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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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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生態)에 관한 연구를 생태학(ecology)이라고 하는데, 초기에는
식물과 동물이 환경에 적응하는 양상을 생물학적으로 연구하는 데에 사
용되었으나, 최근에 이르러는 넓은 의미에서 사람을 유기체로 보고, 사람
이 환경에 적응하는 양상을 설명할 때 사용되고 있다.
인간의 문명화된 생활을 빙자하여 식물·동물·인간 모두가 위협을
받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수질오염·토양오염·대기오염·오존층 파
괴 등의 여러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를 진단하고 그에
따른 행동 강령을 집약적으로 제시한 것이 [자연보호헌장]이다.
자연보호헌장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의 혜택 속에서 살고 자연으로 돌
아간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이 속의 온갖 것들이 우리 모두의 삶
의 자원이다.
자연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원천으로서 오묘한 법칙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질서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이 땅을 금수강산으로 가꾸며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향기 높은 민족문화를 창조하여 왔다.
그러나 산업문명의 발달과 인구의 팽창에 따른 공기의 오염, 물
의 오탁, 녹지의 황폐와 인간의 무분별한 훼손 등으로 자연의 평
형이 상실되어 생활환경이 악화됨으로써 인간과 모든 생물의 생존
까지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국민 모두가 자연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여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며, 모든 공해 요인을 배제함으로써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회복·유지하는데 정성을 다하여야 한다.
이에 우리는 이 땅을 보다 더 아름답고 쓸모 있는 낙원으로 만
들어 길이 후손에게 물려주고자 온 국민의 뜻을 모아 자연보호헌
장을 제정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실한 실천을 다짐한다.
1.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보전하는 일은 국가나 공공단체를
비롯한 모든 국민의 의무이다.
2.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문화적, 학술적 가치가 있는 자연자원
은 인류를 위하여 보호되어야 한다.
3. 자연보호는 가정, 학교, 사회의 각 분야에서 교육을 통하여
체질화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4. 개발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진중히 추진되어야 하며, 자
연의 보전이 우선되어야 한다.
5. 온갖 오물과 폐기물과 약물의 지나친 사용으로 인한 자연의
오염과 파괴는 방지되어야 한다.
6. 오손되고 파괴된 자연은 즉시 복원하여야 한다.
7. 국민 각자가 생활 주변부터 깨끗이 하고 전 국토를 푸르고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자연보호의식·생태의식은 시인들이 시작활동(詩作活動)을
통해 이미 지적하고 경고한 바 있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시인
(문인)을 "잠수함의 토끼"로 비유한 바 있는데, 초기 잠수함 속의 산소량
을 측정하는데 토끼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시인의 예리한 직관력과 감
수성은 문명에 의한 자연훼손, 그로 인한 생태계의 위협을 미리 예견하
거나 현실을 직시하여 문학작품으로 표현하였다.
2.
문명화·기계화·산업화의 일차적 피해는 동물과 식물이었다. 특히
동물에 대한 시인의 의식은 인간과 삶이 양식이 유사하기 때문인지 많은
조명이 있었다. 여기에서의 주요 대상은 삶의 터전을 상실한 상실당한
상황 설정이며 그로 인한 생태계의 부조화이다.
대표적인 작품을 몇 편 선택하여 확인하기로 한다.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은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직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모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애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 향수를 느끼다가
산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살ㅇ과 평화의 사상까지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 김광섭 [상북동 비둘기] 전문
이작품은 도시문명에 으;해 삶의 터전을 잃고 쫓기는 비둘기의 참담한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자연의 일부인 비둘기가 물질문명의 발달에 의
해 삶의 터전에서 추방당한다는 이 상실의식은 시인의 뜨거운 지성과 감
성을 시로 보여준 것이다. 사람과 가까이에서 살며 평화를 즐기던 새가
구공탄 굴뚝 연기에 의해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새가 되
었다는 단정은 생태계 파괴의 비극성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둘기를 통한 이러한 형상화와 유사하지만, 약간은 궤적은 달리하는
작품 서정적 자아가 시 속의 "새"와 동일시되어 도시 소시민의 정서가지
도 포괄하는 작품이 있다.
한 마리 작은 새가
빈 나무가지에서
냉기(冷氣)어린 시간은 쪼아대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고향을 바꿔서 사는 새는
눈을 감으면 자꾸만 푸른 하늘에
빠져 죽는 꿈을 꾸었다.
