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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의 수필세계
-신화의 씨줄과 인문학의 날줄이 빚은 문양 -
권대근
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우리는 꽃이다. 나는 너의 꽃이고 너도 나의 꽃이다. 또한 우리는 서로의 환경이다. 수국에게 달과 벌레는 친구로서 한여름 밤의 하모니였다. 거세된 채 구경거리가 된 수국에게 우리는 어떤 환경일까.”
김정애, <수국> 중에서
I. 열며
문학은 일어났을 수 있는,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를 쓴다. 그것은 추측이나 상상, 아니면 사건의 자초지종을 보고 당연히 이렇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추리와 당위성에 의거한 서술을 말한다. 문체상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그럴듯하게, 실감나게 이야기하는 것이 문학이다. 따라서 문학은 역사보다 훨씬 진지하며 철학적인 진리성에 가까운 것을 추구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김정애 수필의 문학성이란, 체험과 신화를 토대로 한 편의 작품을 문학적으로 만들어가는 구조적인, 형상화에서 나오는 것이라 하겠다. 그것은 작가의 스토리텔링의 기술에 의해 체험에 투영된 감정이나 정서가 세련되게 문학적 방식으로 표현된 것이다. 이것이 김정애 수필의 멋이요, 맛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문학가와 철학자는 다르지 않다. 문학이 보다 깊은 철학일 때 우리는 세계인과 만난다. 사십여 편을 토대로 신화의 향기가 세포 속으로 스며들어 오는 인문학의 진수를 추려 보겠다. 필마의 기운이 주는 뿌듯한 감동을 경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II. 펼치며
1. 인식과 묘사로 엮어낸 감동의 편린
김정애 수필의 즐거운 가치평가는 탁월한 묘사력에서 가능하다. 씨줄과 날줄로 교직된 삶의 무늬가 물결친다. 바슐라르 이론에 의하면, 문학적 상상력은 물질적 상상력과 원형적 상상력을 양극으로 하고, 역동적 상상력이 물질적 이미지를 변형 발전시켜 나가면서 미지의 보편적 가치를 찾아가는 탐색자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미는 상상력의 가장 탁월한 활동 그 자체이며, 상상력은 미학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과거 체험이 현재의 의식화된 체험 속으로 들어오면, 상상의 문을 통해 과거의 체험은 김정애의 심리 속에서 현재의 체험과 결합되고 재구성되어 사실 그대로가 아닌 새로운 체험세계를 창조한다.
김정애 수필은 이러한 바슐라르의 이론처럼 상상력과 미의식의 관계를 통해 구축되고 있어 우리는 체험이 문학적으로 어떻게 변용되는지 그 과정을 행복하게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녀의 수필집을 통해 한 작가가 일흔이 되기까지 시달려야 했던 고독과 그 시간을 이겨내는 지혜를 함께 읽어나 갈 수 있다. 기쁨, 성취감, 자아실현이 주는 발랄함은 그 어떤 연출가도 잡아낼 수 없는 ‘영혼으로 빚은 예술’이다. 그녀의 수필에는 쉽게 평가할 수 없는, 유한한 삶 자체에 대한 고민과 그것을 넘어서려는 몸부림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교사, 주부, 대학원생으로 동동거리던 예순 중반, 가는 곳마다 <거리>가 발끝에 차였지만 그녀에게 살아가는 목표는 시퍼렇다. 그녀의 고뇌에 찬 삶이 주는 감동은 수필에 재미까지 더해 준다. 순결한 자기 성찰의 보고서라 할 만한 이 수필은 작가가 여기의 대상으로 간주되었던 생활수필을 거부하고 당당하게 본격수필과 마주하고 있다.
알맹이는 존재가 가진 꿈을 뜻하기도 한다. 알맹이를 키우기 위해 껍데기는 자신의 생명력을 불태우며 살아간다. 세상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대치하고 타협도 한다. 성과를 얻기도 하지만 상처만 입기도 한다. 유한의 생명임을 알기에 보람은 더욱 절실하다. 내 작은 아들은 음악가가 되겠다는 꿈이 자신의 소중한 알맹이다. 지금도 생활의 고단함을 개의치 않고 음악만으로 살아가니, 엄마에겐 고통이지만 자신에게는 삶의 원동력이다.
과학자가 된 큰 아이는, 외국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학문에의 헌신을 위해 영웅적인 노력을 하며 외로움과 고단함을 견뎌낸다. 꿈이라는 알맹이를 품었기 때문이다. 이제 일가를 이룬 큰아들은 아내와 딸들을 더 소중한 알맹이로 품었을 것이다. 알맹이는 눈물로 가꾸는 행복 에너지이다.
