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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에 쓰는 편지
정수민
---가을날에 아파해야 하는 삶의 이유들1----
잔잔한 바람이 출근길마다 나의 머리를 살포시 스치고 지나간다.
서울하늘의 별들은 총총히 가끔 내게 인사를 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저마다의 익명성속에 삶을 살아간다.
어린시절 내가 살던 서울 한곳에서는 그래도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바람에 살랑거리며 춤을 추는 것을 볼수가 있었는데...지금은 그 모습마저 예전 추억으로 빛바랜 사진속에 남아있다.
가을이라~~~
올여름은 어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나의삶을 강타하고 지나갔다.
여름이 시작되는 초입....한참 회사에서 업무적응 때문에 아무일도 손을 댈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로 옮기면서 나의 생활은 한층 안정이 되어간다.
6월초,,9명의 젊은 젊은 친구들과 교육을 받았다.
모두 나보다 똑똑하고 유능한 친구들이었다.
그 교육생중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던 것 같다.
처음 시작 교육인원은 9명이었는데 8일교육과정중 탈락자가 한두명씩 생기기 시작했다.
교육이수후,,회사 기밀보유상 교육자료가 입사전 신입생들에겐 회사외에 반출이 되지 않았다.
마지막 시험준비를 해야 하는데 아무 자료가 없으니 그저 집에와서 편히 자는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최종시험에서 불합격하면 하늘의 뜻이려니 하고,,마음을 비우고 다른 길이 있을거야..하고 시험전날 일찍 잠을 청했다.
마지막 시험일...결과는 낙오자외에 남은 인원은 6명이다.
나의 등수는 6명중 5등이었다.
예전 젊은날 언젠가...정말 공부하는 학생중 하이클래스 계층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내 사정을 보니 벌어야 여러 가지 생활과 학업을 영위할수 있는 입장이라 손가락 몇위안에 드는 장학생이 되는 것은 일찌감치 마음을 접어야 할 것 같았다.
또 과가 문창과이다보니 머릿속에 든 지식도 매우 중요하지만 내가 국문과 교수를 지원하지 않는 입장이고 가르치는 일보다는 창작하는 것이 내겐 더욱 흥미로왔다.
창작이 생명이라 글을 쓰기 위해 여려가지 지식을 구비하지만, 어떤 이론적인 것보다 이론을 겸비하며 경험을 많이 쌓아야겠다고 인생의 모토를 설정했던 젊은날이 있었다.
그 이후로는 어디에 속하건 간에 내가 최고가 되려고 하는 경쟁심과 욕심은 물흐르듯이 나의 마음속에서 사라졌다...그대신 내가 이 집단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바뀌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마음으로 인생을 살다보니,여섯명중 오등이라도 내가 이회사의 일원이 되고 한 식구가 된것만도 그저 감사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처음 입사해도 일반실로 발령이 나지 않는다.최대 3개월간의 업무 적응훈련을 받고 업무지식을 배우고 난후에 능력이 되는 사람은 일반실 발령을 받는 것이다.
6월 마지막날,,,6명의 친구들과 검증된 사람만이 들어갈수 있다는 고객정보를 볼수 있는 GS&SHOP 14층 전산앞에 앉아 팀장님과 인사를 하고 그렇게 집으로 파했던 기억이 난다.
그 3개월 과정중에 같이 입사했던 입사동기들은 모두 회사를 떠나고 지금은 나혼자 남아있다.
등단하기전 습작기간이 10년정도가 된다.
물론 그세월 방안에서 글만 썼던건 아니다..그래도 남자친구 없이 혼자 10년을 견뎌냈다.
한참 업무를 익히다 보니,,모두 떠난상태이다...
3개월이 걸려도 못 따라갈것만 같았던 방대한 회사 업무분량을 2개월에 끝낸건 아니지만 나보다 먼저 입사했던 몇 명 육성팀 친구들을 남겨두고 가을이 시작될 초입에 일반실로 발령이 났다.
여름이 한참 피크를 달리던 그시간...올해는(예전에도 그랬지만,,,)피서는 생각도 안하고,출근해 신발도 벗지 못한채 컴퓨터 앞에 더위와 스트레스와 업무지식과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거의 두달을 어떤 초인적인 힘에 의해 밤을 지새운다.
선임으로부터 혼나는건 기본이다.모든 직장인들은 알지만,,상사의 꾸지람을 이겨내지 못하면 사회생활은 접어야 하고 혼자 개인사업을 하는것밖에,,다른 방법으로는 밥먹고 살길이 없다.
