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 정말 ‘走肖爲王’ 나뭇잎 때문에 죽었을까 [김민철의 꽃이야기]
<200회>
김민철 논설위원
입력 2023.12.12. 00:00
업데이트 2023.12.12.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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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가을 서울 교보빌딩 광화문글판엔 ‘나뭇잎이/벌레 먹어서 예쁘다/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별처럼 아름답다’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생진의 시 ‘벌레 먹은 나뭇잎’에서 따온 문구였습니다. 그런데 벌레가 나뭇잎에 글씨까지 썼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조선 중종 때 젊은 개혁정치가 조광조(趙光祖·1482~1520)는 기묘사화로 사약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발단이 벌레가 나뭇잎에 쓴 글씨 때문이었다는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이야기였습니다.
그동안 알려진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1519년 중종은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파자(破字)가 쓰인 나뭇잎을 받습니다. 주(走)와 초(肖)를 합치면 조(趙)가 됩니다. 그래서 당시 ‘주초위왕’은 조광조가 왕이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훈구파들이 조광조를 모함하기위해 꿀물로 나뭇잎에 글자를 적어 벌레가 갉아먹게 했다고 합니다. 분노한 중종은 조광조를 능주(전남 화순)로 유배 보낸 다음 사약을 내립니다.
이 내용은 무려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더욱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런데 벌레가 글씨를 쓴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인하대 민경진 생명과학과 교수팀은 주초위왕 사건이 역사적 사실인지 확인하는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2015년 5~7월 두 달간 2주 간격으로 관악산 일대를 찾아 나뭇잎에 꿀물로 임금 ‘왕(王)’자를 써두고 곤충이 먹는지 여부를 조사한 것입니다.
실험을 위해 나뭇잎에 꿀물로 임금 '王'자를 쓴 모습. /민 교수팀 논문
실험을 위해 나뭇잎에 꿀물로 임금 '王'자를 쓴 모습. /민 교수팀 논문
기록에는 어느 벌레가 어느 나뭇잎을 갉아 먹었는지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궁 안에 있는 ‘나뭇잎에 감즙(甘汁)으로’ 글자를 새겨 벌레가 갉아먹게 했다고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민 교수팀의 실험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쳤습니다. 꿀물을 묻힌 붓으로 ‘走肖爲王’이라고 쓸만한 나뭇잎 자체가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위(爲)’는 12획이라 그 모양이 복잡해서 한 나뭇잎에 쓰기도 어려웠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할 수 없이 ‘王’자만 쓰고 실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관악산에서 40종의 나뭇잎에 ‘王’ 자를 쓸 수 있었다고 논문(‘Validation of 走肖爲王: Can insects write letters on leaves?’, 곤충학연구 48)은 밝히고 있습니다. 실험 대상인 나뭇잎은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신갈나무 등 참나무 4종, 때죽나무, 물푸레나무, 팥배나무, 개암나무, 국수나무, 청가시덩굴 등 20종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곤충이 갉아먹어 ‘王’자가 만들어졌느냐 여부겠지요? 민 교수팀은 어떤 나뭇잎에서도 ‘王’자가 새겨진 경우를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벌레들이 나뭇잎 자체를 먹지 꿀물은 입도 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곤충과 나뭇잎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등산을 하다보면 쪽동백나무 잎들이 원통 모양으로 돌돌 말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 이런 짓을 해놓았을까요? 이 돌돌 말린 나뭇잎을 펼쳐보면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나뭇잎을 갈아먹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나방 애벌레가 사는 것인데, 장미색들명나방 애벌레라고 합니다.
돌돌 말린 쪽동백나무 잎. 나뭇잎을 펼쳐보면 장미색들명나방 애벌레가 있다.
돌돌 말린 쪽동백나무 잎. 나뭇잎을 펼쳐보면 장미색들명나방 애벌레가 있다.
