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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1집 - 29. 아론의 반차와 멜기세덱의 반차
(1) 멜기세덱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10분의 1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14:17-20) 나는 지금까지 몇 달 동안에 여러분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이야기를 하였는데, 오늘은 다시 멜기세덱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역대 하나님의 종들 중에서 영의 깊은 단계의 말씀인 멜기세덱에 대하여 다소 언급한 것은 다윗과 히브리서 저자 정도였습니다. 일찍이 여호와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신 후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세우고 할례를 통하여 피로 언약을 맺은 가운데 그 후손으로 당신의 백성을 삼고, 이들을 통하여 크신 경륜을 이루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있는 대로, 멜기세덱이라는 실존 인물은 아브라함 당시의 살렘 왕이요, 또한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떡과 포도주로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해 주고,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으로 말하면 여호와께서 믿음의 조상으로 택한 거물인데, 이런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해 주고 십일조까지 받았다면 아브라함보다도 더 큰 존재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살렘 왕이요, 대제사장이라고 해서 과연 믿음의 조상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택하신 아브라함보다도 더 위대한 인물일 수 있을까요? 그러나 여기서 이런 지위의 서열이나 고하를 따지기 전에, 우리는 스가랴서에 나오는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나중에 나타날 두 감람나무의 그림자였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멜기세덱이라는 인물은 아브라함 당시에 실존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나중에 나타날 어떤 존재의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로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는 메시아, 즉 주님의 그림자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히7:2-3)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와 아브라함이 맺은 언약은 육적인 것으로, 야곱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 12지파가 이루어지고,
그 후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많은 선지자와 사사들이 나타나 하나님의 일꾼으로 활약하였으며, 다윗의 후예 중에서 메시아가 나타남으로써, 그 길 예비자 세례 요한 때에 와서 과거의 법도와 율례가 주님과 하나님 사이에 맺은 새 언약으로 대치된 것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순간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언약은 끝나고 새 언약이 시행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멜기세덱의 반차에 이르는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제자들과 만찬을 나누면서 떡과 포도주를 당신의 살과 피로 비유하고, “내 살과 피를 마시라.”고 하였으며, 이 살과 피는 주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이긴자를 통하여 생수로 내리게 되어 있습니다.(계21:6-7) 메시아, 곧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의 그림자로서의 살렘 왕이 떡과 포도주로 아브라함을 축복하였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살렘 왕이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위대한 종 아브라함보다 높은 위치에서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고 십일조를 아브라함에게서 감히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와 같이 메시아의 그림자로 행세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육적으로는 다윗의 후손이지만, 아브라함보다 먼저 ‘말씀’으로 계셨으며, 이것을 구약시대에 영적으로 가장 깊이 들어간 다윗이 지적하였던 것입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 여호와는 맹세코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시110:3-4) 여기 주의 권능의 날이란, 마귀를 발등상 시키기 위하여 권능으로 멸하는 것을 말하고, 주의 백성은 하늘군병을 말하며, 거룩한 옷은 세마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우편에 계신 주’ 즉 그리스도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 된다.’는 것을 지적한 것으로 보아 다윗이 얼마나 영적으로 높은 단계에 도달해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제자와 그 밖의 당신의 주위 사람들에게 당신이 이 멜기세덱의 제사장이 된다는 말씀을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었다고 해도 서기관과 바리새교인들이 트집을 잡는 판이라, 당신이 십자가를 지고 피를 흘려야만 비로소 길이 열리는 멜기세덱 운운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하시고, “다른 보혜사 성령이 너희를 진리 가운데 인도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고 깊은 단계의 말씀은 나중으로 미루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도,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이야기를 보류한다고 하였던 것입니다.(히5:11) 주님은 멜기세덱의 제사장이 될 수도 있고, 못 될 수도 있습니다.
즉 주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십자가를 지든 말든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만일 십자가를 지시지 않고 그냥 승천하였다면 멜기세덱의 제사장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땅에 계실 때의 주님은 엄연히 다윗의 자손이요, 요셉의 아들로 족보가 있었지만, 부활하신 주님은 족보가 없는 분, 즉 멜기세덱의 제사장인 것입니다.
