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화. <하버드> 10화. ‘Know’를 ‘No’로 여긴 해프닝
언니와 나도 학교에 등록하기에 앞서, 우리의 능력을 가늠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다.
내가 속해 있던 글렌데일 교육구에는 갓 이민 온 학생들을 위하여, 외국 학생들에게 각종 시험을 실시하여 적합한 레벨을 정해 주는 ‘Welcome Center’를 마련해 놓고 있었다. 그 곳에서 나는 생전 처음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을 맛보았다.
먼저 본 수학 시험은 누워서 떡 먹기로 줄줄 풀어 나가서 몇 분 만에 끝냈고, 점수 또한 만점이었다.
문제는 다음에 본 영어 시험이었다. 여러 종류의 읽기, 쓰기, 듣기 시험들이 있었는데, 도저히 웃지 못할 사건이 일어난 것은 단어시험에서였다.
백인 선생이 옆에 앉아 갖가지 그림이 그려져 있는 그림을 하나 하나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나는 그 그림이 무엇인지 영어로 대답해야 했다.
책 한 쪽에 스무 개 가량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중 내가 영어로 말할 수 있는 그림의 수는 고작 하나였다. 알고 있는 단어가 여러 개 더 있었을 것이나 아마도 주눅이 들고 긴장이 되어서 더 형편없는 꼴이 되었던 것 같다.
더 기가 막힌 일은 나는 ‘안다.’ ‘모른다.’ 하는 말조차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때 나에게는 아주 단순한 ‘I don’t know.’ 라는 문장조차도 고급 영어에 속했던 것이다.
그런데 문득 반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미국에 도착한 그 때까지 4,5일 동안 줄곧 ‘아이 노우.’ 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던 생각이 났다. 그 ‘노우’라는 낱말이 ‘know’라는 사실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나는, 그것이 바로 ‘no’ 라고 속단해 버리고 말았다.
‘단어를 모른다는 말을 어떻게 하지?’ 라는 걱정이 태산 같던 내게 그런 단정은 영리하고 당연한 논리로 느껴졌고, 속으로 ‘유레카(Eureka)’를 외쳤다.
그 후, 그림에 알맞은 영어 단어를 댈 수 없을 때마다 ‘아이 노우.’ 하고 또박또박 자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에겐 그것이 ‘I no.’를 의미했지만, 미국 선생에겐 ‘I know.’를 의미했음을 꿈에도 짐작하지 못하고 있던 나는, 선생의 이상한 반응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이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킬 때마다 나는 고개를 흔들며 ‘아이 노우.’ 라고 힘차게 대답했고, 그 여자 선생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무엇인가 내 대답을 기다리는 표정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아이 노우. 아이 노우.’ 라고 재차 말 했을 때 선생님이 ‘오케이’라고 대답하고 더 길게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자, 나는 신경질까지 발칵 났다.
‘이 사람 뭐지? 모른다고 몇 번 말해도 계속 기다리면 어떻게 해 누굴 놀리는 건가? 한 번 모르면 모르는 것이지. 내가 그럼 아는 것을 모른다고 그러겠어?
똑같은 일이 몇 번 반복된 후 그 선생은 체념한 듯 내가 영어 단어를 대지 않으면 더 기다리지 않고 다음 그림으로 넘어갔다.
나중에 ’know’라는 동사를 배우고 난 뒤 이 해프닝을 기억했을 땐 쥐구멍이라도 꼭꼭 숨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다.
듣기와 말하기 시험은, 네 개의 그림을 놓고 그림과 관련 있는 이야기를 테이프로 들은 후, 그 그림을 하나씩 가리키며 들은 그대로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이 때는 그저 꿀 먹은 벙어리 모양을 하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고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쓰기 시험을 봐야했던 것이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란 주제로 에세이를 한 편 써서 제출해야 했는데 영어와 한글로 된 두 개의 판(version)을 제출해야 했다. 아무리 몇 십 분 동안 머리를 쥐어짜도 도무지 제대로 된 영어 문장을 쓸 수가 없었다. 결국 완성된 나의 첫 영문 에세이는 이 정도 였다.
My best friend is o o o.
She is very pretty.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고급 단어가 ‘pretty’였던 것이다.
그쯤 되자 내 자존심은 밟힐 대로 밟혀 있었고, 괜한 오기만 생겼다. 그 오기 탓으로 한글로 써낸 에세이는 몇 장에 걸쳐 내가 가지고 있던 지식이나 문자란 문자는 모조리 사용한 명작(?)이었다.
이런 ‘무식한 자’의 시련은 어디서나 계속되었다.
다음 날 아침, 혼자 집을 지키고 있을 때였다.
