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합리성
신앙을 가진다는 것이 합리적 의심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고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지만 , 그렇다고 신앙의 일이 모두 합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은 우리의 상식과 이해를 넘어서는 신비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리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의 신앙을 보존하고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첫 시작부터 교회는 복음을 왜곡하고 잘못 가르치는 이단들과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신학'입니다. 우리가 믿는 바를 합리적으로 설명하여 잘못된 가르침들과 구별할 수 있도록 돕고, 또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신학이라는 학문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신학은 사람의 언어로 복음을 설명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논리적이며 합리적이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신학적인 설명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을 이단으로 규정하여 경계하였던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합리적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된 놀라운 일이나 예수님께서 베푸신 이적들은 우리가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일들입니다. 그런 일들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어떤 의미인지? 왜 이 말씀을 전하여 주시는지?' 곰곰이 그 뜻을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믿음을 전제로 포기하거나, 합리적이지 않은 답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가인이 누구와 결혼했느냐?'는 제 질문에 어떤 이는 '아담이 오래 살면서 낳은 딸들이 있었다.'고 대답하더군요. 그러나 신학에서는 '아담'이 인간을 상징하는 존재였다고 말합니다. 가인이 결혼할 여성들은 이미 있었던 것입니다. 비로소 제 의문이 풀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