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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천모임(신약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기독네티즌
교회의 은사들(에베보서 4:11-16)
(에베소서 4장)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묵상/엡 4:11-16)
◆ 교회의 은사들
(11)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오늘 본문에서 '그'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께서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몇 가지 은사를 내리셨다. 은사란 사전적인 의미가 '왕이 신하에게 내리는 선물'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은사가 많이 열거되어 있는데, 영생도, 성령도 모두 하나님의 은사다. 그런데 은사 중에는 특별히 사역을 위해서 주시는 것이 있다. 오늘 본문의 은사들이 바로 그러하다.
오늘 본문에는 다섯 가지의 은사를 열거한다.
▶ 사도 - 예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자들로서,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자들이다. 이들이 바로 신약을 기록하고, 이들을 통해서 신약 교회가 시작되었다. 오늘날에는 이런 개념의 사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역적인 면에서 보면, 불모지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는 선교사들이 사도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 선지자 -여기서 언급된 선지자는 신약의 선지자들이다. 이들은 성경이 없던 시절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주님의 말씀을 직접적으로 전달했다. 초대교회 시절에는 이런 직통 계시자가 비일비재했다(고전 14:31). 즉 성경이 없던 시절에 흔했던 은사였다. 성경이 완성된 오늘날에는 이런 직통계시는 필요가 없으며 대부분이 거짓이다.
물론,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얼마든지 사람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알리실 수가 있다. 예언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하면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을 제한하는 독선이다. 심지어 미래에는 온 세계를 책망할 두 선지자가 나타난다고 계시록에 예언되어 있다(계 11:10).
그러나 어떤 선지자가 나타나도, 그의 예언 사역을 이용해서 기존의 성경을 수정하거나 추가할 수는 없다. 2000년 교회 역사가 그런 시도를 한 사람들이 예외없이 사이비, 이단임을 증명했다.
오늘 본문의 다섯 가지 은사 중에서 오늘날까지 교회 안에서 활발하게 사역하는 은사는 다음 세 가지다.
▶ 복음 전하는 자 - 성도들은 예외없이 복음 전하는 사명을 맡은 사람들이다. 누구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특별하게 이런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매우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며 수많은 열매를 얻는다. 목사가 사람들을 양육하는 사람이라면, 이들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인도하는 자들이다.
▶ 목사 - 목사로 번역된 헬라어 '포이멘'은 목자란 뜻이다.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다'(요 10:11)라고 하실 때 사용했던 단어다. 따라서 목사로 번역하기보다는 '목자'로 번역해야 정확하다.
목자는 모름지기 양들을 돌보고, 그들의 고충과 필요를 채우려고 노력하는 자다. 마찬가지로 이 은사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고 잘 돌보려고 한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목자의 은사가 없다.
나는 팀리더를 세울 때, 교사의 은사보다는 이렇게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목자의 은사를 가진 사람을 우선으로 한다. 그런 자가 팀리더로 세워지면 그 팀은 하나가 되며 건강해진다. 그러나 목자의 은사가 없고 단지 교사의 은사만 있는 사람들은 팀리더로서는 부적격이다. 이들은 잘 가르치긴 하지만, 팀을 하나로 만들기에는 역부족이다.
▶ 교사 - 이들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말만 잘한다고 해서 교사의 은사가 있는 것이 아니다. 교사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일단 성경을 해석하는 능력이 남다르다.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능력도 남다르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은사이기 때문이다.
도울 김용옥이 성경을 잘 가르친다고 해서 그에게 교사의 은사가 있는 것이 아니다. 거듭나지 않은 그에게 하나님의 은사가 있을 리는 만무하다. 단지 인간적으로 설득력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진리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그의 가르침을 평생 받아도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단 한 걸음도 진보할 수 없을 것이다. 교사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제대로 전달하는 자들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할 일이 있다. 그것은 다섯 은사들 중에 앞의 세 가지는 헬라어 원문에 모두 정관사가 붙었는데, 목사와 교사는 함께 묶여서 정관사가 하나만 붙어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관용적으로 그렇게 사용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어떤 분은 이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목사와 교사가 묶여서 하나의 은사로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오늘날의 '목사(牧師)'는 목자와 교사를 함께 묶어서 만든 단어다.
◆ 은사에 대한 올바른 생각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인간이 마음대로 부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는 선지자 학교가 있어서 그 학교를 졸업하면 '선지자' 자격을 부여한다. 말이 되는가? 선지자가 학교 나와 면허증을 얻어서 활동하는 자들인가?
성경에는 양을 치고, 뽕나무를 재배하던 아모스(암 7:14)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선지자가 되기도 했고, 평범한 시민이었던 호세아가 선지자가 되기도 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선지자가 되는 것이지, 인간적인 방법으로 라이센스를 획득하여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동일한 논리로, 목사와 교사에 적용해 보자.