여름에 참나무 아래엔 참나무 가지들이 수북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누군가 가지치기를 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한 일로 보기에는 너무 방대한 규모입니다. 가지 끝은 톱질한 듯 반듯하게 잘려 있습니다. 범인은 도토리거위벌레입니다. 이 벌레는 7월 말부터 도토리 달린 참나무 가지를 떨어뜨리기 시작해 8월이면 땅바닥을 참나무 잎 천지로 만든답니다. 주둥이가 길쭉한 것이 거위를 닮았다고 해서 도토리거위벌레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도토리거위벌레가 떨어뜨린 참나무잎.
도토리거위벌레가 떨어뜨린 참나무잎.
이처럼 곤충과 나무들이 숲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주초위왕 사건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것 같습니다. 중종이 조광조를 신임해 그의 과감한 개혁 정책을 밀어주다가 그의 힘이 점점 커지자 자신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제거한 것이지 글자가 쓰인 나뭇잎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관련 기록도 중종 때가 아니라 한참 후인 선조 때 등장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라는 책은 이런 이야기를 전하면서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조금씩 변하기 마련”이라며 “기록을 면밀히 살피고 올바른 해석을 해내야 그 시대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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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사
2023.12.12 06:06:47
유촉새 같은 사이비 선동가들이 입으로 떠든 것에 불과하다...
답글
1
29
2
답글을 입력해주세요.
Milva
2023.12.12 10:20:28
선동가도 문제지만 무지몽매 OO이 더 문제지요.
늙은김씨
2023.12.12 05:54:37
벌레들은 단 것 보다 나뭇잎 자체를 먹는다는 기초적인 사실도 확인 안 한 야사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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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
mypill
2023.12.12 06:28:09
개미집 인근에 꿀물을 묻힌 과자 부스러기를 붙여 놓으면 개미나 벌레가 뜯어 갈 수도 있겠지. 1초 연구로 한 한심한 실험을 신문에까지 내주며 애독자 기만하면 안되지 싶다. 당파싸움한 그 인간들 처럼 최소한 몇년 연구함 답이 나오리라.
답글작성
13
6
Proliberty
2023.12.12 09:35:59
조선왕조실록 인터넷 판에서 조광조와 관련된 기사를 검색해서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조광조란 분의 개인적인 성향은 모르지만, 실록에 있는 이야기만으로 개인적으로 판단하면, 조광조가 오래 동안 관료로 있었다면, 그가 왕의 주의에 인의 장막을 만들고, 실권자가 되었을 수도 있을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중종은 조광조와 신진세력으로 훈구세력을 견제하려다가, 잘못하면 조광조에게 당하겠다 싶으니, 일종의 친위 쿠테다를 일으켜 조광조를 제거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답글작성
6
0
티빙
2023.12.12 08:43:53
본인에 관한 기억도 시간속에서 변하는데 세대를 거친 말들이 오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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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0
구름에 달이
2023.12.12 06:59:41
한밤중에 모사꾼이 나뭇잎을 뚫었겠지
답글작성
3
0
백곰
2023.12.12 06:45:48
개혁 혁신의 대명사인 조광조가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되었어도 결과는 흐지부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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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
曰曰
2023.12.12 10:32:44
'왕'자가 박힌 잎사귀는 얼마전 테블PC로 현생했었다. 없는 것을 빌미로 무식한 인간들을 부추겨 모함을 하여 권력을 엎는...
답글작성
1
0
74965
2023.12.12 11:25:14
가만보면 조선은 거짓선동가들에 의해 훌륭한 위인들 다죽이고 가짜들만 남아 허수아비할만한 왕만 세우고 힘만 쎈 깡패들만 좇다가 폭망한 역사. 자신들이 의리가 상실했으니 누가 의리로 협력할 국가인가 알아보지도 못할수밖에. 그리스 민주주의가 도편추방제로 의인들 진짜들 다 내쫓다 패망한것처럼. 신하들이 왕을 견제하는 의회주의, 직접민주주의는 거짓선동에 매우취약하고. 이것에 나라가 망하지않으려면 각자가 인격이나 지식적으로 공명정대 칼같이 냉철해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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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김디올
2023.12.12 08:41:00
실제로 손바닥에 왕자를 써서 왕이 된 사람이 있긴 합니다...소설같은 이야기지요.
답글작성
0
3
구카를위하여
2023.12.12 01:37:55
위대한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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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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