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용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햇볕 그 햇볕』(푸른사상 시선 185).
시인은 참신하고 실험적인 표현과 시어를 다루는 숙련된 솜씨로 삶의 의미를 심화시키고 있다. 우리를 지배하는 수직적인 삶의 가치체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인식으로 자아의 생명력을 노래한다.
2023년 12월 12일 간행.
■ 시인 소개
목포에서 뱃길로 오십 리 정도 되는 해남 산이면에서 태어났다. 물고구마를 자주 먹고 자란 소농의 자식이었기에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주로 했다. 목포고등학교를 나와 청풍명월의 고장에 있는 충북대학교를 다녔다. 2017년 『광남일보』 신춘문예 시 「스웨터」가 당선되어 지금까지 시를 쓰고 있다.
■ 시인의 말
아홉 바퀴를 돌고 있으면서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게 하는 뭔가 없다
그저 돌고 있다는 것뿐
그저 돌고 있다는 감각뿐
돌아볼 줄 모를 수도 있다
궁금증이 생기지 않는 일은
끔찍하다
■ 작품 세계
황성용 시인의 시들은 대체로 ‘재현(representation)’하기보다 ‘표현(expression)’을 지향한다. 외부 세계에 대한 정확한 모방이나 재현보다 자신 내부의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표현하는 데 익숙하다. 어떤 대상을 묘사하거나 그리는 대신 작품과 그걸 창조하는 예술가 자신과의 관계에 중점을 둔다. 기존의 설명이 안 되는 자신의 감성과 정서, 느낌과 욕망 등을 표출하는 데 더 민감하다. 특히 그는 언제든 언어와 물리적 현실과 분리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새로운 의미 부여 가능성을 타진하는 언어적 탈영토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 자신조차 알 수 없는 그 어떤 현실을 주로 언어에 구축된 현실에 의해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자기 표현이 주된 그의 시적 밑받침이다.
결과적으로 그런 점에서 그의 시들은 생명력을 기울여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이자 거기에 의의를 부여해가는 정신적 원형(Archetape) 찾기에 더 가깝다. 설령 그게 “실패해도 실패가 되지 않는 성공한 실패”가 그의 유일한 삶의 “원칙”이 되고, 시의 “기준”(「위험이 위험해질 때」)이 되고 있다. 김현, 김지하, 최하림 이후 끊긴 목포문학의 화려한 명맥을 이으며 넘어서길 바라는 그에 대한 기대를 걸게 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문득 그가 우리 앞에 목포를 상징하는 잠룡(潛龍)처럼 한 시대를 뒤흔드는 새로운 전망과 이해의 시들을 펼쳐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임동확(시인·한신대 교수)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햇볕 그 햇볕
황성용
내가 수련이 아니기에 수련을 모른다
그래서 수련을 본다
좌정하며 본다
뒷면의 나날들은 볼 수 없다
낙심만 생긴다
더 이을 감정은
쓸쓸함이다
심연(心淵) 어디에 관산이 있었다지
하, 이름 모를 꽃들이
들어 있을 거야
꽃들이 만발한 데
수련이 없을 리 없지
수련이 없는 척 안 하고
수련은 피고 있다
햇볕 어제 그 햇볕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