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도가와 지나 역사문화도시 교토에 이르다(히라카타 – 쿄토 32km)
- 제9차 조선통신사 옛길 한일우정걷기 기행록 31
4월 30일(일), 전날 저녁부터 내리던 비가 계속 이어진다. 오전 7시에 숙소의 식당에서 아침을 든 후 8시에 히라카타 역 앞의 공원을 출발하여 교토로 향하였다. 숙소에서부터 우장을 갖추는 등 만반의 대비, 잠시 후 빗줄기가 약해지더니 이내 그친다. 걷는 일행은 50여명, 한일우정걷기 멤버 34명에 당일 참가자가 15명 내외로 전날보다 단출한 행보다.
우장을 갖추고 히라카타 시가지를 지나는 모습
출발 후 10여분 만에 강변에 이른다. 조선통신사들이 오사카에서 교토까지 큰 배에서 작은 배로 갈아타고 올라갔던 길을 좇아 우리 일행도 교토 초입까지 요도 강변 따라 걷는다. 한 시간 가량 걸어 강둑에서 잠시 휴식 후 다시 한 시간쯤 더 걸어 강둑을 벗어나 쿠즈하 역에 이르렀다. 수십 명이 이용할 화장실 찾기도 쉽지 않은 일, 역 근처의 대형 마트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선상규 회장이 아이스케이크를 하나씩 돌린다.
오전 10시 20분에 쿠즈하 역을 출발, 주택가를 지나 잠시 후 한쪽에 대나무 숲이 울창한 넓은 공터에 이른다. 1860년대 막부 군부와 신정부군이 치열한 접전을 벌인 구스바다이도아도(楠葉台場跡) 전적지, 이곳에서 밀린 막부 정권이 교토에서 에도로 퇴각하는 역사의 전환점이 된 전장 터는 이를 알리는 표지판만 덩그러니 세워진 체 황량한 벌판이다. 역사는 승자의 편인가, 이때 들어선 신정부가 현재의 왕통을 잇는 통치세력이다.
전적지 자나자 곧 오사카부 히라카타시에서 교토부 하치만 시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하치만 시 지역을 한 시간여 걸어 이른 곳은 오사카 – 교토 대동맥을 잇는 게이한(京板)가도의 기사츠(木津)다리를 지나 세 하천(桂川, 宇治川, 木津川)이 합류하여 요도가와를 이루는 지점의 제방관리소에 이른다. 이곳에서 점심식사, 근처에 마땅한 식당이 없어 엔도 회장의 친구가 선물한 빵 등으로 대충 점심을 가름하였다.
세 하천이 합류하는 지점의 점심장소
12시 반에 오후 걷기, 외곽지역의 한적한 시가지를 40여분 걸어 이른 곳은 옛 조선통신사들이 배를 타고 와서 교토로 들어가기 위해 내린 선착장 옆의 신사, 연못처럼 작은 선착장에는 옛 일을 모르는 듯 청초한 꽃무리가 화려하다. 선착장이던 곳에서 나와 시가지로 들어가는 도로를 벗어나 桂川 강변길을 한 시간쯤 걸어 번화가로 들어서니 잠시 후 성남궁(城南宮)이라는 신사, 교통사고 등의 액운을 막아주는 대사(大社)라는 표지가 눈길을 끈다. 이전에 휴식하였던 곳이라서 찾아드니 관리인이 음식이나 음료를 들 수 없다고 손을 젓는다. 시가지에 수십 명이 휴식할 장소가 마땅치 않구나.
쫓기듯 성남궁을 벗어나 한 시간 여 걸어 이른 곳은 5층탑이 우뚝 선 도지(東寺), 경내를 관통하여 교토 역 방향으로 가는 길목에 규모가 큰 사찰들이 연이어 등장하는데 그 중 조선통신사가 유숙하였다는 혼칸지(本願寺)도 지난다. 겉으로 보기에도 웅장한 규모의 사찰을 그대로 스쳐 지나는 것이 아쉽다. 교토역 근처의 사거리에 이르니 무슨 축제인지 길게 늘어선 행렬이 볼거리를 제공하고.
녹음이 무성한 도지東寺)에 들어서는 일행
최종목적지인 가모가와 천변의 게이한산산조역(京板三條驛) 건너편에 이르니 오후 5시 반, 32km를 열심히 걸었다.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이고 당일참가자들에게 완보증을 수여한 후 오후 6시에 대기 중인 버스에 올라 숙소로 향하였다. 숙소는 다중이 이용하는 유스 호스텔로 교토에 이를 때마다 단골로 이용하는 곳, 6시 반으로 예약한 만찬시간이 촉박하여 여장을 풀자마자 연회장 별실에 마련한 오붓한 장소에서 이틀간 강행군의 피로를 풀며 유쾌한 시간을 즐겼다. 어느덧 4월 30일, 4월 1일 서울을 출발하여 한 달간 우여곡절을 겪으며 무사히 교토에 이른 것을 자축하는 마음이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5월의 여정도 차질 없이 진행되기를. 대원 여러분, 한 달간 수고하셨습니다. 신록의 5월, 그 기운 우리 모두에게 뻗치라.
교토의 최종목적지 게이한산산조역(京板三條驛) 건너편에 도착하여서
첫댓글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