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17. 9. 8. 금요일이다.
요즘은 날씨가 온화해서 무척이나 살기 좋은 계절이다.
카페에서 이채원 님의 '호박 넝쿨'이라는 산문 글을 보았다.
호박 넝쿨이란 단어로도 나는 빙그레 웃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이기에.
일전 나는 충남 보령지방 시골집에 도착했다.
자동차에서 내리자마자 울안으로 들어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는 텃밭에 들어섰다.
어둬지는 저녁 무렵인데도 텃밭을 훑었다.
한 달이 더 넘도록 방치한 탓일까. 풀이 너무나 극성스럽게 웃자랐으며, 방울토마토, 아삭이고추, 가지 등을 심은 두둑은 사람이 드나들 수가 없을 만큼 이들 식물의 줄기가 웃자라서 마구 헝클어져 있었다. 여기에 윗 두둑에 있는 돼지감자 줄기가 바람에 쓰러졌고, 호박넝쿨이 또 마구 덮어져 있었다.
올 봄, 예초기(풀 깎는 기계)로 겨울을 보낸 풀을 깎은 뒤에 잘린 풀을 갈퀴로 긁어 냈다. 그런 뒤에 관f리기(작은 경운기)로 땅을 갈고 골을 냈다. 쇠스랑으로 흙을 부수고, 삽으로 두둑을 예쁘게 다듬었다.
그런 뒤에 호박 씨앗을 묻었고, 싹 튼 모종을 옮겨 심었다. 거의 200포기 쯤.
7월에 시골 내려가서 확인하니 호박 모종은 자라지 못한 채 잡초에 치여서 보잘 것이 없었다.
이번 8월 말에 또 시골 내려가서 확인하니 실망이었다.
풀이 덜 난 곳에서는 호박넝쿨이 마구 자라고 뻗어서 아무 데나 얼키설키 엉켜 있었다. 이따금 애호박도 매달렸고, 누렇게 퇴색한 호박도 있었다. 꼭지 떨어진 호박은 썩어서 문들어졌고, 썩은 호박에서는 호박벌레가 가득 배어 있었다. 크기가 1cm를 넘는 애벌레는 스프링처럼 등을 굽혔다가 공중으로 튕겨 올랐다. 20 ~30cm나 멀리 튕켰다.
다음날부터 나는 텃밭에서만 살았다.
끼니 때에만 울안으로 들어오고는 늘 밭에서만 머물렀다.
저녁밥을 먹고는 이내 쓰러져서 잠을 곤하게 잤다. 너무나 피곤했기에.
올 호박농사의 수확량은 별로일 것으로 예상한다.
모종이 자라야 할 봄철에는 지나치게 가물었고, 꽃이 많이 피는 7~8월에는 잦은 비로 암꽃이 별로 피지 못했고, 또 호박벌도 활동을 제대로 못해서 암꽃 수정이 적었다는 듯이 애호박은 별로 눈에 띄이지 않았다.
8월 말이나 9월 초순에서야 날씨가 조금 들었는지 이제서야 노란 호박꽃이 피기 시작했으나 시기는 이미 늦었다. 호박은 저온냉해를 입기에 9월 초부터는 빠르게 잎이 말라죽기 시작한다.
지금이 바로 9월 초이다.
올해에는 호박 모종을 200포기 쯤을 밀식해서 심었다. 살면 좋고, 죽으면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밀식했다.
내가 서울에서 오랫 동안 머물렀기에 잠깐씩 시골에 들르는 바람에 밭 두둑을 조금밖에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은 모종을 뽑아서 내버려야 하는데도 그냥 다 이식했다. 밀식재배한 탓일까? 성장세가 아주 불량했다. 잡초에 치이고, 잦은 장맛비에 땅에 수분이 과다했기에 뿌리 발달이 아주 나빴다고 본다.
올해에는 늙은 호박 몇 개나 딸까?
