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한흠(71) 목사는 1978년 교회를 개척했다. 당시 교회 명칭은 ‘강남은평교회’였다. 81년 ‘사랑의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개척 초기였다. 주일 예배를 보는데 낯선 여성이 들어왔다. 작은 키에 볼품없는 얼굴이었다. 맨 뒷자리에 숨다시피 앉아서 설교를 들었다. 고개도 끄덕였고, 눈물도 글썽였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기 전에 서둘러 사라졌다. 매주 그랬다. 옥 목사는 몇 번이나 그 여성을 만나려고 했다. 그런데 번번이 실패했다. 한 달이 지나서야 옥 목사는 그 여성 교인을 붙들었다. 수줍어하는 그녀에게 주소를 묻고 심방을 약속했다. 며칠 후 찾아갔더니 으리으리한 양옥이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옥 목사는 안으로 들어섰다. 그 여성은 입주 가정부였다. 주일 낮 예배를 위한 외출만 허락을 받은 터라 늘 서둘러 예배당을 나왔던 것이다. 집주인이 자리를 비운 참이었다. 거실에 앉는 게 어색했다. 옥 목사는 신을 신은 채 현관 마루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이혼과 자살 기도, 양잿물에 녹아버린 식도 수술과 후유증, 오랜 식모살이 등 고통과 눈물로 뒤범벅된 그녀의 사연을 들었다. 옥 목사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가 없는 일생”이라고 했다. 시간이 갈수록 교회의 교인 수는 늘었다. 개척 후 7개월이 지나자 100석 규모가 모자랐다. 서초동 진흥아파트 옆으로 교회를 옮겼다. 교회가 커지면서 강남의 부유층과 인텔리 등, 화려한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와 함께 그동안 사랑의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했던 가난한 교인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옥 목사는 가슴이 탔다. “제발, 교회를 떠나지 말아달라”며 소매를 붙들고 눈물로 하소연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교회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몸담기에는 너무 부담스럽다. 목사님도 사랑하고, 교회도 사랑한다. 그렇지만 우리 같은 신세가 기댈만한 교회는 아닌 것 같다. 죄송하다”며 떠나갔다. 그들은 주로 파출부거나 전세방에 사는 노동자, 혹은 구멍가게 아줌마들이었다. 그래도 그 여성 교인은 늘 촌스런 한복을 다려 입고 꿋꿋하게 사랑의교회를 다녔다. 표정도 밝았다. 집사도 됐다. 강남의 기라성 같은 교인들 사이에서도 그녀는 기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쓰러졌다. 병원에서 받은 약 봉투를 들고 옥 목사의 집을 찾아간 그녀는 몸져누웠다. 그 길로 옥 목사의 집에서, 옥 목사의 품에 안겨 세상을 떠났다.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였다. 옥 목사는 자신의 집에서 3일장을 치렀다. 200여 명의 교인도 함께 장례를 치렀다. 옥 목사는 지금도 그녀를 “가장 기억에 남는 성도”로 꼽는다. 이유가 있다. 사랑의교회를 처음 세울 때의 목회 방향, 그 선 상에 그녀가 있기 때문이다. 고통 받는 이들, 소외 당하는 이들을 위한 교회 말이다. 그건 또한 옥 목사의 영적 지향이기도 했다. 옥 목사의 설교는 늘 ‘그리스도의 심장’을 향했다. “세상의 권위, 세상의 잘남이 아니라 나의 죄, 나의 부족함을 보라”고 했다. 그리고 설교 때마다 자신을 먼저 가리키며 “내가 바로 죄인”이라고 고백했다. ‘다른 교회의 세습 문제’로 세상이 시끌시끌한 와중에도 옥 목사는 2004년 후임 오정현(53) 목사에게 담임목사직을 넘겼다. 정년을 5년이나 앞둔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사랑의교회를 단순히 ‘서울 강남의 대형교회 중 하나’로만 치부할 수가 없는 이유다. ‘사랑의교회’라는 이름이 갖는 상징적 위상과 건강한 지향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의교회가 최근 도마 위에 올랐다. 서울 서초동의 대법원 맞은편 7533㎡(2278평)의 땅에 2100억 원(부지 값 1174억 원 포함)을 들여 지상 12층짜리 새로운 교회 건물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다. 개신교계 안에서도 시끄럽고, 개신교계 밖에서도 논란이다. 크리스천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출석 교인이 4만5000명이다. 공간이 턱없이 모자란다. 더 큰 성전을 짓는 건 현실적인 타개책이다” “신축 건물이 크다는 것만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 건물을 짓고 난 후에 어떤 사역을 할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옹호론도 있다. 비판도 만만찮다. ‘사랑의교회 건축 포럼’까지 열렸다. “사랑의교회 신축은 메가 처치(Mega Church) 현상이다. 그런 현상의 근원은 개교회주의다”(열음터교회 신광은 목사) “사랑의교회에선 건축에 필요한 금액이 달성되는 주일을 ‘할렐루야 주일’로 정하는 등 기복주의적이고 감성적인 방법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했다. 그 동안 개혁적 복음주의 그룹을 이끌어 온 사랑의교회가 건축을 진행하면서 비성경적, 비신학적 개념들을 사용한 것은 실망스럽다.”(부천예인교회 이진오 전도사) 등의 의견이 쏟아졌다. 사랑의교회가 좁은 건 사실이다. 4만5000명의 출석 교인이 실제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 예배를 보는 본당의 수용인원은 2000명에 불과하다. 주일에 5~6부 예배를 봐도 1만~1만2000명만 수용할 수 있다. 나머지 인원은 교육관 등에서 스크린을 통해 예배를 봐야 한다. 주차 공간도 모자란다. 인근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차를 대지만 역부족이다. 그런 불편 때문에 교회를 옮기는 교인도 있다. 그런데도 ‘사랑의교회 2100억 원 교회 신축’ 소식을 접한 이들은 쉽사리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오히려 실망한 표정이다. “굳이 강남에 지어야 하나?” “지금 교회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8㎞ 떨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액수가 너무 과하다” “교회의 대형화를 부추긴다” 등 여러 의견이 나온다. 이런 지적들의 바탕에는 ‘공통된 우려’가 깔려 있다. 다름 아닌 ‘사랑의교회의 영적 지향’에 대한 우려다. 예전에 옥 목사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하나님께 가까워질수록 나는 더 작아지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질수록 나는 더 커진다.” 사랑의교회에 대한 교계의 우려, 세상의 우려도 같은 맥락이다. “2100억 원이 소요되는 교회 신축. 사랑의교회는 더 커지는가, 더 작아지는가?” 신축 건물의 외형적 크기를 묻는 게 아니다. 사랑의교회가 그리스도의 영성에 더 가까워지는가, 아니면 세상의 가치에 더 가까워지는가를 묻는 거다. 옥 목사가 교회명을 ‘사랑의교회’로 정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사랑이란 말 속에 ‘십자가의 의미’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제 교계의 우려, 세상의 물음에 대해 사랑의교회가 대답할 차례다. 백성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