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3부 일통 천하 (106)
제12권 사라지는 영웅들
제 12장 조무령왕과 호복기사 (7)
양위를 한 그 이듬해부터 조무령왕(趙武靈王)은 자신이 창설한 기마대를 앞세워 매년 원정길에 나섰다.
서북 방면의 호(胡) 땅을 점령했으며, 운중(雲中)과 누번(樓煩)의 항복을 받아냈다.
이로써 조(趙)나라는 사방 1천 리가 넘는 넓은 영토를 보유하게 되었다.
'이제 진(秦)나라를 치리라.‘
천하 패업을 이루는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강대국 진나라를 정벌함으로써 다른 열국을 복종시킨다.
이것이 조무령왕(趙武靈王)이 선택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역시 진(秦)나라는 만만치 않은 나라다.
마음처럼 그렇게 쉬운 상대가 아닌 것이다.
사전에 충분한 준비가 필요했다.
'내가 친히 진(秦)나라를 염탐하고 오리라.‘
여기서 조무령왕(趙武靈王)은 '별난 왕' 답게 또 하나의 기행(奇行)을 남기게 된다.
그는 먼저 이름을 조초(趙招)라고 바꾸고 스스로 사신이 되어 진나라 함양성으로 들어갔다.
물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를 수행했다.
함양(咸陽)으로 가는 길에 그는 진(秦)나라의 산천과 지형과 도로 등을 살펴 일일이 그림으로 그려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윽고 조무령왕(趙武靈王)은 함양에 당도했다.
그는 사신의 자격으로 온 것이므로 공식 절차를 밟아 진소양왕에게 알현을 청했다.
진소양왕(秦昭襄王)이 조초 일행을 맞아들여 물었다.
- 그대 나라의 왕은 금년에 나이가 어떻게 되는가?
조초, 즉 조무령왕(趙武靈王)이 태연스럽게 대답했다.
- 이제 40대의 한창 나이십니다.
- 들리는 소문으로 조왕(趙王)은 아들에게 왕위를 전했다고 하는데, 아직 근력이 좋다면서 어째서 왕위를 전한 것인가?
- 우리 주보(主父)께서는 처음 왕위에 오르셨을 때 나라 다스리는 법을 몰라 꽤 곤란을 겪으셨습니다.
그래서 일찌감치 나라 다스리는 법을 익히게 하려는 뜻에서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신 것입니다.
조초(趙招)는 조금도 망설이거나 두려워하는 빛없이 진소양왕과 대화를 나누었다.
진소양왕(秦昭襄王)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에 온 사신은 인물이 참으로 출중하구나.'
알현을 마치고 조초가 객관으로 물러간 뒤였다.
진소양왕(秦昭襄王)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조초의 예사롭지 않은 풍채와 언변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아무리 사람이 잘나도 왕을 섬기는 신하는 다른 법인데....
그 조초(趙招)라는 사람은 어쩐지 윗사람을 섬기는 사람 같지가 않다.'
진소양왕(秦昭襄王)은 밤새 조초에 대해 생각하다가 날이 밝자마자 시종을 불러 지시했다.
- 객관으로 가 조(趙)나라 사신을 궁으로 들라 해라.
시종이 객관에 다녀와서 보고했다.
- 조(趙)나라 사신은 어젯밤부터 병이 나 방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할 지경이라고 합니다.
몸을 조리하여 사흘 후에 입궐해 찾아뵙겠다고 합니다.
사흘이 지났다.
그런데도 조초(趙招)는 궁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아무런 연락도 보내오지 않았다.
진소양왕(秦昭襄王)이 다시 시종을 불러 명했다.
- 다시 가서 조나라 사신을 데려오너라.
시종이 객관으로 가자 한 사람이 나와서 응대하며 말했다.
- 내가 조초(趙超)인데 진왕께선 무슨 일로 나를 찾으시는지?
시종은 어리둥절했다.
삼일 전에 본 그 조초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찌되었건 그는 조초라고 자칭한 사람을 데리고 궁으로 들어갔다.
놀라고 어리둥절하기는 진소양왕(秦昭襄王)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눈앞에 서 있는 사신에게 물었다.