(2) 아론의 반차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의 직분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되는 것으로, 영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아론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의 경우처럼 그 제사장이 죽으면 다른 사람이 대를 잇는 일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 처음으로 제사장이 된 사람은 모세의 형 아론으로, ‘아론의 반차’란 말은 여기서 비롯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를 행하고,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1년에 1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히9:6-7) 여기서 말하는 제사장이나 대제사장은 아론의 반차를 좇는 레위 자손 중에서 뽑힌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들이 인간의 죄를 씻기 위해 그 죄상에 따라 송아지나 양이나 비둘기의 피로 제사를 드리면 그 제물의 피만큼 인간의 죄가 사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경 말씀대로 제사장이 자신의 허물을 위해서도 제사를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허물이 있는 제사장이 깨끗하다고 볼 수 없는 짐승의 피로 드리는 제사가 온전할 리가 없습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다른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겠느냐.
”(히7:11) 따라서 흠 없는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단번에 희생의 제물로 드려, 그 제사가 하늘에 상달된 후에 영원한 제사장으로 삼고, 다른 희생의 제물을 폐하는 동시에 인간이 직접 죄 사함을 받는 길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아론의 반차는 아브라함의 자손들 중에서 레위지파에 속하는 자들로, 뽑힘을 받아 약 1,400년 동안 역사해 왔으며, 멜기세덱의 반차는 주님이 믿는 자들 중에서 뽑아내시는 역사를 약 2,000년 동안 해 오는 가운데 있습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들은 앞으로 영의 세계에서 영원히 제사장 노릇하게 되지만, 아론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들은 당대에 그쳤습니다.
그리고 아론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조상 아브라함보다 작은 존재였으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은 아브라함보다 더 큰 존재입니다. ‘반차’란 반열, 즉 순서를 말합니다. 그런데 주의 믿는 자들 가운데 뽑힘을 받은 진실한 자가 이 멜기세덱의 반차에 참여한다고 하였는데, 그럼 실제로 어떤 과정을 거쳐야 이 반열에 이르게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거기에는 이 반열에 참여하는 사람을 씻어서 세우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하늘의 일은 주님이 직접 하시지 않고 반드시 사람을 통하여 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고넬료와 같은 열성적인 성도도 베드로의 손길을 통하여 성령을 부어 주게 한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의 종이 필요하고, 또 그래서 그가 귀한 것입니다. 더구나 주께서 여러 교회에 편지를 보내 이긴자가 나타나기를 바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긴자가 인류 역사를 마무리하는 실무자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계2장, 3장 참조) (3) 위대한 경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 즉 아브라함의 후손이 모세요, 그의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들이 숭상하는 법도이며, 아론을 통하여 제사장의 직분이 생기면서 레위 자손인 역대의 제사장들은 이 아론의 반차를 좇아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려 백성들의 죄를 사해 주는 직분을 맡아 왔습니다. 즉 믿음의 조상은 아브라함이요, 율법의 조상은 모세이며, 제사장의 조상은 아론으로, 이들 중에서 굳이 서열을 구분하자면 아론보다도 모세는 더 큰 존재이며, 모세보다도 아브라함은 더 큰 존재였습니다.
] 아브라함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상징적인 인물로, 모세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났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에 아브라함과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로, 아브라함의 자손은 누구나 할례를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모세의 율법을 지키며, 아론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을 통하여 여호와에게 제사를 지내는 이 세 가지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와 율법과 제사는 믿음의 3대 요소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오면 이 믿음의 3대 요소가 십자가와 보혈과 부활이며, 이것은 세 사람이 아니라 주님 한 분이 담당하신 것이었습니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시지 않으면 죄를 씻는 보혈을 흘릴 수 없고, 보혈을 흘리지 않으면 부활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십자가, 보혈, 부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신약시대에 와서 주님, 즉 멜기세덱의 영원한 대제사장을 따르는 성도들은 이 세 가지를 언제나 명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 구원의 원리가 집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의 율법은 처음에 돌에 새겼으며, 제사장들이 읽어 주면 듣고 외워서 지켜야 했지만,
신약시대의 율법은 마음과 생각에 새겨 스스로 간직하여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히8:10-11) 그런데 구약시대의 모든 율례와 법도는, 따라서 모세의 10계명도, 세례 요한 때까지 유효하다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마11:13) 그럼 세례 요한 이후에는 어떻게 되느냐? 자유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대체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번거롭게 이랬다저랬다 하실까요? 거기에는 당신의 깊은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즉 만유를 회복하여 새 역사와 새 나라를 이룩하려는 당신의 뜻을 성취하시기 위해 그렇게 예정하신 것입니다. 당초에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고, 이들을 통하여 이 뜻을 이루려고 이들이 지켜야 할 10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율법에 매인 자는 다 저주 아래 있다고 하였습니다.(갈3:10)
