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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야 53:6 묵상 —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이사야 53:6 —
제 1 장 화살의 기원
우리가 쏜 것들
"나의 사소한 이기심,
타인을 향한 무심함,
교만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화살이 되었고"
— 묵상 노트에서
겨울 강가에는 기억이 쌓인다.
노교수 조춘식는 일흔의 나이에도
이른 새벽이면 낙동강 제방을 걷는
버릇이 있었다.
안동 들녘을 감싸는 새벽 안개가
강물 위에 낮게 깔리는 그 시각,
사람의 발자국이 채 찍히지 않은
흙길 위에서 그는 혼자였다.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하늘에
별 하나가 마지막 빛을 버티고 있었다.
그는 걸으면서 계산했다.
칠십 년. 이만오천오백오십 일.
그 날들 중에 남을 위해 쓴 날은
몇 날이나 될까.
젊은 시절 그는 야심이 있었다.
야심이라는 것은 처음엔 항상
스스로에게 아름다운 이름을 달고
나타난다.
성취, 열정, 사명.
그는 그 이름들을 믿었다.
그러나 세월이 쌓이고 나이가 거울처럼 솔직해지자, 비로소 보였다.
그것들의 밑바닥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하나의 진실이.
나는 언제나 나를 먼저 챙겼다.
공적인 회의 자리에서 바른 말을
하면서도,
그 옳음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렬되어 있을 때 그는 침묵했다.
후배 교수의 논문에 조언해주면서도,
그 조언이 결국 자신의 연구 성과를
높이는 방향이었을 때 그는 아무렇지
않게 돌아섰다.
작은 이익들이었다.
누가 보기에도 사소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강가에서 그는 이제 안다.
사소한 것들은 모인다.
물방울이 모여 강을 이루듯,
흩어진 이기심의 파편들이 모여
하나의 단단한 화살이 된다.
그리고 그 화살은 언제나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향해 날아간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허물이 다른 사람의 가슴에
꽂혔다.
낙동강은 잠잠히 흘렀다.
강은 아무것도 잊지 않는다.
그 아침,
안개 속에서 새 한 마리가 날았다.
화살처럼.
조춘식은 한참 그 새를 눈으로 좇았다.
새는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무언가가 그의 가슴 한구석을
찌르는 것 같았다.
그 찌름은 통증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오래된 마취가
풀리는 감각이었다.
제 2 장 뒷모습
묵묵히 받아낸 사람
"그 공격을 묵묵히 받아낸 이의
뒷모습을 상상하며"
— 묵상 노트에서
사람의 마음에 남는 것은 앞모습이
아니라 뒷모습이다.
조춘식은 평생 기억 속에 몇 개의
뒷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사진처럼 선명하지 않고
수채화처럼 번져 있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지워지지 않았다.
첫 번째는 1981년의 일이었다.
그가 젊은 강사 시절, 학과장 자리를
두고 선배 교수와 암묵적인 경쟁이
있었다.
조춘식은 자신이 더 젊고 유능하다고
믿었다.
그는 인사권자에게 넌지시 자신의
의사를 내비쳤다.
선배는 밀려났다.
선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복도에서 선배의 뒷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조춘식은 보았다.
그 뒷모습이 사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두 번째는 그의 아내 순임이었다.
오래전 조춘식이 학술지 편집 일을 맡아 집을 비우는 날이 잦아지던 해,
순임은 혼자서 두 아이를 키웠다.
명절마다, 졸업식마다,
아이들의 발열로 밤을 지새우던
날들마다 순임은 혼자 그 자리를
지켰다.
그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아내는 그래야 하는 존재라고.
나중에야 그 생각 자체가
화살이었음을 알았다.
아내는 불평하지 않았다.
단지 말수가 줄었다.
그것이 더 아팠다.
세 번째 뒷모습은 상상의 것이었다.
묵상 중에 그는 이사야 53장을
읽다가 멈추었다.
우리 모두의 죄악을 담당시키셨도다.
그 문장 앞에서 그는 오래 앉아 있었다.
그리고 상상했다.
칠십 년 동안 자신이 쏜 화살들이
날아가는 방향을.
그 화살들이 하나하나 꽂히는 뒷모습을.
그의 뒷모습은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러나 도망치지 않았다.
받아내고 있었다.
조춘식은 그 상상 앞에서 오래 울었다.