그런일들은 마음속에 담아두거나,,,꿍하거나...토라지거나,,,나를 혼낸 직장상사를 미워하는 마음은 일체없다.
그렇게 전쟁을 치르면서 올해의 여름은 지나갔고,,,오늘 출근하기전에 고통이 밀려오는 양발을 가만히 내려다 본다.
발바닥 양쪽이 피부가 짓이겨져서 짓물러졌다.
한여름 통풍을 못시켜 피부가 괴사한 것이다.
지금은 내가 살아남았구나! 라는 안도감에 나의 몸상태를 돌아보지만 정말 2개월 육성팀에 있는 동안은 내가 여기서 살아남는 것 외에는 마음에 아무 생각도 없었다.
일주일에 두 번 휴무를 쓸수가 있다..주말에 모두 쉰다는건 욕심이다.
한주 주말에 휴무를 잡으면 그다음주는 평일 이틀간 휴무를 잡는다.
오늘은 나의 휴무일이지만 회사업무 지원을 신청했다.
두시간 업무지원이지만 평일 근무에 비해 수당을 1.5배 계산해서 월급에 포함해서 나온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려니 정말,,너무 힘들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예전 염세주의와 폐미니즘에 빠지지 않으려고 몸부림 치던 생각이 나면서 잘못하면 쓸데없이 마음이 힘들어 질까봐 생각을 달리 잡았다.
주말에 행복하게 쉬던 직장생활을 하다가 주말야간에 일을 하려니 정말 일요일 출근하려면 예배 후에 울지 않으려해도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야만 한다.
그래도 지금은 출퇴근길이 그렇게 덮지 않은 것이 감사하다.
바람이 이렇게 서늘하게만 불어줘도 헉헉 숨이 막힐 것 같은 한여름날의 버스안과 지하철의 출근길 고통은 다소 그 체온감이 덜하다.
항상 가방안에 읽을 책이있지만 정말 요즘은 체력적 한계상황 때문에 책을 읽을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
가볍게 음악을 들으며 서늘한 가을바람을 만끽한다.
주무시는 어머니를 깨우기가 미안해 편의점에서 점심까지 먹을수 있는 일용할 양식(?)을 한보따리 마련하여 버스를 탄다.
내가 먹을 양식보다 조금 더 여유있게 구매를 했다.
먹을게 풍족하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기본적 욕구이기 때문에 돔물적 행복감을 굳이 부인하고 싶지않다.
출근길은 꼭 청량리역에서 지하철로 환승한다.
지하철로 들어가는 계단을 지나려면 나이 80이 넘으신 할머니 한분이 손수건을 팔고 계신다.
손수건을 파는 할머니 맞은편에는 겨울옷을 입은 씻지도 않은 머리 덥수룩한 남자가 항상 몸을 최대한 납작 엎드려 손을 벌려 구걸을 한다.
먹을 것을 넉넉히 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치마(상인이 차는 돈주머니)를 두른 할머니는 거의 손님이 있는걸 보지 못했다.
날이 밝으면 그 자리에 앉아 손수건만 지키고 서계신다.
내가 보기에는 연세가 80은 족히 넘으신 듯 하다.
아무생각없이 한날은 햄버거와 우유를 드린적이 있었다.
그날 알았다...그 햄버거가 처음 식사이신 것을....
편의점 햄버거와 음료를 사들고 청량리까지 가서 할머니 드리고자 하는마음에 다소 긴장감이 있고 기뻤는데 오늘은 보이시지 않는다.
너무 싫은 구걸하는 거지도 나오지 않은 날이다.
희끗희끗한 머리를 가지고 무슨 연유인지 노점을 하시는 할머니를 볼때마다 오버랩되서 날 낳아주신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다.
보통 일 끝나고 귀가하는 시간이 새벽 3시이다.
모두 잠든 밤에 택시를 타고 집에까지 오면 어머니는 장사하시던 앞치마를 그대로 허리에 두르신채 내가 오기까지 상가앞에 앉아서 기다리신다.
그새벽,,,주무시라고 해도 꼭 24시간 하는 음식점에 데리고 들어가셔서 밥을 먹이신다.
계산할때는 하루종일 더위 땡볕에서 팔고 받은 꼬깃꼬깃한 지폐를 꺼내신다.
이런 어머니의 모습이 날 더욱 강하게 만들고 한여름밤을 충정로 14층에서 밤을 새게 만드는 삶의 이유들이다.