- <껍데기> 중에서
인용된 글에는 껍데기의 의미가 알멩이라는 대립항에 견주어져 절절하게 녹아있다. ‘알맹이는 눈물로 가꾸는 행복 에너지이다.’라는 의미화에 힘입은 정서의 객관화가 문학성을 한층 더해 준다. 문학이 독자의 감동을 목적으로 한다는 본질을 생각할 때 사상의 정서화는 필수적이며 또 연상에 의한 복잡한 내면의 심상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감각적 접근과 함께 다양한 비유의 구사도 필요할 것이다. 특히 심상에 의한 참신한 기법 같은 것도 시도해 볼 필요가 있겠다. 수필이 어떻게 사실의 세계에 충실하면서도 이를 초월한 상상의 예술세계를 이런 기법으로 구축해 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뛰어난 작품의 하나가 김정애의 <껍데기>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을 불러들여 그들의 꿈을 알멩이에, 꿈을 이루기 위해 삶을 불태우는 육신을 껍데기에 비유한다. 생활의 고단함을 개의치 않고 음악만으로 살아가는 작은 아들에 대한 각별함이 ‘엄마에겐 고통이지만 자신에게는 삶의 원동력이다.’라는 표현으로 드러난다. 과학자가 되어 외국에서 터전을 잡은 큰 아들보다 작은 아들에 대한 묘사가 읽는 이의 눈시울을 적시게 만드는 것은 김정애 수필가가 가진 모성의 진한 감정 때문이라고 하겠다. 두 아들과 열린 가슴으로 소통하면서 꿈을 향해 가는 아들을 응원하는 것이 엄마의 사명이 아니겠는가. 자기 자신과의 진실한 대면을 통해 작가가 인간적 향내를 풍기고자 하는 것은 김정애 수필이 지닌 가치 평가에 적지 않은 시사를 던져준다고 하겠다.
구순이 넘은 어머니를 모시고 벚꽃 터널을 거닐 때 우리 자매들에게 다가온 바람의 빛깔은 우리들 미소를 닮은 연분홍빛이었을 터이다. 늙은 남편과 야구장에서 롯데구단을 신나게 응원할 때 불던 바람은 다시금 되찾은 열정의 주황빛이었을 거야. 아들과 강원도 청옥산에서 캠프를 할 때 불던 바람은 싱그러운 초록빛이었을 거고, 그와 태종대에서 뱃놀이 할 때 불던 바람은 바다의 가슴을 지닌 푸른빛이었을 거다. 바르셀로나 광장에서 어린 손녀와 놀 때 불던 바람은 비둘기 목덜미에 아른거리던 아지랑이 빛이었을 거야. 무색의 바람을 추억의 프리즘으로 뽑아보니 무지개 빛깔이다. 형체 없는 무(無)에 마음을 담으니 비로소 빛깔이 보인다. 바람과 내가 만든 소통의 감정빛깔이다.
- <바람의 빛깔> 중에서 -
‘구순이 넘은 어머니를 모시고 벚꽃 터널을 거닐 때’라는 글줄을 읽는 순간 그냥 감동이 솟구쳐 올라온다. 이 수필 역시 김정애의 묘사가 빛난다. 작가는 누구랑 어떤 곳에 위치하고 있느냐에 따라 바람의 빛깔은 색을 달리한다고 여긴다. 구순 어머니와 함께할 때의 바람은 연분홍빛, 남편과 야구장에 있을 대는 주황빛, 아들과 산에서 캠핑할 때는 초록빛, 손녀와 베르셀로나 광장에 있을 때는 아지랑이빛이었을 것으로 추측하면서, 작가는 무색의 바람을 추억의 프리즘에 비춰 무지개 빛깔을 만들어낸다. 이것을 저것으로 치환해 내는 것이 문학적 원리이기에 이 수필은 문학적 성취가 빛난다. 행복이라는 색깔은 언제나 가족과 함께 있다.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가족을 사랑하고, 자신의 고통을 껴안아, 자신을 배반하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남게 하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생을 찬란한 빛의 성찬으로 만들어가는 작품은 이외에도 수두룩하다.
행복의 가장 본질적 조건이 가족간의 화합을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인지한 김정애 작가는 모성원리에 의한 수필의 치유성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 수필집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치유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솔직성을 극대화해 나가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발레리는 문학 속에서 사상이란 과일 속에 묻혀 있는 영양소와 같이 숨겨져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엘리어트는 문학은 사상을 장미꽃 향기와 같이 감각화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문학의 내용에 가족의 사랑이나 모성원리가 표현된다할지라도 그것이 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내용의 형상화가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 형상화는, 수필의 담론화 작업의 과녁이다. 형상화야말로 신선한 미적 감각을 우려내어 감동을 전해준다고 하겠다. 경험의 진폭이 다양하고 깊기 때문에 이 수필은 위에서 말한 내용의 형상화가 아주 잘된 작품이다.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나는 얼마나 많은 탈을 쓰고 있을까. 착한 척, 정의로운 척하는 가식의 탈,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박사탈, 약하고 두려운 마음을 숨기려하는 철가면, 이익을 탐하면서도 아닌척하는 선비탈, 추한 것을 가리려는 화장탈, 분노의 감정을 숨기는 비굴탈 등 수많은 탈들이 보인다. 내가 추구하거나 사회와 타협하면서 쓴 가면이 나의 진짜 모습이라고 세뇌하고 합리화한다. 내가 가진 알량한 지위나 사회적 이름, 역할들이 나의 진짜 모습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그건 다 가면이고 탈일뿐이다.