‘때르릉~’ 하고 전화 벨 소리가 들려 왔다. 아무 생각없이 나는 수화기를 들고 말했다.
“여보세요.”
“#@¤…….”
갑자기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당황한 나는 급히 영어를 못한다고 말하려 했으나 그럴 수조차 없었다. 몇 초를 몇 십 년으로 느끼면서 끙끙거리다가 당황스러움을 못 참고 그만 수화기를 벌컥 내려 버리고야 말았다.
그리고는 언니와 엄마가 집에 오기 전에 또다시 전화가 걸려 올까 봐 애간장을 녹이고 있었다.
그날 저녁에 나는 다음 몇 달 동안 가장 많이 쓰게 될 말을 언니에게서 배웠다.
“I cannot speak English.”
<법정> 30화. 모두가 혼자
이따금 겪는 일인데, 그때마다 뭐라 말하기 어려운 야릇한 기분에 부푼다. 시내에 나갔다가 우리 연못의 금붕어를 생각하여 비스킷 같은 걸 사들고 가게를 나설 때, 마음 한구석에 맑은 샘물이 흐른다. 세상에서는 이런 걸 가리켜 부성애(父性愛)라 하는지 모르지만….
금붕어들은 내 그림자만 보아도 우르르 몰려든다. 전에는 사람을 보면 피해 달아났는데 빵부스러기를 주면서부터 길이 든 것이다. 그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하루에 두어 차례씩, “애들아 모여라. 밥 먹자아” 하고 부른다. 먹이를 흩어주면 뽀금뽀금 고 귀여운 입으로 잘들 먹는다. 이렇게 해서 그 애들은 나의 가족이 돼버린 것이다.
연못가에 설 때마다 잔잔한 기쁨이 내 안에서 피어오른다.
사람끼리도 그러한 관계를 통해서만 맺어질 것 같다. 관계 이전에는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서로가 무연(無緣)한 타인, 그가 넘어지건 굶주리건, 그의 시력이 원시이건 근시이건 상관이 없다. 그런데 서로가 낯을 익히고 가벼운 미소를 짓고, 조금씩 속엣말을 나누게 되면 그때부터 관심이 달라진다.
그의 존재는 우리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한다. 그전까지는 주민등록증 같은 데나 기재될 그저 그런 지명(地名)이 친구가 거기서 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오로지 이 한 가지 사실 때문에 그 고장은 꽃이 피고 녹음이 우거지고 새들이 지저귀는 정다운 동네로 바뀌어버린다. 지금 그곳은 바람이 불까, 비가 내릴까, 혹은 달이 돋았을까, 이처럼 그쪽의 날씨에까지 마음쓰게 되는 것이다. 관계를 맺어 놓으면 이와 같이 우리들 자신을 끝없이 확산시킨다.
생 떽쥐베리는 <인간의 대지>에선가 이런 말을 하고 있다. ‘한 아이가 벽에 기대어 소리없이 울고 있다. 그 애의 울음을 달래어 이지러진 그 얼굴에 다시 웃음을 피어나게 하지 못한다면 그 아이는 평생을 두고 내 기억 속에서 울음을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 애가 우는 걸 내가 보았기 때문에 울음을 달랠 의무와 책임이 내게 있는 것이다. 왜 하필이면 그때 내가 그 애의 울음을 보았을것인가. 이웃이란 나누어 가진다는 뜻, 기쁨이나 슬픔을 함께 나누어 가질 때 우리는 이웃이 된다. 이웃으로 해서 인간의 존재가 새롭게 확인되는 것이다.
벙긋벙긋 꽃 같은 미소를 머금고 집으로 돌아가는 한 소녀가 있다. 우리는 그 미소의 비밀을 알 수가 없다. 일찍이 그 소녀와 낯을 익히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손을 뻗쳐도 닿을 길이 없다. 관계 이전의 사람들은 이렇듯 서로가 다다를 수 없는 먼 거리에 내던져진 것이다. 꽃 같은 미소의 비밀은 그 누구도 넘어다볼 수 없는 것, 그것은 오랜 참을성과 예절로 맺어진 사람들끼리만 지닐 수 있는 은밀한 연둣빛 뜰이다.
우리가 때로 이 시대를 슬퍼하는 것은 저마다 문을 굳게 닫아걸고 절연(絶緣) 상태에서 안주하려는 흐름 때문이다. 우는 아이를 보고도 달랠 줄을 모른다. 자기집 아이가 아니라고 고개를 돌려 스적스적 지나가버린다. 그런 우리들의 입가에서는 은밀한 그 미소가 사라져간다.
이래서 오늘, 우리들은 모두가 혼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