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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그릇을 준비한 사람 / 조상호 목사
아마 들어보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만, 옛날 조선시대 어느 마을에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아들이 없는 늙은 부자는 ‘인생 말년에 좋은 일이나 하고 죽자’라는 생각에 집안에 있는 종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30일이 지나 새해 1월1일이 되면 모든 종들에게 자유를 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종들은 30일 후가 되면 자유의 몸이 된다고 하니까 하나 같이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종들은 약속한 날짜가 다가오기를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12월31일 저녁이 되었습니다.
종들은 이제 하룻밤만 보내면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저녁 무렵 주인 노인은 종들을 모두 불러 모은 다음, “할 수만 있으면 예쁘고 길게 볏짚으로 새끼를 꼬아 놓으라”고 명을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종들은 투덜투덜 거렸습니다.
“떠나기 마지막 날 저녁까지, 이렇게 일을 시키다니”라고 불평을 하면서 마지못해 억지로 대충대충 굵직굵직하게 새끼를 꼰 다음, 잠을 잤습니다.
그러나 한 종만은 예외였습니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주인어른의 마지막 부탁인데”라고 생각하면서 정성스럽게 가늘고 길게 새벽까지 새끼줄을 꼬았습니다.
드디어 다음 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부자 노인은 종들을 모아놓고 창고를 열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봐라, 창고에 들어가서 너희들이 밤새도록 정성을 다 해서 꼰 그 새끼줄에 은전을 꿴 후, 그 돈을 가지고 출발하도록 하라.” 종들은 너무나 좋아서 은전을 끼우려고 했지만, 대부분의 종들은 전날 저녁 대충대충 굵게 꼬아놓은 새끼줄에 은전을 몇 개 밖에 끼울 수가 없어서 가슴을 치며 후회를 했습니다.
그러나 새벽까지 정성스럽게 가늘고 길게 새끼를 꼬아놓은 종은 수많은 은전을 끼운 다음, 고향으로 돌아가서 가족과 함께 잘 먹고 잘 살았다고 합니다.
무엇을 교훈하고 있는 이야기입니까?
마지막까지 마무리를 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자로 ‘유종의 미‘라고 합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무리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금년을 잘 시작한 것도 중요하지만, 금년을 잘 마무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제 4일 후면 금년이 끝나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됩니다. 올 한 해를 잘 마무리해야 새해를 잘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금년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서 교훈하고 있는 마무리 방법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 2월15일 주일예배에서 <지금 있는 것으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이미 살펴본 말씀이지만, 지난주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성령께서 다른 차원에서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2009년 마지막 주일예배인 오늘 <빈 그릇을 준비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눌까 합니다.
오늘 본문은 어느 과부 이야기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그녀는 신학생의 아내였습니다. 그런데 무슨 원인인지 몰라도 신학생이었던 남편은 가족들이 감당할 수 없는 많은 빚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남편을 잃은 신학생의 부인은 두 아들과 함께 발버둥을 치며 빚을 갚으려고 했지만, 도저히 갚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채권자가 찾아와서 빚을 갚을 능력이 없으면 두 아들을 자기에게 종으로 넘기라고 독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여인이 어떻겠습니까? 남편 잃고 사는 것도 서럽고 힘든데, 남편이 남겨놓고 간 빚을 갚으라고 빚 독촉을 받는 젊은 과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거기다가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남편 대신 두 아들에게 모든 희망을 걸었는데, 뜬금없이 빚 대신 두 아들을 종으로 넘기라니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아마도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스승인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서 자기가 처한 상황을 말하며 도움을 구했습니다. 여인의 사정을 들은 엘리사 선지자가 묻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2절)
그러자 그 여인은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없어도 정말 너무 없습니다. 한 그릇의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입니다.
그 말을 들은 엘리사 선지자는 그 여인에게 그릇을 빌려오되 조금 빌리지 말고 할 수 있으면 많이 빌려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두 아들과 함께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빌려온 그릇에다가 집 안에 있는 기름을 부으라고 합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명령이었지만, 여인은 그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기름이 끊임없이 나와서 이 여인이 준비한 그릇들을 다 채웠습니다.