- <탈춤> 중에서 -
‘탈’의 의미는 참으로 다양하다.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처절할 정도로 자신의 그림자와 대면을 시도하는 작가의 자기 엿보기는 고백의 문학이라는 수필의 특성과 정확히 부응한다. ‘내가 가진 알량한 지위나 사회적 이름, 역할들이 나의 진짜 모습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그건 다 가면이고 탈일뿐이다.’ 이런 진술은 가면을 벗고 자신을 온전히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함이다. 자신의 내면을 빈틈없이 묘사해내는 그녀의 형상화 능력은 문학적 가치를 드높인다. 수필은 보이지 않는 부분을 작가의 개성적 시각으로 발견하는 데서 가장 큰 매력이 있다. 여기에는 보편성의 공감대를 이루어주는 서정성이 도사리고 있다. 페르소나를 진짜 자신의 모습이라고 합리화하는 가면의 자신을 ‘탈’을 쓴 모습으로 표현한 것은 자신에 대한 사랑과 깊은 이해가 있기 때문이며 진실함으로 독자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작가의 소망이 개입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본다.
인용문에 바로 이어지는 결말부, ‘탈에 취해 있으면 언젠가는 탈난다. 고요히 가라앉아, 내면 깊숙이 민머리로 울고 있을 연약한 나, 진짜 나를 만나 진정한 내면의 힘을 북돋워야하리. 벗기 힘든 탈이라면 이게 탈인 줄이라도 알자. 한 세상 탈춤 추듯 할 소리 해가며 신명나게 살아보는 건 어떠리. 흑운만천 천불견! 얼쑤!’ 중에서 첫 문장, ‘탈에 취해 있으면 언젠가는 탈난다.’는 한마디 말이 주는 힘이 바로 문학의 힘이다. ‘한 세상 탈춤 추듯 할 소리 해가며 신명나게 살아보는 건 어떠리’하는 자세 역시 절경을 이룬다. ‘탈춤’에 담긴 ‘저항성’을 탈춤 추듯 살아 보자에 은유한 것도 신선한 감각적 이미지를 불러올 뿐만 아니라, 마지막의 추임새 ‘얼쑤’라는 말도 생동하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대목이다. 그녀의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문장, 한 문장이 삶의 진통과 창작의 고뇌 속에서 태어난다. 언어를 부리는 탁월한 역량이 그녀의 수필의 가치를 드높인다. 롤랑바르트의 말대로, 그녀는 말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어떤 언어적 물질을 만들어내는 거인인 셈이다.
‘거리’라는 어두운 언어의 가슴에 꽃을 달아주고 싶다. ‘거리’가 입고 있던 남루한 옷 대신 따뜻하고 밝은 옷을 입혀 보면 어떨까. 볼거리, 먹거리, 놀 거리가 가득한 거리에서 다정한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는 얘깃거리, 웃음거리가 넘쳐난다. 최첨단 일거리가 폭발하듯 생겨나고, 값싼 로봇 덕분에 일상의 자잘한 일거리는 취미가 된다. 예술인들은 후원 틀이 튼튼하여 사람들에게 즐길 거리, 위안거리를 창조하여,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는 보람으로 산다. 노인들은 소일거리가 많아 삶이 지루하지 않고 노후가 든든하다. 아이들에게는 놀 거리가 공부거리다. 나는 읽을거리를 한가득 쌓아놓고 군것질거리 옆에서 독서를 즐긴다. 생각거리도 많고 쓸거리도 많다. 내 독자들의 귓가에 우리들 삶에 관한 관심거리도 귓가에 소곤거리고 싶다. ‘하루의 일을 끝내고 돌아가면, 거리엔 하나둘 꽃피네.’와 같은 따뜻하고 밝은 노래가 흘러나온다.
- <거리> 중에서 -
이 수필은 일단 언어연상적 소재를 잡아 브레인스토밍으로 화두를 잡아 쓴 언어유희가 재미를 준다. ‘연말이라 일거리가 생각나서일까. ‘거리’라는 언어가 꼬리를 물고 생성된다. 내 머릿속 작은 칠판에 백묵으로 마구 써대는 ‘거리’들에 머리가 벅차다. 우리네 삶이 각종 ‘거리’로 가득 차 있다는 걸 새삼 느끼는 순간, 작가는 단풍잎 몇 개가 달랑거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을 맞으며 김장거리를 생각하는 발단부가 눈길을 끈다. ‘거리’라는 어두운 언어의 가슴에 꽃을 달아주고 싶다는 발상이 참 기특하다. 이렇게도 수필을 쓸 수 있구나 할 정도로 기발한 착상이다. 작가는 ‘거리’의 의미를 자유자재로 부리며, 이야기의 소재로 삼는다. ‘거리’에 대한 상상력이 해야 될 일들을 불러오기도 한다. 전체 중에서 지극히 적은 부분만 옮겼으므로 이해에는 무리가 있지만 이 수필은 ‘거리’에 대한 작가의 긍정적인 태도나 자세로 문학적 가치를 드높인다.
‘내 독자들의 귓가에 우리들 삶에 관한 관심거리도 소곤거리고 싶다.’는 진술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겠다. 이런 소망을 통해서 작가는 문학이 지향해 나가야 할 지극히 소중한 가치를 짙게 깔아 나갔다고 볼 수 있다. 삶에 대한 관심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되찾아야 할 인정이 아닐까. 가난한 시절의 삶이 그을음으로 시커먼 흙벽에 상형문자 같은 빗금 표식으로 잘 형상화되어 있어 추억을 불러 모으는 독자들은 즐겁다. 그러므로 그 ‘관심거리’는 예삿일이 아니다. 살아갈 날이 산 날보다 적은 미래 세대가 걸어갈 중요한 삶의 길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처음부터 ‘관심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거리’라는 공간에서 ‘관심거리’를 이끌어왔다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예술인은 사람들에게 즐길 거리, 위안거리를 창조하여,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는 보람으로 사람이다. ‘거리’가 입고 있던 남루한 옷 대신 따뜻하고 밝은 옷을 입혀 세상을 밝게 채색하고자 하는 그녀가 어두운 세상에 등불을 들고 예술인의 삶을 길어 올리고 있어 든든하다.