조금만 더 고생하시고 편하게 모시고 싶어도 삶이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지금은 어느정도 남자친구와 자리가 잡힐때까지만 건강하게 살아 계셔서 다른 어머니 또래 권사님들처럼 편하게 신앙생활만 하게 해드리고 싶다.
어린시절부터 어찌되던 서울땅에서 자식들 공부시키고 신앙안에 키우시려고 혼자 몸부림치며 하나님앞에 기도하며 우시는 어머니 모습을 보아왔기에,,,글을 쓴다고...작가가 됐다고 함부로 민주화 운동이나 정치적 개입이나 기타 반 사회적 단체에 동조하며 가담할 수가 없다.
성인이 된 나도 기도하는 이유와 내용은 다르지만 삶이 힘들때마다 하나님앞에 눈물을 쏟으며 기도를 한다.
--------가을날에 아파해야 하는 삶의 이유들2--------
2000 몇 년인지는 기억이 없다.
그때도 무슨일인지 한참 일을하고 마지막 지하철로 귀가하는 길이었다.
뉴스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고 그전에 뉴스에서는 북한의 김정일과 직접만나 대담하는 장면이 한참 방영되었다.
강남 한복판 자정이 넘은 시간에 빌딩사이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하여 그 장면을 청취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 몇 년뒤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시절이 있었다.
입원생활은 단순하지 않았다.
살이 찢어지는 아픔이 무서워 흔히하는 귀도 뚫지 못하고 오늘까지 귀걸이 한번도 한적이 없는데,,날마다 혈관에서 피를 뽑고 주사를 맞아야 하는 고통은 정말 참아내기 힘들정도로 아프다.
삶을 포기하고 싶다거나,,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다.
그저 나의 몸상태가 건강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한겨울,,아직도 뒷바라지가 끝나지 않은 셋째딸 때문에 IMF파국을 맞고 노점에서 겨울을 지내야 하는 어머니 인생이 가련하여 삼시세끼 주는 병원의 따뜻한 밥이 꼭꼭 씹어 삼키기가 쉽지 않은 목매이는 슬픔이 있을 뿐이다.
창문밖 도시 가로수들은 이미 나뭇잎을 하나도 남겨두지 않은채 겨울잠을 자고 있다.저 한낱 미물인 나무도 이 겨울을 살아남으려고 몸둥이를 짚으로 꼭꼭 여미어 쉼중인데...
노령의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한 겨울에 동사는 하지 않는지...걱정이 앞서 밥을 쉬이 먹을수가 없다.
몇 달간 병원신세를 졌던 것 같다.
아침,점심,저녁 간호사는 시간이 되면 정확하게 약을 들고와서 내게 약을 먹인다.
약 먹는게 정말 싫다.
입에 넣으면 어찌 쓴지..기도를 타고 위로 내려가기까지 몇초간의 몸의 저항은 거의 순간적이고 본능적이다.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그 많은 알약들의 항력을 이길힘이 육신에 남아있지 않다.
아침밥을 먹고 약을 먹으면 곧바로 잠을 청해야만 그 이후 점심을 간신히 먹을수가 있는힘이 생성이 된다.
매일 무료하고 똑같은 하루일상.
눈을 떠 약을먹고 주사를 맞고 밥을먹고 잠이든다..그리고 일어나면 점심시간이 가까워 또 밥을 먹고 약을 먹는다.
환우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면 저녁시간이 가까워진다.
그럼 마지막 약을 먹는다.
태어나 이렇게 많은 약을 복용해 보기는 그때가 처음이다.
이런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며칠후에는 의식적으로 잠이 드는것과 몸부림치며 싸웠다.
약을 먹고 잠이 들면 그 다음날 내가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병원을 둘러보니 한쪽에 서가가 있고 많은 책들이 구비되어 꽂혀있는 것이다.
한참 공부할 때 보던 책들이 생각이 난다.
그때부터 잠이오는것과 치열하게 싸웠다.
책을 한권 침대머리맡에 가져다 놓고 졸다 읽다 졸다 읽다를 반복했다.
의사 선생님은 몸이 많이 힘든상태이니 무리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를 하시지만,,,무료한 일상을 이길 재간이 없다.
회진이 끝나면 곧바로 이불밑에 감추어둔 책을 꺼내 읽는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세상걱정과 근심 잡념이 마음속에 자리하지 않는다.