그러자 엘리사 선지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7절)
본문은 여기에서 끝이 나지만,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2009년도를 뒤로 하고 우리가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을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면 준비해야 할 그릇은 어떤 그릇일까요? 우리가 무슨 그릇을 준비해야 할까요? 스테레인레스 그릇을 준비해야 할까요? 사기 그릇을 준비해야 할까요? 아니면 금그릇을 준비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세 가지입니다.
1) 빈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빈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다같이 3절을 보겠습니다.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여러분, 이 여인에게 무엇이 필요합니까?
돈이 필요합니까?
빈 그릇이 필요합니까?
빚을 갚을 돈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엘리사 선지자는 돈에 대해서 일언반구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빈 그릇 이야기만 합니다. 이 여인은 빚을 갚을 돈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왜 엘리사 선지자가 그릇을 빌려오되 빈 그릇을 빌려오라고 했을까요? 그릇에 뭔가 들어있으면 아무 것도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어 있어야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원리는 우리 생활 전반에 똑같이 적용이 됩니다.
1986년 ‘펠리카노’라는 배는 공해상에 떠도는 배가 되었다고 합니다.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버뮤다 제도, 도미니카 공화국, 네덜란드, 온두라스 이 모든 나라가 이 배를 거절했습니다. 문제는 이 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배는 비록 녹이 슬고 때는 끼었지만, 화물선으로 아직도 쓸만한 배였습니다. 배의 소유증서도 이상이 없었습니다. 배의 세금 영수증도 다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선원들도 모두 자격이 있었습니다. 이 배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나라도 이 배를 받아주지 않아 수 년 동안 공해상에 떠돌아 다녔습니다.
여러분, 그 이유를 아십니까?
그 이유는 이 배안에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배에는 자그마치 1만5천 톤의 쓰레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수거한 쓰레기입니다. 1986년 여름 미국 필라델피아 시의 직원들이 파업을 하는 바람에 도시의 쓰레기는 날이 갈수록 쌓여갔습니다.
‘펠리카노’ 호 주인은 쉽게 돈을 벌 궁리를 하였습니다. 도시의 쓰레기를 운반하여 가난한 나라에 가서 소각하고 남은 재를 처리해주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나라도 이 배안에 실려 있는 쓰레기더미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이 배는 오랫동안 공해상에 떠 있어야 했고, 이 배의 주인은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쓰레기를 실은 배를 환영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 배 때문이 아니라, 쓰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안에 세상 것들로 차있으면 하나님꼐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담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서 버리는 것이 먼저일까요?
취하는 것이 먼저일까요?
버리는 것이 먼저입니다.
버려야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하나님은 모세를 당신의 일꾼으로 쓰시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쓰실 수가 없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 22절에서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통하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모세가 40년 동안 애굽의 궁궐에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하나님은 모세를 그대로 쓰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미디안 광야로 보낸 후 그곳에서 40년 동안 훈련을 받도록 하였는데, 그가 받은 훈련은 한마디로 말하면 ‘버리기 훈련’, ‘비우기 훈련’이었습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모든 것을 버린 후에 비로소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야곱도 20년 동안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버리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다윗도 13년 동안 사울에게 쫓기면서, 버리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바울도 13년 동안이나 아라비아 광야에서 기다리면서 버리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대부분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비우는 훈련을 거쳤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비워야 채울 수 있고, 버려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버리는 훈련이 안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버리는 것보다는 소유하는 것에 더 익숙합니다.
여러분, 아기가 태어났을 때 손을 보셨습니까?
손가락을 펼 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주먹을 쥐고 태어납니다.
그리고 아기 손에 무엇을 주면 꽉 쥡니다.
지난주에 김승열 형제님의 둘째 쥬니의 손바닥에 제 검지 손가락을 대었더니 그 작은 손으로 제 손가락을 꽉 움켜쥐는 것을 보았습니다.