월광소나타를 들으며 눈을 감는다. 200여 년 전의 눈 먼 소녀처럼 소리를 본다. 감은 눈꺼풀 안에 어두운 극장 속처럼 영상이 펼쳐진다. 피아노를 치는 베토벤과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채 미소 지으며 숨죽여 듣는 소녀, 눈물 글썽이는 그녀의 오라비가 보인다. 달빛에 젖은 오두막과 작은 창도 보이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도 보인다. 그들의 두런거리는 대화 모습도 보인다. 음악은 우리의 감성 깊은 곳을 일구며 전달하는 언어고, 말은 직접적인 언어다. 말에도 리듬감이 있고 선율이 있으며 감동을 담는 기법이 있으나, 같은 말도 너와 나의 경험과 상상력이 다르면 다른 상이 맺히기도 한다.
- <월광소나타> 중에서 -
‘위대한 작품에는 위대한 정신이 담긴다. 월광소나타에는 시각장애 소녀를 향한 베토벤의 지극한 사랑과 연민이 담겨있다.’ 베토벤은 음악을 사랑하는 소녀가 보지 못하는 세상을 소리로 느끼고, 볼 수 있게 하고 싶은 마음에 환상의 선율이 녹아든 월광소나타라는 곡을 썼다. 베토벤에 의해 소녀의 또 다른 눈이 뜨인 순간을 작가는 스토리텔링기법으로 수필화했다. 월광소나타를 작곡하고 난 후, 베토벤은 청각을 잃는다. 음악가에게 청각을 잃는 것은 무용가가 다리를 잃은 것처럼 절망적이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겠지만 문학이라고 하는 것에서 없어서는 안 될 두 가지 정서가 ‘외로움’과 ‘사랑’이다. 배토벤에게 눈 먼 소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월광소나타는 탄생하지 못 했을지도 모른다. 외로움이라는 말은 고통스럽다는 정서를 대동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여기서 주목한 것은 시각장애인이다. 배리어프리 화면해설 봉사를 하면서 김정애는 월광소나타가 되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해주는 기적을 위해, 눈 먼 또 다른 소녀들을 위해, 글발을 다듬는다. 화면해설 작업을 하면서 흘리는 영롱한 땀방울들이 일의 치열함을 말해주는 것 같다. 베토벤의 인간적 고통에 연민하고 따뜻한 인간애에 감사하고 음악적 천재성에 감탄하여 들은 월광소나타에 대한 멋진 감상평의 묘사가 압권이다. “200여 년 전의 눈 먼 소녀처럼 소리를 본다. 감은 눈꺼풀 안에 어두운 극장 속처럼 영상이 펼쳐진다. 피아노를 치는 베토벤과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채 미소 지으며 숨죽여 듣는 소녀, 눈물 글썽이는 그녀의 오라비가 보인다. 달빛에 젖은 오두막과 작은 창도 보이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도 보인다. 그들의 두런거리는 대화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그녀는 의미깊은 어록을 남겨둔다. ”음악은 우리의 감성 깊은 곳을 일구며 전달하는 언어고, 말은 직접적인 언어다.”라고.
시집보낼 딸이니 당신 손에 있을 때 더 잘해줘야 한다며, 다 대학공부까지 시켜서 남의 집에 보낼 거라고, 손자 2명에 손녀 4명 공부시키느라, 뇌출혈로 쓰러진 그 날까지 쉴 새 없이 일하셨다. 짠 간수로 인해 할아버지 손은 검게 턱턱 갈라지셨다. 그 손을 달래시던 글리세린으로, 우리가 땅바닥을 긁어가며 공깃돌 놀이를 하고 오면, 할아버지의 손 주름에 글리세린을 받아 내 작은 손에 발라서 면장갑을 끼워주시곤 했다. 제사 받들 아들만 귀히 여기던 시대에 시집보낼 딸을 더 애틋이 사랑하신 할아버지 덕에, 40-50년대 생 우리 자매들은 ‘82년생 지영이’도 흘렸다던 눈물은 모르고 자랐다.