기대는 접어야 할 것 같다. 지난해에는 심한 가뭄으로 호박을 80~90통 정도나 걷어들였지만 올해에는 이보다 훨씬 못할 것 같다. 고작 20~30통도 안 될 것 같다. 크기는 더욱 보잘것 없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호박은 서민 음식이다. 값 싸면서도 양껏 먹을 수 있다.
아쉽다. 올해에는 수확량이 보잘 것 없을 것 같기에...
며칠 뒤 시골로 내려가면 그새 얼마쯤 애호박이 매달렸는지를 확인해야겠다.
호박이 9월 말이나 10월 초까지도 열매 맺고, 컸으면 싶다. 늙은 호박을 잔뜩 수확하면 겨우내 훌륭한 양식거리, 간식거리를 만들 수 있다.
지난해 8월 말에 일찍 걷어들인 호박은 올 6월까지 아홉 달 넘도록 먹었다. 따뜻한 곳에 놔두면 10개월간은 너끈히 보존할 수 있다. 내 경험으로는.
2.
나는 제목을 '수필이 더 좋다'라고 정한 뒤에 잡글 쓰기 시작했다.
시는 글자 숫자가 무척이나 적다. 어떤 시는 100자도 안 되고, 보통은 100~200자이고, 많아도 300자 이내였다. 이렇게 짧은 글자로는 생활 이야기를 제대로 쓸 수 없다.
위와 같은 잡다한 내용을 시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나로서는 고개가 흔들어진다. 전혀 불가능하다.
시에 비하여 수필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늘여서 쓸 수 있기에 나는 수필을 좋아한다.
사실은 말이다. 나는 시는 고사하고 수필조차 모른다.
시는 밥 안 먹고, x도 안 싸고 사는 사람이나 쓰는 글 같다. 지나치게 어떤 형식(룰)에 얽매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이유로 나는 잡글이 좋다. 잡글이라고 하면 품격이 떨어지나? 그럼 산문이라고 높여서 부르자.
내가 아무리 잡글을 쓴다고 해도 마구잡이로 쓰지는 않는다. 내 나름대로 오랜 생활의 경험에서 우러나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일전 나는 국보문학 사무실에 글 하나 전송했다. 문학지 동인집에 수록해 주십사 하고. 그 글은 초안부터 지금껏 60번도 훨씬 넘게 고치고 다듬었다. 왜? 잡글도 정성들여서 쓰고 다듬는 것이기에.
오늘 어떤 시를 읽었다. 그 짧은 글에서 나는 잘못된 글자를 보았다.
'보네다'라는 단어. 혹시나 싶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이런 단어는 없었다.
'보내다'라는 동사를 '보네다'라고 잘못 썼다고 보았다. 인터넷에는 '보네다'로 쓴 글이 한참이나 있었다.
우리말을 소리로 적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뜻일까?
불과 100 ~200자 이내의 그 짧은 시조차도 단어를 틀리게 쓰면 무척이나 그렇다.
시를 모르는 나한테는 더욱이나 고개를 가우뚱하게 마련이다.
3.
나는 시골태생의 건달농사꾼이다.
어린시절부터 객지에 나가 살았다고 해고 본질은 촌태생이고, 더군다나 퇴직한 뒤 그참 고향으로 내려가서 텃밭농사를 짓는 체를 했기에 농작물을 보면 한눈에 무엇인가가 들어오게 마련이다.
애호박, 늙은 호박의 겉만 보아도 그게 상품인지 하품인지를 금세 알 수 있다. 늙은 호박이라도 색깔을 보면, 호박의 뒷면 배꼽을 보면 그 호박이 병이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도 짐작할 수 있다.
일전 시골집에 있을 때다.
꼭지가 떨어진 호박 몇 덩어리를 주워서 울안으로 가져 왔다.
며칠 뒤에는 모두 능정거리며 썩어서 형태가 사라졌다.
