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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3: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엄하신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되던 날, 나는 성적표를 받고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내가 항상 '수'를 맞는다며 친구분들에게 자랑하시던 아버지께 '우'가 두 개나 있는 성적표를 보여드릴 수 없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우'자를 '수' 자로 고쳤지만, 곧 들통이 났고 아버지는 "부모를 속이는 자식은 있을 수 없다"며 큰 호통을 치시다가 급기야 함께 혼나던 오빠와 동생들을 모두 밀쳐내시고는 현관문을 꽝 닫아 버리셨습니다. 어머니가 "추운데 어딜 내보내요. 제발 이제 그만 용서해 주세요"라며 애원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춥고 막연한 두려움에 눈물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습니다. 잠시 후 안방 불이 꺼지자 어머니께서 나와 우리들을 몰래 방으로 들여보내고는 내일 아침 일찍 아버지께 용서를 빌라고 하셨습니다. 내일 닥칠 일이 너무 두려워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누군가 조용히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이불을 잘 덮어주었습니다. 어머니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였습니다. 놀란 나는 얼른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아버지는 한참 동안 우리를 지켜보더니 나가셨습니다. 이내 문밖에서 "추운데 애들 이불 하나 더 덮어주구려"라고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낮은 울타리」 1998.1
어린 아들은 아버지가 그렇게 하시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깨닫게 됩니다.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버지를 가르쳐주려고 하신 것입니다. 어리석게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여 살아갑니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을 놓칩니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 주어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때로 그 추위에 밖으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의 눈을 가립니다. 죄는 진실을 바로 판단하지 못하게 가짜를 함께 섞어 놓습니다. 죄는 하늘에 살아야 할 사람을 땅에 집착하며 살도록 속게 합니다. 그래서 하늘의 일을 이야기할 때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하늘의 일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알고 따를 수 있습니다. 그 깨달음에 대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고난과 시련의 기간을 지내면서 깨닫습니다.
오늘 본문의 등장인물은 니고데모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시신을 위해서 귀한 향품을 준비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분명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럼 그가 성경에는 소개하고 있지 않지만 어떤 분명한 전환점을 맞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안타깝게도 많은 부분을 숨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아니면 볼 수 없습니다. 믿음의 상상력을 갖지 않으면 결코 깨달을 수 없습니다.
니고데모가 거듭남이 없었다면, 다시 태어남이 없었다면, 땅이 일이 아닌 하늘의 일을 알지 못했다면, 그는 예수님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분명 하늘의 일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고난과 시련의 순간을 분명히 보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육적인 일을 통해서 영적인 일과 관련이 있는 일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보면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 역시 이 순간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베드로가 겪었던 시련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한순간입니다. 바요나 시몬아 내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 며칠 지나지도 않아 나락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한 그 순간이 그에게는 광야와 같은 길을 걷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길은 예수님을 만나고 꽃길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땅에 일만 생각하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간 시련의 기간을 통해서 그는 하늘의 일을 알게 되고 하늘의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도 시련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변화의 과정으로 들어가려면 시련은 필수입니다. 그 과정은 우리를 깨워 단단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흔드시는 하나님, 세우시는 하나님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저자이신 목사님은 이렇게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소개합니다.
과거 직장생활을 할 때 있었던 일화입니다. 저자는 성격이 좀 급하고 사람을 쉽게 믿는 편이고 일 처리도 빠르기 때문에 세상 적으로 보면 사람들이 자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평가를 한다고 합니다.
한번은 자세히 살피지 않고 서명을 한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는 본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담당자가 평소에 영리하고 꼼꼼한 성격이라 믿고 서명을 한 것입니다. 그 일은 큰 회사가 부도가 났는데 미리 받은 보험증서를 첨부하여 보험사에 청구했으나 거절된 것입니다. 해당연도가 10월30일까지가 보험 기한인데 10월31일에 부도가 난 것입니다.
보험사도 회사도 10월31일이라는 것을 놓친 것입니다. 이에 법적 공방이 4개월 넘게 이어졌습니다. 결과는 법정에서 보험 기간을 1년으로 보는 관례에 따라 10월 31일까지 봐야 한다고 해서 보험회사가 그 부분을 안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보험 기간의 날짜가 중요해졌습니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해결되었다가 아니라 그 고난과 시련의 기간에 인생에서 가장 가까이 하나님에게 나아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기간에 하나님께 급하고 바람 같은 성격을 다듬어달라고 기도하고, 신중하지 못한 성품을 고쳐달라고 기도하고 기도하며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에 특별히 더욱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퇴근 후에 바로 집으로 교회로 향했고 새벽기도를 포함해서 모든 영적 활동을 다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주변 동료 8명과 회사의 신우회를 만들어서 예배하였고 결국 그 문제가 해결됨을 주변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알고 그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땅에 살면서 하늘에 사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그것은 이 과정을 겪으면서 하늘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 과정을 사도들이 겪었던 것입니다. 그 과정을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 가운데 영적으로 살았던 수 많은 이들이 겪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을 봤기에 하늘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이 김수명 장로님이 돌아가신 지 1주기였습니다. 장로님과 이야기해 보면 하늘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늘 입에 하늘의 이야기를 달고 사셨습니다. 죽기 전에 영상에서도 자녀들에게 하신 말씀도 하늘 이야기였습니다. 그냥 그렇게 장로이기에 하신 말씀이 아니라 고난의 과정을 통해 깨달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있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두 번째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에 깨닫습니다.
