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Sri Lanka)의 시기리야(Sigiriya) 성채(城砦)
인도의 동남부 인도양의 실론(Ceylon)이라 부르던 섬나라 스리랑카(Sri-Lanka)는 ‘동양의 진주’, ‘인도의 눈물’, ‘실론 티’ 등으로 알려진 자그마한 섬나라이다. 기후는 고온다습한 전형적 열대기후로 삼림이 울창하고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으로 뒤덮여있는 아름다운 나라이다.
스리랑카는 불교국가로 풍부한 불교 유적들, 독특한 민속무용, 친절하고 순박한 국민성, 화려한 코끼리 축제 등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아름답고 풍부한 자연유산과 자원이 있는데도 국민 1인당 GDP 4천 달러 정도라니 가난한 나라에 속하는데 이곳에는 세계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시기리야 성채(城砦)가 있다.
드넓은 열대 대평원 가운데 우뚝 솟은 거대한 원통 모양의 붉고 둥근 바위산(높이 180m) 모양의 성채(城砦)는 수 km 밖에서도 한눈에 들어오는데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높이 180m의 시기리야 성채 / 가파른 바위계단 / 사자발(獅足) 문
AD 5세기, 궁녀소생의 서출(庶出) 왕자였던 카샤파 1세는 아버지가 이복동생인 적자(嫡子)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아버지인 국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하는데 정적(政敵)들에 의한 암살의 두려움에 이 바위산 꼭대기에 궁전을 짓고 이 위에서 18년간 왕위를 차지하고 통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비참한 종말... 48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일생을 마감한 비극의 왕 카샤파 1세가 이 바위산 꼭대기에 왕궁을 지은 것이 바로 시기리야 성채(城砦)이다.
수직의 바위벽을 쪼아 만든 계단과 좁은 바위벽 통로를 올라야만 하는 이 요새는 당시 어떻게 오르내렸는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지금은 철로 만든 원통형 계단과 지그재그식 계단이 있어 오르기가 어렵지 않지만, 오르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현기증이 난다. 오르다 보면 당시에 바위벽을 쪼아 만든 계단 흔적도 보이는데 아찔한 수직에 가까운 바위벽을 어떻게 기어올랐을까, 위로부터 밧줄이라도 내려서 잡고 올라갔을지 신기하기다.
이 시기리야 성채에서 유명한 것은 바위벽을 다듬고 궁녀들을 그린 시기리야 미녀들(프레스코화)이다.
프레스코화는 안료(顔料)를 마른 석고 표면에 직접 칠하는 기법으로, 이집트 벽화들도 이 기법이다.
시기리야의 미녀들(프레스코화)
근대에 만든 원통형 나선 계단을 7~80m쯤 오르면 바위벽을 파내어 만든 높이 2m, 길이 10m 정도의 작은 통로가 보이는데 이곳 벽면에 그 유명한 시기리야의 미녀들(Lady of Sigiriya)이 기다리고 있다.
풍만한 여인들을 그린 이 프레스코 채색화는 원래 50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대부분 훼손되고 지금은 18명의 여인 그림이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되어 현란한 색채로 당시의 복식(服飾)과 장신구 등을 보여주고 있다. 가슴을 드러낸 반라(半裸)의 이 프레스코화는 지금도 그 아름다운 색채와 관능미로 보는 이들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또 바깥쪽으로 열린 반대편 가슴높이의 벽면에는 당시의 글씨들도 흐릿하게 보이는데 여인들 그림이나 이 글씨들은 경비원이 지키고 서 있어 만질 수도, 카메라로 찍을 때 플래시를 사용할 수도 없다.
이곳을 지나 비스듬히 옆으로 돌아 올라가면 바위산 중턱쯤으로 제법 넓고 평평한 공간이 나타나고 나무들도 자라고 있어서 쉴 수 있다. 이곳에서 고개를 젖히고 쳐다보면 다시 까마득히 철제 계단을 지그재그로 올라 정상에 이르는 길이 이어진다.
카샤파 1세는 이곳에 다시 바위산을 오르는 돌계단을 파고 그 입구에 입을 벌린 어마어마하게 큰 사자를 설치해 놓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머리와 몸통은 없어지고 발(獅子足)만 남아 있다. 예전에는 사자의 두 발 사이를 지나 사자 몸통 속을 통과하여야 위로 오를 수 있었다고 하는데 사자는 불교를 수호하고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상징성이 있다고 하여 이곳에 사자를 세워 지키게 함으로써 암살의 두려움을 털어내고자 했던 모양이다.
사자발(獅足) 문 앞에서 바라보면 계단은 마치 사자 목줄기를 따라 머리 위로 오르는 형상이다.
산의 정상은 평평하고 제법 넓은데 당시의 왕궁건물은 없고 주춧돌들과 축대만 남아 있다.
성터 위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탁 트인 사방으로 푸른 밀림이 뒤덮인 넓은 들판과 악어가 우글거린다는 호수(늪지)들이 한눈에 펼쳐져 보이며 기분이 상쾌해진다.
바위산을 둘러싼 해자(垓字) / 정상의 물의 정원 / 정상의 성곽 유적
이 시기리야 성채의 또 하나의 신비는 ‘물의 정원(Water Garden)’이다. 바위산 꼭대기 왕궁터의 조금 낮은 곳에 정교하게 조성된 이 물의 정원은 넓이가 대략 사방 10m 정도의 야외풀장 모양으로, 맑고 푸른 물이 그득하여 관광객들이 발을 담그고 있다.
이 바위산 꼭대기에 샘이 있는 것도 아닐 테고 빗물이 고였다면 썩거나 더러울 텐데 나도 손을 씻어 봤지만 비교적 깨끗하고 시원했다. 이 물의 정원에서 왕궁으로 오르는 계단이 서너 군데 남아 있었는데 바위벽을 쪼아 정교하고도 아름답게 설계된 계단이 아기자기하고 놀라웠다.
왕궁에서 계단을 내려와 이곳 물의 정원에서 물장구를 치며 깔깔거리던 시기리야의 미녀(궁녀)들이 저 계단을 오르내리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 원통형 바위산 맨 아래에는 당시에 조성을 하였다는 해자(垓子)가 빙 둘러있는데 당시 이곳 해자 물속에 악어를 길러 일반인들은 함부로 성채에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고 하며, 지금은 맑고 푸른 물만 채워져 있다.
이곳 스리랑카의 시기리야 성채는 인도의 아잔타석굴사원(Ajanta Caves)과 거의 같은 시기에 조성되었다는데 고대 세계 8대 경이(驚異:8th Wonder of the Ancient World) 중 하나로 꼽히며 유럽 여행가들은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 보고 싶은 곳’ 중 첫 번째로 꼽는 곳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