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체면을 깎아내리는 고백이라기보다,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가장 오래된 출처에 가깝습니다. 이것이 나의 글쓰기가 시작된 자리이고, 아직도 내가 문장 앞에서 쉽게 허세를 부리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나는 여전히 조심스럽게 쓰고, 가능한 한 많이 읽으려 합니다. 그 시작이 부끄러웠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