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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매시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로 인사를 했는데요. 오늘은 그분의 이름과 직분을 불러가면서 사랑합니다를 하는데 혹시 이성관계에 있는 분들은 주 안에서를 붙이시고 이렇게 오해하면 안 되니까 우리 옆에 분들 보시면서 이름을 직접 부르면서 사랑합니다.
네 사랑합니다. 네 축복합니다.
네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우리 삶의 여정 가운데 뭔가 지금 당장 결정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뭔가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그 시간이 지나쳐버리는 그러한 때가 있죠. 우리 지금 다음 세대를 위해서 기도했지만 우리 하늘 소망 공동체에 올해 고3이 2명입니다. 누군지 아시죠? 네 성경이와 시영이가 올해 고3 수험생들인데요. 이제 저들의 올해 한 해의 일정 가운데는 열심히 공부해서 이제 대입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 수능을 신청하는 날이 있을 겁니다. 물론 학교 다니면서 수능을 보는 친구들은 수능 신청하는 걸 놓치지 않겠지만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신청하는 기간을 놓쳐가지고 수능을 못 본 고3도 있더라고요. 설마 있습니다. 또 대학 수시 접수를 해야 되는데 정시 접수를 해야 되는데 그날 그날을 놓치는 경우도 있고요. 심지어는 합격해놓고도 그 원서를 접수하고 입학금을 내는 날을 놓쳐가지고 그게 무산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시간들이 이 친구들에게 지금 이렇게 앞으로 다가와 있죠. 하나하나 시간 시간이 너무 중요합니다. 이들을 위해서 더욱 기도해 주십시오.
또 우리 동력자들 가운데는 이제 인생 가운데 중요한 기점, 이제 지금까지 살아왔던 그 직장을 퇴직하고 새로운 2의 인생을 살아가야 할 준비를 하는 또 동력자들도 있습니다. 저들에게 있어서 이제 새로운 인생의 새로운 시작, 새로운 결정이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귀한 동력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지난 수요일 우리 권호도 안수 집사님 아버님이 소천하셔서 연락을 받고 이제 어제 모든 장례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한 주 전에 아버님 병환이 좋지 않으셔서 가서 만나 봬야 될 것 같다고 말씀을 해 주시고 기도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만나 뵀는데 몸이 회복되셔서 좀 이렇게 괜찮아진 것 같다고 하고 돌아오셔서 시간을 보내셨죠 그날 아버님을 만나본 그날이 이제 마지막 만남이었잖아요.
어쩌면 그냥 평범한 하루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의 시간은 우리 안수 집사님에게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어제 올려주신 글을 보니까 이번 한 주간 그 장래의 여정이 그 가정에게는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겠구나라고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는 지금 하루하루의 시간이 막 똑같이 흘러가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런 이런 시간의 흐름을 크로노스의 시간이라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이런 크로노스의 시간도 있지만 그 과정 속에는 의미 있는 시간 카이로스라고 하는 시간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래서 반복되는 것 같고 똑같아 보이지만 그 과정 속에 분명히 의미 있고 내 삶의 전환점이 있는 어떤 시간대가 있다고 하는 거예요. 카이로스는 의미 있는 시간 방향을 바꾸는 시간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오늘 이 예배가 여러분들에게 크로노스가 아닌 카르로스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땅에서 선포하십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여기서 이 회개는 돌이켜라. 또 히브리적 사고로는 과녁을 맞추어라라는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상적인 삶 삶 가운데 허물을 느끼고 또 반복되는 삶 가운데 무력함을 느끼는 그 과정 속에서 때를 알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아라라고 하는 그런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강조하자면 우리의 일상생활에 여러 가지의 시간들이 있지만 그 시간 속에 영원한 세상이 있음을 영원한 시간이 있음을 분명히 깨닫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라고 하는 말씀이 그 초대가 우리에게 울려지고 있는 거예요.