어쩌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에
눈을 씻고 바라보면
아스팔트 길목마다
오만하게 늘어서 있는 빌딩의 숲
생활이 쭈그리고
앉았다 간 자리마다
돌림병처럼 번지는 역한 냄새
무수한 발자국마다
부서지는 도시의 그림자
작은 새는
날아야 할 하늘을 쳐다보며
흔들리는 바람을 맞고 있었다
― 최송석 [도시의 새] 전문
이 작품에서 시인은 "작은 새"로 환치되어 시속에 나타난다. 이 도시의
새는 "빌딩"과 "냄새" 때문에 푸른 하늘에 빠져 죽는 꿈을 꾸는데, 이 "푸
른 하늘"이 바로 시인과 새가 지향하는 삶의 터전이다. 이러한 지향처를
바라보며 현실에서는 "흔들리는 바람"을 맞으며 살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삶의 터전을 잃은 "도시의 새"와 고향을 떠난 도
시의 생활에 쪼들리고 있는 소시민 중의 하나인 자신은 결합하여 생태의
위협을 간접적으로 경고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조명은 권용우 교수의 [도시 생태와 환경]이라는 논문에도 나
타난 바 있는데, 도시환경적 차원에서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추구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전제가 될 수도 있다. 즉 도시도 깨끗한 물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쾌적하고 조용한 생활 속에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한
다는 것이다.
유사한 형상화한 [잠실 밤개구리]가 있다.
잠실 밤개구리가 운다.
밤새도록 밤새도록 운다.
울음숲을 이루며 잠실잠실
실실실 잠실……
아파트가 더 들어서면
고향을 잃어버린다고 운다.
비 맞은 인디언 물귀신처럼 운다.
아스팔트가 덮히면
변두리 산으로 쫓겨나
숨 다할 거리고 무한정 밤을 운다.
잠실 밤하늘 원망이라고 하듯
순하디순한 흙값이 금값임을
허공천에 대고 원망이라도 하듯
잠실 밤개구리가 새워새워 운다.
금구렁이들이 자꾸자꾸 몰려들면
이제 올 수도 없을 거라고 자꾸 운다.
울음 시위와 울음 화살로는
마른 번갯불로 빛나는 그림자 앞에서는
울어봐도 다 소용없을 거라고 자꾸 운다.
여름밤 인디언 물귀신처럼 그리 슬피 운다.
― 신세훈 [잠실 밤개구리] 전문
이 작품도 최송석 시인의 [도시의 새]와 유사한 내용이다. 그러나 보
다 더 애절하고 안타까운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파트가 더
들어서면 / 고향을 잃어버린다〉라든가, 〈아스팔트가 덮히면 / 변두리
산으로 쫓겨나 / 숨 다할 거〉라는 인식 아래, 인간을 상징하는 "금구렁
이"를 통한 물질문명에 대해 시인은 체념적 어조를 보여주고 있다. 시인
의 감정이 이입된 밤개구리는 삶의 터전의 상실로 인해 울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밤개구리"는 자연의 대표적 상징물이며, 밤개구리가 우는
것은 아픔을 실감한 시인의 울음이다. 이렇듯이 시인은 작은 대상을 통
해 자연, 더 나아가 인간의 삶의 양상과 견주어 상실의식을 보여주는 것
이다.
바다에도 울타리가 있는가
넘을 수 없는 분계선이 있어야 하는가
어쩔 수 없이 멈춰 선
바다와 호수의 중간
만남의 광장 뒷자리에서
언어는 비늘 벗어진 몸을 일으켜
축축한 항해일지를 보듬고 있다.
그 깊고 어두운 여로
가장 순수한 욕망으로
고향의 젖무덤을 그리며
알래스카의 반환점을 돌아
차디찬 항진을 서둘러온 나날들
지친 몸으로 달려와
마침내 빛나는 횃불을 들고
차갑고 어두운 회당의 문을 나설 때
일제히 무너지는 소리
여기는 분계선 돌아가시오.
바닷바람이 강으로 불고
갈매기 거슬러 하늘을 날고
하얀 거품 밀려와
머릴 부딪는 분단의 바다 언덕
연어는
녹슨 철문에 매달려
오늘도 안타까운 발길질을 하고 있다.
― 김흥식 [방조제에서] 전문
이 작품은 연어의 회귀성, 즉 모천(母川)으로의 귀소본능이라는 자연
현상과 인간이 "댐"이라는 방조제를 쌓아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있다는
대비적 상황을 형상화한 것이다.