손으로 움켜쥐는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꾸 소유하려고 합니다.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채우지 말고 비우라고 말씀하시고, 취하지 말고 놓으라고 말씀하시고, 움켜주지 말고 손바닥을 펴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리할 것이 있으면 빨리 2009년을 정리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2010년이 되어서 또 마찬가지가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기 원하십니까?
비우시기 바랍니다.
새해 2010년을 멋지게 시작하기 원하십니까?
먼저 버릴 것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그릇에 담겨있는 세상의 것을 비우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비우면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고, 우리가 버리면 하나님께서 취하게 하시며, 우리가 정리하면 하나님께서 새롭게 출발하게 하실 것입니다.
2) 많은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많은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3절을 보겠습니다.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여러분, 빈 그릇을 빌리되 어떻게 빌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조금 빌리지 말고 할 수 있으면 많이 빌려오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두 아들과 함께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빌려온 그릇에다가 집 안에 있는 기름을 부으라고 합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명령이었지만, 이 여인은 그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동네 사람들로부터 빈 그릇들을 빌려온 다음, 두 아들과 함께 골방에 들어가서 빌려온 빈 그릇에 자기 집에 있던 기름을 붓기 시작했습니다.
다같이 5절과 6절을 보겠습니다.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여기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말씀이 두 곳입니다.
‘그릇에 다 찬지라’라는 부분과 ‘기름이 곧 그쳤더라’라는 부분입니다.
기름은 끊임없이 나와 이 여인이 준비한 빈 그릇들을 채웠습니다.
그러나 빈 그릇이 없을 때, 기름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멈춰버리고 말았습니다.
가정이지만, 만약 그릇이 더 있었다면 기름은 얼마든지 더 부어졌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 여인에게 무엇이 부족했습니까?
기름이 부족했습니까?
그릇이 부족했습니까?
이 여인에게 부족한 것은 기름이 아니라, 그릇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미션 2009팀의 사역보고를 듣고 깨달은 것이 많습니다. 선발대가 5주 동안, 본진이 10일 동안 바누아투 타나섬 로암노 마을을 중심으로 사역을 하고 돌아왔는데,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물 부족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마을에 물이 없었기 때문에 60도 경사가 진 비탈길을 20분에 걸쳐 내려가서 몸을 씻고 다시 비탈길을 힘들게 올라가다보면 도로 땀과 먼지로 뒤덮인다고 합니다. 또 교회 건축을 하기 위해 물이 필요하고 음식을 하거나 마시기 위해서 물이 필요한데, 물을 구하기 위해 비탈길을 내려갔다 오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팀원들의 보고에 의하면 바누아투가 우기철이고, 우리 팀이 갔을 때 태풍이 접근했기 때문에 비가 종종 내렸던 것 같습니다.
만약 건축한 교회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담을 물탱크가 많았더라면, 그렇게까지 물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 차례 피지나 솔로몬이나 바누아투를 가보아서 아는데, 남태평양 지역은 비가 내릴 때보면 무섭게 내립니다. 한국이나 뉴질랜드에서는 볼 수 없는 폭우가 쏟아지는데, 마치 하늘에서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1시간에 100밀리미터씩 강우량을 기록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물이 부족한 것은 비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쏟아지는 비를 담아둘 그릇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서도 똑같이 적용이 됩니다. 우리가 많은 물통을 준비하면 많은 물을 담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물의 양이 아니라, 그릇의 수입니다. 그러므로 새해를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그릇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그릇을 준비하되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담을 그릇을 많이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3) 큰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큰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학생의 아내였던 이 여인이 이웃으로부터 어떤 그릇을 빌려왔는지 알 수 없습니다.
본문에는 이 여인이 큰 그릇을 빌려왔는지 작은 그릇을 빌려왔는지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 여인이 빌려온 그릇의 사이즈와 상관없이 기름이 채워졌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200cc 짜리 컵을 빌려왔다면 그 컵에 기름이 채워졌을 것이고, 1리터 짜리 음료수병을 빌려왔다면 그 병에 기름이 채워졌을 것이고, 20리터 짜리 큰 통을 빌려왔다면 그 통에 기름이 채워졌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여인이 빌려온 그릇의 사이즈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그릇에 따라 역사하십니다.