어린시절 초등학교 입학해서 장사하는 어머니 옆에서 교과서를 읽던 기억이 새삼 새롭다.
그때는 내가 읽을수 있는 책이 집에 많지 않았다.
교회는 서고가 있어서 주일학교 마치면 교회에서 책을 읽고 오지만,,집에는 언니들이 보던 낡은책만 있어서...새로 찍은 종이 냄새가 나는 교과서 읽는 것이 더욱 즐거웠다.
며칠은 활자가 눈에 보인다.
성경의 활자가 일반 책보다 더 작기에 작은 활자에 익숙해져서 일반책들을 읽는 것은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더 시간이 흐르고,,,책을 펴면 활자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아무리 제자리에 갖다 놓으려고 해도 저희 멋대로 마음대로 종이위에서 탱고를 연습한다.
도저히 그 글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수가 없게 되었다.
고민하며 왜이럴까 생각해 보니 약을 복용하면서 쓴 약기운에 나쁜눈이 더욱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안경을 고쳐써도 여전히 책을 읽을수가 없었다.
언니에게 전화해서 병원에서 곧바로 안과로 가니 난시가 더 진행이 되어 이런 난시로는 책읽고 집중하고 공부하는 것이 무리라고 한다.
나이도 얼마 되지 않은 아직 20대 청년이고 앞으로 더많이 일하고 공부하며 책을 읽어야 하는데....책을 읽지 못하고 집중하지 못할정도의 난시라니....
그래도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다가 다시 책을 읽다가 습작하던 노트에 시를 쓰면 글자들이 노트줄위로 가지런히 정렬되지 못하고 선을 일탈하기 일쑤였다.
그때의 절망감이란?
작가를 지망하는 문창과 학생이 눈이 안보인다면...몸이 아픈것보다 더한 슬픔과 아픔이 내 마음을 누르기 시작한다.
기본시력도 안좋은데 난시가 더 나쁘게 진행됐다니....
약을먹을때마다 책을 들때마다 아무말도 못하고 병원침대에 누워서 하루종일 흐르는 눈물을 닦아야만 했다.
더 책을 보면 혹 내가 소경이 되지 않을까 하는 근심도 있었지만,,,가지고 있던 자를 활자위에 두고 한자한자 짚어가면서 한권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던 겨울이 다지나갈 무렵,,,저녁을 먹고(일반 병원은 저녁식사를 5시정도에 합니다.)다시 침대 이불속에 숨겨둔 책을 꺼내 자를 들고 읽기 시작하는데,,,몸을 가누지 못할정도로 열이 들뜨기 시작한다.
졸리는 증상은 있었어도 그대로 몸은 내 의지대로 움직이기에 불편함이 없었는데,,그날은 정말 열에 들떠 침대에 그대로 쓰러졌다.
죽기에는 나이가 너무 젊다..이젊은 나이에 병원에 입원하여 시간을 허비하는것도 마음이 아픈데...병원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다니.....
급하게 간호사가 들어오고 그대로 다른병실로 옮겨져 링겔을 꽂고 얼음팩을 온몸에 감싸고 한날을 보내야만 했다.
저녁먹고 여섯시쯤 들어가 링겔를 꽂고 새벽 세시쯤 혼미하게 정신이 든다.
몇시간을 의식없이 잠이 들어있었었다.
무엇인가 고요한 가운데 세미하게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나를 깨웠다.
무슨소리인가 보니 링겔바늘 끝에서 약이 떨어져서 내 혈관을 타고 내리는 소리였다.
누군가 열이 계속 상승하는 내 몸을 얼음과 물수건으로 계속 닦아내고 있었다.
수시로 체크되는 체온계는 계속해서 39도가 넘어서고 있었다.
잠깐 정신이 들고 다시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자고 있었던 것 같은데,,날 흔들어 깨우는 손길이 있다.
간호사였던 것 같다...그러면서 링겔 약 떨어지는 소리넘어..꿈속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랑하는 딸아 일어나 밥먹고 일해야지...부드럽고 따뜻한 음성...누구신가?/아주 어린시절 어머니 등에 업혀 충북 옥천 고추 받으러 할머니 댁에 가면 어머니의 할머니 내게 증조 할머니가 아직 5살밖에 안된 나를 품에 안고 한참 서울 올라가기전까지 계속 기도를 해주시던 기억이 새롭게 물밀 듯이 밀려온다.