연어는 민물에서 부화하여 바다로 나간가. 바다에서 성장하여 산란할
때에는 자신이 태어난 시내나 강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런데, 그 입구에
인간이 방조제를 쌓았다. 모천을 찾으려는 연어의 좌절, 이것은 바로 자
연현상을 파괴하는 인간문명에 대한 안타까운 고발이다.
연어를 통한 상실의식, 이는 인간의 생태에도 중요한 변수로 등장한다.
자연생태계의 파괴는 인간생활에 간접적 영향과 함께 직접적인 피해도
주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서 자연을 이용하며 살고 있는 인간이기에 자
연은 소중한 것이라는 철학적 명제를 시적 대상물의 특수성을 통해 구체
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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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문명에 의해 파괴되어 가는 자연 중 식물에 대한 시인의 의식도
아픔으로 점철되어 있다. 식물의 위기상황을 시로 승화시킨 작품도 수없
이 많다. 그중 대표적인 몇 편을 통해 분석해 보기로 한다.
육교(陸橋) 한 구석
풀꽃 한 송이
어디서 묻어와 싹이 튼 겐지
무슨 힘으로 꽃을 피웠는지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콘크라트〉 바닥에 꽃을 피우며
화판(花瓣) 가득 슬픈 하늘을 담으며
그가 보안온 걸 나는 안다
그가 찾아온 말을 나는 안다
[인간(人間)은 말하지 말라, 말하지 말라!]
울고 싶도록 내려앉은 하늘 아래서
오늘도 말이 없는
풀꽃 한 송이
― 윤석산 [풀꽃] 전문
이 작품의 주 대상은 콘크리트 바닥에 꽃을 피웠으나 꽃 이파리 가득
슬픈 서정을 담고 있는 육교의 꽃이다. 물론 이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하
는 것은 꽃의 슬픈 운명과 함께 강인란 생명력도 함께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시적 중심은 〈인간은 말하지 말라, 말하지 말라!〉에 나타난
바, 인간에 대한 꽃의 항변이다. 꽃이 피어야 할 자연을 허물고 인간은
도시를 건설했고, 꽃이 자라야 할 길을 콘크리트·아스팔트로 덮었으며,
꽃이 숨쉬어야 할 하늘을 인간은 오염시킨 것이다.
이 꽃을 통해 시인은 생명에 대한 관심, 도시화로 인한 삶의 터전을
상실한 자연이나 인간에 대한 연민을 보여주려고 항 것 같은데, 부제가
"증거·1"이라는 데서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과 유사한 시가 다음의 작품이다.
오봉산(五峰山) 꼭대기에
울던 새 한 마리
마지막
이 山 저 山 다 울고
어디로 날아가느냐.
앙탈을부리던 靑石골마저
언덕 위엔 능금빛 조롱(鳥籠).
밤이나 낮이나
굉음(轟音)으로 불티나는 매일을
젖어서 일어나는
도로변의 풀잎들
오오, 불쌍한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르면
자다가도 외마디 소리.
근래에 못보던 농무(濃霧)가
차단한 마을을 복면(覆面)하고
오늘도 떠날 줄 모르는 억새들만
칼을 품고 자란다.
― 주봉구 [억새] 전문
이 작품의 초점은 고속도로 건설 및 도시 개발에 의해 산새도 날아가
버린 비극적 상황에서 억새꽃만 칼을 품은 채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1연과 2연은 마지막 울던 새 한 마리도 날아가버린 상황, 즉 자연이
파괴된 상황이며, 이러한 전제가 진정한 자연으로 통칭되던 청석골의 피
해로 드러난다. 이러한 상황이 4연의 "조롱"과 결합하여 산새의 터전 상
실을 노래하고 있다.
5·6연은 공사장의 소음으로 인해, 도로변의 풀잎이 불쌍한 삶을 매
일매일 영위하고 있다는 시각이며 7연에서 보여주는 바 "자다가도 외마
디 소리"는 위기의식의 발현이다. 또한 8연의 위기상황에, 9연의 의지적
형상화는 안타까운 서정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
변두리 빈터에
가을은 서둘러 왔다.
몇 포기 들깨가 제가끔 익고
텃밭의 배추는,
매연을 마시고도 노란 속 고갱이,
주인의 겨울살이를 꿈꾼다
산 중턱까지 밀려난 숲에서
풀벌레가 울다 제풀에 지치고
가로수는 덩치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이파리를 매달고
이 가을 속 필사적으로 서 있다.