왜? 멀쩡해 보이는 늙은 호박 속에는 호박애벌레가 독을 뿜어서 호박을 쉽게 썩게끔 했으며, 애벌레가 바깥으로 나와서 스피링처럼 튕겼다. 10 ~ 30cm나 멀리 튕겨서 이동하고 있었다.
벌레일 망정 자연의 경이로움이었다.
애벌레가 파 먹는 호박은 외모는 멀쩡해도 속은 엉망이다.
이에 비하여 어떤 호박은 크기가 작아도 제법 무겁고, 탄탄하고, 짱짱하다. 이런 호박이 진짜로 좋은 호박이다. 물론 크고 굵다면 더욱 좋은 농산물로 취급된다.
문학글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 말과 글로 마찬가지일 거다. 표현하기 어려운 그 어떤 느낌과 감이 한눈에 오게 마련이다.
4.
막내아들을 보았다.
아내가 성당모임으로 외출했기에 아들한테 물었다.
'요즘 여자 친구와 잘 사귀니? 어느 정도껏 진전이 된다면 아비한테 살짝 여자 친구를 소개해 주렴. 네 어미한테는 비밀로 하고.'
'사귀는 중인데, 성격이 조금 괴팍스러워요. 쉽게 화를 부르르 내고, 금방 사그라지고. 멋대로인 것 같아요.
내년 봄에 결혼할까 하는데, 돈 보태 줄 수 있어요?'
'아비가 사는 아파트로 들어와 살아.'
'에이, 형한테는 얼마 보태주었듯이 저한테도 보태주어야 하지요. 어떻게 같이 살아요?'
라며 불만스럽게 말하는 아들의 말에 내가 이내 항복했다.
'알았다. 아비가 어떻게 해 볼 게. 너는 여자 친구하고 잘 사귈 궁량이나 대. 사람됨됨이도 확인하고...'
라고 긍정적으로 말했으나 속은 그게 아니었다.
내가 무슨 돈이 있다고.
미관말직으로 퇴직한 뒤로는 그래도 푼전이 있어서 자식 셋을 시집 장가 보냈고, 늙은 어머니 병원비이며 장례비이며, 상속비용을 충당했다지만 지금은 빈털이다.
별 수 없다. 잠실 아파트를 저당잡혀서 돈 마련하고..., 그도 안 되면 나 혼자서라도 시골 내려가 살아야 할 터. 서울 아파트의 내 방을 비워 줄 수밖에.
그건 나중의 일이다. 어찌 되겠지. 지금껏 내 일생은 그랬다. 꾸역꾸역 되살아나서 지금껏 일흔 살이 되도록 살고 있다. 쥐구멍에도 볕 뜰 날이 있는 것처럼.
나는 일하다가 지치면 쉬고, 밥 먹고 x 싸고, 밤에는 엎질러 자는 보통사람이다.
아쉽게도 요즘은 직장이 없어서 빌빌거리고, 늙은 탓인지 무릎 아프다는 핑계로 울안에만 갇혀 있는 늙은이다. 늙은것이 되어서 자꾸만 뒤로 밀리면서 천대받는다. 내세울 게 하나도 없고.
가난한 아비로 전락한 내 꼬라지가 답답하다.
곧 결혼시켜야 할 막내아들의 돈 문제는 어떻고?
남의 집으로 전월세 사는 큰아들은 식구가 넷이나 되는데...
주택 임대기간이 지났을 것 같은데도 나나 아내는 아들내외한테 묻지도 못한다.
마음이 답답한 현실이다.
이런 내가 요즘 서울에 올라와서는 무슨 문학한다고 시, 수필, 산문 운운하는 꼬라지가 무척이나 그렇다.
내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질적인 세계이다.
이렇게 늘어나는 잡스러운 내용을 글자 100~300개로 압축해서 쓴다면 그 시는 어떤 모습일까?
그게 가능할까?
웃긴다. 내가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에 들어와서는...
2017. 9. 8.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