제자들이 변화되어 하늘의 일을 이야기한 것은 분명 죽었다고 믿었던 예수님을 다시 만난 후입니다. 그들은 정말 예수님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0.1%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들은 땅에 일이 아닌 하늘의 일을 전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로 바뀐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의 땅에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땅에 재물에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땅에서 살아가는 연수에 목을 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이야기를 할 때에 어떤 문제들이 풀렸는가 하면 예수님의 말씀이 다시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듣고 깨닫지 못하고 흘려 들었던 이야기를 이제는 분명하게 그 의미를 알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그 시대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바울이 예수님을 다메섹에서 만난 그 사건을 기록해 놓은 것은 너무도 감사한 일입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의 몸을 직접 본 것이 아니라 음성을 듣고 영적인 체험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얼마든지 지금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양한 방법과 시간을 통해서 나를 만나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 내시고 우리로 하여금 땅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땅의 일을 생각할 때는 핍박 자이었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넘겨주고 때리고 박해하고 권세를 휘두르는 자였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그가 하늘의 일을 하게 될 때는 그 자신이 박해와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는 너무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때에 감사가 넘쳤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하늘의 일을 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의심 많은 도마에게 하신 말씀을 생각해 보면 좋습니다.
요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얼마나 감사한 말씀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공동체 생활을 함께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분량은 다 다릅니다. 아직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미 딱딱한 음식을 충분히 소화해 낼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 말은 하늘의 일을 이해할 수 있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땅의 일만 이해하는 성도가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감사한 것은 처음부터 하늘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은 없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훈련을 받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만나야 합니다.
그때 만날 수 있습니다. 만나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닫혀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내가 내 안에 닫혀 있는 문을 열어야 하늘이 내게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안에 녹슬고 꽉 닫힌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늘의 일을 믿게 됩니다. 그때 하늘의 일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때 하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을 더 가까이 하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할렐루야
세 번째 사명을 감당해 나아가면서 깨닫습니다.
우리나라 축구선수 중에 외국에서 활약하는 이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선수가 손흥민일 것입니다. 또 미래가 기대되는 선수가 있습니다. 그는 스페인에서 뛰고 있는 이강인 선수입니다. 그는 발렌시아 팀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행복해하지 않습니다. 그는 분명 세계적인 선수이며 앞으로 더 크게 성장할 선수이지만 그가 속한 팀의 감독이 그를 시합에 내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상당히 우울해합니다.
생각해보면 뭐 시합에 나가지 않는다고 그럴까? 연습경기도 있고 개인훈련을 하면 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시합에 나가지 않으면 감각이 떨어지고 결국 잊어지는 선수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경기에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국가 대표도 선수로 발탁이 되고 많은 연봉을 받고 또 더 나은 리그로 진출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제자들이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후에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멈추었다면 그들은 하늘의 일을 조금씩 잊어버리고 다시 땅의 일에 집중하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계속해서 하늘의 일을 잊지 않고 오히려 더 뜨거워졌던 것은 그들이 예수님께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하면서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이 실현되었다는 말씀을 전하는 일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계속해서 고난을 받았습니다. 붙잡히고 매를 맞고 겁박 당하고 내 쫓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들은 더 강해졌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나라를 고백하며 선포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멈춘 것이 아니라 이런 이유가 있지만 저런 이유가 있지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멈추지 않은 것입니다.
그때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능력을 곳곳에서 일어났습니다. 멈추지 않고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의 나라를 믿고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하면서 자신이 겪었던 간증을 쏟아냅니다. 그게 정말 가능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고후11: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11: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11: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 중에 하나라도 겪는다면 다시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바울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명을 실천하기 위해서 겪는 시련은 오히려 그의 믿음을 더 담대하게 해 주었고 하늘을 향해 더 분명한 목표를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은 하늘의 일을 말하게 됩니다.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멈추고 있는 이들은 땅에 걱정과 염려를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늘의 일을 말하고 있는데 그 말씀이 내게 와닿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직 깨달음의 자리에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내가 그것을 원하고 있지 않은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 그 자리에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그렇게 이끌 것입니다. 그때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지금 그런 과정에 있거든 땅에 일을 보려고 하는 고집에서 하늘의 일을 보려고 말씀으로 훈련하고 기도로 더 깊이 하나님을 만나려고 힘을 쏟으시기 바랍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하늘의 일을 깨닫고 바라보고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인생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아들 스데반은 죽음 직전에 하늘 문을 열린 것을 봤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았을 때 하늘 문의 열림을 볼 수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