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31(토) 색다른 투어 cafe의 아침편지
코카콜라 회장의 유서
단풍이 곱게 물든 천주교 용산성당 성직자 묘지의 전경입니다. 위령의 날 행사를 앞두고...(2015. 10. 31 아침)
학자요, 정치가요, 목사요, 주한 미국대사(1993-1997)였던 <제임스 레이니>는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여 에모리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건강을 위해서 매일 걸어서 출퇴근하던 어느 날 쓸쓸하게 혼자 앉아 있는 한 노인을 만났다.
<레이니>교수는 노인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고 말벗이 되어 주었다.
그 후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노인을 찾아가 잔디를 깎아주거나 커피를 함께 마시면서
2년여 동안 교제를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에서 노인을 만나지 못하자 그는 노인의 집을 방문하였고
노인이 전날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곧바로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하면서
노인이 바로 <코카콜라 회장>을 지낸 분임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故 조이주에타 회장
레이니 총장
그때 한 사람이 다가와 “회장님께서 당신에게 남긴 유서가 있습니다.” 라며 봉투를 건넸다.
유서의 내용을 보고 그는 너무나 놀랐다.
“당신은 2년여 동안 내 집앞을 지나면서 나의 <말벗>이 되어 준 친구였소.
우리 집 뜰의 잔디도 함께 깎아 주고, 커피도 나누어 마셨던 나의 친구 <레이니>에게…
고마웠어요. 나는 당신에게 25억 달러와 <코카콜라> 주식 5%를 유산으로 남깁니다.”
너무 뜻밖의 유산을 받은 <레이니>교수는 3가지 점에서 놀랐다.
첫째는 전 세계적인 부자가 그렇게 검소하게 살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이 <코카콜라> 회장이었음에도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않았다는 것,
셋째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에게 그렇게 큰돈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레이니>교수는 받은 유산을 에모리대학 발전기금으로 내놓았다.
<제임스 레이니>가 노인에게 베푼 따뜻한 마음으로 엄청난 부가 굴러 들어왔지만,
그는 그 부(富)에 도취되어 정신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 부(富)를 학생과 학교를 위한 발전기금으로 내놓았을 때,
그에게는 <에모리대학의 총장>이라는 명예가 주어졌다.
레이니 교수가 에모리 대학에 기부한 이 금액은 미국대학 역대 최고 기부금으로
그 덕분에 에모리 대학은 학생들에게 최고의 학습여건과 장학제도를 제공하는
자원으로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코카콜라는 레이니와의 관계를 계속 발전시켜
기부금을 25억달러(약 2조7천억) 규모로 더 확대시켰고,
에모리 대학은 제임스 레이니의 공헌을 기려 대학원 이름을
레이니 대학원(James T. Laney Graduate School) 명명했다고 합니다.
레이니 박사
레이니 박사는 에모리대 총장을 지낸 뒤 지난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주한미국대사로 활동하면서 1차 북한 핵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등 한국과 밀접한 인연을 맺은 지한파 인사. 그는 앞서 해방직후인 1947년부터 한국전 발발직후까지 미 육군 방첩대(CIC)의 문관 요원으로 서울에서 활동했고, 이후 50년대 말에는 감리교 목사로서 한국에 파송되어 연세대 교수로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는 한미 양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으며, 미국의 코리아소사이어티로부터도 한미 우호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밴 플리트 상'을 받았다. 현재 부인 버사 여사와 함께 애틀랜타에 거주 중인 레이니 전 대사는 가끔 한인타운에 나와 된장찌개 등 한국 음식을 즐기고, 미국 프로골프에서 양용은 선수가 타이거 우즈를 꺾고 우승한 점을 높이 평가하며 축하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다.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
금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왔습니다. 며칠 후 우리 성당에서 서울대교구 주최의 '위령의 날 행사'가 개최 되기 때문에 아침미사에 참석하고자 했으나, 이른 아침이었으나 의외로 홍제동 램프길부터 차가 막혀 결국 아침미사는 참석못하고 성당주변을 둘러보며 약 2,000여명의 신자분들이 참석 예정인 우리 성당 성직자묘지 주변일대에 의자를 배치할 구상만 하였습니다.
본성전 지하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어서 들어갔는데, 연세가 많이 드신 여러 어르신분들이 금요일 새벽 미사후 주일날 배포할 주보를 접고 계셔서 인사를 드리며 그분들과 모닝커피를 함께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껏 매주 일요일 주보를 이분들이 이렇게 봉사를 하신 덕분임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지요. 절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회사에 출근하고도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그동안 밀린 블러그 작업도 할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점심은 전자상가 뒷편 '최고집 식당'에서 임원분들과 함께하곤 곧 이어 직원을 대동하고 경기도 군포 근처의 NC백화점의 식품코너를 둘러 보러 나갔습니다. 옛날 옛날 안양에서 군대생활을 할 때가 생각났습니다. 그 당시는 이곳 주변일대가 전부 논밭이었는데, 이렇게 화려한 도시로 변한 모습을 보니 격세지감임을 실감할 수 있었지요. 이곳 NC 빌당의 식품코너에서도 며칠전 광화문 D-타워에서와 같은 일식 스시전문점인 '수사"가 있어 더욱 호감을 느꼈지요. 이런 식당이 우리 용산전자상가에도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 저곳 현장을 둘러 보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귀가시 엄청 차량이 밀려 퇴근 시간이 지난 저녁 7시쯤 회사에 도착했습니다. 모든 직원들이 퇴근한 사무실에서 조용히 내일 토요일 아침에 있을 성당 직원회의 자료를 준비했습니다. 이번 아침회의에는 '위령의 날 행사' 관계로 인해 사목위원 몇분과 레지오 단장들도 모두 참석하기에 행사계획표와 의자배치 현황도를 작성하여 드려야만 할 것 같아서 꽤 오랜시간 작업을 했습니다. 이로 인해 결국 오늘도 늦은 밤 집에 귀가했습니다만, 울 마나님은 그래도 평소보다 더 일찍 귀가했다 반겨주었습니다.
야심한 밤 마나님과 함께 딸아이의 혼수품 포장을 같이했고 그 시각에 청첩장을 쓰면서 어느덧 우리 아이가 성년이 되어 시집을 가는가 싶어, 세월의 무상을 다시금 실감한 하루였습니다. 어떻든 오늘도 많이 바쁜 하루였습니다.
- 오늘의 일기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