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수많은 안드로이드 경쟁자들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봤을 때, 안드로이드의 뒤에서 애플과 싸우고 있는 앤디 루빈이
한때는 애플에서 근무했다는 사실이 조금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흥미롭게도, 애플 사는 HTC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루빈이 애플에 근무할 당시
문제의 API 특허 취득에 일조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세일즈포스 CEO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Salesforce)의 최고 경영자 마크 베니오프는 1984년 애플에서 근무했으며, 당시의 경험을 일컬어 "기업가도 혁신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계기"라고 평가했다. 베니오프는 또 자신이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해 준 조언에 대한 보답으로 "앱 스토어"
상표에 대한 권리를 애플에 넘겨 주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위티 개발자 로렌 브리처
로렌 브리처는 맥과 아이폰 용 트위터 앱 '트위티(Tweetie)를 개발했다. 트위티는 출시 직후 트위터 사용자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트위터는 2010년 트위티를 인수하고 아이폰의 공식 트위터 앱으로 정했다. 브리처는 또 2000년대 중반에 아이폰
인터페이스를 디자인 하는 데에도 일조했다.
링크드인 공동 창업자 리드 호프먼
애플과 관계된 적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오는 또 한 명의 인물은 링크드인의 공동 창업자이자 전직 페이팔(PayPal) 경영자인 리드
호프먼이다. 2002년 다른 페이팔 직원들과 함께 링크드인을 설립하기 전, 호프먼은 90년대 중반에 애플에서 2년 가까이 사용자 경험
아키텍트(user experience architect)로 일했었다고 한다.
EA 창업자 트립 호킨스
1982년 트립 호킨스가 창립한 일렉트로닉 아트(EA, Electronic Arts)는 세계에서 가장 큰 비디오게임 제공업체 중 하나이다.
그러나 EA를 창립하고 3DO나 디지털 초콜릿(Digital Chocolate)을 개발하기도 훨씬 전에, 그는 이미 애플 초창기 직원 중
하나였다. 애플에서 호킨스는 전략 및 마케팅 디렉터로 일했으며, 1982년에 애플에서 나왔다.
인권 운동가 퀸 레이나
이 목록에 올라와 있을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던 또 한의 인물은 퀸 레이나다. 오늘날 그녀는 아동, 여성 인권과 교육 운동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1991년 경영학 학위를 받은 후 요르단에 간 퀸 레이나는 요르단 암만(Amman) 지역에 위치한 애플 사무실에서 잠시 마케팅직을
맡았었다고 한다.
팜 공동 창업자 도나 더빈스키
팜(Palm)의 공동 창립자이자 훗날 핸드스프링(Handspring)의 최고 경영자가 된 더빈스키는 팜 파일럿(Palm Pilot) 및
트레오(Treo)같은 최초의 현대식 PDA 전문가이다. 그러나 이런 자리에 오르기 전, 그녀는 하버드 대 MBA를 졸업하고 1981년 애플에
들어갔으며 10여 년 동안이나 애플 사 내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았었다.
패스 CEO 데이브 모린
유명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 패스(Path)의 공동 창립자 및 최고 경영자 자리에 오르기 전, 데이브 모린은 초창기 페이스북 플랫폼 관리자로
일한 경력이 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들어가기 전에는 애플의 제품 및 마케팅 부서에서 2년간 근무했었다.
구글 1대 CEO 에릭 슈미트
천재 컴퓨터 과학자 에릭 슈미트는 구글 사의 1대 CEO로 잘 알려져있다. 지금이야 애플과 구글이 경쟁 관계이므로 이상해 보이지만,
슈미트는 2009년 계속되는 '이해관계 충돌'때문에 그만두기 전까지 애플 이사회에서 3년 가까이 근무했다.
푸시 팝 프레스 창업자 마이크 마타스
마이크 마타스는 2011년 8월 페이스북이 인수한 기업 "푸쉬 팝 프레스(Push Pop Press)"의 창업을 도왔다(푸쉬 팝 프레스의
혁신적인 출판 소프트웨어는 2011년 애플 디자인 상을 받기도 했다). 이 회사를 창업하기 전, 마타스는 애플에서 맥, 아이폰, 아이패드 기본
앱의 UI 기능을 개발하던 4년차 베테랑 애플 직원이었다.
인튜이트 CEO 윌리엄(빌) 캠벨
인튜이트(Intuit)사의 최고 경영자 자리에 앉기 전, 빌 캠벨은 1980년대 초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애플의 마케팅 부사장으로
일했다. 그는 같은 기간에 애플의 클라리스 소프트웨어 (Claris software)부서를 지휘하기도 했다. 스티브잡스가 애플로 돌아온 후
1997년에 그도 이사회 회원으로 애플에 돌아왔으며 여전히 애플 이사회 회원이다.
팜 OS 개발자 존 루빈스타인
아주 잠깐 동안이었지만, 2009년에는 팜 프리(Palm Pre)가 아이폰의 적수라고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팜 프리와 그 웹OS개발을
지휘한 것은 전직 애플 경영진에 몸담고 있었던 존 루빈스타인이다. 루빈스타인은 한때 아이팟과 본디 블루 아이맥(Bondi Blue iMac)을
포함한 맥 시리즈 개발에도 도움을 줬다.
레이저 프린터 발명가 개리 스타크웨더
개리 스타크웨더는 90년대 중반에 애플에서 색상 관리 기술에 관련된 일을 했으며 애플 사의 색상 관리 API인
컬러싱크(Colorsync.) 개발을 주도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전인 1960년대에는 제록스(Xerox)사에서 일하며 레이저 프린터를
발명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퀵타임 개발자 브루스 릭
퀵타임(QuickTime)을 발명한 장본인 브루스 릭은 1996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수한 웹TV(WebTV)를 공동 창업하기 전까지 애플
사에서 수년간 일했다. 애플 사에서 일하는 동안 릭과 그의 팀 동료들은 최초의 위성 DVR 시스템을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 후 릭은
캐리어(Carrier)의 공동 창립자가 되어 잠깐 동안이지만 CEO자리를 맡기도 했다.
컴퓨터 과학자 앨런 케이
앨런 케이는 제록스의 알토 연구센터(Palo Alto Research Center)에서 일하며 매우 혁신적이고도 영향력 있는 성과를 낸
컴퓨터 과학자로 유명하다. 케이는 84년에서 97년 사이에 애플에서 일을 했으며 스티브 잡스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았던
과학자이다.
네스트 랩스 창업자 토니 파델
토니 파델은 흔히 직관적, 디지털 인공지능 온도 조절 장치의 조달 업체 네스트 랩스(Nest Labs)의 창업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전부터 그는 '아이팟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었으며 애플 내의 아이팟 담당 부서에서 부사장 직을 맡을 만큼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SAP AG 수석 과학자 아이작 내씨
애플의 연구 기술 부서(Research and Technology) 책임자이자 애플소프트(Applesoft) 대표였던 아이작 내씨는
1996년 애플을 나갔다. 오늘날 그는 SAP AG의 수석 과학자이다.
구글+ 서클 인터페이스 디자이너 앤디 헤르츠펠드
7년 간 구글에서 일하고 있는 앤디 헤르츠펠드는 구글+의 서클 인터페이스 디자이너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전에는 많은 이들이
헤르츠펠드를 초기 매킨토시 OS의 중요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여겼다. 그는 1979년부터 1984년까지 애플에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