- 네가 진짜 조초라면 사흘 전 조초(趙招)라고 자칭하던 자는 누구냐?
- 그 분은 우리 조나라 왕의 아버지가 되시는 주보(主父)이십니다.
주보께서는 진왕의 위엄을 친히 보시고자 사신으로 가장(假裝)하고 여기까지 오신 것입니다.
진소양왕(秦昭襄王)은 깜짝 놀랐다.
- 그렇다면 너희 주보(主父)는 지금 어디 있느냐?
- 이미 사흘 전에 이곳을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남아 왕의 꾸중을 듣기로 했습니다.
진소양왕(秦昭襄王)은 발을 동동 굴렀다.
- 조나라 주보(主父)가 나를 속였구나. 여봐라, 당장 군사를 보내어 주보를 잡아오너라.
경양군과 장수 백기(白起)가 날랜 병사 5백명을 거느리고 바람처럼 달려갔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조무령왕(趙武靈王)은 이미 이틀 전에 함곡관을 빠져나간 뒤였다.
하는 수 없이 진소양왕(秦昭襄王)은 남아 있는 조나라 사신을 예(禮)로써 대접하여 돌려보냈다.
그러나 그 후 조무령왕만 생각하면 늘 가슴이 울렁거리고 불안한 마음을 어쩌지 못했다.
진(秦)나라 염탐을 마치고 한단으로 돌아온 조무령왕(趙武靈王) 또한 진나라의 튼튼한 방비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조정의 기강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 진나라는 함부로 칠 나라가 아니다.
대신 그는 도성인 영수만 남은 중산국(中山國)을 공격했다.
피폐할 대로 피폐한 중산국(中山國)은 조나라의 기마대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중산국 왕은 성문을 열고 항복했다.
이로써 중원 한복판에 자리잡은 이족 국가 중산(中山)은 출현한 지 얼마 안 되어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흔적없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호복기사(胡服騎射)에서 알 수 있듯이 조무령왕(趙武靈王)은 상당히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조무령왕이 이런 성향을 지니게 된 데에는 신하들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다.
조무령왕(趙武靈王)이 중산국을 멸망시킬 때 전해오는 일화가 하나 있다.
...... 조무령왕은 중산국을 공격하기 전 이자(李疵)라는 사람을 시켜 중산국의 실태를 조사해오도록 했다.
이자가 돌아오자 조무령왕이 물었다.
- 중산국을 공격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이자(李疵)가 대답했다.
- 성공할 것입니다.
- 어째서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 신이 가서 살펴보니 중산국(中山國)의 임금은 바위굴에 숨어지내는 선비들을 자주 만나며,
그들을 만나기 위해 좁은 길로 가는 것을 수고롭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또한 아무 벼슬도 없는 선비들을 수시로 궁으로 초빙해 그들의 말을 경청하곤 하였습니다.
조무령왕(趙武靈王)이 의아하여 물었다.
- 그대 말을 들으니 중산국 임금은 현명한 군주가 분명하다.
그런데 그대는 어찌하여 중산국을 공격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가?
- 그렇지 않습니다. 무릇 바위굴에 숨어지내는 선비를 높이 대우하면 고된 훈련을 받은 병사들은 전쟁터에 나가 힘써 싸우지 않으며,
벼슬없는 선비들을 존중하면 땀흘려 농사짓는 농부들은 그들을 부러워하여 더 이상 힘써 농사일을 하지 않습니다.
- 병사가 전쟁터에 나가 힘써 싸우지 않고, 농부가 밭에 나가 힘껏 농사를 짓지 않는 나라치고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습니다.
지금이 중산국(中山國)을 공격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조무령왕은 감탄했다.
- 옳고 옳도다.
그리하여 조무령왕(趙武靈王)은 군사를 일으켜 중산국을 공격하여 그대로 멸망시켜버리고 만 것이었다.
조무령왕(趙武靈王)은 영수에 새로이 성을 쌓고 그 성의 이름을 '조왕성(趙王城)'이라 이름 지었다.
BC 296년(조혜문왕 3년)의 일이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