- <간수> 중에서
작가는 위의 진술로 현재보다 지나간 과거에 초점을 둔다. 위 수필 <간수>는 할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간수’로 의미화한 수필이다. ‘제사 받들 아들만 귀히 여기던 시대에 시집보낼 딸을 더 애틋이 사랑하신 할아버지 덕에, 40-50년대 생 우리 자매들은 ‘82년생 지영이’도 흘렸다던 눈물은 모르고 자랐다.‘ 이 글을 읽고 나면, 수필이 과거를 반추하기 위한 성찰의 키워드였음을 알게 된다. 이런 점에서 김정애의 작품은 수필의 세계가 고수해야 할 실제적 사실성을 전체적으로 유지해 나가면서 이것을 유추해 낼 수 있는 상징적 세계로서 ’간수‘라는 제재를 옮겨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기법은 사실성 자체로 시작되고 끝나는 다른 수필에 비해서 더욱 예술성을 높이게 된다. 모든 문학은 한 마디의 말과 구와 절과 문장의 바른 해석이 따라야 하고, 전체 주제 파악이 있어야 하지만 다른 사람의 수필에 비해서 김정애의 경우는 작가의 묘사력과 상상력만큼 독자도 많은 상상력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녀가 그려내는 것만 보지 말고 그 뒤에 가려진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들 그리고 더 나가서 그 속에서 울고 웃는 우리의 조상들을 삶과 애환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2. 인문적 사유가 투사된 지성의 미학
또 하나의 김정애 수필의 중요한 내적 특성 중에 하나로 신화와의 친화성을 들 수 있다. 김정애 수필의 상당수 작품들이 신화에서 모티브를 차용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문화인이라면 누구나 역사와 신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신화는 어떤 대상이든지 단일 개념으로 규정짓지 않는 열린 태도, 그 대상의 안과 밖 그리고 이 측면 저 측면을 두루 살펴 전체를 이해하고자 하는 구축적 태도를 지향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신화는 개념적 진단과 명료화의 강박관념에 갇혀 있는 우리 수필을 열어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힘을 지닌다고 하겠다. 신화의 인물이나 사건을 자신의 이야기와 결합시켜 수필화하는 김정애의 작업은 인문학적 사유가 기반이 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런 사유가 접맥된 수필세계는 지성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다양한 신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인간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신들의 이야기와 영웅들의 전설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신화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신화를 미토스(Mythos)라고 불렀는데, 이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신과 인간, 자연에 관한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신화 접맥 수필은 지성수필의 정점에 선다고 하겠다. 서양 철학과 문학 발달과정에도 그리스신화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다. 그리스 신화는 중세 시대에서 오늘날까지 유럽 문화 전반에 이르러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미술이나 문학의 주제에서도 쉽게 그리스 신화의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인문학을 바탕으로 쓰여지는 현대수필과 신화의 밀접한 관계성을 말해 준다고 하겠다. 신화에 나오는 다양한 신들의 사건들이 수필 속에 등장하여 김정애 수필의 모티브를 제공하고 에피소드를 풍요롭게 하고 있다
100개의 눈을 가지고 태어난 아르고스와 달리, 하나의 눈도 온전치 못했던 로드리고는 시각장애의 불행에 굴하지 않았다. 음악가로서의 그의 능력을 믿고 열정을 남김없이 불태우며, 그의 눈이 되어준 아내와 더불어 불후의 명곡을 남길 수 있었다. 부족함을 사랑으로 채워서 빚은 기적이 아니던가. 잉글리쉬호른과 기타 선율의 잔상이, 빗소리와 함께 내 가슴의 현을 훑고 있다. 낙엽 향내만 남은 다기를 아직 감싸고 있는 나. 사랑에 취한 건가, 사랑이 고픈 건가.
-<로드리고와 아르고스> 중에서 -
신화의 발견은 김정애 작가의 탁월한 독서력과 인문학적 지식이 건져올린 빛나는 수확물이다. 하나의 눈도 온전치 못했던 로드리고가 시각장애에도 굴하지 않고 그의 눈이 되어준 아내의 도움을 받아 불후의 명곡을 남길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문학적 성취를 떠나 이야기 그 자체로 감동을 준다. 직가는 그 거룩하고 숭고한 사랑을 ‘부족함을 사랑으로 채워서 빚은 기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잉글리쉬호른과 기타 선율의 잔상이, 빗소리와 함께 내 가슴의 현을 훑고 있다.’는 표현도 멋지다. 결말부 담론전략을 짜면서, 에토스전략으로 ‘낙엽 향내만 남은 다기를 아직 감싸고 있는 나. 사랑에 취한 건가, 사랑이 고픈 건가.’라 말하면서 은근히 고픈 사랑을 넌지시 표한다. 김정애는 울림을 담아 전달하는 구조적 장치를 통해 감동을 건져올리면서 예술성을 확득하는 데 성공한다. 작가는 지성수필의 특성을 잘 활용하여 설득을 이끌어내고 있다.
“무려 50인분의 눈을 가지고 태어난 아르고스가 한 일이 고작 주인의 명으로, 남을 감금하고 감시하다 끝났다니!” 작가의 탄식이다. 이 작품에서도 신화 이야기가 액자 속에서 주제로 수렴되는 구조를 보여준다. 사랑꾼 음악가 부부의 설정은 사랑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보여준다. 삶의 억압 기제 속에서 틀어박혀 새로운 사고나 도전을 거부하며 살아가게 할 순 없다는 것이다. 수필가는 인류의 교사여야 하고 영혼의 치료사인 까닭이다. 시각장애라는 사실만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피해의식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 뿌리 깊게 박혀 스스로를 부정적이고 인생의 실패자로 전락시킨다. 또한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한다. 김정애는 로드리고와 아르고스라는 대조적 인물을 설정하여 '패배자'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해준다. 삶의 문학이자, 인간학인 수필은 사랑을 통해서 유의미한 인생을 창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제페토’나 ‘플레이투게더’ 등 가상세계에는 그들의 아바타가 산다. 아바타를 자기 모습과 비슷하게 만들 수 있고 더 멋지게 만들 수도 있으며, 아바타가 현실의 내 표정을 따라할 수 있다. 약간의 돈을 지불하면 멋진 옷과 헤어스타일, 구두, 장신구를 갖출 수 있고, 내 가상 룸에는 호화로운 가구도 척척 들일 수 있다. VR을 끼고 가상의 장소에서 먼 곳에 사는 현실 친구를 만나 낚시도 할 수 있다. 각종 메타버스 세계로 사람들이 몰린다. 돈도 몰려오고 기회도 반짝인다. 기업인들이 광고를 붙이고 정치인들은 가상의 세상에서 지지자를 모으며, 가수는 아바타를 내세워 자신의 노래를 들어줄 팬을 모은다. 사람들과의 활발한 대면 교류가 막힌 팬데믹 시대에, 가상공간을 얼마나 현명하게 활용할 수 있는가에 따라 현실경쟁의 판도를 바꾼다. 가상이 가상에 머물지 않고, 가상에서 이룬 욕망을 현실로 데리고 나온다.
