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兒到處是故鄕 남아 대장부는 머무는 곳이 바로 고향인 것을
幾人長在客愁中 수많은 나그네 시름 속에서 애태웠네
一聲喝破三千界 한 소리 버럭 지르니 삼천세계가 깨지고
雪裡桃花片片紅 눈 속에 붉은 복사꽃 흩날리네
@만해 한용운 선사는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한응준(韓應俊)과
온양 방씨(溫陽方氏)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청주이며 자(字)는 정옥(貞玉), 속명은 유천(裕天),
법명(法名)은 용운(龍雲), 법호(法號)는 만해(萬海)이다.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3 ・ 1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
백담사에서 불교의 기초지식을 배웠지만,
문명세계를 알고 싶은 호기심으로 세계일주를 단행하였다.
세계일주를 시베리아에서 중단한 선생은 설악산 백담사로 돌아왔다.
속세와 인연을 끊고
연곡(蓮谷)선사를 은사로 출가하여 정식으로 승려가 되었다.
불교사상을 탐구한 선생은 일본으로 들어오는
문명세계를 확인하기 위하여 1908년에는 일본유학을 단행하였다.
6개월의 짧은 유학 생활에서 선생은
불교 근대화라는 새로운 세계를 확인하였다.
승려이며, 독립운동가이며, 민족시인으로
그의 작품인 1926년 작 『님의 침묵』이 온 국민이 애창하는 명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