저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두 가지의 대조된 삶의 모습을 함께 소개하면서 우리가 지금 어떠한 삶을 살고 있고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점검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첫 번째 삶은 그물을 던지며 살아가는 물고기를 잡는 어부의 삶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들을 이렇게 점검해 보면 반복되는 일들이 참 많죠.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학교를 가고 직장을 나가고 또 그곳에서 하는 일들도 매번 새로운 일이 아니에요. 반복되는 일들을 참 많이 합니다. 어부의 삶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부의 삶은 결코 넉넉지가 않습니다. 그들의 삶은 정말 반복의 일상입니다. 매일 그물을 손질하고 어구를 정리하고 그리고 바다에 나가서 그 그물을 던지고 물고기를 잡아 또 가지고 와서 정리하고 팔고 또 그 물을 다시 정리하여 그다음 날을 준비하고 준비하고 노력하는 그들의 일상은 결코 넉넉치가 않습니다.
마치 우리가 우리의 삶 가운데 이들의 삶과 비슷한 삶들이 너무 많아요. 우리가 생계를 위해서 또 살기 위해서 마치 그물을 씻고 정리하고 던지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처럼 이 그물이라고 하는 것은 생계를 위한 도구이기도 하고 살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우리를 붙들어 매고 있는 굴레이기도 합니다. 매일 같은 곳에 던져야 하고, 수확이 없어도 또 던져야 하고, 그게 어쩌면 우리의 삶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계속 이야기하죠. 더 많이 던져라 더 빨리 던져라. 그리고 계속 우리에게 그물 던지는 것을 강요합니다. 그렇게 해야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고 누릴 수 있고 행복을 맛볼 수 있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 더 많이 더 빨리 던지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우리의 인생을 뒤돌아보면 우리가 노력한 대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님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어부의 삶을 한번 보세요. 어부가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준비했어도 어떤 날은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는 그런 날도 왜 없겠습니까? 오히려 빈손으로 돌아오는 날이 수두룩할지도 모릅니다.이 어부의 모습은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연결점이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로 보장되지 않은 노력의 삶이 우리를 고되게 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노력한 만큼 뭔가 보장된다면 정말 할 맛 날 거예요. 내가 노력한 만큼 결실이 있는다. 우리 고3 수험생들이 있지만 내가 공부한 만큼 성적 나온다 그런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네 그런데 정말 열심히 해도 결과물이 안 나올 때가 있거든요. 어부의 삶을 보십시오. 매일 새벽에 바다로 나갑니다. 그리고 물고기를 향해 그물을 던지죠. 그런데 많이 잡히는 날도 있지만 빈손으로 돌아오는 날들이 왜 없겠습니까? 그들이 열심히 준비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죠. 심지어는 아주 열심히 준비를 했어도 날씨가 좋지 않으면 풍랑이 심한 날에는 배를 띄울 수도 없고 때로는 자기의 생명과도 같은 그 그물이 찢어지는 그런 날도 그들에게 있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물고기 떼가 있는 곳을 발견하지 못해서 하루를 허탕으로 치는 경우들도 있을 것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뭔가 결실을 맺기 위하여 그물을 내어 던지지만 얻지 못하는 그런 날들이 분명히 있다고 하는 거예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금 학교 생활, 직장생활, 가정 생활 삶의 모든 여정 속에서 여러분들이 나름 열심히 해 나가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노력한 만큼 여러분들이 지금 수고하고 애쓰는 만큼 그 결실들이 맺어지고 있습니까? 지금 혹시 열매를 맺고 있다 할지라도 또 앞으로 여러분들의 삶에 그 열매가 전혀 없는 삶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의 삶이라는 거예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죠. 시험 공부를 열심히 해도 합격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고 직장 생활을 최선을 다해도 그 직장의 승진이나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는 세상이라고 하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심령 가운데는 늘 불안하고 그리고 힘들고 허무함이 우리 안에 있다는 거예요.
이런 세상을 살아가니까요. 그리고 또 이 어부의 삶과 우리의 삶을 연결해 보면 평범한 삶에 갇힌 우리의 삶이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상황과 적성에 맞게 직업을 선택하죠. 그리고 그 직업을 가지고 생계를 유지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가만히 뒤돌아보면 그 생계를 위해 살아가는 자신의 삶의 모습이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 도는 것처럼 똑같은 거예요. 그냥 하나의 시계 안에 부품같이 계속 돌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경험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어부의 삶도 너무 단조롭잖아요. 우리가 어부의 삶을 살아보지 않았지만 생각해 보면 새벽에 일어나서 일찍 바다에 나가 그물을 던지고 잡은 물고기를 정리하고 또 그 물고기를 다 정리하고 난 이후에는 다음 날을 준비하기 위하여 그물을 정리하고 어쩌면 하루하루에 매일 단순한 일상이 어브이들의 삶인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어떤 특별한 의미나 변화가 전혀 없는 삶이 반복될 수 있어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학교 직장 가정 삶의 터전들이 있지만 어쩌면 우리의 삶도 저들과 별반 다름이 없어 보입니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또 돈 벌러 다니고 소비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갑니다. 물론 이런 반복되는 일상이 우리에게 안정감을 줄 때가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반복감이 우리를 허무하게 만들 때가 있어요.