- <이어도와 메타버스> 중에서 -
김정애 수필의 가장 강한 특징은 재제의 현대성이다. 철학박사로서의 인문학적 지식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그녀는 문학의 재미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구축한다. 그녀는 참신한 발상과 비유를 무엇보다도 중요시한다. 아이들에게 인기있는 가상세계 즉 메타버스 등에도 큰 관심을 보인다. 서양이 보는 것을 중시하는 시각문화라면, 우리 동양은 듣는 것을 중시하는 청각문화라 할 수 있다. 이 수필은 시각성을 중시하는 서양의 과학문명과 깊은 관련성을 가진다. 발단부의 전개예고 기능을 중시하는 작가의 인식은 수필 감상의 흥미를 더한다. 무엇보다도 김정애 수필을 읽는 매력은 날카로운 관찰을 통한 깊은 지성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데 있다. 가상공간의 장점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제시하는 바. 가상현실은 이제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는 점이다. 메타버스를 현실의 삶에 투사시켜 내는 작가의 저력으로 그녀의 작품은 현대적 의미의 지성적 향기를 풍긴다고 하겠다.
욕망과 현실의 좁혀지지 않는 갭은 대체재를 통해 대리만족이나 구원을 얻으려 한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작가는 제주 해녀가 부르는 이어도타령에서 상상의 섬, 이어도를 발견하고 이 이어도를 가상세계 즉 메타버스와 연결시켜 팬데믹의 시대 상상의 산물이 우리 주변을 위요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어도, 유리구두, 제비의 박씨, 어벤져스 등이 그러하고, 그 외에도 무릉도원, 엘도라도 등 수많은 유토피아들이 가상의 세계에서 현실의 욕망을 대리 충족시켜준다고 그녀는 말한다. 문학은 빠르고 정확한 의미 전달만이 아니라 그 전달의 효율성을 따진다. 얼마만큼 감동적이냐가 성패를 가르며 그래서 수사적 장치가 필요하다. 만일 감동이 없다면 문학이 아니다. 그런데 김정애의 글은 지적인데도 감동을 준다. 왜 그럴까. 소재가 현대적이기 때문이다.
카르카손 성벽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허술한 내 고장의 동래읍성이 생각났다. 당시 조선은 백성도 가난하고 나라도 가난했기에 어쩔 수 없었을 게다. 이 땅에 뺏을 게 뭐 있다고, 왜적 고니시 유키나와는 조총으로 무장한 만 팔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정명가도(征明假道), 명나라로 가는 길을 터달라는 명분으로 쳐들어왔다. 동래부사 송상현은 전사이 가도난(戰死易 假道難) 죽기는 쉬워도 길을 내주기는 어렵다는 패를 던진 후, 백성들과 함께 싸우다 장렬히 산화했다. 군사력은 약해도 자존심과 기개는 강했던 우리 백성들의 꼿꼿한 성정을 상기하며, 카르카손 성에서 죽어간 억울한 영령들에 잠시 묵념했다. 사람 사는 곳에는 다 뺏고 뺏기지 않으려는 인간들의 싸움이 존재한다. 특이한 점은 강하고 부한 놈이 약한 자들의 소유를 더 탐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키려면 강해져야 한다는 논리로 지금도 세계 각국의 군비 경쟁은 치열하다.