요한복음 2장에 보면 갈길리 가나 혼인잔치 이야기 나옵니다.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하시자, 하인들은 말씀에 순종하여 빈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다시 주님께서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신 말씀에 따라 갖다 주었더니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포도주로 변한 물에만 초점을 맞추는데, 사실은 ‘빈 항아리’에도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바꾸실 때 얼마나 많은 양의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줄 아십니까?
빈 항아리만큼,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주님께서는 ‘두 세통이 들어갈 만큼 큰 여섯 개의 빈 항아리’(요2:6)에 가득채운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가정이지만 만약 두 세 통이 드는 항아리가 아니라, 서너 통이 들어갈 만큼 큰 항아리였다면, 주님께서는 그 항아리에 부은 물을 전부 포도주로 바꾸셨을 것입니다. 만약 대여섯 통이 들어갈 만큼 큰 항아리였다면, 주님께서는 그 항아리에 부은 물을 전부 포도주로 바꾸셨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릇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에서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쓸 것을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또한 우리에게 풍성하게 채워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문제는 받을 그릇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풍성하게 채워주시려고 해도 우리의 그릇이 적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한 사람이 강둑을 지나가다가 강가에서 낚시하는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마침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낚시꾼이 낚시하는 것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큰 고기를 잡았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보기에도 엄청나게 큰 고기였습니다. 그런데 낚시꾼은 잡은 고기를 자로 재더니 힘들여 잡은 그 고기를 다시 물에 놓아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미끼를 끼워 낚시를 던졌는데, 이번에는 작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낚시꾼은 자를 꺼내 재보더니 이번에는 그 작은 고기를 고기 바구니에 넣는 것이었습니다.
나그네는 너무 이상해서 낚시꾼에게 물었습니다.
“여보시오. 한 가지 물어봅시다. 왜 큰 고기는 놓아주고 작은 고기는 잡는 것이오?” 그러자 낚시꾼이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사실은 우리 집에 있는 프라이팬이 작아서 큰 고기를 구울 수가 없어서 다시 살려주었던 것이요. 그러나 작은 고기는 프라이팬에 구울 수 있기 때문에 고기 바구니에 넣었던 것이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으신 분들이 계시지만, 사실 이 낚시꾼만 어리석은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과 자기 한계에 맞는 수준만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생각의 넓이를 넓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54장 2절과 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지금 눈앞에는 황폐한 성읍이 보이지만, 믿음으로 장막터를 넓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황폐한 성읍에 사람들이 몰려온다는 것입니다.
또 시편 81편 10절에서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그릇에 따라 역사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넓힌 장막 사이즈에 맞게, 우리가 벌린 입의 크기에 따라 역사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채워질 기름을 의식하지 말고, 믿음으로 큰 그릇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힘든 2009년도를 보냈다 할지라도, 2010년도에는 크게 역사하실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큰 그릇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제 한해를 마무리 할 시간이 거의 다 되었습니다. 연말이 되면 바쁜 행사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나간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모임과 파티와 미팅에 쫓아다니다보면, 정작 새해를 설계하지 못하고 새해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나온 2009년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해야 합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기름이 그친 것은 기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름을 담을 그릇이 부족해서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 보면 사람들은 기름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 그릇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그릇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그릇에 따라 역사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할 일은 그릇을 준비하는 일이고, 그 그릇에 채워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쓰셨습니다.
하나님이 준비시켰든지, 본인이 준비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준비한 사람을 쓰셨습니다.
하나님은 준비한 사람에게 축복하셨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새로운 마음으로 2010년을 시작하고 싶다면, 새롭게 그릇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기 원한다면, 은혜와 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2009년 한 해 동안 잘 살았던지 못 살았던지 상관하지 말고, 믿음으로 빈 그릇을 준비하고, 많은 그릇을 준비하고, 큰 그릇을 준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