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의 생태계 / 박용식 (2024. 12.)
“까악 깍 까악 깍~~.” 날이 어스름 밝아질 무렵, ‘정찰병’ 한두 마리의 짖어대는 울음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잠시 후 ‘까악 깍~~~ 깍’, 어디에 있다가 오는지 여기저기서 날아온 까마귀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주변의 빌딩 난간, 간판 위, 가로등 위, 백화점 건물 높은 곳에서 낙하하여 목표물 근방 도로에 사뿐히 내려앉더니 뒤뚱뒤뚱 종종걸음으로 달려들어 새까맣게 주변을 덮는다. 분명 가까운 주변에는 까마귀의 무리들이 없었는데 정찰병의 신호에 따라 순식간에 모여든 것 같다.
까마귀들은 새벽까지 영업하는 집에서 나온 족발 뼈를 뾰족하고 긴 부리로 물어뜯는다. 장사하는 사람도 발라내지 못한 살코기를 긴 부리를 이용하여 쪼아 먹는다. 대여섯 개 되는 커다란 봉지들이 한 군데에 모아져 있다. 까마귀는 음식물 쓰레기봉투 앞으로 가까이 다가서지만 선점하고 있거나 또는 서열이 있는지 쉬이 접근을 못한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가 드디어 치열한 뼈다귀 쟁탈에 나선다. 뼈를 먼저 확보한 ‘까 씨’는 달려들어 뺏으려는 무리를 피해 빌딩 난간으로 날아올라 혼자서 만찬을 즐기다가 둥글 매끈한 뼈를 놓쳐 바닥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행인이 다가오면 잠시 피하는 척할 뿐 도망가지도 않는다.
이 무리들 옆에 어슬렁거리며 족발을 한 개라도 탈취해 볼까 비둘기 2~3마리가 호시탐탐 노린다. 감히 봉지까지는 접근할 엄두를 내지도 못하고 조심조심 가까이 접근하다가 단단하고 긴 ‘까 씨’의 부리를 피해 도망치곤 한다.
이러한 잔치는 폐기물 수거차가 실어 가기 전까지 계속되는 진풍경이다. 폐기물 봉지를 실어 가고 나면 순식간에 잔치는 끝나고, 까 씨들은 떼 지어 어디론지 사라지고 만다. 어디로 가는 걸까!
어느 토요일 오후 빌딩 3층 옥상 주차장의 주차된 차들 뒤쪽에 무언가의 공격을 받았는지 제대로 걷지 못하는 비둘기가 보였다. 한쪽 발로 달아나려 하지만 여의치 않아 보였다. 다가가서 자세히 보니 날개 쪽과 상체 부분이 피투성이가 되어 날지도 못하고 한 쪽 다리는 절름거렸다. 까마귀나 고양이의 공격을 받아 다친 것 같은데 고양이가 이곳까지 올리는 없고, 설령 고양이였다 해도 이 정도로 살아서 차 뒤에 숨어있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아마도 까마귀의 공격을 받은 것 같았다.
내가 구조할 상황이 아닌 것 같아 구청 당직실로 연락하여 상황 설명을 하고 구조 요청을 했다. 한참 후에 연락이 왔는데 구조팀에서 다른 곳에 출동을 해 있어서 지금 현장으로 갈 인원이 없다고 한다. 다른 ‘동물구조대’에 알아보니 몇 년 전부터 비둘기는 해조류害鳥類로 분류되어 구조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냥 그대로 두려니 마음이 쓰였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다음 날 이른 새벽에 다시 가보니 이번에는 미동도 하지 않고 머리가 땅에 닿아 있다. 조심스럽게 수습하여 빌딩 사이 공터에 묻어주었다. 비둘기들은 건물에 사용하지 않는 큰 통풍관에 보금자리를 틀고 드나들며 알을 낳는다. 그렇게 낳은 알들은 까마귀가 침범하여 먹기도 하고 물고 가다가 떨어뜨려 깨지기도 한다. 비둘기의 수난이다.
오래 전 우리 아이들이 어릴 적에 부산 용두산 공원에 가면 손에 잡힐 듯 비둘기들이 모여들었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며 즐거워하던 모습이 담긴 사진을 가끔 보곤 했는데, 한 때 평화의 상징으로 여기고 사전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지만 지금은 천덕꾸러기로 되어버린 것 같다. 요즘도 용두산 공원의 비둘기는 ‘무해無害조류’로 관광객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을까.