- <카르카손 성> 중에서 -
김정애 수필이 주는 것이 어찌 지성적인 손맛뿐이겠는가. 프랑스에 살고 있는 큰 아들을 보러 가서 중세 성의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느낀 소회를 펼치다가 동래 읍성을 지키다 순직한 송상현을 불러낸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프랑스 시인 마리 로랑생의 시구처럼, 잊혀진 사람이 아닌가. 잊혀진 사람을 기억해 주는 행위야말로 가장 인간적이다. 프랑스 카르카손 성벽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허술한 내 고장 동래 읍성이 생각났다는 데서 수필의 문학적 성취는 싹을 틔웠다. 이처럼 작가가 지성의 힘으로 잊혀진 역사나 인물을 그려 나가고 의미를 발견해 나갈 때의 감동은 작자가 직접 설명으로 전해 준 경우의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즉 송상현은 ‘전사이 가도난(戰死易 假道難)’의 패를 던진 후, 백성들과 함께 싸우다 장렬히 산화했다.’에서 사실적 묘사를 따라가다가 그 뒤에 숨겨진 추모해야 할 망자의 의미를 독자 자신이 상상력으로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마치 땅 속에서 보석을 발견했을 경우와 같다. ‘전사이 가도난’의 놀라움과 감동은 매우 크다. 이 이상 감동적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아프로디테의 진짜 사랑의 비법은 놀랍게도 외모도 웃음도 아니다. 『일리어스』에 따르면 그녀의 사랑의 마력은 '케스토스 비마스Kestos bimas'라는 가슴띠에 있다고 수록되어있다. 거기에는 애정과 욕망, 제아무리 현명한 자의 마음도 호리는 사랑의 밀어와 설득이 들어있다. 다채롭게 수놓은 아프로디테의 가슴띠를 본 남자는 단번에 사랑의 포로가 된다고 한다. 이는 신의 제왕 제우스도 예외가 아니다. 트로이전쟁 때 헤라가 그리스 군을 돕기 위해 이 가슴띠를 빌리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신들은 전쟁에 관여하지 말라는 제우스의 엄명에, 헤라는 그리스 군을 도와줄 수 없어 안타까워한다. 포세이돈이 이를 어기고 그리스 군을 돕고 있는 것을 보자, 헤라는 아프로디테의 가슴띠로 남편을 유혹하여 잠들게 해, 포세이돈을 보지 못하게 하려는 계략을 세운다. 제우스는 아내 헤라의 책략을 간파하지 못한 채 정신없이 사랑에 빠져 동침한 후 잠들게 된다. 케스토스 비마스에 담긴 밀어와 설득의 가슴언어는 가장 강력한 사랑의 묘약이다.
- <케스토스 비마스> 중에서 -
아무리 훌륭한 뜻을 담았다 하더라도 올바른 표현을 얻지 못한다면 독자들은 외면하여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바슐라르는 그가 연구하던 ‘이미지의 현상학’에 대하여 그것은 “혼의 울림, 즉 미적 감동을 추적하는 일 외의 다른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하면서 우리가 상상력에 의해서 원형의 이미지에 도달했을 때의 감동이 바로 아름다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적 쾌락은 문장의 구조나 묘사에서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장은 수필에 있어서 생명적이다. 그만큼 수필은 표현을 중시한다. 김정애가 구사하는 언어는 적절한 표현의 옷을 입고 있어 감동을 준다.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을 떠올리게 할 정도다. ‘진짜 사랑의 비법은 놀랍게도 외모도 웃음도 아니다. 『일리어스』에 따르면 그녀의 사랑의 마력은 '케스토스 비마스Kestos bimas'라는 가슴띠에 있다고 수록되어 있다.’는 이 놀라운 발견은 즐거운 미적 감동을 준다. 신화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진정한 사랑의 비법을 보여주려 했다는 측면에서 독특하고 신선하다. 신화를 인용해서 풀어가는 작가의 문학철학적 지향의식과 지성 속에 예리한 미적 내공이 숨어있다. ‘가슴언어’의 존재양식 속에서 사랑학을 탐구하여 신화에 재미를 안겨준 것은 탁월한 안목으로 남는다.
그러나 나이 70 앞에 서니, 건강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지병이 생기고 현저히 약해진 체력을 절감하게 된다. 열정은 마음이 아니라 몸에서 우러나는 건가. 일을 하려니 겁부터 난다. 아파지는 게 두렵다. 지금 이 상태로라도 길게 가고 싶다. 내게 주어진 수명까지 주변에 폐 끼치지 않고 존엄하게 살고 싶다.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주제로 한 독립영화를 작년에 보았다. 요양병원에서 재생의 희망 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한 간병인의 손에 의해 한꺼번에 생을 마감한다. 떠나는 영혼들이 고통의 육신을 벗은데 대해 감사하고 있었다. 의미 없는 연명치료에 대한 고발이다. 흔히 말하듯 정말 개똥밭이라도 이승에 구르고 싶을까? 아킬레우스는 혈기왕성할 때 죽었기에 병의 고통은 모르니 무조건 삶을 찬양한 것이리라. 나중에 진짜 죽음 앞에 서면 어떨지 몰라도 지금의 나는, 목숨만 붙어있고 모든 게 정지된 삶은 죽음보다 싫다고 생각한다
- <티토노스> 중에서 -
자아의 형성 과정이 개개인마다 다르니 글도 사람에 따라서 달라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찰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을 정확하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하고, 또 성찰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자기규정을 하여야 한다. 수필 <티토노스>는 엘리엇이 말하는 자아이론의 핵심이 실린 작품이다. 작가는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주제로 한 독립영화를 보고 존엄한 삶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성찰하는 과정은 삶의 궤적에 관하여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정보를 주시하고 되돌아보는 과정이다. ‘주어진 수명까지 주변에 폐 끼치지 않고 존엄하게 살고 싶다.’에는 연명치료에 대한 고발 영화를 보고난 이후 작가의 다짐이 담겨있다. 가장 효율적으로 예술성을 나타내는 표현기법은 은유나 환유에 의한 유추현상으로 만들어지는 상상력의 기법이다. ‘나중에 진짜 죽음 앞에 서면 어떨지 몰라도 지금의 나는, 목숨만 붙어있고 모든 게 정지된 삶은 죽음보다 싫다고 생각한다.’라는 김정애의 사생관은 자신의 품격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독자의 인간다운 삶에도 영향을 준다. 전제를 두고 판단을 내리는 이런 김정애의 논리적 언술법은 김정애 수필의 우월성을 확보해 나가게 할 것이다.