어제 퇴직하신 우리 두 분 성도님들과 식사를 하면서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준비하실지에 대한 이야기들도 나누었는데 이제 이제 시작점이기 때문에 여러분들 기도를 많이 해 주셔야 된다고 하는 게 뭐냐면 너무나도 좋은 기회라는 거예요.
인생의 지금 큰 전환점 속에서 지난 인생을 뒤돌아보고 내가 지금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그리고 그 가운데 후회되는 일, 또 안타까운 일이 왜 없겠습니까? 반복되는 일상으로 그냥 흘려보냈던 나의 일상들이 가득한 것이 분명하거든요.
여러분 여러분들도 동일합니다. 어떤 전환점을 맞이했을 때 우리가 그런 일들을 한 번 더 뒤돌아보고 살펴보지만 지금 이 예배가 여러분들에게 그러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내 반복적인 일상 가운데 의미 없이 혹시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한번 점검해 보길 원합니다. 그리고 어부의 삶과 우리의 삶을 연결점에서 또 한 가지의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진정한 만족이 없는 삶이 우리를 허무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여러분 아무리 어부가 전날 대박이 났어요. 물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그러면 그다음 날은 물고기 안 잡으러 가도 되는 건가요? 아니요. 그다음 날 물고기를 잡으러 가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수확을 거두어도 우리는 계속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제 내가 아주 맛있는 밥을 아주 많이 먹었다고 오늘 밥 안 먹습니까? 먹어야 돼요. 우리는요. 우리가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누리는 성취와 만족은 영원할 수가 없습니다. 순간적인 거예요. 그러니까 돈을 벌어도 더 많이 벌어야 합니다. 그리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더 높은 지위에 올라가기를 꿈꾸고요. 원하는 것을 이루면 또 새로운 욕망을 꿈꾸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 세상 가운데 누리는 어떤 성취는 순간적인 것이고 영원한 것이 아니 그러니까 우리가 늘 목마른 삶을 살아갑니다. 만족감이 없어요. 그물을 던지는 삶 이 삶을 솔로몬은 한마디로 정리하죠. 허무하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도다.
근데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한 지금 이런 이야기를 했지만 지금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만족을 주시는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그 주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으셨습니까? 요한복음 4장 13절과 14절입니다. 이것 좀 넘겨주시겠습니까? 우리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요한복음 4장 13절, 14절 시작.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아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뭔가 노력한 만큼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세상이고, 또 평범한 그 삶으로 인하여 반복되는 삶으로 인하여 무기력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진정한 만족이 없는 그러한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늘 허무하고 늘 만족할 수 없는데,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지금 우리에게 그런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이는 다시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오히려 그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할렐루야. 우리가 예수님의 이러한 놀라운 은혜를 입은 자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주님 안에서 세상이 지금 계속적으로 우리 안에 주는 그런 패배감과 절망감이 우리를 가득 채우게 하지 마시고, 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더욱더 소망을 품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이제 두 번째 삶의 모습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가는 삶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사람을 낚는 어부라고 정의를 해놓으셨죠. 한마디로 사명의 삶을 추구하는 삶, 삶의 목적이 바뀐 삶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넘겨주시겠어요? 네 나를 따라 오너라 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여러분 이 예수님의 부르심은요. 단순히 그들의 직업을 변화시키겠다라고 하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들의 삶에 목적을 변화시켜주겠다라고 하는 말씀이에요. 이 말씀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먼저 일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에 맞추어 살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노력해서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은 곳에 올라가라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성공을 위해서 공부하고, 직장에서 경쟁하고 또 경제적인 안정을 위해서 쉼없이 달려가라고 세상은 계속 우리에게 이야기하죠.
근데 예수님은 지금 부르시는 이들에게 더 열심히 살라고 강조하지 않으세요. 나를 따라오너라 한마디로 나의 노력과 성취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어서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살아가라고 이야기하시는 겁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더하시리라.
