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생각]
맑은 물에 잉크 한 방울만 떨어져도 연못 전체로 번져 잉크물이 되잔아.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어도 칼든 놈 하나가 설치면, 다들 피하려고만 하잔아.
물속의 고기들은 잉크물에 적응해서 살려고 하지, 물을 맑게 하는 데는 거의 신경을 안 써.
그래서 '능력주의'란 것도 알고 보면 '잉크물에서 살아남기'로 밖에 인식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보수를 선택하기보다 진보를 택해 맑은 물을 만들고 꾸려나간다는 게 힘든 일이지.
이미 세상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가 되어있는 고로, 평화를 외친다는 게 얼마나 가능성 희박한 꿈인지 몰라.
사람들은 '더 잘싸우기'에만 골몰하고, 싸움을 멈출 수 있다는 것에는 관심도 없어.
3차원 유통혁명을 일으킬, 드론기술의 발전가능성을 보면서, 과학기술자들과 전쟁기술자들은 전쟁기술과 전략무기를 먼저 생각하잔아.
잉크 한 방울 떨어뜨리는 건 누구에게나 너무 쉬운 일이지만, 잉크물이 된 연못을 맑은 물의 연못으로 새롭게 만드는 건 지난하고 지루할 뿐이야.
마을 사람들 모두가 공동으로 마시는 '우물에 독약 타기'와 같은 일들이 세상엔 얼마나 흔해.
웃기는 건, 자기가 독약을 탄 우물물을 자기 자식이 마실 수도 있다는 거지.
멍청한 건, 자식에게 절대 우물물을 마시면 안 된다고 가르치지만, 자식이 서울 유학을 가서 그곳 수돗물을 마시다가 납 중독이나 풍토병에 걸려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한다는 거야.
자신에게 칼자루가 있다는 걸 알면, 누굴 찌를까 어떻게 찌를까 얼마만큼 찌를까만 생각하지, 자기 자식들이 다른 사람의 칼에 찔려 죽는다는 건 생각도 못하지.
칼을 자기만 갖고 있다고 착각하니까. 검찰, 군인, 감사원, 국세청 등 권력기관에서는 매우 흔한 풍경이지.
끼리끼리 모였어도 마찬가지야. 그들 리그 속에서 '멤버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피튀기는 노력을 경주해야 하니까.
그래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인 거야. 즉, 오징어게임인 세상인 셈이지.
그리고 똑똑해서 그런 이치를 알았다 해도, 끊임없이 타인들을 의심해야만 해. 위험하다 싶으면 배제시키고, 이익이 된다 싶으면 가까이 두어 이용해먹을 궁리를 하고, 이용 가치가 떨어지면 내쳐버리고. 결국 자기도 당할 거면서.
사는 게 온통 '마음의 지옥'이지. 우린 지금 그렇게 살고 있어. 마치 투쟁과 경쟁 없이는 살 수 없는 거라 여기면서.
kjm / 2022.8.19