지붕 없이 탁 트인 옥상 주차장에는 고추잠자리가 날아와서 물도 없이 메마른 방수 바닥에 꼬리를 치곤 한다. 어릴 적 고향 마을에 미나리꽝이 여럿 있었다. 그곳에는 말잠자리라 불렀던 제법 큰 잠자리들이 있었다. 작은 논이나 밭에는 고추잠자리들이 떼를 지어 날며 물에 가볍게 꼬리를 치고 나는 것을 보면 잠자리채를 들고 잡으러 쫓아다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도심 빌딩의 메마른 바닥 위에 날고 있는 잠자리를 보니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메인다. 어찌하다 들판이나 논밭에 있어야 할 잠자리들이 도심 속 빌딩까지 날아와 방황하고 있는지, 옥상 바닥에 물이라도 부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길고양이들은 도심의 이곳저곳을 누비며 살아가고 있다. 빌딩 사이사이로 다니며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주변에도 두터운 종이상자로 집을 만들고 매일 접시에 먹이를 담아주며 이들의 생존을 돕고 있는 사람이 있다. 어디선가 새끼를 낳아 데리고 돌아다니면 새끼들이 그리 귀여울 수가 없다. 그렇게 개체수가 늘어나다 보니 마침내 먹이를 못 주게 하고 그릇을 다 치워버리곤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설상가상으로 굶주리기 시작한 고양이들이 냄새가 나는 곳이면 달려들어 족발 뼈, 종량제 봉투, 음식 냄새나는 비닐류에까지 닥치는 대로 물어뜯는다. 당연히 사람들의 시선이 곱질 못하다.
주변의 가로수에서 건물 안 주차장으로 날아 들어와 울고 있는 매미는 그래도 사람 눈에 띄면 잡아서 나무가 있는 곳으로 날려 보내주는 혜택을 받기도 한다. 통로로 잘못 찾아 들어온 매미와 귀뚜라미가 있는 때면 낮에는 그런대로 여름이 무르익어 가는 운치가 있지만, 저녁이면 소음이 되어 불편하기만 하다. 매미는 저녁이 되면 그래도 좀 조용하지만, 귀뚜라미는 밤새도록 노래를 부르니 이 또한 견디기 쉬운 것은 아니다. 사람의 손에 잡히면 가로수 나뭇잎 속으로 날려 보내주곤 하지만 매번 그러지도 못하다.
지금도 들판으로 나가면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위에 날고 있는 잠자리 떼, 산을 오르다 보면 나무숲사이로 보이는 산비둘기, 관광지에는 즐거움을 주는 비둘기들이 있다. 그런데 자식이 부모를 돌본다는 ‘반포지효反哺之孝’의 새라하여 효도하는 새로 인정되었던 까마귀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지금은 도심의 빌딩 숲 사이를 다니며 인간이 내어놓은 족발 뼈를 훔치고 있는지 격세지감이다.
최근엔 만년설이 녹고 빙하가 녹아 흘러내려 바닷물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잠자리가 날고 메뚜기가 뛰어 다니던 정경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초가집이 사라진 자리에는 콘크리트 건물이 우뚝 서고 아파트가 자리를 잡으며, 초가집 처마 밑에 자리 잡고 살던 제비와 참새들은 빌딩 숲에서 날아다닌다. 유명산 높은 봉우리에는 케이블카가 설치되고 호텔을 짓고 생태공원(습지)은 다져서 파크골프장을 만들고 있다. 산야에 있는 동물과 새들이 터전을 잃고 도심으로 피난을 올 것 같아 이제 도심 속에 생태공원을 조성해야 할 것 같음에 안타까운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내 고향에도 미나리꽝은 온데간데없고 동산(당산)나무 옆까지 아파트가 바짝 다가서 있다. 내 고향의 상징이자 어린 시절의 만남의 장소였던 동산과 고목古木이 사라져 간다. 모두 사라지기 전에 나무를 오르내리며 놀던 추억을 불러내어 아직 군데군데 남아있는 고향의 마을을 서둘러 한번 다녀와야겠다.
첫댓글 박용식 선생님,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