아파트 분양을 위해 몰린 사람들
흙먼지를 이끌고
자가용이 언덕을 오르내려도
아파트 단지에 불임(不姙)의 은행잎
노랗게 물이 들다
저 혼자 잎을 날린다
― 김완하 [도마동·2] 전문
이 작품은 도시 소시민의 서정을 노래하고자 한 시인지도 모른다. 그
러나 2연에서 보여주는 바, 산 중턱까지 인간에 의해 밀려난 풀벌레나
터무니없이 작은 이파리를 매단 가로수는 인간문명에 의한 피해를 보여
주는 것이다. 특히 3연에서 말한 "불임의 은행잎"이 보여주는 것은 인간
문명에 의해 자연의 본질이 파괴되었다는 심각한 표현이다. 자연은 자연
법칙에 의해 자연스레 지켜져야 하는데, 산이었던 마을이 도시화 되면서
빚어진, 이러한 상황설정은 시인만이 갖고 있는 직관이며 감수성의 소산
이다.
4
동물이나 식물, 그리고 인간이 살아야 하는 공간 역시 시의 중요한 요
소로 등장한다. 흙·산·강·도시·공장 등으로 표현되는, 이러한 공간
은 매우 중요한 문학적 매체이다.
서정과 함께 농경지로서의 흙에대한 조명이 다음 작품에서 이루어졌
다.
한 사내가 중천(中天)의 하늘에 매달려
인종(忍從)의 삽을 가지고
객토 작업을 하고 있다.
토박해져 가는 저 메마른 논배미에
어느 산 허리를 끊어
진한 피흘림으로 던져진 육신이
침묵하는 자 되어
십자가에 못박힌 채 누워 있다.
거기에 거꾸로 처박힌
한 사내의 전 생애가 폐쇄되어 있었다.
끝없이 거부하며 쓰러진 흙의 깃발들.
땅 끝에 살아가는
구겨진 애비의 한평생이 싫다고
건갈이 솟음이 되어 이농(離農)하고 떠나간 아들을 생각는다.
바람 몇 올에 묻어오는
수소(水素)의 질량 같은 일상의 슬픔.
십 삼 촉보다 어두운 삶으로
무섭게 밟히며
죽지 하나 찢겨진 애비는
푹푹 썩는 두엄더미.
산성화(酸性化)로 시간도 없는
이 버려진 땅에
돌아온 것인가
돌아온 것인가
돌아온 것인가.
― 조석구 [객토] 전문
이 작품의 중심 구조는 시적 주체의 "애비"로 지칭된 농부의 애환과
토양의 척박함이다. 유기질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화학비료를 사용하여
농사를 짓다보면 농토가 척박해진다. 즉 산성화된다. 이러한 산성화 상태
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체로 ①깊이 갈이(농토를 깊이 갈아서 표토와
땅속의 흙이 섞이게 하는 것) ②유기질 비료(두엄)의 사용 ③객토(산성
화되지 않은 깨끗한 흙을 농토에 뿌리고 쟁기로 갈아서 섞으면 산성화가
약해짐)를 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객토를 통해 산성화된 땅(자연)을 살리려는 농부(애비)의
삶(애환)을 조명하고, 삶의 터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시로 형상화
하고 있다.
이조(李朝)의 서울을 품에 안고
맑은 물 노래한 그 시절은
하늘의 푸르름이 시새웠을
청계천(淸溪川)
지금은 이름이 부끄러워
땅 속으로 온몸이 숨어버렸지만
숨가쁘도록 제 할 일 하고 있는
청계천(淸溪川)
어제와 오늘의 갈피 속에서
그 낱말의 빛은 바랬지만
그래서 무거웁게 흐르지만
온갖 서울의 분비물을 내다 버리며
한강(漢江)을 제일 미안해하는
청계천(淸溪川)
맑은 하늘의 푸르름이랑
계절의 골짜기에 노래 모두 잃고
오늘도 끙끙 앓으면서
제 할 일 하는 청계천(淸溪川)의
아픔과 갈증과 주름살을 위하여
노래를 생각해 보자
청계천(淸溪川) 같은 인생(人生)의 노래들도
―김종천 [청계천] 전문
이 작품은 "청계천"이라는 지명의 청순성과 현실의 오염을 대비적으로
노래하고자 한 것 같다. 그러면서도 과거의 청계천과 현재의 청계천을
견주어보며 "인생"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시인은 원래의 청계천
을 꿈꾸면서 현실의 더러움을 고발하고 있는데, 이는 생태계의 파괴가
"서울의 분비물"인 문명의 찌꺼지 때문이라는 관점에서인 듯하다.
