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플땐 그냥 슬퍼하라
저녁노을이 질 때가 되면 난 해지는 풍경 속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요즘 같으면 찬바람이 휑하니 불어 내 안에서 피어오르는 느낌을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때다.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외롭다고 할 수도 있겠고, 고요하다거나 평화롭다거나 할 수도 있겠지만 애써 그것을 표현하지 않아도 좋다. 뭐랄까 내 안의 본래적인 감각을 온전하게 끌어내 주는 이 느낌에 가만히 마음을 모으다보면 이 대자연의 숨결과 하나 되는 듯 내 마음은 어느덧 선禪으로 향한다.
이러한 느낌은 참 소중하다. 그 느낌을 그저 휙 지나쳐 버리지 말라. 가만히 그 느낌에 마음을 모아 집중해 보면 그 모든 느낌들 속에서 명상의 연결점을 만날 수 있다. 느낌에 집중한다는 것은 사념처 수행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우리는 늘 수많은 감정과 느낌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느낌을 온전히 느껴보는 데는 무척 인색하다. 그 느낌에 아무런 차별이나 분별을 갖지 말고 그냥 빈 마음으로, 맨느낌으로 느껴보는 것에 익숙치 않다. 그러다보니 좋은 느낌에 속아 집착하고, 싫은 느낌에 속아 아파하며 스스로를 얽어맨다. 그러나 본래 느낌 그 자체에는 아무런 분별도 없다.
그것이 어떤 느낌이 되었든 지금 이 순간에 내 안에서 일어나는 그 느낌에 집중하라. 그 느낌을 온전히 느끼라. 온전히 느낀다는 말은 그 느낌을 싫다고 피하려 하거나 좋다고 더 가지려고 애쓴다거나 하는 두 가지 좋고 싫은 분별을 다 놓아버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말이며, 충분히 그것을 즐기고 느껴본다는 말이다.
외롭다면 외로움을 흠뻑 느껴보고, 화가 일어날 때 그 화에 마음을 모으며, 슬픔이 올 때 슬픔과 하나가 되어 슬퍼하라. 그 느낌을 분별없이 지켜보고 충분히 느끼라.
음악치료의 원리도 그렇다고 한다. 우울할 때 사람들은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오히려 신나는 음악을 들으려 애쓰지만 그것은 우울감 치료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우울할 때 일수록 우울한 노래를 듣는 것이 좋다고 한다. 우울할 때 흠뻑 우울해 하고 슬플 때는 충분히 슬퍼할 때 내적인 치유는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고 한다. 자꾸만 벗어나려고 애쓰면 오히려 더 옭아매어질 뿐이다.
느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느껴보고 즐기고 바라보면 그 느낌을 느끼는 속에서 하나의 커다란 '전환'을 경험하게 된다. 느낌이라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 텅 비어 있다는 사실. 충분히 그 슬픔에 젖어보면서 슬퍼하는 나를 관찰하게 되면 슬픈 내가 사라진다. 슬픔이라는 느낌을 찾을 수 없고 결국에 그 슬픔도 거짓이었음을 알게 된다. 온갖 느낌이라는 것은 인연 따라 잠시 나타난 환영이며 신기루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그 느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충분히 알아차리면서 느끼기만 하라. 다만 지금 그 느낌과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라.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 이 순간의 느낌을 가지려고도 하지 않고 버리려고도 하지 않으며,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고 인정하게 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랬을 때 느낌 속에 살면서 느낌을 초월할 수 있다. 함이 없이 모든 것을 하게 된다.
하루 중에 많은 순간, 잠시 틈을 내어 생활 속에서 선을 꽃피울 수 있다. 아주 단순한 방법을 통해서 가능하다. 어떤 특정한 느낌이 올라올 때 잠시 멈춰서서 그 느낌에 해석을 붙이지 않고 그저 맨느낌을 느껴주는 것이다. 아니면 그저 담담하고 평범한 순간이라도 좋다. 그저 그 담연한 순간을 그대로 담담하게 느껴주는 것이다. 느낌을 있는 그대로 느껴줄 때 그 순간 속의 진실로 뛰어드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저 깊은 근원은 아름다운 변화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첫댓글 우리가 쉬는 숨, 바람소리, 심장의 박동은
이 우주 대자연과 내가 공동으로 합연하는 합주곡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맑은 하늘 저녁노을에 빠지기를 참 좋아합니다.
아무 느낌없이 그대로 평화로움 그럴때가 선이겠죠?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글을 읽다보면 서서히 빠져들어 빠져나오기 싫어지는데
오늘은 이 느낌을 느껴보고 싶네요..
여기서 글을 읽고 있으면
어려서 할아버지방에 몰래 숨어 들어가
장롱 위에 새책으로 고이 모셔져 있던
동화책을 읽던 때로 돌아간 듯 행복합니다.
그 책은 아주 두꺼웠지만,
금박표지가 불상처럼 예쁘게 빛나
어린 저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