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에 위로금
사업하자는 얘기 들어도
아는 것 없고
괜한 짓에 쪽박 찰 것 같아서
몸으로 때우는 일 찾아 왔단다
아직 학교 다니는 아이들
맞벌이 나가는 아주머니
이젠 얼굴 보는 것 마저 힘들어도
일을 해야 먹고산다며
매주 토요일 하루 쉬는
야간경비아저씨
사는 것도 법이야
-자동차 도장공 정형
밤낮이 없었지, 따지고 보면
전에 다니던 회사 부도나고
아는 사람 소개로
밤에, 주로 밤에만 일 나갔지
한번 나가면 십 만원 이상이었는데
그 짓도 하루 이틀이지
잠 못 자고 그러다가 낮에 일 걸리면
진짜 한숨 못 자며 뛰어다닌 적도 몇 건 있었지
아, 물론 돈은 되었지
하지만 한번 걸리면 불법이라며
최소 삼백 만원 벌금 물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순 없다 싶어
결국 여기까지 온 거지
지금?
적지, 적어도 한참 적지 그래도 이 생활이 괜찮다 싶어
조금 더 하다가
내가 하나 차리는 게 꿈이지
언제 일지는 모르지만 그것말고 꿈이 있나
사는 게 막막해
회사 부도나도 누가 내 삶은 책임지나
먹고살려니까 불법도 하는 거지
내 삶을 책임질 법은 없어도
먹고사는 일에 법은 너무도 많아
길
교대로 돌아오는 야간출동근무
아홉시 넘어
방어진에서 연락 왔다
태광산업 앞을 지나는데
'정리 해고 철회, 일자리를 돌려 달라'
빨간 머리띠 노동자와
용역깡패들 정문보고 마주 서있다
현대 자동차 앞
'연말 성과수당 올려달라'는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차 수리 끝내고 돌아오는데
아직도 장승처럼
한 노동자 서 있는 길
짤리지 않기 위해
언제 올지 모를 전화 기다리려
이 밤 회사 달려가는 길
고속도로
울산으로 출근하는 길
고속도로 오르자 밀리더니
끝내 섰다
라디오에선
사중 추돌 사고로 두 명 사망
다섯 명 중경상이라고
숨 넘어가듯 바쁜 소리
되돌릴 수 없는 길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
고개만 삐죽 내미는 사람들
시트를 제끼고 눕는 사람들
차창에
빗방울 끊임없이 때리고
앰뷸런스 소리만
낮아진 하늘을 울릴 뿐
이 길
끝까지 갈 수 있을까
뿌리만 있다면
공장 짓는다고
건축 자재들
무덤처럼 널려져 있고
땅 고르기 하며
대나무 소나무 아카시아
뿌리째 뽑혀 쌓여있다
쌓아 놓은 흙더미 속
아무도 모르게
뾰족이
솟은
죽순 하나
뿌리가 성하면 살아 날 수 있다고
또 다시 뒤집어 지고 실려 나갈
흙더미 위로
보란 듯이
피워 올랐다
눈
눈 내린다
온 세상 구석구석
쌓이고 또 쌓인다
눈길 위로
한 발짝 한 발짝 걸으면
움푹한 발자국이 되고
흙탕물이 되고
진창이 되고
십 수년 걸어온
노동의 길
월급이 너무 작아 퇴직한 곳
일용직으로 들락날락 거린 곳
자리 잡을 만하니 정리해고 당한 곳
서른 넘긴 내 발자국
또 다시 부도난 회사
구조조정 눈길
위에 또, 내딛는
한 발자국
일용공 박형
겨울 햇살이
화살처럼 날아와
시린 눈에 꽂힌다
정사원이 되기 위해
주야 막교대 근무 오 년
아이엠에프 터지자
퇴직금도 상여금도 없는
일용직으로 일하라는 연락
가쁜 숨 몰아쉬며
대리 과장 부장을 만나
따져 보아도
회사가 어렵다는 말 뿐
더 이상 말하기 어려워
돌아서는 처진 어깨위로
구름 몇 점
두 아이의 얼굴인양
걸립니다
또 하루가
꽉꽉 닫아 놓은 천막 틈새로
얄밉게도 바람이 어김없이 들 때
겹쳐 입은 작업복으로도
막지 못하는 불안함
휴식시간 종소리에
언 몸 녹이려
야전 난로 옆에 옹기종기 모여
사람 사는 듯 합니다
이번 겨울만 넘기면 일자리 많아질 거야
아마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질 거야
누가 일용직으로 일하겠어
적당한 자리 찾아가야지
벼룩시장, 교차로, 한소리
쉬는 시간마다 뒤적이며
하루하루 꿈을 꿉니다
말없는 사람들
새벽 안개를 뚫고
통근버스도 졸면서 왔다
저마다
의자를 삐걱 제끼고
당연한 듯 눈을 감는다
심하게 흔들리는 차
간간이 부딪히는 어깨
시끄러운 라디오 소리
빽빽 자동차 경적소리
말없는 사람들…
오늘도 통근 버스 안은
숨소리마저 쫄아 들었다
목수 김씨
사십 년 동안
목수일 했다는 김씨
환갑 지난 나이에
구부정한 허리로
땀을 줄줄 흘리며
자르고깍고다듬고자르고깍고다듬고
못질이 한창이다
새참으로 나온 막걸리 몇 잔
불그레한 얼굴에
땀을 훔치며 담뱃불을 붙이는 김씨
-내마 부지런하마 먹고 살 걱정은 없었는데
요새는 우째된 긴지
이름 있는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안 되니 참 우째 된 세상인지
상호야!
멀리 떨어져 고생이 많구나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좋게 생각해라.
마음이 괴롭고 아릴 때에는 언제나 너를
생각한단다. 너의 그 밝은 웃음을 떠올리며
괴로움을 삭인단다.
시가 좋구나. [개선제안]이라는 작품도 함께
출품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아무튼 좋은 소식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