오늘날에는 목사가 되려면, 신학교를 졸업하고, 안수를 받아서 라이센스를 획득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과정이 절대로 틀림이 없다고 믿고 있다. 이것이 착각이다. 만일 목사가 되는 과정이 그렇게 학교 졸업하고 안수받아서 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은사'가 아니다. 그냥 인간적인 '면허증'일 뿐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인간적인 면허증 발급 받은 자만이 가르치고 다스릴 수 있다고 규정한 제도가 과연 성경적일까? 도대체 신학교 과정 자체가 역사적으로 기껏 200년 남짓한데, 그 이전의 1800년 간은 목사 자체가 불가능했단 말인가? 물론 사람들을 가르치려면, 교육이 필요하고, 성경을 남다르게 공부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성경을 다 암송하고, 분석하며, 탁월한 해석 능력을 갖췄다고 없던 은사가 갑자기 생기는 것은 아니다.
도대체 오늘날에는 한 번 취득한 목사 면허증을 가지고 있음으로써, 버스를 운전해도 '목사'요, 식당을 해도 '목사'가 된다. 무슨 전기기술자 자격증처럼 되었다. 이게 가당키나 한가?
구약에서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은 레위지파 제사장들을 다 쫓아내고, 자기 멋대로 제사장들을 임명했다(대하 11:14-15). 제사장 자격증을 얻는 과정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남 유다왕 아비야는 북 이스라엘을 이렇게 비웃었다.
'너희가 아론 자손인 여호와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쫓아내고 이방 백성들의 풍속을 따라 제사장을 삼지 아니하였느냐 누구를 막론하고 어린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끌고 와서 장립을 받고자 하는 자마다 허무한 신들의 제사장이 될 수 있도다'(대하 13:9)
아비야의 지적이 오늘날에도 뼈아프게 때린다. 이방 백성의 풍속을 따라서 제사장을 삼았다는 말처럼 오늘날에도 목사가 되는 것이 세상 풍속을 따라서 학교를 졸업하고 학위를 취득하는 것으로 만들었다.
더구나 북 이스라엘에서는 제사장이 되려면, 소 한 마리, 숫양 일곱 마리만 주면 획득할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등록금 제대로 내고, 학교만 무사히 졸업하면 목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나는 중국 선교하는 사람이다. 중국의 목사 중에는 연수비용 내고 한국 제주도에서 열하룻 동안 연수받고 목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도 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남발하는가? 언제부터 목사가 사람들이 함부로 부여하는 은사가 되었단 말인가?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렇게 엉터리로 받아도 자격증을 받는 순간 갑자기 다른 신분이 되고, 일반 성도들은 그들에게 고개를 조아린다는 사실이다. 이런 시스템이 얼마나 교회를 부패하게 하는가? 오늘날 교회 타락의 주 요인이 바로 이런 시스템임을 왜 모르는가?
사람들은 얼마나 세뇌되어 있는지, 누가 목사라고 하면 그의 말에 어떤 판단도 하지 않다가, 평신도라고 하는 자가 성경을 말하면, 반드시 이의를 제기하고 절대로 가르침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목사가 말하면 '아멘'이라고 화답하다가 평신도가 성경을 말하면, 건방지다고 생각한다.
오늘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14)되기를 구한다.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룰에 매여서 진리를 보지 못하는 이 미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론 이런 잘못된 시스템 속에서도 훌륭한 주님의 일꾼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들을 예로 들면서 기존의 시스템이 옳다고 주장하면 안 된다.
◆ 은사의 목적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은사를 주심은 내가 영광 받도록 주신 것이 아니라, 형제들을 돕도록 주시는 것이다. 성도들 한 명 한 명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여 온전해지도록, 그리고 봉사를 통해서 건강한 신앙이 되도록 주신 것이다. 이것을 망각하고, 은사를 통해서 개인의 유익과 야망을 이루려고 하는 자는 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신학적인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13)을 가르치고 서로 격려하며 세워가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 지체임을 알고 있는가? 목사가 머리고 우리가 몸이 아니라, 예수님이 머리이시고, 우리는 모두 지체다.
이 지식이 그렇게 어려운가?
너무나 당연하고도 쉬운 이 진리를 당신이 어려워하는 이유는 그만큼 진리보다는 인간의 전통과 관습에 더 매여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생 노릇하면 안 된다. 우리는 모두 동기들이다. 동기 중에 공부 잘하는 자도 있고 못하는 자도 있다. 공부 잘하는 자가 못하는 자를 돕는다고 선생 노릇하면 안 된다. 신학자 유진 피터슨은 모든 분야에 전문가가 있지만, 오로지 교회만은 전문가가 없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평신도들이다. 이런 지식으로 교회의 장로나 목사를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들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러한 올바른 지식을 가질 때, 장로와 목사는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아 겸손해지고, 일반 성도들도 스스로 동일한 지체임을 깨달아 교회의 유익을 위해 하나가 되어 힘써 섬길 것이다.
교회는 이렇게 모두 서로 지체가 되어서 함께 자라가는 곳이다.
주님,
저와 형제들이 모두 제대로 된 교회관을 깨닫게 해주시고,
올바른 교회관을 바탕으로 주님을 섬기고 형제들을 섬기게 해주십시오.
[출처] 엡 4:11-16 / 교회의 은사들|작성자 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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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천모임(신약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기독네티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