이러한 돗;문명의 병폐를 좀 더 사실적으로 묘사한 적품에 이하석 시
인의 [부서진 활주로]가 있다.
활주로는 군데군데 금이 가, 풀들
솟아오르고, 나무도 없는 넓은 아스팔트에는
흰 페인트로 횡단로 그어져 있다. 구겨진 표지판 밑
그인 화살표 이지러진 채, 무한한 곳
가리키게 놓아두고,
방독면 부서져 활주로변 풀덤불 속에
누워 있다. 쥐들 그 속 들락거리고
개스처럼 이따금 먼지 덮인다. 완강한 철보망에 싸여
부서진 총기와 방독면은 부패되어 간다.
풀뿌리가 그것들 더듬고 흙 속으로 당긴다.
타임지와 팔말 담배갑과 은종이들은 바래어
바람에 날아가기도 하고, 철조망에 걸려
찢어지기도 한다. 구름처럼
우울한 얼굴을 한 채.
타이어 조각들의 구멍 속으로
하늘은 노오랗다. 마지막 비행기가 문득
끌고 가 버린 하늘,
― 이하석 [부서진 활주로] 전문
이 작품은 군사기지(미군공군기지?)의 폐쇄와 함께, 부서진 활주로와
그 파괴상을 노래하고자 했다. 이와 함께 "인간"의 문명이 자칫 이러한
파괴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경고성 의미를 내재하고 있다. 즉 현대 문명
의 조명으로 반자연성·반인간성에 대한 고통스러운 인식을 형상화하고
있다. 개스·철조망·부서진 총기·방독면·타임지·양담배갑·은종이
와 같은 소재에 의해 하늘이 노랗다고 표현한 것은 인간에 의해 파괴되
고 오염되는 현실을 고발한 시라고 하겠다.
이러한 형상화보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인간문명에 의한 피해 상황
을 시로 승화시킨 작품이 있다.
번영이 버린 물
바다에 흘러들어
고기 병신 되어
벌레가 된 것을
어미가 물어다 먹인
새끼 제비가 죽은 것을 보고 놀라
갑자기 눈이 어두운 어미 제비도
전봇줄에 앉아 울다가
떨어져 죽었다
참새에게는 쌀을 주고
제비에게 벌레를 준
하늘을 원망하여
바다는 고요했고
새는 곡했다.
늦가을 강남 갈 제비도 없고
삼월 삼짇날 강남서 올 제비도 없으니
놀부 흥부는 제비 잘 사는 나라로
이민이나 가시지
― 김광섭 [번영의 폐수] 전문
이 작품은 구체적 사실을 예로 들었다. 번영을 기치로 하여 무분별하
게 이룬 개발로 인해 바다의 고기가 기형이 되고, 농약 오염된 벌레를
먹은 제비가 죽었다는 구체적 지적은 보다 직설적으로 인간 삶의 위협을
경고하고 있다. 또한 인간으로 대유된 "놀부 흥부"가 이 땅에서 살 수 없
다는 것은 극한 설정에 의한 위기의식의 발현이다.
사실 우리의 자연, 삶의 터전으로서의 자연 오염 실태는 이보다 더 심
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러한 의식에 의한 시작(詩作)은 시인의 예리
한 직관력과 예민한 감수성에 의해 표출되고 있다. 이러한 표출을 몇 편
더 부분적으로 예를 들어본다.
① 삼천리 강산
어느 곳에나 땅을 파면
생수가 솟았다
그 물을 썩고
죽어 간다고 야단들이다.
― 임강빈 [두레박]에서
② 〈주거지 개발을 위한 토지구획 정리 사업〉
도시의 소시민답게 히쭉 웃고 돌아선 나는
가슴 한귀퉁이가 무너져 내린 채 집으로 돌아왔다.
― 김백겸 [언덕]에서
③ 계곡물도 여기에선 노래를 잃고
이곳이 바다가 될 줄을
아이는 더 몰랐다.
내 고향의 번지를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아이는
물가에서 서성이고 있다.
― 박순길 [수몰지구 아이]에서
④ 또 혹은
과학문명의 기류로 해서
공상(公傷)입은 현대
현대인들의 입가에 파도가 일 때
초침처럼
쏟아지는 키펀치의 그늘에서
피어나는 속삭임은
오늘의 신화라 해도 좋은가
― 김경린 [당신은 역학없는 해바라기]에서
⑤ 우리들의 텃새
둥지를 틀 데 없는 텃새가
철탑 높이 집을 지었다
문명(文明)은 새들에게도
위기(危機)임에 틀림없다.