그러니까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모세, 여호수아, 다니엘 할 것 없이 다 저주 아래 있으며, 죽자마자 곧 하나님의 품 안에 안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오시기 전에는 음부에 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구태여 그런 율법을 백성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였을까요? 율법으로는 아무도 온전케 할 수 없으며 신약시대에 가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 버릴 율법을 지키게 하고, 지키지 않으면 뭇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돌로 쳐 죽이기까지 했으니, 이런 해괴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세의 율법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몸가짐을 단속하여 신앙 자세를 바로잡아, 곁길로 흐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귀의 상징인 우상을 섬기는 것을 금하고,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이 되도록 하는 것이 모세의 율법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율법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또 제사장을 통하여 아무리 정성껏 제사를 드려도 육의 허물은 어느 정도 사함을 받을 수 있었지만, 영이 사는 것은 아닙니다. 왜? 법도와 율례가 온전치 못할 뿐더러 제사 드리는 제물, 즉 송아지나 양의 피가 깨끗하지 못하고, 심지어 아론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 자신도 죄에서 놓여나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약시대에는 죄에서 완전히 놓여난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세, 여호수아, 이사야, 그 밖의 어떤 위대한 선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욥15:14)라고 말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구약시대에는 의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완전히 두절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깨끗한 주의 피로 제사 드리는 신약시대는 이야기가 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온전치 못한 것은 폐하고, 온전한 것으로 대치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대치는 하나님의 깊으신 예정 가운데 이루어지며, 따라서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율법에 매어 저주 아래 있는 백성들을 건지시기 위해 주님을 이 땅에 보내어 길을 열어 놓은 것입니다. 즉 주님이 십자가에서 단번에 드린 제물이 되심으로써 ‘모세의 율법’을 폐하고 ‘자유의 율법’으로 대치하는 동시에,
아론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의 제사를 폐하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의 제사로 대치시킨 것입니다
. (4) 영광에의 길 히브리서에서도 주위 사람들이 “젖이나 먹고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자들”(히5:12)이라 상세히는 이야기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율법이 달라짐과 때를 같이하여 불완전한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다른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는 까닭을 대충 설명하였습니다.(히7:11 이하 참조) 그리고 “옛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간다.”(히7:18-19)고 덧붙여 말하였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바울과 견해를 달리하였습니다. 그는 성신을 받으면 된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매우 소박한 목회자였으나, 바울은 말씀으로 다듬어 세워 믿음을 튼튼히 다져 가는 목회자로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고서도 폐지된 모세의 율법을 지켜 나간다는 것은 마치 양복을 입고 갓을 쓴 격이라고 하겠습니다. 하긴 베드로 이후 2,00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에도 많은 교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여전히 숭상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성령을 받아 율법이 마음과 생각에 기록되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과 연결됩니다. 다시 말해서 주와 연결되어 은혜를 받으면 반드시 율법이 마음과 생각에 기록되며, 은혜를 많이 받을수록 이 율법이 더욱 세밀히 기록됩니다.
그리하여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자기의 신앙생활을 잘 이끌어 나가게 됩니다.(약2:12) 반대로 마음과 생각에 율법이 기록되지 못한 사람은 주님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모세의 율법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율법을 충실히 지켜야 합니다. 이 단계를 거쳐서 자유의 율법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갈3:24) 주께서 율법을 더욱 온전케 하러 왔다는 것은 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마5:17) 그러나 일단 성령을 받은 다음에는 자기 마음과 생각에 새겨진 율법, 즉 자유의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그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과 연결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예정하신 뜻이며, 이 뜻 가운데 거하는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가 설사 본의 아닌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은혜 받고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은혜, 즉 기름 부음을 받아 스스로 선악을 분별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을 크게 둘로 나눠서, 율법에서 벗어난 자와 율법 아래 있는 자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에게 멜기세덱의 반차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으나, 그렇다고 신약시대에 와서 누구나 주님을 믿기만 하면 그 반열에 들어서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르심을 받고 빼냄을 얻어 진실하게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라야 합니다. 이런 성도와 순교한 자 및 주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무덤에서 일어난 구약시대의 선지, 성인들, 도합 14만 4천 명이 이 멜기세덱의 반열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 [목차] http://blog.naver.com/websearch/70018476324 : 에덴성회 설교1집 (1974년) [출처] 에덴성회 홈페이지 ( http://www.ieden.kr/ ) [출처] [에덴성회] 설교1집 - 29. 아론의 반차와 멜기세덱의 반차|작성자 까미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