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초입쯤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다 갈비뼈가 부러졌고 의사로부터 뼈가 다 붙고 운동능력을 되찾을 수 있을 때까지 넉넉하게 2달은 걸릴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행히 부러진 갈비뼈는 많이 어긋나지 않아서 의사는 나에게 일상생활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말하며 그 대신 갈비뼈를 보호하기 위하여 복대를 차고 다닐 것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갈비뼈가 더 어긋나지 않도록 넘어지거나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당부도 했다.
그렇게 나의 출퇴근길에 ‘갈비뼈 사수’라는 과제가 하나 생겼다. 그러나 생각보다 부러진 나의 갈비뼈를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첫 번째 난관은 앉기도 전에 출발하는 마을버스였고 두 번째 난관은 휩쓸려 타는 만원 시내버스였다.
나에게는 늘 주어진 것보다 조금 더 많은 시간과 여유가 필요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버스에서 자리를 찾을 시간도 사람들 틈 사이의 빈 손잡이만큼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때서야 나는 아무렇지 않았던 나의 출퇴근길이 험한 첩첩산중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이 길을 지금까지 노인은, 아이는, 장애인은, 그리고 갖가지 이유로 아프거나 아팠던 다른 사람들은 지금까지 어떻게 다녔을까? 아니 애초에 다닐 수 있었을까?
그러나 앉기도 전에 출발하는 마을버스기사에게도 할 말은 있다. 2021년 12월의 ‘참여와 혁신’ 기사는 마을버스에 없는 세 가지가 ‘휴식·식사·장기근속’이라고 이야기한다. 배차간격은 비현실적이고 기사는 충분치 않다. 당연히 식사시간도 휴식시간도 화장실을 갈 시간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신체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시간이 보장되지 않은 기사에게 나에게 줄 여유가 있을 리 없다.
만원버스에 꾸역꾸역 몸을 밀어 넣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021년 기준 1928시간으로 OECD 평균보다 199시간 높다. OECD 회원국 중에는 5위이다. 2010년 칠레가 OECD에 가입한 이후 콜롬비아와 코스타리카가 가입하면서, 멕시코와 함께 OECD 장시간 노동국가 1,2위를 다투던 한국은 5위가 되었다. 2016년 기준 한국인의 통근시간은 58분으로 OECD 국가 중 압도적 1등이고 OECD 평균 28분의 두 배를 넘는다. 즉 한국 근로자는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늦지 않기 위하여 만원버스에 위험을 무릅쓰고 꾸역꾸역 몸을 싣는다.
일하는 사람의 여유는 우리 모두의 안전과 직결된다. 일하는 사람이 바쁜 사회에서는 안전도 없다.
나아가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도 있을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시간이 필요한 그 모두를 뒤에 두고 떠나버린다. 달리는 사람들은 남겨질 것을 알기에 더욱 필사적으로 달린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우리는 모두 언젠간 남겨질 것이다.
노동시간이 넘쳐 안전을 위협받는 현실에서 정부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통해 노동시간 유연화라는 노동 정책 기조를 발표했다. 그 골자는 ‘근로시간에 대한 노사의 자율적 선택권 확대’를 표방하며 근로기준법의 1주 최장근로시간한도 52시간을 우회할 수 있는 방안들을 확대하는 것에 있다. 세부적으로 현재는 주 최대 12시간으로 설정된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1주가 아닌 “월‧분기‧반기‧연”으로 확대하는 안,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을 확대하는 안, 탄력적 근로시간제에서 근로시간 사전확정 요건을 완화하는 안, 근로시간 적용제외 대상 근로자의 확대하는 안이 포함됐다.
근로시간에 대한 노사의 자율적 선택권 확대는 기업의 필요에 의한 장시간, 불규칙적 근로시간의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의식했는지 연구회는 노동자 건강권 보호장치와 실근로시간 단축방안도 함께 제안했다.
연구회는 먼저 근로일 사이 11시간 휴식 보장을 노동자 건강권 보호장치로 넣었다. 물론 그마저도 ‘11시간 연속휴식을 부여하는 등 근로자 건강권 보호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언급되며 건강권 보호 정책의 하나의 예시 정도로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근로일 사이 11시간 휴식 보장은 이미 탄력근로시간제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그 노동자 건강권 보장 효과는 미비하다. 고용노동부는 처음 시작한 근로일의 근로가 다음 날로 이어지더라도 연속해 이뤄진 근로는 해당 근로가 종료될 때까지는 전일의 근로에 해당한다고 해석한다. 따라서 11시간 연속휴식이 부여되더라도 하루 근로시간의 상한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론적으로는 24시간 일하고 11시간 쉬어도 무방하다.
정부는 고용노동부의 현행 해석은 언급하지 않은 채 매일 11시간 연속휴식이 부여되는 것을 기준으로, 일 최대근로시간은 1.5시간의 필수 휴게시간을 제외한 11.5시간이며, 일 주 최대 근로시간은 69시간(24시간-11시간 연속휴식-0.5시간*3(4시간마다 30분 휴식)=일 11.5시간, 11.5시간*6일=주 69시간)에 ‘불과’하다고 홍보하였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8시간마다 1시간의 휴게시간을 부여하는 것도 가능하므로, 매일 11시간 연속휴식을 부여하여도, 일 최대 근로시간은 12시간에 달하며, 근로자의 동의를 받으면 휴일근무도 가능하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매일 11시간의 연속휴식이 보장되어도 법적으로 가능한 일 주 최대 근로시간은 7일*12시간=84시간이 된다.)