― 박상일 [위기]에서
①은 독일 사람들이 식사 후 숭늉 대신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
부러워했으나, 적당히 마실 물이 없어 그렇게 산다는 것을 인식하고, 우
리의 자연을 은혜로 수용하면서도 그 자연의 은혜인 물이 죽어간다는 안
타까움의 토로이다.
②는 서정적 자아가 혼자 뒹굴며 놀던 언덕이 주거지 개발을 위해 없
어졌다는 내용이다. 이 언덕은 시인에게 있어 마음의 고향이었을 바, 이
의 소멸은 삶의 중요한 일부가 상실된 것이다.
③은 도시인들에게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댐을 건설했고, 그로 인해
마을이 물에 잠기게 된다. 그 수몰지구의 아이를 서정적 주체로 하여,
고향을 잃어버린 상황을 시로 형상화하고 있다.
④는 물질문명에 대해 초현실주의작 수법을 일부 원용하여 현대인의
삶을 조명한 부분이다. "공상 입은 현대"라는 인식은 현대 물질문명에 의
한 인간성 상실의 표출로 보아 무리가 없을 듯하다.
⑤는 텃새와 그 지역민의 삶은 일체임을 지적하고 그 텃새가 둥지를
틀 곳이 없어 철탑(첨탑)에 둥지를 지었다는 것이며, 그 상황을 위기로
예감하고 있는 것이다. 계절이 바뀌어도 이 땅을 떠나지 않는 철새, 그
철새의 삶이 바로 우리의 삶이라 할 때, 시인이 의식하고 있는 상황은
확산적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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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자연과 관련된 생태의식을 생활화하고 있다. 식수를 수돗물
로 해야 하는가 생수로 해야 하는가. 쌀에는 수은이 얼마나 녹아 있는가.
과일이나 채소에는 얼마만큼의 농약이 잔류하고 있는가. 공기는 얼마나
오염되어 있는가. 시내나 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먹을 것인가 버릴 것인
가. 시내나 미역감이라도 되는가.
이러한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있다.
하루를 시작하는 커피를 끓인다.
끓인 커피에 공해(公害)도 섞는다.
도심(都心) 한길가 망루(望樓) 같은 방
전화벨 소리와 지하공사(地下工事) 소리
책상 위에 안 풀리는 사류도 함께
하루의 폐활(肺活)을 늘리기 위해
내장(內臟)도 부글부글 끓여서 마신다.
네모 좁은 벽에 눌리어서
시끄러운 일상(日常)의 커피를 마신다.
내 온 하루를 숟가락질 한다.
― 김규화 [커피를 마신다] 전문
현대인 중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현실이다. 이
렇게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도 시인은 그 커피와 함께 "공해"도 섞어 마
신다고 자각한다. 도시인의 생태환경은 비단 자연환경에만 머무는 게 아
니다. 생활자체가 쾌적해야 하는 것이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시끄러
운 일상은 마신다는 시인의 지적은 도시인의 규격화된 생활과 단조롭고
오염된 생활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다.
생태의식과 관련된 시인들의 형상화는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
러한 시적 표출은 시인을 [잠수함의 토끼]라고 명명한 게오르규의 정의
에 부합되는 것이다. 생태계와 관련된 위기의식을 조감하면서, 이의 타개
를 위해 시인과 모든 사람들이 공동으로 노력해야 함을 확인했다.
이러한 생태환경의 위기는 인간의 물질문명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오
염된 환경을 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가장 바
람직하다. 시인과 모든 독자들이 노력하여, 다음의 시에 나타난 바, 자연
(플라타너스)을 신(神)과 같이 생각하고, 자연을 통해 아름다운 뱔과 사
랑하는 창(窓)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희구를 밝힌다. 시인은 독자들
에게 위기의식의 제시와 함께 맑고 밝은 희망을 심어줄 의무가 있기 때
문이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오를 제,
홀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영혼을 불어 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神이 아니다!
너를 맞을 검은 흙이 어느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플라타너스,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窓이 열린 길이다.
― 김현승 [플라타너스] 전문
자연은 자연 그대로 존재될 권리가 있다. 인간은 자연을 이용하여 자
연의 본질과 자연현상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여야 훼손된 자연은 복구
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맺는다.
[출처] 현대시의 생태학적 접근/대전문햑협회|작성자 왕소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