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 명재상인 황희(1363~1452)는 바로 이
어질고 깨끗한 관리의 표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고려가 망하자
고향으로 내려가 은거했으나,나라의 거듭된 부름을 받아 다시 벼슬길에 올랐다. 이후 18년간 영의정에 재임하면서도 청렴한 생활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관복도 한 벌로 빨아 입고 장마철에는 집에 비가 샐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가 어느 정도로 청빈한 생활을 했는지는 '황희 정승네
치마 하나 가지고 세 어이딸이 입듯'이란 속담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청빈한 황희 정승의 아내와 두 딸이 치마가 없어 치마 하나를 번갈아 입고 손님 앞에 인사했다는
데서,옷 하나를 여럿이 서로 번갈아 입음'을 이르는 말이다.
이때
'어이딸'은 어미와 딸을 아울러 이르는 우리말이다. 한자어 '모녀(母女)'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보다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하고 친근한 말이
있다.
'계란에도 뼈가 있다'란 속담이
그것이다. 이는 '늘 일이 잘 안되던 사람이 모처럼 좋은 기회를
만났건만,그 일마저 역시 잘 안됨을 이르는 말'이다. 한자숙어로는 말
그대로 번역해 '계란유골(鷄卵有骨)'이다. 이 속담이야말로 황희 정승의
청빈하고 검소했던 삶을 잘 담고 있다.
황희 정승의 어려운
살림살이를 늘 안쓰럽게 여기던 세종은 어느 날 이런 명령을 내렸다. "오늘 하루 동안 남대문으로 들어오는 물건을 모두 황희 대감께 드리도록 하여라." 그러나 그 날은 공교롭게도 새벽부터 온종일 몰아친 폭풍우로 문을 드나드는 장사치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 한 시골 영감이 달걀 한 꾸러미를
들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왕은 약속대로 이 달걀을 사서 황희에게
주었다. 그런데 황희가 달걀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삶아먹으려고 하자 달걀마다 뼈가 들어 있어서 한 알도 먹을 수가 없었다.
(네이버백과사전) 여기에서 '모처럼 얻은 좋은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일이 틀어져 잘 안되는 경우'를 가리켜 '계란에도
뼈가 있다'란 말이 생겨났다. 사실 계란에 뼈가 있을 리는 없고 죄다
'곯아' 있었던 것이다.
일설에는 이 '곯아 있다'란 말을 한자로
옮기면서 마땅한 표현이 없어 발음이 비슷한 말로 차자(借字)하면서 '-유골(-有骨)'이 됐다는 풀이도 있다.
'계란'과 '달걀'은 함께 쓰는 말인데,우리 국어사전에서는 달걀을 계란의 순화어로 제시하고 있다. 달걀은 어원적으로 '닭의 알'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닭의 알→달긔알→달걀'의 과정을 거쳤다. 북한에서는 계란이나 달걀을 버리고 '닭알'로 쓴다는 것도
특이하다.
속담의 유래를 아는 것은 그 말의 정확한 사용을 위해서
중요하다. 가령 '달걀에도 뼈가 있다' 또는 '계란유골'을 자칫 달걀처럼
힘없고 가냘픈 것에도 뼈대가 있을 수 있으므로 조심하라'는 뜻으로 쓰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언중유골(言中有骨 · 말 속에 뼈가 있다는 뜻으로,예사로운 말 속에 단단한 속뜻이 들어 있음을
이르는 말)'이란 말을 연상해 잘못 쓰는 것이다.
속담과
한자숙어와의 관계에서 또 한 가지 가려야 할 것은 정작 우리 고유의 말임에도 불구하고 그 말이 한자에서 온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림의 떡/화중지병(畵中之餠)' '쇠귀에 경
읽기/우이독경(牛耳讀經)' '맺은 놈이 풀지/결자해지(結者解之)'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오비이락(烏飛梨落)' '귀에 걸면 귀걸이,코에 걸면
코걸이/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우물 안 개구리/정저와(井底蛙)' '등잔 밑이 어둡다/등하불명(燈下不明)' 이들 중에 한자말에서 온 것은 어느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원래 한자 성어인 것을 우리말로 푼 것으로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중국에서 넘어온 게 아니라 본래 우리 고유
속담인데 나중에 한자 숙어화한 것이다. (박해숙,'속담의 문화적 배경을 활용한 한국어 교육방안',2009년) 물론 우리 역사에서 오랜 기간을 한자가 주된 표기 수단으로 지배해 왔기 때문에 한자말도 자연스레
우리말 속에 뿌리를 내려 함께 쓰인다.
사람에 따라 때론 한자어
표현이 더 익숙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한자어 표현도 우리말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것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말 자체에서 자연스럽고 친숙한 정서가
묻어나는 것은 아무래도 속담만 못하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에서도
한자어 표현으로 굳이 바꿔 쓰려 하기보다 생활 속 정서가 담긴 우리말 속담을 찾아 자주 쓰는 게 바람직하다. 그것이 곧 우리말을 살찌우는 길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