아름다운 존재는 누군가의 손을 타기 쉽다. 꽃이 어디 자신의 의지대로만 살아갈 수 있던가. 인간의 기호에 따라 변성되어 여러 품종으로 나뉜다. 수국 중에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일본 수국이다. 품종 개량을 통해 꽃잎이 연꽃처럼 층을 이룬 꽃이 많아 꽃이 크고 화려하다. 한 꽃대에 자잘한 꽃들이 공처럼 모여 있어 그 탐스럽고 고아한 멋은 결혼식장에 선 신부의 이미지와 닮았고 흰 바탕에 하늘빛과 분홍이 그러데이션 된 부드러운 색감은 흰 드레스와 잘 어울린다. 그래서 부케로 인기가 있다. 일본이 중국 수국을 들여와 이리저리 교배하여 아름다운 원예품종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암술과 수술이 모두 거세당해 씨를 맺을 수 없는 석녀가 되어버렸단다. 신부의 부케가 석녀라니 아이러니하다. 우리의 고유 품종인 설악산 수국, 제주도의 탐라수국, 울릉도의 등수국 등은 여전히 생식 기능이 살아있다니 그나마 다행인가.
- <수국> 중에서 -
김정애 수필은 우리가 살아왔던 시간들 중에서 인간미가 서려 있던 시간들에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일본수국과 우리 고유의 수국 비교가 감동을 준다. 아무래도 이 작품의 압권은 “일본이 중국 수국을 들여와 이리저리 교배하여 아름다운 원예품종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암술과 수술이 모두 거세당해 씨를 맺을 수 없는 석녀가 되어버렸다.‘는 부분이다. ’신부의 부케가 석녀라니 아이러니하다.‘는 서술은 작품의 품격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작가의 미적인 멋과 여유를 격조 속에서 만나게 한다. 작가의 수국 연구는 매우 섬세하고 전문가적이다. 수국의 이미지나 속성에 탐닉해보는 데 재미를 느낀다. 작가는 꽃에다 인간사를 투영하고, 자신의 삶까지도 포갠다. 그렇게 해서 일본의 무자비한 생명성의 파괴를 비판하고 애국심도 드러낸다. 이것은 자기 성찰의 바람직한 방법으로 수필에서 추구해야 할 목표인 것이다.
이 수필의 쾌미는 수국 앞에서 풀어놓는 작가의 문학언어의 잔치를 보는 일이다. “교정에는 어둠이 물안개처럼 가라앉아 있다. 화단 곁에 다가가니 까무룩 졸음 섞어 울던 벌레가 경계하듯 소리를 멈춘다. 화단 끝 고즈넉한 곳이다. 큰 나무 아래에 숨어서 달빛 세수를 한 뽀얀 얼굴이 화들짝 놀란다. 벌레가 밤을 새워 지키던 보물이 수국, 너이던가.” 생동하는 표현을 통해서 수필은 호소력과 설득력을 가져온다. 깊은 울림을 전달하는 문장이다. 결말부도 압권이다. “우리는 꽃이다. 나는 너의 꽃이고 너도 나의 꽃이다. 또한 우리는 서로의 환경이다. 수국에게 달과 벌레는 친구로서 한여름 밤의 하모니였다. 거세된 채 구경거리가 된 수국에게 우리는 어떤 환경일까.”로 끝난다. ‘우리는 꽃이다’라 인식할 수 있었던 배경은 수국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수국은 자기 존재를 스스로의 눈으로 응시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이 수필은 일본수국과 한국수국의 비교가 생의 본질과 바람직한 삶의 방식에 대한 교훈적 깨달음을 인식시켜 주어 감동을 준다고 하겠다.
III. 나가며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김정애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일상사의 보고에 치중하는 생활서정에만 매달리고 있는 현실에서, 묘사를 통한 예술성의 추구, 인문학을 통한 지성수필의 확장이라는 일련의 작업을 통해 수필의 문학성을 새삼 확인해준 계기를 마련했다고 하겠다. 이런 내용과 형식을 통해 결국 글은 그 사람이라는 등식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녀의 수필세계는 김정애라고 하는 한 작가의 정신적 성장사요, 화자의 사상적 변증의 역사라 할 것이다. 수필을 읽는 가장 큰 매력이 작가의 내면 풍경을 보는 것이라면, 화자만큼 자신의 심중에 있는 그림자와 체취를 수필에 투영시킨 작가는 드물지 않을까 여겨진다.
지금까지 다룬 수필들은 그녀가 살아오면서 찾고자 하고 도달하고자 하는 인간적 이상에의 의지, 그러한 사상의 유산이다. 작가 자신의 체험대로 글쓰기의 고해성사란 새로운 출발을 예감하는 ‘통과의례’일 뿐 그 자체가 미래의 길이 될 수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두 번째 수필집은 김정애의 수필의 완성태가 아니라, 그의 수필이 앞으로 걸어 나갈 기나긴 장정을 알리는 ‘출사표’로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수필을 통해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고, 인간과 사회를 구원하려는 구도적인 자세로 인해 그녀의 수필은 생명력을 지니는 것이다. 김정애는 문학보다 깊은 철학적 사유 속에 생명의 참된 의미와 문학예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수필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준다. 이 수필집은 신화와의 인문락의 친화성으로 자신만의 독톡한 수필세계를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김정애 수필을 현대적 의미의 지성수필로 평가할 수 있는 근거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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