칠삭둥이 미숙아로 태어나 1.5kg밖에 안되고 유난히 아프고 발육이 늦었던 증손녀를 할머니는 오래 살라고 시골에서 어린나에게 뱀을 잡아 그 국물을 먹게 하셨다.
고속버스를 타고 엄마등에 업혀 할머니 품에 안겨 기도를 받고 서울에 오면 이상하게 신나게 동네 친구들과 어찌나 행복하게 놀았는지...
5살이 될 무렵 처음으로 목사님이 교회 유치원을 시작하셨다.
같이 자란 교회친구 장로님 딸과 첫회로 그 유치원생이 되었다.
장작을 때워 교회밥을 하던 시절에 엄마등에서 유치원 가방과 모자를 옆에두고 교회부엌 방에서 잠을 자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집에와서 잠이들면 한꿈을 꾸기 시작한다.
유치원에서 그림으로 보았던 양을 치는 예수님이 한손에 지팡이를 지시고 다른한손에 어린나를 품에 안으신다.
40도까지 육박하는 열에 들떠 들리는 음성이 증조할머니 품에 기도중 들었던 그분의 음성같고 유치원시절 꿈속에서 뵈었던 그분의 음성같아 의식이 없는 중에도 그 사랑에 눈물이 흐른다.
여러 가지 아픔이 말을 통해 나오지는 않지만,,,밥먹고 일어나 일하라는 혼미한 중에 들렸던 그 음성이 나를 깨웠다.
그리고 아침에 식사를 하고 간호사가 열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 젊은 20대에 먹었던 약들이 내 몸에 너무 쓰게 기억이 되어 과거의 아픈 기억들이 모두 저편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30이 넘어 완숙하고 성숙해 질때쯤 남자친구를 만났다.
나보다 연하인 남자친구...남북과 대치되는 그 한가운데에 내글을 읽고 조심스레 편지를 주고 마음졸이며 삼팔선을 지키며 한참을 전선에서 기도하던 그...
어느날 남자친구가 낀 안경을 보았다.
한쪽 안경알이 금이 가고 날은 부러져 스카치 테잎으로 돌돌말아 끼고 있다.
아버지가 장교입관식 하는날 선물하신 거라고 안경을 바꾸지 않는다.
그리고 너무 도수도 안맞아 남자친구와 시력검사를 했다.
그의 눈은?---보통 눈이 나쁘면 마이너스로 표기가 되는데 그는 0.00보다 더 나빠 특수한 숫자로 표시되는 저시력자이다.
몇 년을 망가진 안경을 쓰고 군대에서 총을 쏘고 병사들을 지휘하고 책을 보고 인터넷으로 수시로 올라오는 내 글을 읽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더욱 아리다.
정말 진정한 강함이란?
약함가운데 쓰라린 눈물을 흘리고 그 약함과 싸워 이겨 강함을 이뤄낸 사람만이 약한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강한자가 아닌가한다.
이 가을에 내가 아파해야 하는 삶의 이유들은? 그동안 내가 살아오면서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인생의 한계상황과 무너질 수밖에 없는 형편앞에서보다 더욱 어려운 말못할 이웃들이 내 주위에 많다는 것이다.
도움을 받기도 하고 또 때로는 도움을 받지 못하여 삶이 끝나거나 암울하게 인생이 지는 이웃도 내옆에는 정말 많음을 알았다.
내가 이 가을에 아파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내 이웃이고 내 형제이기 때문이다.
또 내가 열심히 오늘을 살아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들을 섬겨야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또 나보다 더 어려운 환경가운데 이겨가는 이땅의 많은 젊은이들...
오늘도 밤불을 밝혀 책을 들고 일을 하는 대한민국 젊은 청년들에게 이 편지를 띄운다.
가을에 나의 삶이 아픈 이유는?--젊은 청년들이 밤새는 모진 고통을 알기에 그 영혼의 아픔이 내게 다가와 일을 하는 새벽 시간 나의 정신과 마음도 아파 함께 운다.
가을날 새벽녘 쓰는 이편지는 분단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밤을새며 일을 하는 젊은 청년들과 전등아래 책을 보는 대학생들의 젊은날의 아픔과 함께 하며 편지의 말미를 마무리한다.
2012.09.13 수필가 정수민(새벽 04:17/서울 신내동 자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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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새벽 사색을 지면으로 옮기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꾸준히 습작하시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내내 평안, 건필하십시오~
매니저님~~~~감사합니다...앞으로 더 열심히 문학활동하려고 합니다..항상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