노인의 눈물은 뜨겁지 않다.
그것은 차갑게 흐른다.
오래 고여 있다가 결국 흘러내리는
강물처럼.
제 3 장 김형석 교수와 달빛
106세 교수의 고백
"자신의 이익 추구를 위해서 한
행동들이 가장 후회가 된다고
고백했습니다"
— 묵상 노트에서
어떤 고백은 나이를 먹어야만 가능하다.
조춘식은 김형석 교수의 인터뷰 영상을 본 것이 작년 겨울이었다.
106세의 철학자가 카메라 앞에서
말했다.
젊은 시절 자신을 위해 했던 일들이
가장 후회가 되고,
남을 위해 했던 일들이
가장 보람이 된다고.
그 말은 노교수에게 오래된 책의 먼지를 털어내는 것처럼 찾아왔다.
조춘식은 그날 밤 창가에 앉아
달을 보았다.
안동의 달은 크다.
시골 하늘이라 별도 많고, 달도 가깝다.
그는 한국의 달이 항상 이렇게
선명한 것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수록
눈이 맑아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106세와 70세.
두 노인은 결국 같은 것을
발견한 것인가.
조춘식은 자신의 생애를 세 가지 칸으로 나누어 보았다.
첫째 칸 — 나를 위해 한 일이 남에게도 이익이 된 것들.
그것은 훌륭한 리더십의 열매였다.
제자들이 학자로 성장하는 것을 도왔을 때,
그것은 자신에게도 보람이었고
그들에게도 삶의 방향이 되었다.
그 칸은 작지 않았다.
둘째 칸 — 나를 위해 한 일이 나에게만 이익이 된 것들.
그 칸은 생각보다 넓었다.
직함, 수당, 인정, 평판.
그것들을 위해 사용한 에너지가 얼마나 되는지 셈해보면 두려웠다.
셋째 칸 — 남을 위해 한 일이 남에게만 이익이 된 것들.
그것이 가장 좁은 칸이어야 했는데,
돌아보니 실제로도 가장 좁았다.
그러나 그 좁은 칸이 가장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달은 어느 칸도 편들지 않고
세 칸을 고루 비추었다.
조춘식은 생각했다.
106세의 철학자가 죽음 앞에서 후회한다는 것이 어쩌면 은혜인지 모른다.
후회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돌이킬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은 살아있는 자에게만
허락된 특권이기 때문에.
제 4 장 화요일의 밥상
봉사의 원형
"오늘이 화요일인데 매주 화요일에
재직중인 학과 교수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합니다"
— 묵상 노트에서
보람이라는 것은 거창한 곳에
있지 않다.
그것은 매주 화요일에 있다.
조춘식은 은퇴 후에도 매주 화요일
정오가 되면 학교로 나간다.
그의 흰색 그랜저가 교수 주차장에
서면, 재직 중인 젊은 교수 서너 명이
기다리고 있다.
어떤 주는 한식집이고,
어떤 주는 순두부집이고,
어떤 주는 안동 외곽의 오래된 막국수 집이다.
항상 조춘식이 운전하고,
항상 조춘식이 식당을 고른다.
처음에 그것이 시작된 것은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은퇴 직후 캠퍼스가 그리워서 나가다가,
혼자 밥 먹는 후배 교수를 만났고,
그냥 같이 먹자고 했다.
그렇게 한 명이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었다.
다른 학과 은퇴 교수들은
부러워한다고 했다.
그들에게는 돌아갈 자리가 없었다.
조춘식은 그 말이 쑥스러웠다.
자신이 특별한 것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함께 밥을 먹고 싶었던
것뿐이었으므로.
그러나 묵상 중에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 단순한 것이
본질인지 모른다.
예수님도 밥상을 차렸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숯불을 피우고
생선을 구웠다.
제자들이 밤새 그물을 던지다
돌아왔을 때,
그는 이미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라, 와서 먹으라.
그 문장 안에는 교리가 없었다.
설교가 없었다.
밥만 있었다.
조춘식은 화요일 밥상이 그 원형의
작은 메아리라는 생각을 했다.
대단한 연결이 아니다.
그러나 작은 것들 안에 큰 것이
깃드는 법이다.
씨앗은 작고, 나무는 크다.
그날 김치찌개를 함께 먹으며,
막내 교수 박진혁이 말했다.