아멘 그물을 던지며 살아가는 인생은 그 결과를 내 노력으로 이루려고 해야 됩니다. 그런데 반복적으로 그 일을 하지만 그 결과가 내가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지 않으면 늘 목마를 수밖에 없고 불안하고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어떤 걸까요?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나의 삶을 맡겨드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발걸음은 주님을 주님의 뜻을 따르는 흔적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까 주님의 인도하심 속에 신뢰함으로 평안할 수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만큼 자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그 주님을 따라가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은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열심히 뭔가를 하는 것이 내 신앙의 좌표가 되지 않기를 원해요. 물론 열심히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우리의 자세가 필요하죠.
그런데 내가 누구를 따라가고 있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라고 하신 말씀은 새로운 피조물로 부르셨다라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과 18절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그런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아멘 우리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이전보다 더 착한 사람이 된다, 이전보다 더 부지런한 사람이 된다 이런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나는 완전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하는 고백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평가할 때 학벌로 직업으로 또 내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어떤 성공으로 우리를 평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준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거룩한 백성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하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우리를 판단하신다는 거예요. 예수님을 따르는 순간 더 이상 우리는 세상의 방식으로 우리를 판가름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우리를 보는 거예요. 과거의 실패 실수가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성공과 평가로 우리의 존재 가치가 결정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서 말씀하죠.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라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빛이 되어라. 소금이 되어라가 아니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빛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는 것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시는지를 붙잡아야 합니다.
이사야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일어나라 빛을 바라라. 이는 내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내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아멘 여러분 나의 삶의 형편 처지, 그런 것들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나는 이 세상의 빛으로 속으로 보냄 받은 사람으로서 그 보냄을 온전히 믿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거예요. 마지막 사람을 낭비하는 어부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신뢰하라고 하는 그런 말씀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오늘 18절에서 20절의 말씀에서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는 장면 속에서 따라오라라고 할 때 그물을 버려두고 따라오라고 말씀하시죠.
여러분 이 그물은요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라이프 스타일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세상의 방식으로 살아왔던 너희들의 삶을 내려놓으라 세상의 가치관으로 살아왔던 너희들의 생각을 내려놓아라라고 하는 거예요.
또 21절과 22절에서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실 때는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배와 아버지는 그들의 삶의 우선순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다는 것은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를 바꾼다는 겁니다.
전적으로 신뢰하고 주님을 따르라는 거죠. 내가 지금 붙들고 있는 이거 이거 내가 낳아버리면 앞으로 나 어떻게 살지라고 생각하는 그것들을 주님 앞에 온전히 맡겨놓고 따르라고 하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더 철저히 준비해라 계획해라. 그리고 열심히 움직여라 우리에게 강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 그것을 요구하십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내가 온전히 이해되지 않아도 그 주님의 길을 따라 가는 것, 그게 우리가 신앙적으로 세워져야 할 우리의 모습들입니다. 내 미래가 불확실해 보여도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고 그 길을 따라 나서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내 계획과는 달라 보여도 하나님의 뜻이 온전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분의 뜻을 먼저 구하고 기도하며 그리고 함께 그 길을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우리의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고 그리고 우리의 모든 인생의 여정에 결론을 지어놓으신 분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가 믿는 예수님, 우리가 사랑하는 그 예수님, 그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하여 나를 따라오라라고 하는 그 음성이 우리에게 들려지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말씀을 정리하는데요. 아브라함 이야기를 하고 말씀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그 길을 따랐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에 보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혹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세 갈 바를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는 나아갔습니다. 신뢰함으로 순종함으로 주님을 의지함으로 그 길을 나아간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가 신앙을 한다는 것은 내 열심으로 내 결단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완전하심을 믿고 신뢰하고 순종함으로 그 길을 따라 나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앞에 두 가지의 삶을 이야기하였습니다. 하나는 그물을 던지는 삶, 또 하나는 사람을 낳는 어부의 삶.
그런데 이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내 생각 안에서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이 말씀을 통해서 지금 내 앞에 놓여져 있는 이 삶의 선택 가운데 내가 내려놓아야 할 그물, 내가 내려놓아야 할 배와 아버지, 그것들이 무엇인지를 바라보시고 결단이 일어나는 이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