또, 연구회는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통해 실근로시간을 단축할 것이라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에게 은행통장이 생긴다고 내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듯 나에게 근로시간 계좌가 생긴다고 내 실근로시간이 단축되는 것이 아니다. 근로시간저축계좌제는 연장근로시간을 저축하여 연장수당 또는 휴가로 사용할 수 있게끔 하는 제도에 불과하여 그 시행자체만으로 근로시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권고문에는 실은 노동자 건강권 보호 장치와 실근로시간 단축 방안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평가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근로시간 유연화는 재계의 오랜 염원이다. 시장의 수요는 변동적인데 노동력은 고정비용이다. 공장이 놀아도 근로자의 월급은 나간다. 공장이 바쁘게 돌아가면 근로자의 월급에 더해 연장수당까지 나간다. 경직된 근로시간은 기업의 입장에서는 경제적이지 않다. 변동하는 수요에 맞춰 근로자를 더 쓰고 덜 써가면서 노동력을 유연화 시킬 수 있으면 좋으니 해고가 더 쉬운 비정규 노동과 하청을 늘렸고, 이제는 근로자에게 나가는 연장수당까지 줄이겠다는 심산이다.
나 또한 경직된 출퇴근시간을 선호하지 않는다. 조금 더 바싹 일하고 싶은 주도 좀 더 쉬어가고 싶은 주도 있다. 그렇다고 현재의 주 최장 근로시간 한도인 52시간을 넘어서서 일을 하고 싶지 않다. 정부안대로 일주일에 69시간을 일할 수 있어, 주6일 기준으로는 하루 11.5시간 일하고 소위 보상으로 휴가나 단축된 근로시간을 받고 싶지도 않다.
장시간 노동의 폐해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학생 때 24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내고 온 날 신호를 잘못 봐서 빨간불에 건너려고 한 것을 행인이 붙잡아 준 적이 있다. 주말 없이 일했던 어느 주에는 친구에게 넘어져서 크게 다칠 뻔했다고 말하며 다행이라고 말하는 대신 아쉽다고 말한 적이 있다. 2주 연속 주말 없이 일했던 때에는 정기적으로 찾던 병원에서 이전에는 우울증상이 경미했는데 우울증으로 진단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우울증상이 심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잠을 많이 못 잔 날에는 술을 마신 것처럼 기억이 흐릿하다.
고용노동부는 고시 제2022-40호에서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의 업무상 요인을 판단할 때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을 초과하였는지를 주요 요인으로 고려한다. 또한 주 평균 52시간을 초과하는 근무와 근무일정 예측이 어려운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를 심혈관계 질환과의 관련성이 높은 업무환경으로 보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주 60시간 이상 근무한 근로자의 경우 일반 근로자와 비교하여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47.7%, 정신질환 발생 위험은 28.8%, 사망 위험은 9.7% 높아진다. 장시간 노동은 수면 감소, 피로, 스트레스, 부정적 감정, 불편감, 통증, 신경학적 장애, 인지기능 장애, 생리학적 변화를 초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WHO는 야간노동은 그 자체로 DDT와 같은 등급의 2군 발암물질로 본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에서 낸 자료에 따르면 2021년 565명이 과로사했다. 2021년에 산업재해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828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노동환경에서도 사고만큼이나 일터에서의 죽음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과로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부의 효율성 증대를 위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과로 정책이 아니라 모두의 번영을 위하여 노동자에게 시간과 여유를 주는 정책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저서 ‘회복력 시대’에서 이미 현실로 다가온 기후위기가 우리가 그동안 삶과 사회의 기준으로 삼았던 가치들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한다. 이전의 시대에서 자연이 고갈 돼도 끝없는 물질적 풍요를 향해 더 빨리 증진하는 것을 가치로 삼았던 효율성이 최고의 가치였다면 기후위기는 인간에게 유한한 지구 환경에 적응할 것을 요구한다. 스스로 무한히 확장할 것이라 믿었던 인류는 기후위기를 직면하며 스스로가 지극히 유한한 존재임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그는 우리는 이미 효율성에서 적응성으로, 생산성에서 재생성으로, 성장에서 번영으로, 소비자주권주의에서 환경책임주의로, 국내총생산(GDP)에서 삶의 질 지수(QLI)로 우리의 삶과 사회를 평가하는 시대로 들어섰다고 이야기 한다.
이제는 앞으로 달리려 해도 우리가 만든 부산물에 쌓여 달릴 수조차 없는 시대에 도래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생산과 소비를 위한 우리의 활동이 지구의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직면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외면하려 해도 장시간 노동은 몸에 상흔을 남기고, 끝없는 질주가 많은 사람들을 소외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면해야 한다.
더 많이 만들어내기 위하여 새롭게 착취할 수 있는 자원과 시간을 찾기보다 가지고 있는 자원과 시간을 더 잘 활용하는 사회가 되기 위하여 소비와 투자가 얼마나 늘었는지보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았는지, 얼마나 효율적이었는지보다 얼마나 더 행복했는지를 평가하는 정책이 우리에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