"교수님, 저는 이 시간이
일주일 중 가장 기다려집니다."
조춘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웃었다.
그 웃음 속에,
칠십 년을 살아오며 처음으로 느끼는
어떤 조용한 충만함이 있었다.
제 5 장 믿음 없이는
본능을 거스르는 일
"이론적으로는 원리를 안다고 할지라도 믿음이 없으면 행동으로 실천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 묵상 노트에서
모든 생명체는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을 먼저 챙긴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라 사실이다.
세포 하나도 막(膜)을 치고
자신을 지킨다.
나무도 가뭄이 들면 가지부터 말린다.
심지어 어머니조차,
사랑이 지극할지라도 마지막 숨결에서 자신의 몸을 지키는 반사가 작동한다.
그러므로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조춘식은 오랫동안 이것을
의지의 문제로 알았다.
더 강하게 결심하면 될 것이라고.
더 단단히 마음먹으면 될 것이라고.
그러나 세월은 그에게 가르쳤다.
의지는 지친다.
결심은 무너진다.
인간의 선의(善意)는 여름 얼음처럼,
처음에는 단단하다가 결국 녹는다.
그가 이십 대에 읽었던 윤리학 책들은 아름다운 말로 가득했다.
칸트의 정언명령,
공리주의의 최대 행복,
덕의 윤리학.
조춘식은 그 모든 것을 머리로 알았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사는 것
사이에는 강이 있었다.
그는 그 강을 건너지 못했다.
아니, 건너는 날도 있었지만
돌아오는 날이 더 많았다.
믿음은 그 강을 건너는 방식이 달랐다.
믿음은 강을 없애지 않는다.
그러나 강 건너편에 서 있는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준다.
그 손을 잡으면,
물이 깊어도 발이 움직였다.
그것이 조춘식이 일흔이 되어서야
이해한 것이었다.
캠퍼스 복도에서 그는 오래된 동료
이학수를 만났다.
이학수는 조춘식보다 두 살 위였고,
평생 신앙 없이 살아온 철저한
이성주의자였다.
학문적으로 탁월했고, 품격도 있었다.
그러나 조춘식이 보기에,
그는 일흔이 되어서도 여전히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기를 원했다.
대화는 항상 자신의 업적으로 돌아왔고,
불편함은 항상 남의 탓이었다.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인간의 기본값이었다.
은혜가 없으면 인간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조춘식은 그 앞에서
우월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 안타까움이,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아들을 보낸 이유를 희미하게나마
이해하게 했다.
제 6 장 마지막 기회가 아니라
아직 늦지 않은 것들
"너무 늦었다고 포기하지 말고
꼭 붙드라는 호소를 하신 것 같습니다"
— 묵상 노트에서
강은 하구에서도 흐른다.
조춘식은 그 이른 아침,
낙동강 제방 위에서 오래 서 있었다.
안개는 이제 걷히기 시작했다.
강 건너편 산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이 물러나는 방식은
항상 갑작스럽지 않다.
조금씩,
층층이,
그렇게 빛은 온다.
칠십 년.
그는 많은 것을 놓쳤다.
그러나 아직 오늘이 있다.
오늘이라는 단어는,
나이가 들수록 다르게 들린다.
젊을 때의 오늘은
무한한 내일의 예고편이었다.
일흔의 오늘은
그 자체로 완결된 하루이다.
낭비할 수 없는 것이어서,
오히려 더 소중하다.
그는 오늘 화요일,
또 젊은 교수들과 점심을 먹을 것이다.
어느 식당으로 갈까
이미 생각해 두었다.
안동 시내에 새로 생긴
된장찌개 집인데,
사장이 청각장애인이고
혼자 운영하는 곳이라고 들었다.
거기 가보자 싶었다.
그것이 화살을 쏘지 않는 방법이었다.
아니, 더 나아가,
화살을 되돌리는 방법이었다.
조춘식은 자신이 구원에 관한 이론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속이라는 신학 언어의 모든 깊이를
꿰뚫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안다.
누군가가 그의 화살들을 대신 맞았다.
그리고 그 뒷모습이 쓰러지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으로 오늘을 살 수 있다.
안개 속에서 새가 다시 날았다.
이번엔 두 마리였다.
그들은 같은 방향으로 날았다.
함께.
낙동강은 여전히 흘렀다.
강은 하구에서도 흐른다.
거기서도 바다로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